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le Leads Were Stolen by the Extra RAW novel - Chapter (33)
엑스트라에게 남주들을 빼앗겼다 (33)화(33/162)
<33화>
“이만하죠. 애꿎은 사람들한테 피해 주려 하지 말고.”
아직도 화를 삭이지 못한 맥라이언을 보며 셀로니아가 강경하게 말했다.
“당신. 기억해 두지.”
맥라이언은 성난 눈으로 저 멀리서 무서워하고 있는 점원들의 표정을 읽고는 탄에게 경고를 날리며 먼저 문을 박차고 나갔다.
“실례가 많았어요. 그럼 다음에 뵈어요.”
“영애.”
맥라이언 뒤에 쏙 숨어 있다 관망만 했으면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태연자약하게 나가려는 그레이스를 셀로니아가 붙잡았다.
지금 이 사단이 왜 일어났는데. 그냥 보낼 수 없었다.
“그들과 함께 있다고 해서 그들과 동등한 대우를 받을 거란 기대는 말아요. 그건 좀 우습잖아요. 영애 스스로는 아무것도 아닌데 말이에요. 안 그래요?”
구원자들을 트로피처럼 쥐고 있다고 해서 그레이스가 구원자가 되는 것은 아니었다.
말도 안 되는 자만이 우스웠다. 대체 그들이 뭐라고.
그 순간, 생글생글한 표정을 유지하던 그레이스의 얼굴에 금이 갔다.
“……그건 공녀님도 마찬가지 아닌가요? 베스인 가문이 아니었다면 공녀님도 공녀님이라 불리지도 이런 대우를 받지도 못했을 텐데요.”
정곡을 건드렸는지 그레이스가 싸악 표정을 굳힌 채 말했다.
그 도발이 기꺼워 셀로니아가 미소를 머금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그렇죠. 그런데 난 반년을 그 지옥에서 구르다 살아 돌아왔거든. 편히 집에서 지냈을 누구와는 다르게.”
한 치의 흔들림 없이 단단하고도 푸른 이채를 띠고 있는 셀로니아의 눈동자에는 그레이스가 가질 수 없는 것이 깃들어 있었다.
그레이스는 그것을 단번에 알아챘다.
늘 함께 있는 이안, 레예프 그리고 맥라이언에게서 매번 보았던 것이니까. 그들의 긍지와 명예 말이다.
“……두고 보면 알겠죠.”
셀로니아를 뱁새눈으로 쳐다보던 그레이스는 파르르 떨리는 입술로 그 한마디를 내뱉곤 부티크를 나갔다.
* * *
“올라가서 따뜻한 목욕물 받아 놓을게요!”
마차에서 내린 엘라가 먼저 저택 안으로 들어갔다.
한차례 폭풍을 겪고 저택으로 돌아온 셀로니아는 중앙 문으로 향하다 빙글 몸을 돌렸다.
그러고는 따라 걷고 있는 탄을 향해 물었다.
“왜 그랬어요?”
“무엇을.”
“진짜 제 호위 기사도 아닌데, 왜 그의 멱살을 잡았냐고요.”
셀로니아는 탄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가 힘을 쓴 건 아니었으나, 맥라이언은 백작이었다.
평민인 그가 무턱대고 맥라이언의 멱살을 쥐어 잡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호위 기사라고 두둔하지 않았으면 잡혀가도 할 말이 없었다.
당연히 탄은 자신을 잡으러 온 무리들을 모조리 다 날려 버리겠지만.
“그놈이니까.”
탄은 뚜렷한 이유를 내놓았다.
하나, 그 말을 알아들을 수 없는 셀로니아의 미간이 찌푸렸다.
“그놈이 누군데요.”
“널 배신했다던 놈.”
한 명의 여자와 세 명의 남자.
네 명의 구원자라고 불리는 그들은 마왕을 물리쳤다. 그리고 그중 여자와 한 남자는 약혼까지 한 사이였다.
하지만 그 남자의 일방적인 배신으로 여자는 혼자가 되었고, 함께였던 동료들조차 그녀를 배신하고 떠났다.
탄은 멕스웰에게 이 얘기를 전해 들었을 때 무척이나 기분이 좋지 않았다.
왠지 모를 짜증까지 솟구쳤다. 만약 눈앞에 그들이 있다면 다 찢어 버리고 싶을 정도로.
심지어 그들의 이름을 전해 듣다, 전에 마주쳤던 머저리 같은 이안이라는 놈이 그녀의 약혼자이자 구원자 중 하나였다는 걸 깨달았다.
후회가 됐다. 다리라도 하나 분질러서 보냈어야 하는 것을.
그랬기에 그녀가 말리지만 않았다면 맥라이언의 목을 그대로 비틀어 버렸을 것이다.
그가 셀로니아가 말린다고 참은 이유는 단 하나였다.
전처럼 자신이 힘을 썼다가 그녀가 또다시 오해하고 저를 외면할까 봐.
무섭다고 했으니까.
그게 싫어서 참았을 뿐이었다.
“어떻게…….”
셀로니아가 경악한 얼굴로 탄을 보았다.
어떻게 알았지? 설마, 기억이 돌아온 건가?
“구원자들 얘기는 제국민이라면 다 안다더군.”
“…….”
셀로니아는 들려온 대답에 거세게 흔들리는 눈으로 탄의 표정을 관찰했다.
딱히 기억이 떠오른 건 아닌지 붉은 눈은 별다른 동요를 보이질 않았다.
그녀는 크게 안도했다.
워낙 유명한 얘기니까 정말로 어디서 그 얘기를 전해 들은 모양이었다.
“죽여 줄까? 원하면 죽여 줄 수 있다.”
탄은 진심으로 말하며 그녀의 얼굴을 응시했다.
그러고는 낮게 가라앉은 눈동자에 숨겨진 그리움은 없는지, 일자로 다물린 입매 속에 감춰진 슬픔은 없는지 살폈다.
멕스웰에게 그 얘기를 듣는 순간, 그녀가 아직도 그들을 마음에 두고 있는지 혹 잊지 못한 건지 내내 궁금했으니까.
“됐어요. 이제 관심 없어요.”
셀로니아는 덤덤히 답했다.
“아니면 다른 놈들과 그 여자한테 복수를 해 줄 수도 있다. 네가 원하면.”
탄은 그녀가 복수를 원한다면 기꺼이 도와줄 수 있었다.
지금 당장 말만 한다면 그들의 잘린 머리를 가지고 올 수도 있었다.
그 정도쯤이야 해 줄 수 있었다. 아니, 그냥 그렇게 해 주고 싶었다.
“그냥 변한 거예요. 그들도 저도.”
“…….”
“그뿐이에요.”
셀로니아가 어느새 차분해진 얼굴로 대답했다.
순간 탄은 그녀의 얼굴에 얼핏 스친 고독을 읽어 냈다.
그건 그가 제일 잘 아는 감정이었다.
눈을 뜨고 셀로니아를 만나기 전까지 매일, 매분, 매초마다 그가 느껴 왔던 감정이었으니까.
아무도 자신을 알아봐 주지 않는 세상에 홀로 이름도 모른 채 뚝 떨어져 있던 그가 느끼던 심연처럼 어두운 감정.
그 감정이 저 맑은 얼굴에 스치고 지나간 것이었다. 그녀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그 감정이.
“…….”
탄은 입술을 짓씹었다.
왜 이렇게 화가 나는 걸까.
그녀가 그놈들이 다치는 것을 바라지 않는 것 같아서?
그 모습이 마치 아직 그들에게 미련이 있는 것 같아 보여서?
모르겠다. 그저 안에서 차오르고 있는 분노가 식을 기미가 보이질 않을 뿐이었다.
속이 울렁거린다.
자꾸만 가슴속 저 깊은 곳에서부터 끓어오르는 욕망이 주체가 되질 않았다.
삿된 사념들이 점점 그를 지배해 갔다.
지금 당장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불태우고 그놈들의 사지를 찢어발겨 그녀의 발아래 가져다 두고 싶은 암흑처럼 검은 욕망이 눈앞을 가린다.
“아까 도와주려고 한 거였다면 고마워요.”
그가 나섰던 이유는 전혀 예상치 못한 것이었으나, 어찌 됐든 셀로니아는 고마웠다.
어떤 마음인진 모르겠으나 자신을 도와주려고 한 건 맞으니까.
그녀는 알면 알수록 자신이 그에 대해 많은 것을 오해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심지어 오늘은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곤 하지만 맥라이언을 앞에 두고 탄을 두둔하기까지 했다.
‘사람 일은 참…….’
한 치도 내다볼 수 없다는 걸 그녀는 다시 한번 실감했다.
누가 자신이 구원자 앞에서 마왕을 감싸 줄 거라고 상상이나 했겠냐고.
꽤나 웃긴 상황에 속으로 피식 웃으며 걸어가던 셀로니아는 그가 아무런 반응도 없는 듯해 뒤를 돌아보았다.
“탄?”
어느새 걸음을 멈춘 채 서 있는 그의 표정이 좀 이상했다.
표정을 찡그리고 있는 게 꼭 어디 불편한 사람처럼.
심지어 그의 눈동자는 평소처럼 붉긴 한데, 이채가 없이 혼탁한 게 마치 안개가 덧씌워진 것만 같았다.
“탄!”
“…….”
커다랗고 익숙한 목소리가 순간적으로 두 귀를 찔러 오자, 탄은 탁 풀렸던 눈꺼풀에 힘을 주었다.
그러자 검은색 물감을 칠하듯 시야를 가리던 어둠이 걷히고 평소의 풍경이 보이고 있었다.
“뭐예요? 괜찮아요?”
셀로니아가 탄에게 다가와 까치발을 든 채 그의 얼굴을 살폈다. 혹시 자정도 아닌데 고통이 찾아온 건 아닐까 해서.
하지만 그건 아닌지 아픈 기색은 찾아볼 수 없었고, 그의 눈과 표정은 다시 원래대로 돌아와 있었다.
“그래.”
사념에서 벗어난 탄은 짧게 답했다.
방금 그건 뭐였지?
순간적으로 찾아온 암흑이 그의 눈과 정신을 지배하는 느낌.
만약 그녀가 자신을 부르지 않았다면 그대로 사념에 사로잡혔을 것만 같았다.
기이한 현상에서 빠져나온 그는 셀로니아의 얼굴을 눈에 담고 또 담았다.
아까처럼 시야가 점멸할 때 이 얼굴만큼은 잊고 싶지 않았으니까.
“들어가요.”
“그놈들과 오래 알았나?”
“뭐, 반년을 같이 있었으니까 오래라고 하면 오래겠네요.”
셀로니아의 대답에 탄은 속으로 그 세월을 곱씹어 보았다.
반년. 반년이라.
만난 지 일주일밖에 되지 않은 자신과 비교를 해 봤을 때 확실히 꽤 긴 시간이었다.
탄은 그녀를 만나지 못했던 그 시간 속 셀로니아가 궁금해졌다.
동시에 그 놈팡이들보다 그녀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고 싶고, 더 오래 함께 있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능하면 평생.
이제 그녀의 곁에 있는 건 떠난 그들이 아닌, 자신이었으니까.
그러니 알아야겠다. 이제부터 그녀의 관한 것이라면 그 무엇이 됐든.
“알았어요. 그러니까 제가 부탁하기 전까진 아무것도 하지 말아요.”
“그런데, 네가 치유사라서 내 통증을 치유하는 건가?”
“아마도 그렇겠죠.”
셀로니아는 그와 시시콜콜한 대화를 나누며 함께 걸어갔다.
두 사람은 노을이 지는 하늘 아래 익숙하다는 듯 공작저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나무 뒤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검은 그림자는 자취를 감추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