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le Leads Were Stolen by the Extra RAW novel - Chapter (47)
엑스트라에게 남주들을 빼앗겼다 (47)화(47/162)
<47화>
“그런데 이거 정말 다즐링 잎 맞아?”
그레이스의 명령에 산더미처럼 쌓인 말린 다즐링 잎을 고급스러운 케이스에 담던 신입 하녀가 의문을 표했다.
“당연하지. 너 얼마 전에 들어와서 잘 모르는구나. 아가씨께서는 손님이 올 때마다 늘 귀한 거라며 다즐링 차만 내오라 명하셔.”
그러자 함께 포장을 하고 있던 다른 하녀2가 알아 두라며 선심 쓰듯 말을 했다.
“그래? 하지만 말린 형태나 향을 봐선 도저히 다즐링이 아닌 것 같은데…….”
그럼에도 신입 하녀의 의문이 가시질 않았다.
하녀의 이름은 제이미. 베넷 남작저의 하녀가 된 지 일주일 된 신출내기였다.
그녀는 사계절 내내 따뜻하다는 남부 지방인 덴티오스에서 평생을 나고 자라다 이제 막 제도에 올라왔다.
날씨가 좋아서인지 덴티오스 지방은 다른 지역에 비해 찻잎의 품질과 생산량이 월등히 좋았고, 그로 인해 제도에서 소비하는 찻잎의 60퍼센트는 덴티오스에서 올라온 것이었다.
덴티오스에서 사는 사람들은 대부분 찻잎을 생산하며 생계를 유지했고, 그 덕에 차 문화가 다른 지역에 비해 특히 더 발달해 있었다.
귀족이 아니더라도 평민들도 늘 차를 우려 마시는 게 생활일 정도로.
제이미 또한 어릴 때부터 무수히 많은 찻잎을 맛보고 자랐기에 차에 대해선 누구보다 빠삭했다.
그런데 지금 포장하고 있는 찻잎은 아무리 봐도 다즐링이 아닌데 왜 자꾸 다즐링이라고 하는 걸까.
“딴소리 말고 어서 포장이나 해. 아가씨가 이거 오늘 안에 체르빌 공작님이랑 포드 백작님 그리고 레예프 성기사님께 선물로 보내야 한댔어. 늦어지기라도 하는 날엔……! 맞고 싶지 않으면 빨리빨리 움직여.”
“어, 어어…….”
동료 하녀가 독촉하며 찻잎을 담는 속도를 올렸다.
제이미는 여전히 의문스러웠지만, 동료와 마찬가지로 찻잎을 담는 데 열중했다.
안 그러면 어제 실수했던 그 하녀처럼 아가씨께 매질을 당하고 지하실로 끌려갈지도 모른다.
곡소리가 난다는 그 무시무시한 지하실에는 죽어도 가기 싫었다.
심지어 지하실로 내려가면 다신 올라오지 못한다는 소리가 있었으니까.
* * *
“저는 헨릭이에요. 떠돌이 고아였던 저를 1년 전, 그러니까 제가 16살 때 할아버지가 거둬 주셨어요.”
한바탕 울고 나서 이제야 진정이 됐는지 헨릭이 입을 떼었다.
눈이 붕어처럼 팅팅 부은 헨릭의 손에는 셀로니아가 준 손수건이 쥐어져 있었다. 손수건은 헨릭의 눈물로 흠뻑 젖어 있었다.
셀로니아와 헨릭이 서 있는 곳과 별로 멀지 않은 거리엔 탄과 엘라가 있었다.
두 사람은 셀로니아의 부탁에 조금 떨어진 곳에서 헨릭을 노려보고 있었다.
헨릭이 조금이라도 허튼짓을 한다면 바로 달려올 기세들이었다.
“할아버지는 현자셨어요.”
“현자?”
“네. 젊었을 적 현자로 지내셨죠.”
계속된 헨릭의 말을 셀로니아는 경청하였다.
헨릭은 위클란더에게 거둬져 제자처럼, 손자처럼 자랐다고 했다.
주로 상점에서 잡일이나 청소를 하고 위클란더의 일을 도우며 상점 뒤에 있는 방에서 함께 살았다고.
위클란더는 젊은 시절 현자로 지내다 일찍이 은퇴 후 조용히 상점을 운영했다고 한다.
현자는 사람의 깊은 내면을, 그리고 가끔 가다 세상의 먼 미래를 본다고 알려져 있었다.
어쩐지. 처음 만났을 때부터 예사 기운이 아니다 싶었다.
“혹시 불이 났을 때 너도 함께 있었니?”
“아뇨…… 할아버지가 심부름을 시켜 나갔다가 돌아왔는데 이미 불이 나 있었어요…….”
“그랬구나.”
“제, 제가 더 빨리 돌아왔으면 할아버지는 그렇게 허망하게…….”
“네 탓이 아니야.”
또다시 눈물이 그렁그렁한 헨릭을 보며 셀로니아는 그의 어깨를 토닥여 주었다. 한순간에 스승을 잃은 제자의 슬픔과 자책이 느껴졌기에.
더군다나 셀로니아는 그게 단순한 사고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자신 때문에 일어난 고의성이 다분한 일인 것 같아 헨릭에게 미안한 마음뿐이었다.
“그런데 왜 날 보고 도망친 거야?”
“그건…… 공녀님인지 모르고 그랬어요.”
“모르고? 왜 거기 숨어 있던 건데?”
“실은 할아버지께서 조심하라고 일러 주셨어요. 아무래도 이 사고를 미리 예견하신 것 같아요. 제 심부름도 일부러 보내신 것 같고요.”
“……뭐?”
뜻밖의 얘기에 셀로니아는 헨릭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헨릭은 아직 젖살이 빠지지 않은 앳된 얼굴로 다시 말을 이어 나갔다.
“할아버지가 요 며칠 동안 주위에서 위협적인 기운이 느껴진다고 하셨거든요. 그리고 갑자기 어젯밤에 제게 급히 심부름을 시키셨어요.”
“…….”
“아까는 겁을 먹고 숨어 있었는데 공녀님이 너무 무섭게 쳐다보셔서, 그래서 도망친 거였어요.”
이제야 좀 이해가 된다. 헨릭이 왜 이렇게 소스라치게 놀라며 도망갔는지를.
헨릭은 위클란더가 말하던 위협적인 기운이 화재를 일으켰다고 생각한 것이었다.
그게 누구인지 모르는 상황에서 무섭게 쳐다보고 있는 저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겁을 먹고 도망간 것이었고.
“너도 단순한 사고라고 생각하지 않구나.”
헨릭이 물기가 그렁그렁한 눈으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푸석한 잿빛 머리카락의 그의 고개를 따라 흔들렸다.
이로써 확실해졌다.
기사들은 단순한 화재로 보고 있으나, 이건 누군가가 일부러 저지른 일이었다.
위클란더는 그것을 예견해서 헨릭만이라도 미리 밖으로 빼돌린 것이었다.
“위클란더는 왜 상점을 빠져나오지 않았던 걸까?”
셀로니아가 문득 든 의문을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할아버지께서 누누이 하셨던 말씀이 있어요. 모든 건 순리대로 흘러가야 한다고. 그것을 바꾼다면 현재가 어그러진다고요…….”
헨릭이 침울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 말인즉슨, 위클란더가 죽어야 하는 게 운명이자 순리였다는 뜻이었다.
“위클란더 일은 유감이야.”
위클란더의 뜻을 다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셀로니아는 헨릭의 어깨를 다독여 주며 위로했다.
한순간에 할아버지이자 스승을 잃었으니 헨릭의 참담함은 이루 말할 수가 없겠지.
“할아버지 장례를 치러야지. 내가 도울게. 약속해.”
셀로니아는 고민 없이 헨릭에게 약속했다.
자신과 전혀 무관한 일이라고 생각되지 않았기에 이거라도 해 주고 싶었다.
“……감사합니다.”
“상점에서 지냈다면서? 지낼 곳은 있는 거야?”
“네. 그럼요.”
세상 물정 모를 것처럼 순진하고 순박해 보이는 얼굴로 헨릭이 걱정하지 말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마음이 쓰일 수밖에 없었다.
셀로니아는 가지고 있던 가방에서 지금 들고 있는 돈을 모조리 꺼내 헨릭에게 쥐여 주었다.
“아니에요! 저도 돈 있어요.”
헨릭이 소스라치게 놀라 한사코 거절했으나, 셀로니아는 그의 손에 기어코 돈을 쥐여 주었다.
그래도 오늘 상점에 들를 예정이었던지라 넉넉히 돈을 챙겨 온 게 다행이었다. 이 정도의 돈이라면 몇 달은 생활하는 데 무리가 없을 테니까.
“헨릭, 만약 갈 곳이 없는데 거짓말을 하는 거라면 내가…….”
“아니에요. 저 정말 갈 곳 있어요. 아는 형네로 가면 돼요. 이 돈은…… 감사합니다.”
셀로니아는 헨릭에게 지낼 곳을 마련해 주려고 했다.
하지만 그것만큼은 안 된다는 듯 헨릭이 강경하게 거절했다.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찾아와.”
“네, 감사해요. 저, 공녀님.”
“응?”
“이거요.”
헨릭이 망토 속에 감추고 있던 무언가를 꺼내 들었다.
그것은 검은색 커버의 손바닥만 한 두꺼운 수첩이었다.
“할아버지께서 책을 찾아 주기로 하셨죠? 그 책은 예전에 제가 읽고 기록한 적이 있어서요. 심부름 갈 때 수첩을 챙겨 가라고 하셔서 뭔가 싶었는데…… 이렇게 공녀님께 전해 주라는 뜻이었나 봐요.”
“기록했다고?”
“예. 마법을 공부하면서 그 책도 읽어 본 적이 있어서요. 기록해 뒀으니 도움이 된다면 좋겠어요.”
상점 안에 있던 모든 게 전소되었다고 들은 참에, 수첩은 그녀에게 단비 같은 물건이었다.
“고마워.”
“네. 그리고 부디 몸조심하세요.”
셀로니아가 진심을 담아 감사를 전하자 헨릭이 걱정과도 같은 당부를 남기곤 골목을 벗어났다.
무슨 의미냐고 물을 새도 없이 헨릭이 빠르게 사라졌다.
몸조심하라고? 오늘 화재 사건 때문인 걸까?
왜 헨릭은 위클란더와 같은 말을 하는 걸까.
“지금 삥을 뜯긴 건가?”
상념에 젖어 있는데, 어느새 탄이 그녀의 등 뒤로 다가와 말했다.
“그런 말은 어디서 배워 와서는……. 제가 준 거예요.”
셀로니아는 퉁명스레 대꾸하며 수첩을 소중하게 품 안에 챙겼다.
절대 이대로 사건을 일단락할 생각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