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le Leads Were Stolen by the Extra RAW novel - Chapter (36)
엑스트라에게 남주들을 빼앗겼다 (36)화(36/162)
<36화>
그날 자정.
“하아…….”
탄은 셀로니아의 손을 꽉 쥔 채 숨을 몰아쉬며 가녀린 팔에 이마를 기대고 있었다.
“괜찮아요?”
괴로운 고통 속에 귓가를 파고드는 나긋한 음성과 함께 그의 통증이 상쇄되어 갔다. 아주 빠르게.
그녀의 손을 잡은 지도 일주일이 훌쩍 넘어서일까.
하루하루가 지날수록 고통의 정도가 줄어들고 있었다.
자정이 되면 귀신같이 고통이 찾아드는 건 똑같았지만, 그녀를 만나기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이 가벼운 고통이었다.
이전에는 마치 몸 안에 흐르는 피가 모조리 칼날로 변해 제 몸을 갈기갈기 조각내는 것 같았다면, 이젠 검날에 가슴을 몇 번 찔리는 정도의 아픔이었다.
“엘라가 준 책은 다 읽었어요?”
셀로니아는 편안해지고 있는 그의 얼굴을 살피며 물었다.
매일 자정마다 이러고 있으니 일과처럼 익숙해졌다.
대화를 주고받으며 이 시간을 보낼 만큼.
“그래…….”
그는 대답과 함께 잔 통증까지 삼켜 내었다.
이윽고 고통은 완벽히 사라졌다. 셀로니아의 손을 잡은 지 이제 겨우 몇 초가 지났는데 말이다.
하지만 이대로 다 나은 척을 하면 그녀는 가차 없이 손을 놓고 돌아가라고 하겠지.
“윽…….”
그것이 싫어 탄은 일부러 신음을 내며 늘어진 몸을 그녀에게 더욱 기대었다.
하얗고 부드러운 손은 24시간 내내 잡고 싶을 정도로 기분이 좋았으니까.
“내일은 아침부터 나가 봐야 해서요. 식사는 혼자 해요.”
셀로니아는 탄에게 미리 언질을 주었다.
오늘 저녁, 아버지가 내일 열리는 덴로하 후작 영애 생일 파티에 참석해 줄 수 있냐고 물어 왔다.
듣자 하니 덴로하 후작은 아버지의 제일 친한 친우인데, 그의 딸이 셀로니아를 무척이나 좋아한다고 했다.
못 갈 이유가 없기에 셀로니아는 흔쾌히 수락했다.
“나도 간다.”
“아니요! 금방 돌아올 거니 그냥 당신은 당신 볼일 봐요. 그리고 초대받지 못한 사람은 참석할 수 없어요.”
셀로니아는 당연히 거절했다.
사람 많은 곳에 데리고 갔다가 무슨 일이 일어날 줄 알고. 절대 안 된다.
“당신은 아직 상식이 부족하기도 하고요.”
“…….”
단칼에 거절하는 셀로니아가 불만스러워 탄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하암. 엘라가 지식서도 빌려줬다면서요? 봤으니까 알겠네요, 남들한테 그렇게 쉽게 말을 놓으면 안 된다는 거.”
셀로니아가 하품과 함께 눈물이 고인 눈을 손으로 비비며 말했다.
늦은 시간이긴 했다. 그러나 그게 다는 아닐 것 같았다. 요즘 그의 손을 잡아 주고 나면 왜 이렇게 부쩍 피곤해지는 건지.
몸이 나른해지고 잠이 몰려왔다.
첫날엔 안 그랬는데, 하루하루가 지날수록 점점 그랬다.
이제 더는 그와 함께 있어도 긴장을 하지 않아서인 걸까. 아마 그게 맞겠지.
셀로니아는 그에게 탄이라는 이름을 지어 주고 난 뒤로는 가끔 그가 마왕이라는 걸 잊어버리곤 했다.
정말이지 한시라도 같이 있기 싫어 내쫓을 궁리만 하던 게 불과 일주일 전이었는데……. 그를 죽이기 위해 마물 숲을 지나 마왕성을 오르던 게 불과 반년 전이었는데 말이다.
지내다 보니 같은 사람처럼 느껴져서인 걸까.
그것도 아님, 갑작스럽게 떠나간 남주들로 인해 생긴 외로움이나 공백을 의도치 않게 탄이 채워 주고 있어서 그런 걸까.
그와 함께 있으면 외로울 시간이 없었다.
매일 삼시 세끼를 같이하고 있으며, 심지어 제일 외로움을 느끼는 이 야심한 시각에도 그의 손을 잡아 주느라 혼자 있을 틈이 없었으니까.
뭐가 됐든 좋은 건 아니었다. 그가 기억을 되찾으면 어떻게 돌변할지 몰랐으니까.
“너, 내 나이를 아나?”
“모르죠.”
“그런데 넌 왜 나한테 말을 높이지?”
탄은 책을 통해 나이는 상관없이 신분이 높다면 응당 그 사람에게 예의를 갖추는 거라는 인간 사회의 질서를 습득했다.
그런데 셀로니아는 왜 처음부터 자신에게 말을 높였을까?
“버릇이에요. 저는 저보다 나이가 많아 보이는 사람한테 말을 잘 안 놔요.”
셀로니아는 아주 찰나의 순간 생각해 낸 변명을 술술 읊었다.
원래부터 유교 나라에서 왔기에 나이가 많아 보이는 사람한텐 쉽사리 말을 놓지 못했다.
물론 탄한텐 처음부터 그의 정체가 마왕인 걸 알았기에 반말이 나오지 않았던 것뿐이었다.
“내 나이를 모른다면서. 내가 너보다 나이가 많다고?”
“얼굴을 봐요. 제가 당신보다 어린 건 확실해요.”
“죽고 싶나.”
“그럴 리가요.”
짜증 난다는 듯 치켜든 눈매 속 형형한 붉은 눈동자에도 셀로니아는 태연했다.
저 협박이 정말로 다 이루어졌다면 그녀는 이미 이 세상에 없었으니까.
“몇 살인데.”
“저요? 스물네에…… 헙, 한 살이에요.”
“뭐?”
“스물한 살이요.”
아차. 셀로니아가 빠르게 정정했다.
순간 본래 자신의 나이를 얘기할 뻔했다. 이 몸은 21살인데.
“스물하나.”
탄은 셀로니아의 대답에 속으로 그녀의 나이를 곱씹어 보았다.
자신과는 몇 살 차이인 걸까?
그러나 도통 자신의 나이를 알 수 없으니 가늠이 되지 않았다. 그저 그녀와 많이 차이 나지 않길 바랄 뿐.
“이제 괜찮아졌죠? 그만 가요. 저 피곤해요.”
“……윽, 아직.”
방심한 틈을 타 타이밍 좋게 내려진 축객령에 탄은 급히 아픈 척을 하며 셀로니아의 어깨에 더욱 고개를 파묻었다.
하루하루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발길을 돌리는 게 어려워졌다.
“하아암. 거짓말하지 마요. 방금까지 멀쩡하게 대화해 놓고…….”
“보이는 게 다가 아니다. 졸리면 먼저 자. 알아서 갈 테니.”
탄은 거의 감긴 눈으로 웅얼거리고 있는 셀로니아를 보며 픽 웃었다.
첫날에는 잔뜩 긴장한 얼굴로 독수리처럼 부릅뜬 눈으로 저를 지켜보더니, 날이 갈수록 점점 해이해진다.
그는 그 모습이 좋았다.
잔뜩 경계를 하던 그 모습보다, 제 앞에서 자연스럽게 풀어진 무방비한 이 모습이.
“이러고 있는데 어떻게 자요, 불편해서.”
셀로니아가 졸음이 가득한 얼굴로 눈을 느리게 끔뻑이며 그가 잡고 있는 손을 흔들어 보였다. 족쇄처럼 꽉 잡고 놓질 않고 있는데 이러고 어떻게 잔단 말인가.
말은 그렇게 했지만 졸음이 쏟아졌다.
“그냥 자.”
탄은 자꾸만 무거운 추처럼 떨어지는 그녀의 눈꺼풀을 보고 있었다.
신기하다.
잠을 자지 않는 그는 누군가 이렇게 졸려 하는 게, 잠을 잔다는 게 무척이나 신기했다.
그저 눈만 감고 있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감각일 듯했다. 잠을 자는 건 무슨 기분이지?
“이제 가도 될 것 같은…….”
결국 그녀는 잠결에 웅얼거리는 말을 다 내뱉지 못하고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그가 손을 잡고 있어서, 그가 몸을 기대고 있어서 불편하다고 했으면서 잠이 들어 버렸다.
꾸벅꾸벅. 그녀의 고개가 아래로 떨어지고 올라오기를 반복했다.
탄은 저러다 머리가 뚝 떨어질까 잡고 있는 손은 놓지 않은 채, 몸을 틀어 셀로니아를 소파에 기대게 만들기 위해 손을 뻗었다.
그 순간이었다.
완벽하게 잠든 그녀의 고개가 아래로 툭 떨어지며 탄의 가슴에 기대었다.
“…….”
탄은 그대로 경직되었다.
몸을 원래대로 다시 틀지도, 손을 놓지도, 그녀를 소파에 기대게 만들지도 못한 채 그냥 얼어 버렸다.
이젠 아예 침대라고 생각했는지 셀로니아가 점점 더 깊게 품을 파고들었으니까.
“읏…….”
척추에 전기가 오르듯 찌릿한 느낌에 탄이 낮은 숨을 터뜨렸다.
설상가상으로 그녀가 바르작거리며 품을 파고들 때마다 순간적으로 은은한 향유 냄새가 그의 코끝을 자극했다.
정신이 몽롱하고 어질할 만큼 강력한 향기였다.
그 향은 창을 통해 들어오는 산들바람 같기도, 이따금씩 날아든 벌에 묻은 꽃향기 같기도, 꿀의 단내 같기도 했다.
어디서 나는 거지?
탄은 목에 부목을 댄 사람처럼 뻣뻣하게 굳은 채 시선만 내렸다.
그러자 흘러내린 연보라색 머리카락 사이로 그녀의 하얀 목덜미가 보였다.
순간, 그는 저 목에 코를 박고 싶다는 강한 충동이 일었다.
심지어는 순백의 하얀 목덜미를 잘근잘근 씹어 제 흔적을 남기고 싶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왜?
또다시 부티크에서처럼 피가 빠르게 아래로 돌기 시작했다.
그 괴이한 느낌과 함께 두근두근, 심장이 세차게 뛴다. 어디서부터 흘러나온 건지 모를 열감이 그의 온몸을 휘감는다.
“……미친.”
그때, 뭔가 깨달은 탄이 여전히 제 품에 안겨 있는 셀로니아를 바라보며 확 달아오른 얼굴을 한 손으로 덮었다.
지금 그가 느끼고 있는 이 충동과 증상이 오늘 읽었던 책 속의 그 미친놈들의 것과 똑같았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