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le Leads Were Stolen by the Extra RAW novel - Chapter (76)
엑스트라에게 남주들을 빼앗겼다 (76)화(76/162)
<76화>
탄은 난간에서 훌쩍 뛰어내려 셀로니아에게 다가갔다.
“괜찮나.”
다가온 그가 셀로니아를 샅샅이 살피며 물어왔다.
그녀는 멍한 얼굴로 탄을 올려다보며 고개를 끄덕끄덕했다.
그의 붉은 눈동자가 너무도 염려와 걱정을 담고 있어서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수가 없었으니까.
“내가 늦었군.”
그의 손이 조심스럽게 손자국이 난 셀로니아의 어깨를 손끝으로 매만졌다.
어쩐지 자책하는 듯 그의 인상이 찌푸려져 있었다.
“…….”
셀로니아는 그 순간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두 잊어버리고 말았다.
여긴 어떻게 온 거냐고, 여기 있으면 안 된다고 말해야 하는데 머릿속이 새하얬다.
방금까지 저릿한 통증이 느껴지던 어깨가 탄의 손길이 닿자마자 열이 오른 것처럼 후끈거렸으니까.
심지어 그의 집요한 눈길이 제 드러난 어깨에 머물러 있는 것을 보니 발가벗겨진 기분이었다. 낯간지럽고 쑥스러워 어깨를 가리고만 싶은 심정이었다.
방금 자신도 모르게 그를 기다렸다.
이럴 때마다 탄이 나타나는 게 익숙해져서, 그래서 주위를 살폈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그러다 휑한 주변을 발견하곤 아차 싶었다. 내가 지금 뭘 하는 건지.
그는 오지 않을 텐데, 내 일은 내가 알아서 해야 하는 건데.
저도 모르게 그에게 의지하고 있다는 걸 깨달은 것이었다.
그렇게 체념하고 움직이려는데 갑자기 튀어나올 줄이야. 정말로 나타날 줄이야…….
“셀로니아, 저놈을 어쩌고 싶지.”
탄이 나가떨어진 이안에게 눈길도 주지 않은 채 셀로니아를 보며 물었다.
“네깟 게 나를! 그래. 오늘 진짜로 네 놈을 귀족 능멸죄로 처단해 주마.”
저항 한번 못 하고 나가떨어진 이안이 얕은 신음을 내며 난간을 잡고 일어섰다.
반격도 못 해 보고 일방적으로 밀려난 게 수치스러웠는지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했다.
당황한 셀로니아는 탄의 팔을 붙잡았다. 이대로 있다간 정말 위험했으니까.
이안은 정말로 탄을 처단하려 들 테고, 그런 이안을 탄은 봐주지 않을 테다.
“탄, 일단 가요. 일단 여기를 빠져나가……!”
“황제 폐하와 황후 폐하 드십니다!”
그때였다. 그녀의 목소리를 단숨에 묻어 버리는 안내음이 테라스까지 울려 퍼졌다.
황제와 황후의 등장에 셀로니아의 얼굴이 순식간에 파리해졌다.
이안이고 나발이고 황제와 탄이 마주하는 건 안 된다. 아무리 탄이 기억이 없어도 마왕과 황제라니.
“쥐도 새도 모르게 없애 줄까?”
이런 그녀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탄은 사태 파악을 못 하고 그녀의 눈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이안을 어찌할지에 대해서만 묻고 있었다.
“그게 문제가 아니라 지금 여기서 이러면 안 되거든요? 황궁에 함부로 오면 안 돼요. 일단 몸을 숨겨요.”
“어딜. 폐하께서 등장하셨다고 내가 봐줄 줄 알았다면 오산이다!”
그러자 이번에는 그녀의 등 뒤에 있던 이안이 으르렁거리며 팔을 뻗었다.
순식간에 셀로니아의 어깨 위를 지난 이안의 팔이 탄의 멱살을 잡았다. 아니, 잡으려고 했다.
탄이 너무도 손쉽게 그의 팔을 쳐 냈지만.
“이 새끼가!”
셀로니아가 보는 앞에서 삐끗한 게 창피했는지 이안이 버럭 소리를 지르며 아예 탄에게 달려들려고 하였다.
셀로니아는 그런 두 사람 사이에 샌드위치처럼 껴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이안은 신경도 쓰지 않은 채 초조한 얼굴로 탄의 가슴을 떠밀었다.
“탄, 어서요. 일단 저택으로 돌아가 있어요!”
“베스인 공녀는 어서 나와 폐하께 인사를 올리시오!”
그녀를 찾는 목소리가 테라스까지 쩌렁쩌렁하게 울려 댔다.
똑똑.
“아가씨, 나오셔야 해……!”
엘라의 초조한 목소리가 문 너머에서 다 들리기도 전, 닫혀 있던 테라스의 양쪽 문이 벌컥 열렸다.
촤악 소리와 함께 이안이 쳐 놨던 커튼이 걷혔다.
“나오십시오. 폐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문과 커튼을 연 기사들이 셀로니아에게 말했다.
그들 앞에는 장내에 모여 있던 귀족들이 황제에게 예를 갖추고 있는 진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거기 세 사람은 이리로 나와 황제 폐하와 황후 폐하께 예를 올리시오!”
시종장이 테라스에 있는 그들을 향해 큰 소리로 외쳤다.
‘X 됐다.’
셀로니아는 순간 눈앞이 아득해져 왔다.
이미 황제와 황후는 네그지트 홀 가장 높은 곳에 서 있었다.
시종장이 세 사람이라고 콕 짚어 말했으니 지금 탄이 사라지는 게 더 문제였다.
“그냥 최대한 조용히 허리만 숙이고 있어요.”
셀로니아는 탄에게만 들릴 정도로 아주 작게 속삭이고 그를 데리고 테라스를 나섰다.
이안은 셀로니아에게 딱 붙어 걸어가고 있는 탄을 향해 으득으득 이를 갈면서도 우선은 황제께 예의를 갖추기 위해 따라 나왔다.
황제 앞에서 칼부림을 할 순 없었으니까.
“드디어 오늘의 주인공이 모습을 드러내는군.”
황제가 모습을 드러낸 셀로니아를 두 팔 벌려 환대해 주었다.
“지엄하신 제국의 태양 황제 폐하와 영명하신 제국의 달 황후 폐하를 뵙습니다.”
셀로니아는 어디서 본 적 있는 멘트를 읊으며 황제와 황후를 향해 예의를 갖추었다.
한 발 뒤에 서 있던 탄도 그녀를 따라 허리를 숙인 상태였다.
그녀의 등골에선 식은땀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부디 황제가 저 외의 인물에게, 특히 탄에게 관심을 가지지 않길 바랄 뿐이었다.
“하하하. 그래. 우리 제국의 보물인 공녀를 이렇게 다시 건강한 모습으로 볼 수 있으니 기쁘군.”
“감사합니다. 폐하께서 오늘 이런 화려한 연회까지 열어 주셔서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당연히 공녀를 위해서 축하연을 열어야지. 승전식에 참석하지 못하였지 않나.”
“영광입니다, 폐하.”
“그래. 이왕 휴직한 것 푹 쉬다가 돌아오도록. 치유소에 공녀의 자리는 늘 비워 두겠네.”
“감사합니다, 폐하.”
형식적인 대화가 이어지고 있었으나, 셀로니아는 칼 위를 걷듯 아슬아슬한 기분을 지울 수가 없었다.
빨리 인사를 끝내고 황제와 황후가 돌아가 주었으면 했다.
원래 황제와 황후는 큰 행사가 아닌 이런 축하연에는 얼굴만 비추곤 자리를 비웠으니까.
“오늘 공녀를 위해 많이들 와 주었군. 모두 고개를 들라.”
황제는 호쾌하게 말하며 홀 안에 모여 있는 사람들을 두루두루 살펴보았다. 하지만 아직도 황태자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황제의 한쪽 눈썹이 미묘하게 치켜 올라갔다. 표정 관리는 하고 있었으나 언짢음을 숨길 수가 없던 것이었다.
“황태자는.”
“오고 계십니다.”
황제가 곁에 있는 시종장에게 조용히 묻자 대답이 돌아왔다.
“쯧.”
황제가 불만스러워하며 황좌에 앉았다.
원래라면 축하 인사만 남기고 빠져 주려 했으나, 황태자가 공녀에게 어떻게 하는지 보고 돌아갈 생각이었다.
“폐하, 그럼 저는 먼저 들어가 보겠습니다.”
이런 자리를 즐기지 않는 황후는 황제에게 말을 전하곤 휙 뒤돌아섰다.
“다들 나 때문에 굳어 있지 말고 오늘 연회를 즐기게.”
황제는 눈치만 보며 쭈뼛거리고 있는 귀족들을 향해 말했다.
이윽고 황궁 연주단들이 고운 선율을 연주하기 시작하자 귀족들이 슬금슬금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안에서 셀로니아만 얼굴색이 잿빛으로 변해 있었다.
황제가 황좌에 앉는 순간 설마 싶었는데 자기는 신경 쓰지 말라는 말에 확신했다. 이대로 돌아가지 않고 축하연을 지켜보겠다는 뜻이었다.
왜 하필이면 오늘…….
우선은 탄을 데리고 후다닥 테라스로 들어가 순간 이동으로 이곳을 빠져나가라고 하려는데.
“따라 나와라.”
벼르고 있던 이안이 탄을 향해 짓씹듯 말을 내뱉었다.
그러자 주변에 몰려 있던 사람들이 이안의 살벌한 모습에 힐끔힐끔 이쪽을 쳐다보기 시작하였다.
“어라, 저분 밤의 야수 아니에요?”
펠레인과 에이블도 이쪽을 바라보다 탄의 모습을 알아본 듯 고개를 갸웃 기울였다.
“밤의 야수?”
“어머! 어디요?”
순식간에 호기심 어린 눈길이 이쪽으로 쏠려 들었다.
‘돌겠네, 진짜!’
수습이 안 되는 상황에 셀로니아는 속으로 비명을 내지르다 침착히 생각을 정리했다.
그래. 차라리 지금 상황에서는 시한폭탄과 다름없는 이안과 탄을 데리고 아예 연회장 밖으로 나가는 게 더 이로울 것이라고.
뒷일은 일단 두 사람을 데리고 나가서 생각하자. 그런 심정으로 발걸음을 옮기려는 순간.
“음? 그런데 공녀 뒤에 있는 자는 누구인가?”
아직 활기를 찾지 못한 홀 안에 황제의 물음이 너무나도 크고 또렷하게 울려 퍼졌다.
결국 셀로니아는 그 자리에 얼어붙고 말았다.
“처음 보는 얼굴인데.”
황제 아르헥시오는 눈에 띄는 검은 머리카락의 거대한 사내를 내려다보며 턱을 문질렀다.
저 남자에게 시선을 두지 않을 수가 없었다.
큰 키와 단단한 몸을 가진 붉은 눈동자를 가진 사내는 멀리서 봐도 그 외모가 대단했으니까.
“저자가 밤의 야수라고 합니다.”
“오호. 그대가 소문이 무성한 그 밤의 야수인가?”
시종장의 전달에 황제가 호기심 어린 눈을 번뜩였다. 얼굴 한번 보고 싶었던 그자가 아니던가.
“그대는 나와서 폐하께 신분을 밝히고 인사를 올려라!”
시종장이 황제의 언급에도 가만히 서 있는 탄을 향해 목소리를 높였다.
“황제 폐하.”
그때였다.
모두가 탄을 바라보고 있을 때, 어디선가 목소리가 들려왔다. 사람들의 시선이 목소리가 들린 방향으로 일제히 움직였다.
“오, 허시브룩 공. 아직 돌아가지 않았군.”
황제가 홀 안으로 들어온 남자를 반가운 얼굴로 맞이했다.
셀로니아도 지금 들어오는 남자를 알아보고 살짝 미간을 좁혔다. 일전에 한 번 마주쳤던 적이 있는 이우스 허시브룩 대공이었다.
그런데 왜 갑자기 이 타이밍에 대공이 등장하는 거지?
이상하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이우스가 모두의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며 뚜벅뚜벅 걸어오더니 정확하게 탄의 옆에 멈춰 서서 말했다.
“소개드리겠습니다. 여기 이자가 바로 제 뒤를 이을 새 대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