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le Leads Were Stolen by the Extra RAW novel - Chapter (5)
엑스트라에게 남주들을 빼앗겼다 (5)화(5/162)
<5화>
[셀로니아 베스인 공녀, 실연의 아픔으로 칩거 생활 중. 방 안에서 한 발자국도 안 움직여.]“하.”
신문 1면을 장식한 헤드라인을 보며 셀로니아가 헛웃음을 쳤다.
이런 말 같지도 않은 기사가 나다니.
그녀가 의식을 되찾고 계속 집 안에만 있던 건 사실이다.
하지만 실연의 아픔 때문이 아니라 딱히 나갈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공작저에는 모든 게 갖춰져 있었다. 이렇게 호화롭고 안락할 수가 없었다.
전신이 배기다 못해 입 돌아가는 흙바닥이 아닌, 최고급 매트리스와 뽀송하고 상쾌한 내음이 나는 이불 속에서 눈을 뜨는 아침.
일주일 만에 찾은 차가운 연못에서 누가 볼세라 급히 최소한의 더러움을 씻어 내는 목욕이 아니라, 방만큼 넓은 욕실에서 뜨거운 물을 콸콸 받은 욕조에 누워 두피 마사지까지 받는 여유로운 시간.
말라비틀어진 빵과 치즈로 잠깐의 허기만 잠재우는 식사가 아닌, 요리사가 직접 요리한 윤기가 좌르르 흐르는 따뜻한 음식이 함께하는 삼시 세끼.
더불어 원한다면 언제든 가질 수 있는 티타임과 달콤한 디저트까지.
“최고야. 짜릿해.”
그녀는 빙의하고 9개월 만에 처음으로 공녀다운 생활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빙의하자마자 원정에 합류한 그녀는 반년을 야생에서 굴러야 했다.
식량은 어디서 뚝 하고 떨어지지 않았고, 최소한의 잠자리 또한 마련되지 않았다.
씻고 싶어도 마음대로 씻을 수 없었고, 늘 진득한 마물의 피를 뒤집어쓴 채 하루에도 몇 킬로미터를 걸어야 했다.
원작 소설에선 단 한 줄도 등장하지 않는 모험의 내면.
그녀는 그것을 직접 겪은 사람이었기에 지금의 안락함이 좋았다.
“찢어 버릴까요?”
“벽난로에 던져 버려.”
“네!”
엘라가 냉큼 신문을 갈기갈기 찢더니 벽난로에 휙 던져 버렸다.
화르륵 소리와 함께 불꽃이 순간 몸집을 부풀리며 신문은 눈 깜짝할 사이 재가 되어 사라졌다.
“아가씨, 이 신문사 고소해 버려요!”
“그럴까?”
“네! 헛소리하면 어떻게 되는지 본때를 보여 줘야 해요!”
맞장구를 쳐 주던 셀로니아는 너무도 진지한 엘라의 표정에 피식 웃음 지었다.
엘라는 본래 셀로니아의 기억이 없는 그녀에게 무척이나 도움이 되었다.
말이 많은 편이라 옆에 두기만 해도 여기저기서 들은 귀족들의 형세나 사교계 현상에 대해 떠들어 댔기에.
현재 사교계의 이목은 모두 저에게 집중되어 있었다.
의식을 되찾은 것부터 시작해 꾸준히 자신에 대한 기사가 났다. 이안과 파혼 이후 오늘 기분은 어떤지, 실연의 상처로 얼마나 힘들어하고 있는지 등등.
지금 제국에선 이보다 더 흥미로운 가십거리는 없을 테니까.
이럴 때 보면 자신이 있던 세계나 이곳이나 남 얘기를 좋아하는 건 매한가지였다.
사람 사는 거 다 마찬가지라 이건가.
“아침에 주신 편지는 부쳤어요.”
“고마워.”
“그런데요, 아가씨. 그 편지 수신인이…….”
“맞아. 이안 체르빌이야.”
“그, 그…….”
그녀의 입에서 나온 이름에 엘라가 우물쭈물 눈치를 보았다.
“위자료를 받을 때가 된 것 같아서.”
엘라가 하고 싶어 하는 말이 무엇인지 눈치챈 그녀가 먼저 선수 쳤다. 미련 따위가 아니라고.
괘씸한 그에게 무엇을 요구할까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것보다 더 나은 위자료는 없을 것 같았다.
원작 마지막에도 그가 얼마나 ‘그것’에 집착하는지 나와 있었으니까.
광산이나 사업권도 생각해 보았으나 별로 필요하지가 않았다.
애당초 체르빌 가문보다 베스인 가문이 더 부유했으니까.
그러니 그의 긍지와 자존심이 상할 만한 것을 요구한 것이다.
아마 편지를 읽으면 펄쩍펄쩍 날뛰겠지.
“아가씨, 피네스트 부길드장님께서 찾아오셨습니다.”
“뭐? 벌써?”
문밖에서 들려온 알림에 셀로니아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금은 태양이 가장 높은 위치에 떠 있는 정오였다.
의뢰한 지 24시간이 채 지나지 않았는데 벌써 조사를 마쳤다니…….
아버지의 입김이 제대로 통한 모양이었다.
“엘라. 숄 좀 가져다줄래.”
“네, 아가씨.”
셀로니아는 어느새 비장한 얼굴로 손님을 보러 갈 준비를 하였다.
* * *
“그레이스, 어디 가고 싶은 곳이 있나?”
이안 체르빌이 연인의 머리카락을 다정히 넘겨 주며 물었다.
본래는 내일 그레이스와 데이트 약속이 있었지만, 하루라도 빨리 보고 싶다는 사랑스러운 그녀의 요청에 급히 단장을 하고 외출한 상태였다.
그는 며칠 전 파혼한 사람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을 만큼 화려한 차림새였다.
게다가 버터처럼 부드러운 금발 아래 깊은 호수를 머금은 푸른 눈동자는 새 사랑에 취해 반짝이기까지 했다.
이안의 얼굴은 석고를 굳혀 깎아 만든 조각상처럼 오늘도 어김없이 유려했다.
쭉 뻗은 산맥처럼 높게 솟은 콧대와 매끈한 입매를 가진 그는, 기사단장이라는 직위에 맞게 신뢰감을 주는 골격을 갖고 있었다.
180센티미터가 넘는 큰 키와 검술로 다져진 탄탄한 몸은 이안의 외모를 빛내는 데 한몫했다.
잘생긴 그의 외모는 워낙 유명하여 찬가로 떠돌 정도였으니까.
특히 찬가 가사 중에 ‘신의 미소라 불린다네.’라는 구절이 있을 정도로 그의 미소는 매력적이었다.
그 미소의 주인공은 이제 셀로니아가 아닌 그레이스였다.
“우움……. 제가 이번에 영애들에게 추천받은 디저트 가게로 가도 될까요?”
그레이스는 이안의 다정한 손길이 익숙하다는 듯 싱긋 눈웃음 지으며 대답했다.
“당연하다. 거기가 어디지?”
“로블랑이요.”
“……….”
별이라도 따 줄 기세로 냉큼 대답했던 이안은 익숙한 가게 이름에 멈칫했다.
몬테라 거리 북쪽 외곽에 위치한 로블랑은 유명한 편이 아니었기에 아는 사람만 아는 디저트 가게였다.
그리고 셀로니아 베스인이 가장 좋아하는 가게였다.
“공작님?”
그레이스가 의아한 얼굴로 이안의 팔을 붙잡자, 아차 싶었던 그가 황급히 입을 열었다.
“그레이스, 거기보다 새로 생긴 브레쥬엘이 낫지 않겠어? 인테리어가 화려하고 고급스러워서 그대가 좋아할 것 같은데.”
이안도 셀로니아가 칩거 생활 중이라는 건 신문을 보아서 익히 알고 있었으나, 로블랑은 그녀가 정말 좋아하는 가게였다.
괜히 발을 들였다가 마주칠지도 모르니 피하는 게 상책이었다.
“네? 그렇지만 로블랑에 꼭 가 보고 싶었는데에…….”
잔뜩 실망한 그레이스의 눈꼬리가 아래로 축 처졌다.
그 모습에 이안은 당장 로블랑으로 출발하고 싶은 마음을 꾹 참으며 그레이스의 손을 잡았다.
“그곳까진 거리가 꽤 있으니, 오늘은 브레쥬엘로 가는 게 낫겠어.”
“공작님…….”
자신의 말이라면 모두 들어줬던 이안이 오늘따라 완고히 나오자 그레이스는 당혹스러웠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그녀는 자신의 손을 꼭 붙잡고 있으나 시선을 마주하지 못하는 그의 행동에 무언가를 깨달았다는 듯 다시 입을 열었다.
“설마, 그곳에 셀로니아 님과 함께 갔었나요?”
“…….”
“그래서 저와는 함께 가지 못하시는 건가요? 셀로니아 님과의 추억이 떠오를까 봐?”
“그레이스, 그게 아니라…….”
“맞네요.”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이안의 표정에 그레이스의 얼굴이 싸늘하게 굳어 갔다.
그는 거짓말을 하지 못한다. 표정에서부터 드러났으니까.
“여전히 저는 끼어들 틈이 없네요. 그렇죠?”
“그레이스, 오해야! 내 말 좀 들어 봐!”
그레이스가 팔짱을 빼고 등을 돌리자, 이안이 황급히 그녀의 손목을 붙잡았다.
“그곳엔 베스인 영애와 가 본 적 없어. 난 단지 거리가 너무 멀면 그대가 힘들까 염려되어 그랬던 것뿐이야.”
그는 절박한 표정으로 변명했다.
이안은 그레이스가 이대로 저를 두고 갈까 봐 전전긍긍이었다. 마치 곧 주인을 잃을 것만 같은 강아지처럼.
“정말이야. 그대가 원한다면 로블랑으로 가지. 내 마차를 타고 함께 이동해.”
커다란 두 손이 부드럽고 하얀 그레이스의 손을 꼬옥 잡았다.
“정말인가요?”
그의 간절한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그레이스는 가늘게 뜬 눈으로 이안을 바라봤다. 아직도 믿기지 않는지 그녀의 입꼬리는 샐쭉했다.
“정말이야. 나에겐 그대뿐이야. 그대를 처음 본 그날 이후부터 쭉. 그 여자는 이제 정말 상관없어.”
“알겠어요. 그럼 로블랑으로 가요.”
그레이스가 허물어진 입매를 올리며 이안에게 팔짱을 꼈다.
“어서 마차를 가져와.”
이안은 행여 그녀의 기분이 다시 상할까 재빨리 하인에게 명령했다.
그의 옆에 다정한 연인의 모습으로 서 있던 그레이스의 입가엔 만족스러운 미소가 걸렸다.
* * *
“셀로니아 님, 부탁하신 정보입니다.”
길리안이 갈색 봉투를 셀로니아에게 내밀었다.
테이블 위에 미끄러지듯 밀려온 봉투를 보며 그녀는 마른침을 삼켰다.
봉투 안엔 그녀가 부탁한 그레이스 베넷에 대한 정보가 들어 있었다.
“그녀를 포함한 그녀의 주변 인물과 가족까지 모두 조사한 자료입니다.”
길리안이 무덤덤한 얼굴로 덧붙여 말했다.
그는 24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피네스트 길드에 부길드장이 될 정도로 능력 있는 남자였다.
아버지의 신임을 받고 있는 남자. 그러니 이 정보는 필시 믿을 만할 테다.
셀로니아는 조금 떨리는 손으로 봉투를 집어 들었다.
확인하기 전까진 아무것도 속단할 수 없었으나, 온갖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조금은 두려운 마음까지 들었다.
‘생각했던 모든 경우가 아닐 때, 그때 난 어떻게 해야 하지…….’
하지만 결국 그녀는 응접실 안으로 들어왔고, 모든 실마리가 들어 있는 종이를 건네받고야 말았다.
셀로니아는 주저하다 봉투에 묶인 실을 풀고 종이를 꺼내 들었다.
초조함에 입술을 지그시 깨문 채 글씨를 읽어 내려가던 그녀의 물빛 눈동자가 거세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게 정말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