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le Leads Were Stolen by the Extra RAW novel - Chapter (39)
엑스트라에게 남주들을 빼앗겼다 (39)화(39/162)
<39화>
“처음 뵙겠어요. 저는 블란 백작가의 플라워입니다. 혹, 신사분의 성함을 알 수 있을까요?”
그때 탄의 앞으로 한 영애가 다가왔다.
“저어, 탄 님…….”
엘라는 누가 봐도 어여쁘게 생긴 백작 영애에게 눈길도 주지 않고 있는 탄을 조심스레 불렀다.
지금이 몇 번째인지 모르겠다.
탄이 생일 파티장에 들어선 뒤로 합심이라도 한 듯 모든 영애들이 힐끔힐끔 그를 훔쳐보았다.
거기서 끝났다면 다행이건만, 몇몇의 영애들은 자존심이 상하는 것을 무릅쓰고 탄에게 자신을 소개하며 이름을 물어 왔다.
하나같이 두 뺨에 수줍은 홍조를 띤 채로.
엘라는 귀족 사회에서 여성들이 남성에게 먼저 자신을 소개하고 이름을 묻는 것을 자존심 상해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무릇, 본인을 소개하고 호감을 표하는 건 남자들이 여자에게 해야 하는 행위였으니까.
그러나 탄이 나서질 않으니 영애들이 용기를 내어 먼저 나선 것이었다.
엘라는 그 이유를 잘 알았다.
팔짱을 끼고 기둥에 기대고 있는 것만으로도 탄은 흡사 명화 속 인물처럼 비현실적으로 보였다.
워낙 잘생긴 외모는 튀는 흑발과 붉은 눈까지도 매력으로 소화해 낼 정도로 눈이 부셨다.
게다가 베스인 가문의 호위 기사 신분으로 파티에 참석했으나, 베론디 부티크에서 받은 옷을 입고 있었기에 누가 봐도 귀족 신사 같았다.
아무튼 탄이 시선을 주지도 않은 채 대답도 하지 않자 앞에 서 있던 백작 영애의 얼굴이 창피함에 점점 붉어져 갔다.
보다 못한 엘라가 조심스럽게 탄의 옷소매를 끌어당기며 신호를 주었으나, 흘러나온 대답은 무성의하기 짝이 없었다.
“일없다.”
“하! 정말 무례하시군요.”
결국 아까 또 다른 영애가 했던 말이 백작 영애에게서도 튀어나왔다.
새빨개진 얼굴로 탄을 있는 힘껏 노려본 백작 영애는 바람 소리가 들릴 정도로 대차게 휙 뒤돌아 걸어갔다.
화가 많이 났는지 거친 걸음에 드레스가 펄럭펄럭 크게 움직일 정도였다.
“탄 님……. 너무 그렇게 매정하게 구시면 나쁜 일이 생길지도 몰라요.”
엘라가 한숨을 포옥 내쉬며 우려를 표했다.
귀족이란 족속은 쳐다본 것만으로도 평민들을 매질하는 사람들이니, 혹시나 탄이 화를 당할까 걱정이 되었다.
하지만 탄은 신경도 쓰지 않은 채 계속 한곳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오히려 지독한 냄새를 풍기는 여자가 사라져서 좋을 뿐이었다.
그의 붉은 눈이 향한 곳엔 셀로니아가 서 있었다.
작달막한 키를 가진 여자아이와 대화를 나누고 있는 셀로니아.
부티크에서 보았던 드레스와는 다른 드레스를 차려입은 그녀는 이 화려한 파티와 무척이나 잘 어울렸다.
특히나 천장에 달린 거대한 샹들리에처럼, 그녀는 같은 사람인가 싶을 정도로 눈부시게 빛나고 있었다.
그 모습은 마치 그가 어제 읽었던 책 속에 나오는 주인공 같아 시선을 뗄 수 없었다.
주인공이 화려한 파티에 참석하는 건 꼭 한 번씩 등장하는 장면이었으니까.
탄은 활자로만 존재하던 세계가 셀로니아를 보니 실존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자 저 옆에 서고 싶다는 욕망이 그의 안에서 꿈틀거렸다. 마치 그 책 속의 남자 주인공들처럼.
‘왜?’
탄은 그 이상한 욕망이 스스로도 낯설었다.
하지만 싫지 않았다. 셀로니아로 인해 처음 겪는 이 모든 것은 새롭고 다 좋았다.
텅 비워져 있던 그의 마음과 기억이 그녀로 인해 차곡차곡 쌓여 갔으니까.
그는 다시 셀로니아를 빤히 바라보았다.
무엇이 그리도 즐거운지 그녀의 입가엔 미소가 끊이질 않고 있었다.
은은히 올라간 입꼬리를 보며 탄은 자신도 모르게 피식 미소 지었다.
예쁘다.
지독한 냄새와 몰려드는 사람들 때문에 마음에 들지 않던 이 실내가 저 미소 하나로 환기가 되는 기분이었다.
그때였다.
여자아이와 대화를 나누던 셀로니아가 이쪽을 보더니 미간을 찌푸린 채 다가왔다.
탄은 기둥에 기대었던 몸을 떼었다.
볼일이 끝난 건가 싶어 그녀에게 다가가려는데, 갑자기 불쑥 등장한 한 남자가 셀로니아를 향해 말을 걸었다.
그러고는 그녀의 손을 잡아 올려 손등에 입술을 내렸다.
순간 뜨거운 덩어리가 그의 가슴속에서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탄 님, 저건 일종의 인사……!”
함께 그 장면을 본 엘라가 흠칫 놀라 얼른 탄에게 해명하려 했으나 이미 늦었다.
눈이 뒤집혀 포악한 기운을 뿜어내며 탄이 저 남자를 죽일 기세로 나서려는데.
“이게 누구인가?”
이제 막 생일파티에 참석한 이안이 탄을 발견하곤 빈정거리며 말을 걸어왔다.
이 거대한 체구는 멀리서 봐도 눈에 띄었으니까.
그 옆엔 이안의 팔짱을 낀 채 환히 미소 짓고 있는 그레이스도 함께였다.
“그때 그놈이군. 밤의 야수라 불린다고?”
“어머. 여기서 또 뵙네요.”
이미 탄에 대해 조사를 마친 이안이 자신만만한 얼굴로 그의 앞에 서자, 그레이스가 동그랗게 눈을 뜨며 입을 가렸다.
“그레이스, 이놈을 아나?”
이안이 불만스러운 눈으로 제 연인을 쳐다봤다. 왜 이놈을 아는 거지?
“일전에 공녀님과 함께 계실 때 본 적이 있어요. 성함이 탄이었죠? 탄 님.”
그레이스가 야살스럽게 웃으며 대답했다.
“님은 무슨. 말 높일 필요 없다. 길바닥을 전전하는 놈이니.”
이안은 콧방귀를 끼며 다시 탄을 바라보았다.
이상함을 느낀 그가 눈살을 찌푸린 채 탄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훑어보았다.
그러고 보니 오늘 탄의 모습은 처음 마주쳤을 때 보았던 비렁뱅이 같던 모습과는 사뭇 달랐다.
깔끔한 옷이나 정돈된 머리 스타일. 한껏 꾸민 게 마치 귀족 행세라도 하려는 것처럼 보여 아니꼽다.
의복으로 가린다 한들 천것의 냄새는 지워지지 않는 것을.
“차려입는다 한들 네놈의 출신이 가려질 줄 알았나.”
이안은 멸시를 담은 파란 눈동자로 이죽거렸다.
셀로니아가 손님이라고 해서 귀한 신분인 줄 알았더니, 밤의 야수?
어디서 굴러먹다 온지도 모르는 천것이 감히 제게 대들었다는 사실을 알자마자 얼마나 분노했던지.
이안은 셀로니아가 자신에게 질투 작전이라도 쓸려고 이 남자를 끌어들인 줄 알았다.
그래서 뭐라도 되겠지 했는데 근본도 없는 놈이라니. 감히 나를 뭘로 보고.
“그사이에 벙어리가 되었나. 나불대던 입이 왜 이렇게 조용하지?”
이안이 조용한 탄을 우습게 여기며 비웃었다.
확실히 제가 누구인지 알게 되어 그때처럼 시건방을 떨지 못하는 것이리라.
그러나 이내 이안의 입매가 딱딱하게 굳었다.
탄이 그때와 똑같이 고개를 숙이지도 않고 거만하고 교만하게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으니까.
뭔 놈의 눈빛이…….
여전히 탄의 눈동자가 아주 싸늘했다.
심지어 화염보다 더 새빨갛게 타오르는 눈동자는 불꽃이 튈 듯했다.
이안은 분노를 억누르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네까짓 게 감히.”
“꺼져.”
탄은 앞길을 방해하는 이안을 손쉽게 옆으로 밀쳐 내며 곧장 셀로니아에게로 걸어갔다.
“거기 안……!”
“오오! 공작, 와 주었군.”
차오르는 모욕감에 열 받은 이안이 언성을 높으며 탄의 어깨를 붙잡으려 할 때, 덴로하 후작이 웃으며 말을 걸어왔다.
“……덴로하 후작님.”
이안이 덴로하 후작에게 고개를 숙였다. 분노를 갈무리하지 못해 그의 뺨이 파르르 경련하고 있었다.
그러나 후작에게 그런 모습을 보일 수는 없었다. 후작은 아버지의 친우이자 여느 공작가 못지않은 권력과 재력을 가진 가문이었으니까.
“오랜…… 아, 처음 뵙겠습니다. 그레이스 베넷입니다. 이렇게 기쁜 날에 참석할 수 있어 영광이에요.”
그레이스가 말을 정정하며 곰살맞은 표정으로 덴로하 후작에게 예를 갖추었다.
덴로하 후작을 마주한 그녀의 얼굴엔 무척이나 반가워하는 기색이 완연했다.
“업무를 보다 왔나 보군. 바쁠 텐데 와 주어서 고맙네. 내 딸아이가 굉장히 기뻐할 게야. 구원자들을 무척이나 좋아하거든.”
그러나 반색하는 그레이스와 달리 덴로하 후작은 황실 기사단의 정복을 입고 있는 이안에게만 눈길을 주며 호탕하게 웃었다.
분명 그레이스가 인사를 건네 왔으나, 무시한 것이었다.
덴로하 후작은 체르빌 공작보다 베스인 공작과 친분이 두터웠으니까.
“…….”
그레이스는 아무렇지 않게 웃고 있었으나 떨리는 입꼬리까진 제어하지 못했다.
속에서 피어나는 모욕감에 눈꼬리가 꿈틀거릴 정도였다.
“따님께서 기뻐하신다면 영광입니다.”
이안은 두 손을 꾹 말아 쥐며 까득 이를 깨물다, 천천히 숙였던 고개를 들었다.
어느새 그는 사람들이 부르는 자신의 찬가에서처럼 신의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파혼으로 인해 베스인 가문과 인연이 끊긴 마당에, 덴로하 후작에게까지 밉보일 수 없었다.
덴로하 후작가는 베스인 가문만큼은 비하지 못하지만 그래도 명망이 두텁고 제국 내에 내로라하는 재력가 중 한 명이었다.
게다가 현 후작은 정치적 입지가 상당한 자였다.
사적인 감정을 참지 못해 파티에서 언성을 높여 덴로하 후작의 심기를 건들 만큼 그는 우둔하지 않았다.
다만 이안은 자신을 무시하고 지나친 탄 때문에 부글부글 끓는 감정으로 인해 제 연인이 후작에게 무시당했다는 것을 인지하지도 못하고 있었다.
“하하. 요즘 아버지는 어떠하신가?”
이윽고 덴로하 후작과 이안은 선대 체르빌 공작에 대한 얘기를 나누었다.
분명 곁에 있었으나 그레이스는 마치 두 사람에게 없는 사람 취급을 받게 되었다.
그레이스는 입술을 꾹 깨문 채 휙 고개를 돌렸다. 그녀의 시선이 당연하게도 탄을 쫓았다.
그리고 탄이 향한 곳에 서 있는 누군가를 보자 그레이스는 픽 웃으며 실례하겠다는 말과 함께 걸음을 움직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