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le Leads Were Stolen by the Extra RAW novel - Chapter (52)
엑스트라에게 남주들을 빼앗겼다 (52)화(52/162)
<52화>
어김없이 찾아온 자정이 조금 지났을 무렵.
셀로니아는 탄의 통증을 치유하고 침대에서 잠이 들었다.
탄은 오늘도 잠든 그녀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요즘 그녀는 손을 잡아 주다 까무룩 잠이 드는 경우가 부쩍 늘었다. 그 덕에 이렇게 잠든 모습을 볼 수 있어 좋았다.
그는 오늘도 고요히 가라앉은 평온한 얼굴에서 시선을 떼지 못한 채 손가락을 뻗었다.
쭉 뻗은 엄지손가락이 셀로니아의 둥근 이마를 가리고 있는 앞머리를 스르륵 쓸어 넘겼다.
그러자 반듯한 두 눈썹이 드러났다. 그 아래로 둥글게 말려 올라간 긴 속눈썹까지.
이제야 아주 잘 보이는 완연한 얼굴에 그의 입매가 흡족하다는 듯 올라갔다.
언젠가부터 잠든 셀로니아의 얼굴을 보는 것이 습관이 되어 있었다.
왜 그럴까 곰곰이 생각해 보았는데, 무방비하고 아무도 볼 수 없는 이 얼굴을 자신이 독점한다는 게 좋았다.
잠이 든 그녀의 얼굴은 누구든 볼 수 있는 게 아니었으니까.
지금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건 오직 자신뿐이었다.
특별하게도.
“특별.”
탄은 셀로니아가 제게 했던 ‘특별’이라는 말을 되뇌어 보았다.
참 희한한 게 특별이라는 단어는 그 뜻대로 그에게 정말로 특별해져 있었다.
그녀와 함께하는 모든 순간순간이 특별하게 그의 뇌리에 남게 되었으니까.
그래서일까.
점점 욕심이 생긴다.
그녀의 자정은 그가 독점하고 있었으나, 낮은 아니었다.
날이 밝으면 자신이 아니더라도 그녀를 찾는 이가 많았고, 그녀 또한 만나는 놈들이 많았다.
아, 그냥 모조리 다 죽여 버리고 싶다.
탄의 가슴속에 선득한 열망이 피어났다.
그녀가 바라보는 이들을 모두 없애 버린다면, 이 푸른 두 눈에 담기는 것은 오직 자신뿐이게 될 테니.
이 마음이 지속된다면 어쩌면 정말로 그녀 주변의 모든 것을 없애 버릴지도 모르겠다.
탄은 정의를 내릴 수 없는 낯선 제 감정을 갈무리했다.
일단은 그녀가 원치 않으니까. 그녀의 사람들은 건들지 않기로 했으니까.
아직은 이미 약속한 문제로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다.
그러니 이제 그녀의 사람이 아닌 놈을 처리할 차례였다.
더는 그놈은 그녀의 사람이 아니라 했다. 그러니 건드려도 상관이 없었다.
탄은 속으로 흥얼흥얼 콧노래를 부르며 순식간에 자취를 감추었다.
아무도 온 적이 없었다는 듯 텅 빈 방 안, 셀로니아는 여전히 침대에서 새근새근 잠이 들어 있었다.
* * *
“어, 어쩌실 거예요! 경 때문에 저희까지 잘렸어요! 걸리지 않을 거라면서요!”
제인이 참지 못하고 짐 가방을 내팽개치며 루베우스를 향해 목소리를 높였다.
세 사람은 모두가 잠든 오밤중에 공작저에서 쫓겨나 길거리를 정처 없이 걷고 있었다.
공녀님에게 딱 걸리고 말았다.
이미 다 알고 계셨던 거라 일을 크게 키우신 거였다. 그들이 루베우스의 사주를 받아 훔쳐 온 귀중품들을 손님방에 몰래 넣어 둔 것을.
공녀님은 로라와 제인에게 크게 죄를 묻지 않겠다곤 했으나, 자비 없이 공작저에서 해고당하고야 말았다.
고작 루베우스의 금화 몇 개 준다는 꾐에 넘어가 평생직장을 잃어버린 것이었다.
“닥쳐라! 감히 네년이 누구한테 언성을 높이는 것이냐!”
“약속한 금화라도 어서 주세요!”
제인은 이대로는 갈 수 없어 루베우스에게 금화를 요구했다.
그거라도 있어야 생활을 하며 다른 일자리를 구할 수 있었으니까.
“닥치라고!”
“꺄아악!”
옆에서 떽떽거리는 제인의 목소리에 머리끝까지 화가 난 루베우스가 결국 무력을 휘둘렸다.
그가 휘두른 팔에 얼굴을 맞은 제인이 힘없이 바닥에 쓰러졌다.
“꺼져라. 네년들의 목을 다 베어 버리기 전에.”
눈에 뵈는 게 없는지 루베우스가 적반하장으로 으르렁거렸다.
“제, 제인. 어서 가자. 어서!”
“용서 안 해! 절대 안 해!”
겁을 먹은 로라가 맞은 눈을 부여잡은 채 우는 제인을 잡아끌었다.
제인은 로라에게 끌려가면서도 루베우스를 향해 악을 내질렀다.
“캬악. 퉤.”
루베우스는 도망치듯 달아난 두 하녀를 보며 더럽다는 듯 침을 뱉었다.
감히 지들이 누구에게 언성을 높이는 건지.
지금 꼴이 이렇다고 한들 하녀 나부랭이들과 자신은 같은 처지가 아니었다.
“X발.”
그는 마지막에 보았던 그놈의 얼굴을 떠올리며 으득 이를 갈았다.
공녀님 곁에 딱 붙어서 그딴 웃음을 흘리다니.
절대, 절대 이대론 못 넘어간다. 어떻게 해서든 그놈을 죽이고 자신이 이룬 모든 것을 되찾아올 것이다.
그때였다.
분명 아무도 없는 길거리에서 순식간에 나타난 검은 그림자가 루베우스를 덮쳤다.
“으아악! 이거 안 놔!”
탄은 발버둥 치는 루베우스의 얼굴을 한 손으로 부여잡은 채 질질 끌고 갔다.
어두컴컴한 밤 속에서 그의 붉은 눈이 아주 오랜만에 야차같이 번뜩이고 있었다.
“네놈을 죽여 버릴 것이다! 죽여 버릴 거야!”
탄의 악력 때문에 얼굴이 부서질 것만 같은 고통을 느끼며 루베우스가 악을 내질렀다.
벗어나고 싶어도 벗어날 수가 없었다. 고작 한 손으로 얼굴을 잡고 질질 끌고 가는 것뿐이었는데도 당해 낼 수가 없었다.
두 손으로 그놈의 손과 팔을 가격하여도 꿈쩍도 하질 않았다. 허리춤에 있는 검이라도 잡으려 하였으나, 닿질 않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탄은 루베우스의 신발 뒷굽이 떨어져 나갈 때까지 질질 끌고 와 아무도 없는 공터로 들어섰다.
그러고는 잡고 있던 루베우스의 얼굴을 내동댕이쳤다.
“으아악!”
공중을 휙 날아간 루베우스의 몸이 이윽고 바닥으로 추락했다.
“으윽.”
꼬리뼈에 느껴지는 찌릿한 통증과 함께 인상을 찌푸린 루베우스는 지체 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네가 감히 죽고 싶어 제 발로 찾아왔구나.”
루베우스는 으득 이를 갈며 이제 자유가 된 몸으로 허리춤에 차고 있던 검을 빼 들었다.
감히 제게 굴욕을 준 것도 모자라 무기도 없이 알아서 찾아오다니.
저놈이 어떤 괴력을 가졌든 상관없었다. 검으로 목을 베어 버리면 그만이었으니까.
탄은 그런 루베우스의 무지함에 조소 지었다.
한 치 앞도 예상하지 못하고 바락바락 대드는 꼴이 재밌어서.
“주제를 알아! 네깟 놈이 감히 공녀님과 어울릴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느냐!”
공터에 쩌렁쩌렁 울리는 루베우스의 발언에 탄의 눈썹이 미묘하게 빗금을 그리며 올라갔다.
“너같이 천한 것이 감히 공녀님을 넘보다니! 오를 수 있을 거란 착각 마라!”
“네놈은 이제 그녀의 사람이 아니지.”
더는 듣기 싫다는 듯 탄이 다물고 있던 입을 열었다.
오래 상대해 줄 생각은 없었다.
빨리 끝내고 잠든 셀로니아의 곁으로 돌아가려고 했으니까.
“하하하! 넌 애초에 공녀님의 사람이었던 적도 없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루베우스가 탄을 비웃었다.
지금이야 그가 단장직에서 쫓겨났지만, 애초에 공녀님의 사람이었던 자신과 저놈은 달랐다.
저 천한 것은 공녀님의 사람이 될 수 없었으니까.
감히 오르지도 못할 곳을 쳐다보다니.
“빨리 죽여 달라 애원하는군.”
“힉!”
순간, 코앞에 나타난 탄의 모습에 루베우스가 자신도 모르게 헛숨을 삼켰다.
방금까지 분명 그들 사이에 거리가 있었는데, 눈 깜짝할 새 탄이 그의 앞에 서 있었다.
심지어 모든 것을 다 잡아먹을 듯, 마주한 붉은 눈동자가 형형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이윽고 정신을 차린 루베우스는 검을 들어, 분명 탄을 향해 휘둘렀다.
“이, 이게 무슨…….”
그러다 손에 들린 검이 가루가 되어 흩날리는 것을 보고 경악했다.
방금까지 말짱하던 검이, 날카롭게 번쩍이던 검이 순식간에 모래가 되어 손안에서 빠져나갔다.
검이 사라졌다.
믿기지 않는 광경에 눈을 들자 태연자약하게 웃고 있는 비스듬한 탄의 얼굴이 보였다.
순간 루베우스는 덜덜덜 몸을 떨었다.
마주친 서늘한 붉은 눈이 마치 창끝처럼 제 폐부를 깊게 찌르는 느낌이었으니까.
“뻔뻔한 낯짝을 뭉개 버릴까. 아니면 다시는 말을 하지 못하게 혀를 뽑아 버릴까.”
“네, 네가…… 커억!”
소름 끼치는 그 말에 답을 하던 루베우스는 말을 다 이을 수 없었다. 탄이 무슨 인형 들듯 루베우스의 목을 한 손에 움켜쥐었으니까.
순식간에 공중에 뜬 루베우스의 두 다리가 살고자 애처롭게 버둥거렸다.
자신에게 누명을 씌우려고 했으면서 그래도 살겠다고 몸부림치는 꼴이라니.
퍽이나 우스웠다.
“커, 커헉……!”
“아니면 이 배에 구멍을 뚫어 줄까.”
잔혹하고도 광기 어린 목소리와 함께 구름에 가려져 있던 달빛이 그의 얼굴에 내려앉았다.
드러난 탄의 얼굴엔 자비 따윈 존재하지 않았다.
암흑 속에 먹잇감을 발견하곤 눈을 번뜩이는 짐승처럼 흉흉한 눈이 시뻘겋게 타오를 뿐.
“골라 봐.”
“끄흡, 끄으윽……!”
“아, 이런. 말을 못 하지.”
탄은 능청스럽게 말하며 히죽 입매를 끌어 올렸다.
남의 숨통을 쥐고 있는 사람이라곤 생각되지 않을 만큼 여유로웠다.
“그럼 내가 대신 골라 주지.”
탄은 놀고 있는 다른 한 손으로 루베우스의 배를 가격하였다.
“끄어어억!”
아무도 찾지 않는 공터에 잔인하고도 끔찍한 괴성이 울려 퍼졌다.
엄청난 통증과 함께 배 안에 있던 모든 장기가 파열되는 느낌이었다.
핏줄이 터져 충혈된 루베우스의 눈과 코와 입에서 액체가 줄줄 새어 나왔다.
눈앞이 희뿌옇게 변하고 당장이라도 숨이 넘어갈 것 같았으나, 루베우스가 힘겹게 말을 뱉어 내었다.
“끄으윽, 이, 이 괴물, 으윽! 너는 괴물, 윽, 이야!”
“네놈의 죽음은 아무도 알지 못할 거다. 참으로 너와 걸맞은 형편없는 최후군.”
탄이 여유롭게 루베우스의 목을 쥐고 있는 손아귀에 힘을 주었다.
“으아아악!”
와그작 소리와 함께 목뼈가 바스러지며 루베우스의 마지막 비명이 온 사방에 울리더니 이내 뚝 끊겼다.
툭.
탄은 들고 있던 루베우스를 바닥에 버렸다.
이윽고 축 늘어진 루베우스의 몸이 파스스 재로 변하더니 바람에 흩날렸다.
몇 초 전까지만 해도 루베우스가 있던 자리엔 잿가루조차 남지 않았다. 마치 이 세상에 태어난 적도 없다는 듯 흔적도 없이.
탄은 몸을 돌려 뚜벅, 뚜벅 공터를 빠져나갔다.
괴물이든 사람이든 사람이 아니든 이젠 상관없었다. 그녀가 특별하다고 해 줬으니 그거면 되었으니까.
다만, 그녀의 곁에 설 수 없다는 그 말이 무척이나 거슬렸다.
“흐음.”
탄은 고뇌하듯 생각에 잠겼다, 이내 피식 미소 지었다.
어울릴 수 없다면 그녀가 있는 곳까지 올라가면 그만이었으니까.
그날 이후 루베우스를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