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le Leads Were Stolen by the Extra RAW novel - Chapter (64)
엑스트라에게 남주들을 빼앗겼다 (64)화(64/162)
<64화>
셀로니아는 흠칫 놀라 저도 모르게 옆에 있는 탄의 팔을 붙잡았다.
팔 위로 소름이 싹 돋았다. 혼자 있었으면 기절하고도 남았을 상황이었다.
불이 꺼진 상점 안.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깜깜한 어둠 속에서 갑자기 잠겨 있는 문고리가 덜컹거렸으니까.
이럴 때 탄이 제 옆에 있다는 게 얼마나 안심이 되는지.
몇 달 전만 해도 서로를 죽이기 위해 달려들었던 사이었는데, 참으로 웃긴 모양새였다.
“…….”
탄은 어두워서 잘 보이진 않았지만, 잔뜩 겁을 먹은 다람쥐처럼 제 팔을 꼭 붙잡고 있을 셀로니아가 눈앞에 그려져 픽 웃었다.
덥석덥석 잡지 말라고 한 건 본인이었으면서 까먹은 모양이었다.
아무렴 어떠한가.
어떤 일로든 그녀가 먼저 움직여 제게 닿는 게, 탄에게 있어서는 그저 기분 좋은 일이었다.
덜컹덜컹.
달칵.
몇 번을 더 덜컹이던 문고리에서 잠금장치가 풀리는 경쾌한 소리가 났다.
끼이이익.
이윽고 아주 조심스럽게 상점의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검은 실루엣의 인영이 주변을 살펴보듯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며 상점 안으로 들어왔다.
“젠장…….”
이 상황이 무척이나 짜증 나는지 실루엣에서 낮은 욕지거리가 흘러나왔다.
그 목소리를 들은 셀로니아의 입매가 올라갔다. 낯익은 목소리는 역시나 길리안의 것이었으니까.
뒤졌어, 넌.
“후우…….”
길리안이 한숨과 함께 어둠 속에서 여기저기를 뒤지고 다녔다.
달그락거리며 여기저기를 들쳐 보는 손길이 퍽이나 급해 보였다.
확실했다. 책을 찾는 것이었다.
모든 걸 다 예상했는데, 막상 눈으로 길리안인 것을 확인하니 피가 거꾸로 솟는다.
저놈이 물어다 준 그레이스의 정보만 믿고 그저 남주들의 마음이 변한 거겠거니 체념했다.
단념하고 상처받은 마음을 추스르기까지 티를 내지 않아서 그렇지, 꽤 시일이 걸렸다.
남주들은 단순히 원작의 인물들인 것을 넘어 반년 동안 생사를 함께한 친구들이었으니까.
그 친구들을 한순간에 일방적으로 모두 잃은 충격은 말로 형용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그게 모두 거짓이었다니. 조작된 것이었다니.
이제는 남주들을 향한 마음이 다 식었다 한들 진실을 알게 된 이상 화가 나는 건 당연한 것이었다.
사람 하나 바보 만들어 놓고 눈 가리고 아웅이었으니까.
혼자서 끓어오른 분노에 부들부들 떨고 있는데, 옆에 있던 탄이 정신 차리라는 듯 팔을 톡톡 쳤다.
“하, 대체 어딨는 거야.”
책을 찾지 못하고 있는 길리안이 초조한 음성을 내었다.
백날 찾아봐라. 책이 있을 리가.
셀로니아는 까득 이를 갈며 탄을 향해 고개를 끄덕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탄이 동시에 창고 벽에 놓인 마력등 스위치를 올렸다.
탁. 순간 사방이 깜깜했던 상점 안이 환히 밝혀졌다.
“뭐, 뭐야!”
“길리안, 책을 찾나 봐요.”
소름이 끼칠 정도로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에 길리안의 몸이 얼어붙었다.
그는 딱딱하게 굳어 버려 돌아가지 않는 고개를 억지로 움직여 정면을 바라보았다.
“고, 공녀님…….”
그러자 차갑다 못해 시린 표정으로 창고에서 나오고 있는 셀로니아의 모습이 보였다.
“여, 여긴 어떻게…….”
길리안의 안색이 순식간에 잿빛으로 변해 갔다. 그의 머릿속에 비상이 울리고 있었다. 망했다고.
“이런. 어쩌죠, 길리안? 책은 이미 제 손에 들어왔는데.”
셀로니아는 비아냥거리며 길리안을 향해 뚜벅뚜벅 다가갔다.
은폐한답시고 로브를 뒤집어쓴 길리안이 사지를 벌벌 떨고 있는 게 보였다.
저런 모습은 처음이었다.
마주할 때마다 매일 딱딱하고 사무적인 모습만 봐 왔는데. 우습기 짝이 없었다.
“고, 공녀님, 그게 아닙니다. 오해십니다.”
“피네스트 부길드장이 그레이스의 끄나풀이었다니. 재밌네요.”
셀로니아가 비소를 터뜨리며 앞머리를 거칠게 쓸어 넘겼다.
아, 진짜 화가 나서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그게 무슨……. 아닙니다! 정말 오해십니다. 제가 다 설명할 수 있습니다.”
길리안이 아연실색한 얼굴로 주춤주춤 뒷걸음질 쳤다. 입술이 바짝바짝 말라 오는지 계속 혀로 훑으면서.
“무슨 설명? 아아, 위클란더 상점에 불을 지르고 위클란더를 죽였다는 사실을 설명할 건가요?”
“그걸 어떻게…….”
길리안의 반응에 셀로니아는 기가 찼다.
고작 그레이스의 끄나풀인 걸 들키지 않기 위해 방화를 일으켜 무고한 사람을 죽였으니까.
그레이스의 술수에 당했든 아니든 이건 엄연한 범죄였다.
“미쳤어요, 당신?”
“…….”
“빠져나갈 수 있다 착각 마. 절대 가만 안 둘 테니까.”
경고와도 같은 그 음성에 길리안의 눈동자가 빠르게 돌아갔다.
환하게 불이 켜진 상점 안에 보이는 거라곤 셀로니아뿐이었다. 궁지에 몰린 쥐는 고양이를 무는 법이었다.
그는 베스인 가문의 사람이기 전에 그레이스의 사람이었다. 그레이스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공녀님, 설마 혼자십니까.”
“당신 하나 잡는 일에 여럿을 쓸 필요 없거든. 인력 낭비야.”
“하. 제가 그 말을 믿을 거란 생각은 아니시겠지요. 숨어 있는 거 다 압니다.”
길리안이 셀로니아를 비웃었다.
아무리 구원자라 한들 성인 남자를 여자가 이길 수 있을 리 없었다. 그러니 분명 어딘가에 인력을 숨겨 두었을 테다.
하지만 자신이 누구던가. 제국 내 최고의 정보 길드인 피네스트의 부길드장이었다.
공녀가 다치면 골치가 아파지겠지만 우선은 이 자리를 피하는 게 먼저였다.
길리안은 아주 은밀하게 손을 움직였다.
티가 나지 않도록 은밀하게 움직인 길리안의 손은 통이 넓은 소매 속으로 들어갔다.
분주하게 움직이는 손이 소매 안에 들어 있는 무언가 끌어와 쥐더니 냅다 셀로니아를 향해 던졌다. 날카로운 무언가가 공기를 가르며 아주 빠르게 그녀를 향해 날아갔다.
길리안은 냅다 문을 향해 달려갔다.
기사들이 뻔하게 공녀를 구하기 위해 달려들 테니 그 틈을 노린 것이었다.
“아, 아가씨!”
놀란 엘라의 목소리를 들으며 셀로니아는 질끈 눈을 감았다.
이건 정말 예상하지 못한 돌발 행동이었기에 피할 겨를이 없었다. 아무리 그레이스의 사람이라 한들 피네스트의 부길드장이 공녀인 제게 무기를 날릴 줄은 몰랐으니까.
“으아악!”
그때였다.
우당탕 구르는 소리와 함께 길리안의 비명이 들려왔다.
감겨 있던 셀로니아의 눈이 번쩍 떠졌다.
예상했던 고통은 없었다. 왜냐하면 저 멀리에서 날아든 단검을 잡아챈 사람이 있었으니까.
빠르게 움직인 탄은 그녀를 향해 날아온 단검을 쥐고, 바로 길리안을 붙잡았다.
길리안의 머리를 바닥에 처박고 그의 등을 무릎으로 찍어 내린 채로, 이윽고 탄은 손에 쥔 단검을 저 멀리 던져 버렸다.
“으윽! 이거 안 놔!”
죄인처럼 바닥에 짓눌린 길리안이 버둥거렸다.
튀어나오는 것을 보지도 못했는데 어떻게……!
탄은 성인 남자가 아래에서 버둥거리고 있어도 한 치의 흔들림 없이 미리 준비한 밧줄을 꺼내 들었다.
그러곤 바로 길리안의 손과 발을 묶어 버렸다. 아예 도망갈 수 없게.
“놓아라!”
속수무책으로 묶인 길리안은 벗어나기 위해 버둥거렸으나, 탄은 그의 뒷덜미를 낚아채 올렸다.
길리안은 탄의 손에 의해 쓰레기봉투처럼 질질 끌려갔다.
굴욕감에 로브가 벗겨져 드러난 길리안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탄은 셀로니아 앞에 멈춰 서서 카운터 옆에 놓여 있던 의자를 끌어왔다. 한 손으로 길리안을 던지듯 의자에 앉혔다.
심문하기 좋은 모양새로.
“허…….”
순식간에 일어난 일에 셀로니아가 눈을 깜빡였다.
방금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그 짧은 시간에 단검을 막아 준 것도 모자라 길리안을 붙잡아 포박하기까지.
정말로 탄은 여러 명의 기사가 필요 없을 정도로 일당백이었다. 남의 편일 땐 한없이 두려우나 내 편일 땐 더없이 든든한 그런.
“괜찮나.”
탄이 곧장 셀로니아의 몸 여기저기를 살피며 물었다.
셀로니아가 멍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자, 입술을 짓씹고 있던 길리안이 주제도 모르고 언성을 높였다.
“하. 공녀님 제게 이러시는 걸 후회하게 되실 겁니다.”
“후회? 네놈이야말로 후회하게 해 줄게.”
셀로니아는 싸늘해진 눈동자로 길리안을 노려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