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le Leads Were Stolen by the Extra RAW novel - Chapter (74)
엑스트라에게 남주들을 빼앗겼다 (74)화(74/162)
<74화>
“아니에요. 베넷 영애는 잘못이 없는걸요. 이 세상에 영원한 건 없듯이 사람의 마음이 변하는 게 잘못은 아니니까요.”
“아가씨……. 이러다 또 쓰러지시면 어떡해요…….”
애달플 정도로 자조하듯 뇌까리고 있는 셀로니아를 향해 엘라가 동조하며 걱정했다.
음? 제가 이별의 상처 때문에 쓰러진 적이 있던가?
셀로니아가 슬쩍 엘라를 쳐다보았다. 엘라가 모든 것을 눈치챘다는 듯 한쪽 눈을 찡긋 감았다.
그 모습에 웃음이 터져 나오려는 걸 참고 셀로니아는 마지막으로 쐐기를 박았다.
“저는 영애를 원망하지 않아요. 그러니 이왕 이렇게 참석한 것 부디 즐기다 가길 바라요. 당신들도요.”
관대하고 은은한 미소와 함께 셀로니아가 어지럽다는 듯 머리를 짚은 채 테라스로 향했다.
그러자 그 모습까지 주위의 사람들에게 완전히 충격으로 남게 되었다.
타격에 몸을 못 가누는 것처럼 보였으니까.
“흥.”
펠레인과 에이블은 흠씬 그레이스를 노려봐 주다 셀로니아를 뒤따랐다.
셀로니아가 멀어지자 모여 있던 사람들이 그레이스를 향해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공녀님이 변했다는 소문이 사실이었나 봐요.”
“상처가 크니 변할 수밖에요. 이러지 말고 다른 곳으로 가서 얘기하죠. 뻔뻔한 사람과는 한자리에 있고 싶지 않아요.”
“쯔쯧. 젊음이 아무리 좋다고 한들. 해서는 안 되는 일이 있건만.”
“부인들, 이만 자리를 옮기죠. 격이 떨어지네요.”
귀족들은 하나같이 그레이스와 구원자들을 흘겨보며 자리를 떠나기 시작했다.
“…….”
그레이스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해사하던 미소는 어디 가고 표정은 잔뜩 얼어붙었다. 방심했다가 얻어맞은 카운터펀치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였다.
“베스인 영애, 얘기 좀 하지.”
이 와중에 옆에 있던 이안이 셀로니아를 따라나섰다.
그레이스는 허망하게 뒷모습을 보이는 이안을 보며 입술을 짓씹었다.
약혼녀가 욕을 먹고 있는데 감싸 주긴커녕 혼자 살겠다고 팔짱을 빼는 것도 모자라, 혼자만 남겨 두고 저 여자를 따라가?
표독한 녹안이 멀어지고 있는 셀로니아와 이안 그리고 친구 놀음을 해 대던 펠레인과 에이블을 노려보았다.
“본전도 못 찾았네요.”
“그러게나 말이에요.”
귀족들이 샐쭉한 눈으로 그레이스를 비웃으며 지나갔다.
그레이스는 두 주먹을 꽉 말아 쥐었다.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이건 전혀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었으니까.
“그레이스 님.”
“그레이스.”
뒤에 서 있던 레예프와 맥라이언이 그레이스를 불렀다.
그들은 이럴 줄 알았다는 듯 인상을 찌푸리고 있었다. 그레이스가 축하연에 가겠다고 나섰을 때부터 반대했던 두 사람이었으니까.
결국 참석해 이런 모진 꼴을 본 것이었다.
“레예프 님, 맥라이언.”
까드득 이를 갈던 그레이스는 금세 표정을 풀며 그들을 불렀다.
저 멀리서 녹색 머리카락이 보내는 신호를 받은 것이었다.
“말해.”
“말씀하십시오.”
두 사람이 그레이스의 표정을 살피며 답했다.
“저 목이 너무 마른데 샴페인 한 잔만 가져다주실래요? 두 분 다요.”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알았다.”
잠깐이라도 혼자 있고 싶어 하는 그레이스의 의중을 읽은 레예프와 맥라이언이 걸음을 움직였다.
그레이스는 두 사람이 시야에서 사라지자마자 아주 분개에 찬 표정으로 홀을 나갔다.
* * *
“왜 따라와요?”
셀로니아는 테라스까지 따라온 이안을 향해 쏘아붙였다.
자꾸 따라오는 이안 때문에 하는 수 없이 펠레인과 에이블 그리고 엘라를 잠시 뒤로 물린 상태였다.
“얘기 좀 해.”
“당신이랑 할 얘기 없는데요.”
이미 비련의 여주인공 모드는 끝난 지 오래였다.
“하아. 그러지 말고 좀 해.”
이안은 성가시다는 표정으로 앞머리를 쓸어 올렸다.
그러고는 테라스 문 앞에 서성거리고 있는 잔챙이들을 거슬린다는 듯 바라보며 커튼을 닫았다.
“하.”
얘기를 하자는 사람의 태도가 이런 건가.
셀로니아는 이안만큼은 그레이스의 술수에서 벗어나게 해 주고 싶지가 않았다.
끼리끼리 잘 어울리니 그냥 둘이 잘 먹고 잘사는 게 여러 사람한테 이득이었다.
“빨리 말해요. 얼굴 마주 보는 것도 짜증 나니까.”
“다시 시작해.”
그 말에 그의 얼굴을 쳐다보지도 않던 셀로니아가 고개를 돌렸다.
이 새끼가 지금 뭐라고 하는 거지?
그러나 들려온 뒷말은 더 경악스러웠다.
“그레이스를 포기할 순 없어. 그러니 후처로 들일 생각이야.”
셀로니아는 제정신이 아닌 것 같은 이안을 보았다.
지금의 약혼녀를 후처로 들이겠다는 뻔뻔하고도 그악스러운 발언에 소름이 돋을 지경이었다.
“그대의 지위를 생각해서 내린 결정이야. 그래도 공녀가 공작 부인이 되어야 하지 않겠나.”
이안이 심사숙고 끝에 내린 결정을 오만한 입꼬리를 올리며 술술 얘기했다.
그는 그레이스를 여전히 사랑했다.
여전히 마음속에 그레이스뿐이었다. 하지만 셀로니아를 놓칠 순 없었다.
특히나 세기의 커플이라 불리던, 모두의 선망을 한 몸에 받던 ‘우리’였다.
그런데 다른 놈이, 그것도 자신과는 비교도 실례인 천민 놈이 그녀의 옆자리를 꿰차는 것도 모자라 사람들이 잘 어울리는 한 쌍이라 수군거린다고?
그건 오직 제가 셀로니아의 옆에 있을 때 나올 수 있는 칭찬이었다.
그레이스에겐 미안하지만 객관적으로 보았을 때 셀로니아는 흠잡을 곳 없는 여자였다.
그녀가 이 세상 속 주인공이라고 할지라도 불만 없이 납득할 정도로.
저 또한 마찬가지였다. 동화 속에서 튀어나온 모두가 열망하는 왕자의 형상이었으니, 어찌 보면 셀로니아와 저는 한 쌍의 남녀 주인공이었다.
게다가 저와 셀로니아는 공작과 공녀의 만남이었다.
감히 누구도 무시할 수 없는 지위를 지닌 데다, 누가 봐도 아름다운 외모를 가진 우리를 능가할 커플 따윈 없었다.
이안은 음험한 눈으로 셀로니아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쭉 훑어보았다.
아름다웠다. 역시나 자신의 옆에 섰을 때 어울리는 건 이 여자다.
그레이스도 어여뻤으나, 셀로니아에겐 남다른 아우라가 있었다. 옆에 있으면 자신을 더욱 빛나게 해 주는.
덴로하 후작저를 다녀왔던 그날 이후 이 마음은 확고해졌다.
원래 차 한 잔을 마시면 진정이 되곤 했는데 이젠 그렇지가 않았다.
“뭐라는 거야. 누가 당신의 본처 자리를 가지고 싶어 한대요?”
셀로니아가 인간 말종을 보듯 구겨진 표정으로 이안을 노려보았다.
“하아. 이제 그만 마음 풀어. 영애가 3개월 동안 쓰러져 있을 때 언제 깨어날지 모르는 그 절망 속에서 내가 힘들었을 거란 생각은 못 해 봤나.”
이안이 제 마음 좀 헤아려 달라는 듯 눈살을 찌푸리며 이마를 매만졌다.
“지금 장난해요?”
셀로니아는 더없이 서늘해진 표정으로 이안을 마주했다.
머리가 차갑게 식었다.
그의 마음이 갑자기 변한 것이 그레이스의 술수 때문이라는 건 알겠는데, 지금 그는 온전히 피해자인 저를 탓하고 있었다.
‘내가 바람피운 것은 정당하다. 네가 쓰러진 일이 그런 빌미를 제공한 것이 아니냐. 언제 죽을지 모를 너를 마냥 기다릴 순 없었다.’라는 뜻이지 않은가.
그레이스의 술수가 이런 말도 안 되는 정당화까지 조장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건 그저 저 인간의 본성일 뿐이라고.
“영애도 입장을 바꿔 생각해 봐. 내가 만약 쓰러져서 3개월 동안 깨어나지 못했다면 영애도 안 그랬을 거란 보장 있나?”
“됐고요. 그래서 제가 깔끔하게 파혼해 줬잖아요. 문제 삼지 않았잖아요.”
“그랬지. 하지만 영애도 아직 내게 마음이 있는 것을 안다. 그러니 내 질투심을 유발하려고 들지 않았나.”
“그런 적 없거든요. 베넷 영애는 당신 이러는 거 알아요? 본인을 후처 삼을 생각하고 있다는 그 저질스러운 생각이요.”
“그레이스가 문제였나? 내가 잘 설명하면 돼. 그러니 걱정하지 말고 그대는 나를……!”
“아, 말귀를 못 알아먹네. 진짜.”
섬뜩할 만큼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가 붉고 도톰한 입술에서 흘러나왔다.
짜증이 난다는 듯 거칠게 머리를 쓸어 넘기는 셀로니아의 눈동자가 증오를 담고 푸른 불꽃처럼 타올랐다.
“착각 좀 하지 말라고요. 당신한테 풀어 줄 마음 따윈 애초에 없어요. 사랑한 적도 없는데 무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