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le Leads Were Stolen by the Extra RAW novel - Chapter (79)
엑스트라에게 남주들을 빼앗겼다 (79)화(79/162)
<79화>
“그간 잘 지내셨습니까.”
“네, 뭐. 오랜만에 보는 것 같네요. 그런데 그게 제 축하연일 줄은 몰랐고요.”
레예프의 물음에 셀로니아가 무표정한 얼굴로 대답하였다.
그녀는 지금 조용히 얘기를 할 수 있느냐는 레예프의 요청에 황궁 정원에 나와 있었다. 이곳엔 아무도 없었으니까.
이제 곧 겨울이 다가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황궁의 정원에는 형형색색의 꽃이 한 아름 피어 있었다.
불어오는 바람에 꽃 내음이 물씬 깃들어 있을 정도로.
“송구합니다.”
레예프가 최대한 예의를 갖춰 셀로니아를 향해 허리를 숙였다.
그레이스와 이안, 맥라이언에 비해 나은 태도였으나, 이 정도로 그녀의 마음이 누그러지진 않았다.
정상인이라면 애초에 축하연에 참석을 하지 말았어야 한다. 술수에 당했어도 레예프는 그래도 다른 놈들에 비해 이성적이라 생각했는데 그것도 영 아닌 모양이었다.
고개를 숙인 레예프의 머리카락이 찬 바람에 흐트러졌다.
하늘을 닮은 파란색 머리카락.
흔하지 않은 머리 색이었다. 판자촌의 어린 소녀 에밀리가 말했던.
“참. 레예프, 의례는 잘 다녀왔나요?”
셀로니아는 마치 예전에 했던 말이 떠올랐다는 듯 아주 자연스럽게 그에게 물었다.
“네. 무사히 다녀왔습니다.”
“몸과 마음을 비우는 의례라 음식을 섭취 못 한다고 했죠?”
“그렇습니다.”
“무척이나 배고팠겠네요. 끝날 때를 대비하여 미리 음식이라도 챙겨 갔나요?”
그녀는 레예프의 표정을 살피며 떠보았다.
“예. 다정하게도 그레이스 님이 제가 떠나는 날 의식이 끝나면 먹으라고 챙겨 주시더군요.”
레예프가 수줍게 웃으며 얘기했다. 지금 누구 앞인지 홀랑 잊은 느낌이었다.
“아아. 그렇군요. 파운드케이크는 맛있었나요?”
“아, 그건 제가 먹지 못했습니다. 굶주린 아이를 보아 건넸습니다. 그레이스 님은 당연히 이해해 주셨고요.”
셀로니아가 자연스럽게 질문하자 레예프가 자신도 모르게 술술 대답했다. 그 음식이 파운드케이크인 것을 그녀가 어떻게 알았는지 알아채지도 못한 채.
“그랬군요. 베넷 영애가 이해심이 넓네요.”
그녀는 그레이스를 칭찬하는 척 빠르게 화제를 돌렸다.
이미 확신에 차 있었으나, 레예프의 확인 사살은 그녀에게 완전한 깨달음을 주었다. 에밀리가 먹었던 파운드케이크는 그레이스가 레예프에게 줬던 것이라는 걸.
“셀로니아 님.”
다정한 그레이스의 생각에 잠시 본론을 잊고 있던 레예프는 어느덧 차가워진 눈동자로 셀로니아를 응시했다.
“말해요.”
“저는 당신께서 이렇게까지 하실 줄은 몰랐습니다.”
“무엇을 말이죠?”
“그레이스 님이 사람들 앞에서 창피를 당하지 않았습니까.”
그의 보라색 눈동자가 그녀를 힐난하고 있었다. 어떻게 그레이스에게 이렇게까지 할 수 있느냐고.
“그레이스 님이 무척이나 상처받으셨습니다. 혼자 숨죽여 몰래 우시더군요.”
레예프는 제 품에서 가엾게 울던 그레이스를 생각하며 두 주먹을 말아 쥐었다. 어찌나 제 마음이 아프던지.
만약 그 자리에 셀로니아가 함께 있었다면 이성을 통제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레예프, 오늘은 제 축하연이잖아요.”
셀로니아는 기가 막혔다.
술수에 당해서 그런 거라고 머리로는 알고 있는데, 그의 말은 상처였다.
그건 아마 이안도 맥라이언도 아닌 레예프라서 더 그런 것이었다. 친구로서 제일 의지를 많이 했던 사람이었으니까.
“압니다. 저도 그레이스 님이 이곳에 오는 걸 반대했었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그렇게까지 많은 사람들 앞에서 몰아붙이실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레예프.”
“셀로니아 님께서 일부러 연기하신 거 다 압니다. 그렇게까지 그레이스 님을 끌어내리고 싶으셨던 겁니까.”
“레예프 헤첼.”
“혹시 저희가 그레이스 님을 선택하여 그래서 질투하시는 겁니까?”
경고처럼 그를 부르는 그녀의 목소리에도 레예프는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눈물짓던 그레이스의 얼굴이 떠올라 감정이 격해진 탓이었다.
“……뭐라고요?”
기어이 레예프가 선을 넘고야 말았다.
셀로니아의 파란 눈동자가 시릴 만큼 차게 가라앉았다. 이제 더는 봐주지 않겠다는 듯.
“공녀님의 열등감 때문에 그레이스 님에게 상처를 주신…… 커억!”
레예프는 순간적으로 기도를 옥죄는 고통에 숨을 못 쉬었다.
어디서 튀어나온 건지 검은 형체가 갑자기 그를 덮치더니 순식간에 한 손으로 목을 움켜쥐었다.
“뚫린 게 입이라고 잘도 말하는군.”
모든 것을 지켜본 탄이 살기가 형형한 눈동자로 레예프를 노려보았다.
레예프의 목을 쥔 그의 손은 차오르는 분노에 핏줄이 바짝 일어나 있었다. 셀로니아에게 비수와 같은 말을 쏟아 내던 이 주둥이를 당장 찢어 버리고 싶었다.
“크윽! 대공님, 뭡니까. 이거 놓으 허윽, 십시오!”
레예프가 탄의 손아귀에 목을 잡힌 채 버둥거렸다. 일반인이라고 생각되는 그에게 차마 신성력을 사용하지 못하며.
탄은 금방이라도 죽일 기세로 레예프를 노려보다 등 뒤에 서 있는 셀로니아에게 시선을 두었다.
“셀로니아, 이놈도 봐줄 건가?”
그는 그녀가 싫어하는 짓은 하지 않았다. 실망하는 것을 보고 싶지 않았으니까.
그래서 마음 같아선 다 죽여 버리고 싶은 구원자들도 살려 두었던 것이었다.
그런데 이 새끼들은 번번이 도를 넘는다. 그녀가 봐주고 있다는 것도 모르고. 감히.
“아니요.”
눈보라보다 더 차가운 음성이 그녀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그녀의 냉담한 파란 눈동자는 레예프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방금까지 제게 해서는 안 되는 말을 내뱉은, 새빨갛게 달아오른 얼굴로 숨을 헐떡이고 있는 그에게.
이성은 그 어느 때보다 차분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술수? 개나 주라고 해.
그는 선을 넘었다. 술수고 나발이고 넘어도 한참을 넘었다.
눈이 멀어 그릇된 행동과 말을 하는 레예프를 제가 이해해 줄 이유 따윈 없었다.
당연히 죽일 생각까진 없었다. 기절시키는 것까진 몰라도.
“이제 더는 내 앞에서 헛소리를 못 하게 만들어야겠어요.”
이어진 그녀의 비정하고도 속 시원한 말에 탄이 만족스럽다는 듯 씨익 웃었다.
“네가 원한다면.”
* * *
“으윽, 이건 범죄입니다…….”
레예프가 아픈 갈비뼈를 붙잡고 나무에 기대어 피가 터진 입술로 중얼거렸다.
탄의 힘이 어찌나 강력한지 몇 분이 채 지나지도 않아서 레예프는 나가떨어져 있었다.
검도 없이 벌어진 육탄전. 당연히 진 것은 레예프였다.
밀리고 밀리다 안 되겠는지 레예프는 황궁이라는 것도 잊고 신성력을 꺼내 들었지만 소용없었다. 그의 힘은 탄에게 단숨에 삼켜졌으니까.
애초에 게임이 되지 않는 싸움이었다.
적당히 하라는 자신의 말만 아니었어도 레예프는 벌써 이 세상에 없었을 테니까.
“셀로니아, 좀 더 손봐 주는 게 어때.”
몇 번 휘두르지도 않았는데 퍼져 있는 레예프를 보며 탄이 불만을 토로했다.
이게 어떻게 온 기회인데. 구원자라고 해서 맷집이 좋을 줄 알았더니 영 아니었다.
힘을 온전히 다 쓴 것도 아니었는데 이렇게 빨린 나가떨어질 줄이야.
시시하고도 우스워서 헛웃음만 났다. 정말로 이놈들이 저를 이겼다던 구원자가 맞는 건가 의구심이 들 정도였다.
“여기까지 해요.”
탄에게 답하며 셀로니아는 젖은 빨래처럼 널브러진 레예프를 일말의 동정도 없는 무심한 눈길로 내려다보았다.
크게 소란을 일으킬 생각이 없었으니 사람들이 몰리기 전 이쯤에서 마무리하는 게 좋았다.
어차피 지금 다친 것은 제 치유술이면 말끔하게 나을 테니까.
“윽, 어찌 이런 짓을 할 수 있습니까, 셀로니아 님…….”
레예프가 원망 어린 눈으로 셀로니아를 보았다.
어떻게 이리 극악무도한 짓을 할 수 있단 말인가. 대공을 사주해서, 그것도 황궁에서 자신에게 상해를 입히다니.
“그러니까요. 당신이 어떻게 제게 그런 말을 할 수 있죠.”
“그건 셀로니아 님께서 그레이스 님을……!”
“그만.”
셀로니아는 또다시 시작되려는 레예프의 개소리를 차단했다.
“누구는 한마디 말로 빚을 갚는다는데, 당신은 여러 번 제게 빚을 지네요.”
셀로니아는 더는 지체하지 않고 레예프의 앞으로 다가갔다.
그의 눈에 덧씌워진 암막을 거둘 차례였다.
만약 그가 모든 것을 깨닫고 이전처럼 돌아온다면…… 글쎄.
레예프가 했던 말들이 너무도 괘씸했기에 전처럼 지내는 것은 아마 무리일 테다.
그녀는 곧장 나무에 기대어 앉아 있는 그의 앞에서 자세를 낮춰 손바닥을 몸 위에 가져다 대었다.
“궁금하네요. 모든 것을 알게 됐을 때 당신의 표정이.”
그 말과 함께 그녀가 뿜어낸 환한 치유의 빛이 레예프의 몸속으로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