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le Leads Were Stolen by the Extra RAW novel - Chapter (44)
엑스트라에게 남주들을 빼앗겼다 (44)화(44/162)
<44화>
이안이 핏줄이 터질 듯 세게 주먹을 말아 쥔 채로 으득 이를 갈았다.
어이없게도 구원자의 주축이었던 이안은 모두에게서 잊힌 것이다.
처량해도 이렇게 처량할 수가 없었다.
단 한 번도 어느 순간일지라도 누군가에게 밀리거나 소외된 적, 무시당하거나 시선을 받지 못한 적은 없었다.
태어날 때부터 지금까지 잘나지 않았던 순간이 없는 그는 어딜 가든 중심이었고, 어디에 서 있든 자신의 무대로 만들었다.
언제, 어디서나 주인공은 늘 그였으니까.
그런데 지금 이게 무슨…….
자신만만하던 출중한 실력을 손써 볼 틈도 없이 저놈이 마물을 단번에 베어 내 버렸다.
어디서 굴러먹다 왔는지 모를 저깟 천것이 황실의 기사단장을 제치고 마물을 쓰러뜨렸다.
기사로서의 긍지가 바닥에 나뒹굴었다.
분명 오늘 일에 대해 기사가 날 테다. 모욕감이 치밀어 올랐다.
게다가 제 곁이 아닌 저놈 옆에 당연하다는 듯 서 있는 셀로니아가 그의 심기를 더 건드렸다.
원래 그녀는 항상 제 옆자리에 있었다.
어쩔 수 없이 그레이스를 선택하긴 했지만, 애당초 저 여잔 자신의 것이었다.
이안은 알 수 없는 질투와 소유욕으로 뒤섞인 음산한 눈으로 탄을 노려보다 이내 발걸음을 옮겼다.
저놈을 가만두지 않으리라. 실체를 낱낱이 파헤쳐 완전히 매장시켜 버리라.
그리고 모든 것을 되찾아 오리라. 자신의 것이었던 모든 걸.
“흐응.”
한편, 후작가 저택의 복도에 서서 이 모든 장면을 지켜보고 있던 그레이스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레이스는 똑똑히 보았다.
기사들도, 이안도 제대로 손도 쓰지 못하고 있을 때, 저 탄이라는 남자가 단숨에 마물을 베어 버리는 것을.
부티크에서 마주쳤을 때 알아봤지만 예사스럽지 않은 남자였다.
범상치가 않았다.
손쉽게 맥라이언의 힘을 부순 것도 모자라서 이안이 있는데도 먼저 마물을 해치우기까지.
오늘 일은 두고두고 회자되겠지.
그럼 분명 사람들의 관심은 저 남자에게로 향할 것이다.
모두의 이목을 사로잡는 남자라니. 자신과 딱 어울렸다.
무엇보다 키도, 몸도, 얼굴도 어느 것 하나 그녀의 마음에 들지 않는 게 없었다.
이런 남자가 어디서 뚝 떨어졌는진 모르겠지만 가져야겠다. 이번에도.
모든 것은 자신의 것이었으니까.
* * *
사건이 일단락되고 덴로하 후작가의 기사들이 마물의 사체를 불태우기 위해 합심하여 옮기고 있을 때.
“셀로니아! 다쳤느냐? 다친 것이야?”
뒤늦게 소식을 접한 갤로웨이가 헐레벌떡 달려왔다.
“아버지, 저는 멀쩡해요.”
핏기가 증발한 얼굴로 달려온 갤로웨이를 보며 셀로니아가 괜찮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괜찮은 것이야? 하나도 다치지 않은 것이냐?”
갤로웨이가 셀로니아의 몸을 구석구석 살폈다. 생채기가 난 곳이 있는지 알아내고야 말겠다는 듯.
이런 위험에 딸을 노출시켰다는 자책과 딸을 너무도 걱정하는 그 마음을 느낀 셀로니아는 순간 마음이 뭉클했다.
“괜찮아요, 정말이요.”
“하아……. 이게 무슨 일인지. 별채에서 클럽 사람들과 대화를 하다 소식을 듣고 얼마나 놀랐는지 아느냐.”
“그래도 아무도 다치지 않고 마무리되어서 다행이에요.”
“나도 몰랐다. 알았다면 너에게 함께 오자고 말을 안 했을 게야.”
그는 진심이라는 듯 셀로니아의 두 손을 꼬옥 맞잡았다. 정말로 놀랐는지 손을 미약하게 떠는 것이 느껴졌다.
“그럼요. 아무도 몰랐겠죠.”
누가 예상이라도 했을까?
덴로하 후작이 준비한 깜짝 이벤트가 생포한 마물 전시일 줄.
“그나저나 한바탕 난리가 나겠군. 폐하께서 절대 그냥은 넘어가지 않으시겠구나.”
갤로웨이가 수습을 하느라 바쁜 덴로하 후작을 보며 혀를 끌끌 찼다.
하마터면 인명 피해가 날 뻔한 큰일이었으니, 황제는 덴로하 후작에게 책임을 물을 것이었다.
“오오, 귀공. 또 내 딸을 구해 주었군.”
갤로웨이가 사람들 틈에서 빠져나와 셀로니아에게 다가오고 있는 탄을 반갑게 맞이했다.
“귀공의 솜씨는 알면 알수록 대단하군. 기사가 되는 것에 관심이 있다면 언제든 말하게. 귀공이라면 내가 힘을 써 팍팍 밀어줄 터이니.”
진심이라는 듯 갤로웨이가 호탕하게 웃으며 말하자 탄은 그냥 답 없이 고개만 까딱였다.
“그래, 그래. 셀리, 먼저 저택으로 돌아가 있거라. 나는 그래도 후작의 수습을 도와줘야 할 것 같구나.”
갤로웨이는 살갑게 탄의 팔뚝을 툭툭 치다 셀로니아에게 말했다.
“네. 조금 이따가 뵈어요.”
셀로니아는 바쁘게 멀어지는 아버지에게 인사를 했다.
“진짜 굉장하셨다니까요!”
갤로웨이가 사라지자 격양된 감정을 꾹 참고 있던 엘라가 또다시 입을 열었다.
엘라는 아까부터 계속 종알종알 움직이는 입이 아프지도 않은지 아직도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하고 있었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속도로 사라지시더니! 아가씨를 따악 구하시는데! 크으으으!”
이보다 더한 서사시는 없다는 듯 엘라가 팔랑팔랑 손을 흔들며 박수를 쳤다.
“하아.”
호들갑 떠는 엘라와 달리 셀로니아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오늘 일 때문에 모든 이목이 탄에게 집중되었기 때문이었다.
내일 분명 기사가 날 것이다. 안 나려야 안 날 수가 없었다.
제도에서 볼 수 없는 마물을 생포해 온 사실도 기가 막힌 기삿감이었는데, 마물이 우리를 탈출해 버렸다.
큰일이 벌어질지도 모르는 순간, 탄이 단번에 마물을 물리쳐 버렸으니.
이미 오늘 파티에 참석한 귀족들은 죄다 그 얘기뿐이었다.
위기가 있었지만 한평생 볼까 말까 한 마물을 봤기에 그들은 여기저기에 떠들고 다닐 것이다.
그렇담 자연스럽게 탄의 얘기도 나올 테니 내일 기사가 나는 건 거의 기정사실이었다.
‘젠장.’
조용히 있다 집에 보내려고 했는데 망해 버렸다. 거하게 사고를 치고 말았다.
셀로니아는 핼쑥한 얼굴로 머리를 쥐어뜯었다.
기억을 잃은 마왕이 갑자기 귀족들 사이에서 영웅이 되다니.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건지.
“아참! 아가씨 그거 보셨어요?”
“무엇을?”
셀로니아는 지치지도 않는 엘라의 물음에 지친 목소리로 물었다.
“체르빌 공작님이요. 아까 탄 님이 마물을 베어 버리고 난 뒤 사람들이 몰려드니까 저 멀리서 혼자 부들부들 떨더니 휙 가 버렸다니까요? 탄 님에게 겁먹었다느니 어쨌느니 하더니만 아주 잘됐죠!”
엘라가 아주 쌤통이라며 키득키득거렸다.
“아, 맞다.”
셀로니아는 이안의 존재를 깜빡 잊고 있었다.
그러든가 말든가. 그녀가 상관할 바가 아니었다.
“그럼 제가 어서 가서 마차를 불러올게요!”
엘라가 정차된 마차를 불러오기 위해 자리를 떠났다.
셀로니아는 자리에 우두커니 서서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런데 아까 그건 뭐였을까?
마물이 자신을 향해 달려들 때, 공격하는 줄 알고 자세를 다잡았으나 뭔가 이상했다.
토벌하는 동안 공격하려고 달려드는 마물을 수없이 맞닥뜨렸기에, 그 살기와 공격성을 잘 알았다.
특히나 가룸은 언제나 귀를 확 뒤로 젖힌 채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며 달려들었다.
그런데 오늘 가룸이 그녀에게 달려들었을 땐 귀가 쫑긋 올라가 있었으며 헥헥거리는 소리를 내기까지 했다.
보고도 믿기지 않는 광경이었다.
아닌가, 제가 잘못 본 걸까?
“음?”
그런 생각을 하며 마차가 오기를 기다리던 셀로니아는 무언가 이상함을 깨닫곤 고개를 돌렸다.
옆에 있는 탄이 계속 조용했다. 허공을 응시하고 있는 그의 붉은 눈동자가 평소보다 침전되어 있었다.
“피곤해요?”
셀로니아가 그에게 물었다.
한꺼번에 사람들이 달려들어 주목을 받았으니 그럴 만도 했다.
탄은 사람들의 질문에도 대부분 대꾸를 하지 않았다. 오히려 귀찮아하기까지 했다.
덴로하 후작의 보답을 하겠다는 말에도 생각해 보겠다는 답을 내놓곤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때부터 약간 딴생각을 하듯 멍해 보이긴 했다.
아, 설마……. 마물을 보고 무언가 기억이라도 난 걸까?
“이 능력.”
“예, 예?”
탄의 입에서 흘러나온 말에 진짜 기억이 난 건가 싶어 놀란 셀로니아가 목소리가 갈라졌다.
“아무도 없는 것 같은데, 왜 나만 갖고 있는 거지?”
탄은 아까 전, 사람들이 옆에서 떠들면 떠들수록 마물의 생각을 읽었던 건 자신뿐이었다는 걸 확실하게 깨달았다.
모두가 마물이 어떻게 철창을 뚫었는지 의아해했다.
하지만 탄은 가룸의 생각을 읽었기에 알고 있었다.
철창에 갇혀 검은 천에 뒤덮여 있을 때, 시야가 트인다면 바로 복수하기 위해 힘을 비축해 둔 것이었다. 영리하게도.
생각해 보면 이상한 게 한두 개가 아니었다.
공작저에서 생활하면서 탄은 이것저것을 학습했다.
사람들은 이동할 때 마차를 타고 움직인다. 저처럼 순간 이동을 할 수 없으니까.
손안에서 불을 만들어 내지 못해 성냥이나 마법 도구를 이용해 불을 붙였다. 모두가 저처럼 특별한 힘을 쓸 수가 없었다.
게다가 자신은 잠을 자지도 않았고, 먹지 않아도 살 수 있었다.
그는 그 다름을 깨닫자 몹시도 거슬렸다. 셀로니아와 자신이 무척이나 다른 사람인 것처럼 느껴지게 했으니까.
왜, 나만?
“글쎄요…….”
셀로니아는 탄의 표정을 살피며 얼버무렸다. 기억이 떠오른 건 아닌 건가?
“넌 날 알고 있잖아. 왜 다르지?”
탄은 평소보다 더 집요한 눈으로 답을 요구했다. 대체 자신은 뭐길래 너와 다른 걸까.
“전 정말 모른다니까요.”
셀로니아는 그의 붉은 눈에 어린 혼란과 불안을 읽어 냈지만 모른 척할 수밖에 없었다.
아무도 쓸 수 없는 그 힘은 당신이 마왕이기 때문이라고 해 줄 순 없으니까.
탄은 한층 어두워진 시선을 내렸다.
그 모습을 본 셀로니아는 혹시라도 그 힘의 원천에 대해 그가 깊게 파고들까 입을 열었다.
물론, 조금 서글퍼 보이는 표정에 마음이 편치 않기도 했고.
“다른 게 아니라 특별한 거죠.”
사위를 뚫고 들려온 나긋한 목소리에 탄이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자신을 담고 있는 맑은 푸른 눈동자가 보였다.
“남들이 가지고 있지 않은 걸 가진 건 특별하다고 하는 거예요. 다른 게 아니라.”
“…….”
“당신이 특별하다는 거니까, 너무 신경 쓰지 말아요.”
이 정도면 됐겠지 싶어 셀로니아가 멋쩍은 얼굴로 뺨을 긁으며 고개를 돌렸다.
탄은 셀로니아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또다시 그의 가슴이 세차게 뛰기 시작했다.
구름도, 지나가는 사람들도 흐르는 시간에 맞춰 움직이고 있었는데, 눈앞에 있는 셀로니아와 자신만 이 시간 속에 갇혀 있는 것처럼 영원해 보였다.
분명 그녀는 신경 쓰지 말라고 했으나, 그는 더 이상 신경 쓰지 않을 수가 없게 되었다.
단숨에 제 고민을 지워 낸 그 한마디가, 그 말을 해 준 그녀와 함께 있는 모든 순간이 그에게 특별해져 있었으니까.
시원한 바람이 불어닥쳤다.
셀로니아가 먼 곳을 바라보며 휘날리는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기었다. 드레스가 함께 나부꼈다.
탄은 그 모습을 보며 천천히 눈을 감았다.
그는 그날 깨닫고야 말았다.
그녀를 스치고 지나는 바람에는 향기가 있다는 것을.
자신에게 그녀는 특별하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