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le Leads Were Stolen by the Extra RAW novel - Chapter (57)
엑스트라에게 남주들을 빼앗겼다 (57)화(57/162)
<57화>
셀로니아의 머릿속에 얼마 전 겪은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깨어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이안과 레예프 그리고 맥라이언까지 차례대로 찾아와 그레이스를 좋아하게 됐다며 떠나던 그 장면들이.
사람의 마음이라는 건 잡아 둘 수 없는 것이기에 변할 수 있다는 걸 인정했다.
하지만 남주들이 한꺼번에 원작 여주인 자신을 떠나 이름도 등장하지 않던 엑스트라였던 그레이스를 좋아하게 된 게 수상하여 길리안에게 그레이스에 대한 정보를 맡겼었다.
결과는 아무런 수상한 점이 발견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남주들의 마음이 변한 거겠거니 생각하고 단념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게 단순히 마음이 변한 게 아니라 타인이 강제적으로 마음을 바꾼 거라면?
길리안이 숨기려고 했던 사실이 그것이라면?
셀로니아는 바닥에 내려 둔 박스 속 케이크를 바라보았다.
지독한 악취를 풍기고 있는 파운드케이크. 레예프가 잘 먹지 않는 디저트.
이거 혹시 그레이스에게 받은 걸까?
퍼즐 조각처럼 딱딱 들어맞는 상황에 소름이 돋았다.
셀로니아는 흔들리는 동공을 뒤로한 채 에밀리에게 물었다.
“에밀리, 왜 그레이스 님을 제일 좋아하니?”
“움, 계속 그레이스 님만 생각나여! 가슴이 두근두근해요!”
“언제부터?”
“몰라요! 저 갈래요! 그레이스 님 보러 갈래요!”
에밀리는 계속된 질문과 그레이스에게 못 가게 막는 것이 짜증이 났는지 금방이라도 울 듯 떼를 썼다.
셀로니아는 난감한 얼굴로 에밀리를 어르고 달랬다.
계속 그레이스만 생각나고 가슴이 두근두근한다고?
이상해. 확실히 이상해. 말이 안 되잖아.
에밀리는 고작 많아 봐야 5살쯤 되어 보이는 어린아이였다.
갑자기 이렇게 맹목적으로 누군가를 좋아한다고? 그것도 귀족 영애를?
“갈 꺼야!”
그때, 몸부림치던 에밀리가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에밀리!”
셀로니아는 얼른 에밀리의 작은 손을 부여잡았다.
어떻게 해야 하지? 의료원에 데려가 봐야 하나?
“갈 꺼야! 그레이스 님한테 갈 꺼야아!”
버둥거리며 생떼를 부리는 에밀리를 향해 셀로니아는 더 고민할 겨를도 없이 급히 손을 뻗었다.
혹시나 싶은 마음이었다. 억지로 고장 난 마음이라면 치유할 수 있지 않을까 하여.
그녀의 손바닥이 에밀리의 가슴에 닿았다.
곧장 손안에서 흘러나온 하얀 치유의 빛이 에밀리의 몸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
방금까지만 해도 버둥거리던 에밀리가 모든 행동을 멈추었다.
“하아, 하아…….”
그러고는 숨이 가빠 오는지 빠르게 숨을 내쉬고 뱉기를 반복했다.
“괜찮아. 천천히 호흡하렴.”
셀로니아는 에밀리를 다독여 주며 계속 치유의 빛을 흘려보냈다.
숨이 안정될 때까지는 계속 해야 할 듯싶어 손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그렇게 치유술을 쓴 지 벌써 1분이 넘어갔다.
이미 꽤 많은 치유의 빛이 에밀리의 몸속으로 들어갔으나 아직까지도 호흡이 안정되지 않았다.
셀로니아는 어질어질한 정신을 부여잡으며 집중했다.
한꺼번에 너무 많은 힘을 쓰고 있어 몸에 무리가 가고 있었으나, 그렇다고 이대로 손을 뗄 수는 없었다.
“하아…….”
몇십 초가 더 지났을 무렵. 드디어 에밀리가 안정된 숨을 내뱉었다.
셀로니아는 파리한 안색이 되어 천천히 손바닥을 떼었다.
두 사람 사이를 선명하고 환하게 밝혀 주던 치유의 빛이 사그라들더니 이내 완전히 사라졌다.
눈앞이 핑 돌았다. 이마엔 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고, 얼굴엔 핏기가 증발해 있었다.
셀로니아는 몸이 기우뚱 기우는 것을 가까스로 잡으며 에밀리의 안색부터 살펴보았다.
“에밀리, 괜찮니?”
“네에…….”
에밀리가 작은 손을 꼼질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괜찮아? 그레이스를 보러 가지 않아도 되겠어?”
“그게 누군데여?”
에밀리는 생전 처음 들어 보는 이름이라는 듯 맑은 눈망울로 고개를 갸웃 기울였다.
* * *
“어떻게 됐어?”
그레이스가 초조한 얼굴로 게일에게 물었다.
레예프와 저택으로 돌아오자마자 게일을 호출하여 케이크를 받아 갔다는 아이를 찾아내도록 명령했다.
그리고 지금 게일이 수색을 마치고 돌아온 참이었다.
“이상 증상을 보이는 아이는 찾지 못했습니다.”
“뭐? 제대로 찾아본 거 맞아? 내가 말한 방향을 쥐 잡듯 살펴본 거야?”
“네. 두 번이나 살폈으나 케이크 박스나 증상을 보이는 아이는 찾지 못했습니다.”
신경질적으로 따져 묻는 그레이스의 태도에도 게일은 차분하게 대답을 했다.
“어디로 간 거야!”
그레이스는 잔뜩 초조한 얼굴로 손톱을 까득까득 깨물었다.
“그걸 왜 애를 줘서……! 하여간 도움이 안 돼.”
그러다 이 사달을 만든 레예프의 행동을 힐난하며 씨근덕거렸다.
“다시 한번 찾아봐! 그리고 혹시 집 앞으로 찾아올지 모르니까 찾아오면 빠르게 처리해!”
“네. 알겠습니다.”
게일은 명을 받들겠다는 듯 허리를 숙이곤 곧장 스크롤을 찢었다. 전처럼 마법진과 함께 그가 자취를 감추었다.
“아악! 진짜!”
그레이스는 너무나 신경 쓰이고 짜증 나는 상황에 답답하다는 듯 혼자 몸부림을 치며 머리를 헝클였다.
하지만 이내 끓어오르는 감정을 갈무리하며 거울 앞에 섰다.
헝클어진 머리를 다듬고 외모도 한 번 더 점검하고 난 뒤, 그녀는 방을 나섰다.
그러곤 식당에서 기다리고 있는 레예프에게 다가갔다.
“레예프 님, 음식은 입에 맞으셔요?”
곰살맞은 미소가 레예프를 향해 그려졌다.
* * *
“아, 아가씨!”
엘라가 휘청거리며 방을 나온 셀로니아를 보고 한달음에 달려갔다.
“어떻게 된 거야.”
탄도 셀로니아의 하얗게 질린 안색을 보더니 험악하게 인상을 구기며 바로 다가갔다.
그는 곧장 앞으로 쓰러질 것 같은 셀로니아를 두 팔로 단숨에 안아 들었다.
눈 깜짝할 새 몸이 붕 뜨는 느낌과 함께 셀로니아는 공중에 들려 있었다. 탄탄한 그의 팔이 제 무릎 뒤와 등을 단단하게 받치고 있었다.
낯간지러운 자세에 내려 달라고 하고 싶었으나, 그녀에겐 마차까지 걸어갈 힘이 남아 있질 않았다.
“저어…… 에, 에밀리는요?”
“괜찮아. 들어가 보렴.”
소녀가 눈치를 보며 물어 오자 셀로니아는 옅게 웃으며 답해 주었다.
“감사합니다!”
소녀는 크게 허리를 꾸벅이며 얼른 방 안으로 들어갔다.
“엘라, 이것 좀 챙겨 줄래.”
“네네!”
엘라는 셀로니아가 내민 잘 닫힌 케이크 박스를 받아 들었다.
“마차까지만 부탁 좀 할게요.”
아직도 눈앞이 어질해 셀로니아는 힘겹게 말을 뱉으며 안겨 있는 탄의 가슴에 툭 머리를 기대었다.
원래부터 치유의 빛은 무한정 쓸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그러니 토벌 당시에 정작 남주들을 치유하느라 모든 기력을 소진한 스스로를 치유하지 못하지 않았던가.
그래도 그때는 큰 부상을 당한 세 명까지는 한 번에 치료 가능했었는데, 에밀리를 한 번 치유하고 나니 맥이 빠졌다.
토벌 때 그만큼 치유술을 많이 쓴 건가?
아니면 요즘따라 부쩍 피곤함을 느꼈으니 체력이 나빠져 이렇게 힘든 걸 수도.
“그냥 순간 이…….”
“마차요. 마차 타고 갈래요.”
셀로니아는 탄의 말꼬리를 잘랐다.
그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잘 알았다.
본인의 순간 이동 능력으로 저택으로 돌아가자고 하려는 거겠지.
물론 그렇게 한다면 편하겠지만, 엘라에게 설명할 방법이 없었다.
몸은 힘들었으나 죽을 정도는 아니니 그냥 평범하게 마차를 타고 저택으로 돌아가는 게 좋았다.
“하여간.”
탄은 이 와중에도 고집을 부리는 셀로니아가 못마땅했으나, 착실히 다리를 움직였다.
혹시나 어지러울까 그녀를 품에 안은 팔은 단단하게 고정시킨 채 최대한 흔들리지 않게 조심스럽고도 빠르게 걸었다.
그 덕에 엘라는 거의 뛰다시피 발을 움직여 마차에 다다랐다.
덕분에 편하게 마차에 몸을 실은 셀로니아는 엘라가 옆 좌석에 둔 케이크 박스를 빤히 바라보았다.
덜컹거리며 움직이는 마차와 꽉 닫긴 했으나 틈 사이로 빠져나오는 냄새 때문에 멀미가 나 창문을 열어야만 했다.
‘저기에 뭔가 있어.’
음식에 무엇을 한 건진 모르겠지만 에밀리는 저걸 먹고 그레이스에 대한 생각을 떨칠 수 없게 된 것이다.
아마도 그레이스가 음식에다 무슨 짓을 한 것 같고 그걸 남주들이 먹은 듯싶었다.
‘그런 거야. 그랬던 거야.’
이제야 가닥이 잡혀 간다.
남주들의 마음이 왜 갑자기 다 변한 것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