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le Leads Were Stolen by the Extra RAW novel - Chapter (35)
엑스트라에게 남주들을 빼앗겼다 (35)화(35/162)
<35화>
* * *
“흐흐흥~”
엘라는 콧노래를 부르며 품에 한가득 책을 든 채로 어디론가 향하고 있었다.
탄이 오늘 아침에 준 책을 벌써 다 읽었다며 다른 책을 요구했기 때문이었다.
그녀가 지금 들고 있는 책은 총 세 권이었는데, 모두 엄선의 엄선 끝에 가져온 것들이었다.
그것도 독자들 사이에서 읽는 내내 눈물 콧물 다 쏟았다는 평과 그들의 사랑 이야기에 가슴이 몽글거렸다는 평이 있는 것들로만 말이다.
물론 로맨스 소설만 있는 건 아니었다.
세상에 대한 기초 지식을 쌓을 수 있도록 <한 권으로 끝내는 제국의 역사> 또한 끼워 넣었다.
엘라가 탄에게 책을 추천하고 빌려준 이유는 간단했다.
설명을 듣는 것보다 간접적인 경험을 할 수 있는 책을 통해 배우는 게 더 빨랐으니까.
기억이 없는 그는 세상을 몰랐고, 감정 또한 알지 못했다.
일례로 루베우스가 도발한답시고 했던 말들도 다 못 알아듣지 않았던가.
어제 갑작스러운 탄의 요청에 엘라는 목에 피가 터지도록 이 세상에 대한 기초적인 지식을 설명해 주었다.
그러나 대부분 못 알아들은 눈치였다.
무언가를 다 설명하고 나면 꼭 되돌아오는 물음이 있었다.
“왜? 왜 그래야만 하지?”
엘라는 아가씨가 그의 ‘왜’라는 말에 노이로제가 걸린 이유를 이제야 알 것 같았다.
그래서 책을 보여 주기로 한 것이었다.
다행히 탄이 글을 읽을 줄 아니 말로 설명하는 것보단 일목요연한 책이 더 나을 테니.
절대 대답해 주기 귀찮아서가 아니었다.
감정이나 세상을 이해하는 데 자신보다 더 많은 것을 알고 있는 저자들이 쓴 책을 보면 조금이라도 더 도움이 될까 해서였다.
그런데 빌려주자마자 몇 시간도 되지 않아 벌써 다 읽으셨다니.
추천해 준 사람으로서 이렇게 뿌듯할 수가 없었다.
엘라는 엊그제 탄이 했던 말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럼 다들 셀로니아를 보면 심장이 간질거리나?”
거기에 붉게 익은 귀까지. 눈치가 빠른 그녀가 그것을 놓칠 리가 없었다.
“확실해!”
엘라는 확신의 찬 눈을 반짝였다.
그가 무언가를 알려고 드는 것도 아마 아가씨 때문이리라.
엘라는 당연히 오작교 역할을 하려는 건 아니었다. 그저 탄에게 도움을 주고 싶은 마음뿐.
원래 아가씨는 예민하고 날카로운 신경의 소유자라 주위 사람들에게 곧잘 화를 내던 사람이었다.
하지만 다시 깨어난 아가씨는 마치 다른 사람처럼 변해 있었다.
엘라는 변한 아가씨가 좋았다. 심지어 저번엔 들개의 습격에서 자신을 구해 주지 않으셨던가.
그날 엘라는 아가씨께 충성을 다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나쁜 배신자들이 떠나가고 아가씨는 괜찮다고 하셨지만, 조금 무기력하고도 단조로워 보였다.
하지만 탄을 만나고 나서부터는 팔팔한 기운으로 버럭버럭 소리도 지르고 하시니.
아가씨가 생기를 되찾은 것만 같아서 엘라는 탄이 좋았다.
왜 셀로니아가 탄을 보고 팔짝팔짝 뛰는지는 전혀 모르고 있었지만.
“너희들 여기서 뭐 해?”
탄이 지내고 있는 손님방에 도착한 엘라는 도둑처럼 쭈그리고 앉아 문에 귀를 대고 있는 하녀들을 보곤 물었다.
“허억! 아, 아니야!”
“아무것도!”
갑작스러운 엘라의 등장에 놀란 하녀 두 명이 토끼 눈이 되어 부리나케 도망쳤다.
“뭐야?”
딱 봐도 수상쩍은 행동에 그들의 얼굴을 기억하기 위해 매서운 눈으로 도망간 방향을 노려보던 엘라는 이윽고 문을 두드렸다.
똑똑.
맑은 소리가 난 지 몇 초 지나지 않아 닫혀 있던 문이 벌컥 열렸다.
“가져왔나?”
“네! 여기요!”
엘라는 어제보다 더 눈부신 탄의 외모에 활짝 웃으며 가지고 온 책을 건네었다.
* * *
탄은 엘라가 더 가져다준 세 권의 책까지 다 읽고, 이윽고 마지막 책을 덮었다.
창밖을 보니 어느새 하루가 다 지나 밤이 찾아와 있었다.
책은 어떤 설명보다 그가 세상을 이해하는 데 꽤나 도움이 되었다.
“신분, 신분이라.”
창밖에 걸터앉은 그는 기다란 손가락으로 창틀을 툭툭 건드리며 중얼거렸다.
셀로니아가 왜 그렇게 남들한테 반말하지 말라고 했는지 이제야 좀 이해가 갔다.
그녀가 살고 있는, 그가 기억을 잃은 채 맞닥뜨린 이 세상은 신분으로 사람의 급을 나누었으니까.
탄은 아까 엘라에게 받았던 족집게 과외 내용을 떠올렸다.
“작위? 그건 어디서 구할 수 있지?”
“그것은 구하고 싶다고 해서 구할 수 있는 건 아니에요.”
“그럼 남들은 그걸 어떻게 얻었지?”
“음, 제국을 세운 개국 공신이라든가, 제국에 엄청난 이득과 번영을 가져다줘서 황제께서 작위를 하사하셨다든가, 계속 가문을 세습받았다든가 등등, 다양해요.”
엘라의 설명에 의하면 아무나 가질 수 있는 게 아니라 하였다.
“그래서 어제처럼 막 포드 백작님께 그렇게 반말을 하시고 그러면 안 돼요……. 기억이 없으셔서 전에는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어찌 됐든 지금은 작위가 없으신 것 같으니까요. 물론! 아가씨를 위해서 나서 주셔서 정말 멋졌어요!”
엘라는 곤란한 듯 말을 웅얼거렸으나, 결국 할 말을 다 했다.
“하.”
탄은 같잖다는 듯 콧방귀를 뀌었다.
그러니까 그 신분제인지 뭔지 그거 때문에 자신은 그 놈팡이들에게 함부로 대하면 안 된다?
어째 알고 나니 더 거지 같았다.
말이나 되는 소릴 해야지.
신분이고 뭐고 그냥 깝죽거리거나 마음에 들지 않으면 목을 잘라 내면 되는 것을.
“그 거지 같은 걸 얻을 수 있는 방법은.”
납득도 되지 않고 불만스러웠으나 우습게도 탄은 엘라에게 방법을 물어봤다.
그깟 놈들보다 자신이 뒤처지는 건 말이 안 됐으니까.
“전쟁에 나가 큰 공을 세우거나, 우리 아가씨처럼 마왕을 토벌하는 등 업적을 남기면 작위를 하사받곤 해요. 하지만 지금은 전쟁도 없고 마왕도 죽었으니까 돈을 주고 사는 것밖에 없어요.”
“돈?”
“네. 가끔 재정난으로 망한 가문들이 작위를 돈을 받고 팔거든요. 물론 허울뿐인지라 엄청난 힘을 행사하진 못하지만 그래도 가질 순 있죠.”
돈이라.
탄은 지금껏 지내면서 필요한 것도, 사고 싶은 것도 없었기에 돈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 무엇인가를 갖고 싶다고 생각한 적도 없었고.
하지만 말 같지도 않은 작위라는 걸 가질 수 있다면 그 돈이라는 게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담 그걸 어디서 구하지.
그는 생애 최초로 돈 걱정을 하며 시선을 내렸다.
그러자 그의 눈에 엘라가 빌려준 로맨스 소설책이 보였다.
이 소설들은 전부 두 남녀가 서로의 신분 격차가 너무 커서 이러저러한 방해와 온갖 위기를 겪다, 결국은 서로가 진정한 사랑이었음을 깨닫고 행복을 맞이하는 결말이었다.
보고 느낀 점은 ‘그놈의 사랑이 뭐길래.’였다.
그놈의 사랑이 뭔지 한 놈은 사랑 때문에 물에 빠져 죽을 뻔하고, 한 놈은 여자를 대신해 검에 찔리고, 한 놈은 떠나간 여자를 그리워하며 식음을 전폐했다.
탄은 도무지 그들이 맹목적으로 구는 그 사랑이라는 감정이 이해가 되질 않았다.
그 미친놈들이 사랑하는 여자한테 하는 모든 행위도 이해할 수 없었다.
입을 맞추고 품에 끌어안은 채 밤을 지새운다니.
대체 그게 뭐가 좋다고?
그나마 조금 공감한 것은 그들의 감정이 자신이 셀로니아에게 느끼는 감정과 유사하다는 거였다.
탄은 그거면 되었다.
자신이 느꼈던 이 감정을 남들도 똑같이 느끼는 거라면 그걸로 되었다.
또다시 저 혼자서만 다른 게 아니라면 그게 무엇이든 괜찮았다.
똑똑.
“저어……. 손님. 안에 계신가요?”
그때 문 너머에서 낯선 목소리가 들려왔다.
셀로니아인 줄 알고 기대했던 탄의 얼굴이 순간 험악하게 일그러졌다.
어제부터 이게 몇 번째인지.
셀로니아는 단 한 번도 이 방에 찾아오지 않는데, 자꾸 다른 것들이 기웃거린다.
“뭐야.”
“그, 그게 전해 드리고 싶은 게 있어서요. 혹시 괜찮으시면…….”
탄은 귀찮은 표정으로 손가락을 까딱였다. 그러자 닫혀 있던 문이 벌컥 열렸다.
“허업! 가, 갑자기 문이 어떻게…….”
놀란 하녀가 중얼거렸으나, 이윽고 열린 문 사이로 드러난 탄의 얼굴에 의아함도 깡그리 잊고 말았다.
“이, 이거 제가 만든 건데 혹 출출하시면 맛 좀 보시라고…….”
발그레 볼을 붉힌 하녀는 이내 고개를 푹 숙이곤 들고 있던 접시를 내밀었다.
하녀가 들고 있는 접시 위엔 방금 구운 따뜻한 팬케이크가 올려져 있었다.
“필요 없어. 나가.”
셀로니아와 식사를 하는 것 외엔 음식에는 관심이 없었기에 탄은 심드렁한 얼굴을 돌렸다.
“……네, 네. 그럼 좋은 밤…….”
“이봐, 너.”
“네, 네? 필요한 게 있으신가요?”
시무룩한 얼굴로 돌아서려는 하녀를 탄이 불러 세웠다.
그러자 하녀가 어깨를 움찔 떨며 슬그머니 시선을 들었다. 또다시 창밖에 걸터앉아 있는 탄의 모습이 보였다.
순간 하녀는 자신도 모르게 입을 헤벌린 채 넋을 놓았다.
어떻게 사람이 저렇게 생겼을 수 있지?
꿈에서만 보던, 책에서만 보던 완벽한 미남의 형상이었다.
두근두근 뛰는 심장과 함께 하녀의 얼굴이 홍당무처럼 빨갛게 달아올랐다.
그러거나 말거나 관심도 없는 탄이 입을 열었다.
“너, 돈 좀 있나?”
* * *
“어, 못 전해 드린 거야? 그대로네?”
들고 갈 때와 똑같은 모양의 팬케이크를 본 다른 하녀가 주방으로 돌아온 그녀를 보며 말했다.
방금 탄의 방에서 나온 하녀는 구름 위를 걷듯 멍한 얼굴로 스르륵 걸어와 접시를 든 채 벽에 기대었다.
“왜 그래? 너도 문전 박대 당한 거야?”
“손님과 대, 대화를 나누었어.”
“꺄아악! 정말? 어떤 말씀을 하시디? 얼굴도 가까이에서 봤어?”
동료 하녀가 발을 동동 구르며 호들갑을 떨었다.
“말해 봐. 무슨 대화를 나눴는데? 너한테 무슨 말을 하셨는데?”
“도, 돈이 있냐고 물어보셨어.”
“돈?”
“응. 돈 좀 있냐고…….”
“…….”
순간의 정적이 주방 안을 감쌌다.
이윽고 기둥 뒤에 숨어서 그 얘기를 듣고 있던 검은 실루엣이 주방을 벗어났다.
“하, 그 비렁뱅이 새끼. 그럼 그렇지.”
씨근덕거리는 실루엣의 입가에 비릿한 미소가 지어졌다.
루베우스였다.
“그래서? 드렸어?”
“아니. 그냥 됐다고 하시더라고.”
하녀들은 소녀처럼 꺅꺅거리며 탄의 얼굴에 대해 다시금 이야기꽃을 피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