The Male Leads Were Stolen by the Extra RAW novel - Chapter (29)
엑스트라에게 남주들을 빼앗겼다 (29)화(29/162)
<29화>
“하아.”
탄은 확 인상을 찌푸렸다.
방금까지만 해도 좋았던 기분이 곧 닥쳐올 성가심에 짜증이 났다.
저 망아지가 지치지도 않고 또 온 것이었다.
“형님, 형님! 헥헥…….”
속도를 내었으나, 그보다 더 빠르게 뛰어와 탄의 옆에 선 소년이 해맑은 얼굴로 헤실헤실하며 숨을 몰아쉬었다.
잔디처럼 삐쭉삐쭉 난 짧은 갈색 머리와 갈색 눈동자.
깨처럼 난 주근깨가 소년의 상기된 두 뺨에 그려져 있었고, 장난기 어린 입매 옆으로는 한쪽만 보조개가 피어나 있었다.
소년의 이름은 멕스웰.
18살인 멕스웰은 기억을 잃은 그에게 판자촌에 지낼 곳을 마련해 준 아이이자, 그를 추종자처럼 쫓아다니는 소년이었다.
멕스웰은 몇 달 전에 탄에게 시비를 걸고 도망갔던 놈에게 맞고 있었다.
별생각 없이 그놈을 해치웠을 뿐인데, 그날 이후 은인이라며 졸졸졸 쫓아다니고 있었다.
“요즘 얼굴 뵙기가 점점 힘들어집니다! 그래도 공작저에서 지내신다더니 신수가 더 훤해지신 것 같고요!”
“가서 빵이나 먹어라.”
“지금 제 걱정을 해 주신 건가요? 형님! 너무 감동입니다아!”
멕스웰은 그가 무슨 말을 하든 왜곡해서 듣는 게 특기였다.
“하아. 너 좀 가라.”
“흐헤헤헤. 제가 형님 곁 아니면 어딜 갑니까.”
어떤 짜증을 내도 넉살 좋게 웃는 것도 특기 아닌 특기였다.
그는 여전한 멕스웰에게 진절머리를 치며 판자촌을 벗어나기 위해 걸음을 돌렸다.
하지만 예상했던 대로 멕스웰은 그의 뒤를 강아지처럼 졸졸 따라오고 있었다.
“형님, 형님! 공작저는 어떻습니까? 베스인 공녀님은 정말 예쁘시던가요?”
“예뻐?”
“네! 형님은 얼굴 자주 보셨을 거 아닙니까!”
탄은 움직이던 발을 멈추었다.
예쁘다? 그게 뭐지? 이해할 수 없는 말이었다.
셀로니아의 얼굴을 볼 때마다 드는 생각이라곤 그가 지나던 길에서 자주 보았던 이름 모를 보라색 꽃을 닮았다는 게 전부였다.
언제나 시선을 빼앗기고 마는, 그래서 그의 걸음을 늘 멈추게 만드는 그 꽃.
“그런데, 네가 그 여잘 어떻게 알지?”
그가 순간 험악해진 얼굴로 멕스웰을 응시했다.
사나운 붉은 눈동자에 경계의 빛이 어렸다.
“하, 정말 형님도. 베스인 공녀를 모르는 사람이 이 제국에 어디 있답니까! 구원자잖아요!”
“구원자?”
묘한 단어에 그가 완전히 멕스웰을 향해 몸을 틀었다.
“정말 모르시는 겁니까요? 베스인 공녀는 네 명의 구원자 중 한 명이잖아요!”
구원자라니. 다른 사람들과는 뭔가 다른 걸까?
그래서 그녀의 손을 잡으면 고통이 사라지는 걸까? 탄은 흥미가 돌았다.
“그게 뭔데. 설명해라.”
“이런, 정말 모르시는 거군요. 그렇담 이 멕스웰의 친절한 설명 들어갑니다! 100년 만에 깨어난 마왕을 막기 위해 네 명의 구원자들이…….”
멕스웰은 이때다 싶어 쉼 없이 입술을 나불거렸다.
소년의 갈색 눈동자는 그 어느 때보다 반짝이고 있었다. 탄이 무언가를 묻는 일은 처음 있는 일이었기에.
늘 무언가를 설명하려 할 때면 관심 없다 일축하곤 했었는데, 신기한 일이었다.
멕스웰의 입에선 제국민이라면 모두 다 아는 사실이 흘러나왔다.
탄은 말없이 멕스웰이 하는 네 명의 구원자와 마왕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그러다 묘하게 거슬리는 결말에 한쪽 눈썹을 들어 올렸다.
“그래서, 남자들이 모두 떠났다?”
“그렇죠. 공녀님만 혼자 남으신 거죠. 심지어 그 약혼자였던 공작이라는 자는 공녀님이 사경을 헤매고 있을 때 바람을 피웠다지 뭐예요?”
“…….”
“그거 때문에 공작은 구원자 자격에 대해 논란이 좀 있었어요.”
멕스웰은 관심을 보이는 탄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어째 얘기를 다 듣고 나서 원래부터 험악했던 인상이 더 험악해진 느낌이었다.
“그놈 이름이 뭔데.”
“누구요? 아, 그 공작이요? 이안 체르빌 공작이에요. 황실 기사단장이죠.”
“이안 체르빌.”
한겨울의 눈보라보다 더 싸늘한 음성이 이안의 이름을 되뇌었다.
어디서 많이 들어 본 이름이었다.
어디서 들어 봤지? 어디서…….
“형님, 저 지금 완전 신기해요! 형님이 누군가에 대해 물어본 건 처음이잖아요.”
멕스웰은 무시무시한 기운을 뿜어내고 있는 탄을 보고도 전혀 개의치 않고 치와와처럼 계속 쫑알쫑알 말을 쏟아 내었다.
이렇게까지 길게 탄과 대화를 나눠 본 건 처음이라 멕스웰은 조금 들뜨기까지 했다.
“공녀님만 불쌍하게 되었죠, 뭐. 그런데요, 형님. 옷이 왜 이렇게 넝마가 되었어요? 여기 팔 쪽이 왜 찢어져 있는…… 형님 다치셨어요?”
멕스웰은 탄의 오른쪽 팔소매가 너덜너덜한 것을 발견하곤 기겁했다.
가위로 잘라 낸 건지 단면이 깔끔한 천 사이로 단단한 팔에 길게 난 상처가 보이고 있었다.
“언제 다치셨어요? 보아하니 치료는 잘된 것 같은데…….”
“탄.”
“탄이요? 뭐가 타요?”
“형님 아니고 탄. 내 이름.”
“으엥? 형님 이름이 있었어요? 아님 설마, 기억이 돌아오신 거예요?”
옆에서 난리를 치며 호들갑을 떠는 멕스웰의 반응에도 아무런 동요도 없는 탄의 눈동자는 아까부터 계속 무언의 불꽃이 튀고 있었다.
그 빛이 마치 사람 하나 죽일 기세였다.
“형님! 형님! 이런, 또 사라지셨네.”
그러다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다는 듯 탄이 자취를 감추었다.
“역시. 형님은 정체를 숨기고 있는 마법사가 분명해!”
멕스웰은 갑자기 텅 비어 버린 옆을 멍하니 바라보다 두 눈을 반짝이며 아주 신이 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러고는 익숙한 일이라는 듯 곧 판자촌으로 돌아갔다.
* * *
“호호호, 공녀님. 이건 어떠신지요? 공녀님의 라일락처럼 어여쁜 머리 색과 아주 잘 어울리실 겁니다.”
디자이너가 화려한 드레스 디자인을 보여 주며 미소 지었다.
종이에 스케치가 된 드레스는 밑단이 풍성하게 늘어지는 벨라인 드레스로 어여쁘긴 했으나, 어쩐지 촌스러운 느낌이 없지 않아 있었다.
셀로니아는 현재 마법 지구에서 나와 부티크 지구에 와 있었다.
나름 유명한 상점 중 그녀가 찾은 곳은 베론디 부티크였다.
황후가 입는 드레스의 8할은 이곳에서 나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만큼 황후의 총애를 입은 디자이너가 운영하는 베론디 부티크는 귀족 영애들 사이에서 드레스를 맡기고 싶은 부동의 1위 부티크였다.
그렇지만 돈이 있다고 해서 베론디 부티크에서 옷을 맞출 수 있는 게 아니었다.
황후의 드레스를 전담하다 보니 손님을 가려 받았다.
아니, 거의 손님을 받지 않았다. 부티크의 품격은 곧 황후의 얼굴이었기에.
그래서일까.
베론디 부티크의 인기는 하늘을 치솟았다. 어떻게든 한 번이라도 옷을 받고 싶어 하는 영애들이 줄을 섰다.
베론디에서 옷을 받을 수만 있다면 사교계에서 단숨에 이름을 알릴 수 있을 테니까.
물론 셀로니아는 다른 영애들과는 달랐다.
오히려 베론디 부티크의 디자이너인 베론디 드뷔셀이 그녀의 축하연 드레스를 꼭 자신이 담당하고 싶다는 요청장을 보내왔다.
“그렇군요. 그럼 이건 어떠신가요? 주인공에 걸맞은 품격을 한층 더 드높여 줄 디자인이랍니다.”
셀로니아가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다는 것을 귀신같이 눈치챈 베론디가 바로 다음 장으로 넘겨 드레스에 대해 설명했다.
지금 베론디가 보여 주고 있는 드레스의 스케치들은 모두 셀로니아를 생각하며 그렸기에 더없이 그녀와 잘 어울리는 색으로 조합되어 있었다.
다만, 문제가 있다면…….
‘너무 과하게 화려한데?’
그 누구보다 아름다워야 할 황후의 드레스를 담당해서 그런지 베론디의 디자인들은 하나같이 과할 정도로 화려했다.
대부분 드레스에 수십 개의 보석이 주렁주렁 달려 있었다.
반년 동안 토벌을 하면서 치렁치렁, 주렁주렁한 옷차림으로 다니는 것은 오히려 짐이 되었기에 가볍고 편한 차림을 선호하게 된 그녀로선 내키지 않는 디자인이기도 했다.
“좋아요! 그럼 이건 어떠신지요?”
베론디가 미련 없이 스케치를 부욱 찢으며 다음 디자인을 보여 줬다.
그러나 그다음 디자인도, 그 다다음 디자인도 하나같이 마음에 드는 게 없었다.
“이럴 수가…….”
방금까지 열의를 불태우던 베론디가 낙담했다.
셀로니아를 생각하며 그렸던 스케치는 모두 다 퇴짜를 맞았다.
“미안해요.”
“아니요! 공녀님,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셀로니아가 미안해했으나, 베론디는 오히려 투지를 불태우며 새로운 드레스의 스케치를 그려 나가기 시작했다.
이대로 놓칠 수 없었다.
신비로운 보라색 머리카락과 심해처럼 깊은 푸른 눈동자.
셀로니아는 디자이너들에게 영감을 주는 대상이자 한 번쯤은 자신들의 옷을 입혀 보고 싶게 만드는 최적의 모델이었으니까.
‘너무 미안해지네.’
몸에서 불이 타오르는 착각이 들 정도로 열정적인 베론디를 보며 셀로니아는 고맙고도 미안했다.
그냥 아무거나 괜찮다고 말할 걸 그랬나.
어쩐지 시간이 꽤 소요될 것만 같았다.
“으악!”
“왜 그래?”
부티크를 구경하겠다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던 엘라가 갑자기 소리치자 셀로니아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놀란 건 그녀도 마찬가지였다.
부티크의 한 면을 채우고 있는 통유리 쇼윈도 너머, 가게 바깥에 서 있는 탄이 보였다.
그런데 꼬라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