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le Leads Were Stolen by the Extra RAW novel - Chapter (8)
엑스트라에게 남주들을 빼앗겼다 (8)화(8/162)
<8화>
“알고 있었잖아. 알면서도 선택한 거 아니었나, 레예프?”
맥라이언이 신문을 확인하곤 말이 없어진 레예프에게 말을 걸었다.
두 사람은 오늘 신문 1면에 난 기사를 확인했다.
이안 체르빌 공작과 그레이스 베넷의 약혼 소식.
맥라이언은 그레이스가 이안과 서로 사랑하는 사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알고 있는데, 알고 있으면서도 그녀의 곁에 있기로 다짐한 것이었다.
다만, 이렇게 회피도 하지 못하고 두 눈으로 확인하게 될 때면 마음이 아팠다.
“와아. 정말요?”
귓가를 울리는 맑은 목소리에 맥라이언이 나무에 기대고 있던 고개를 돌렸다.
저 멀리 정원에 그레이스가 앉아 있었다. 아름다운 미소를 지은 채 이안과 행복한 한때를 보내고 있는 그녀가.
“후우.”
맥라이언은 저 모습을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는 자신의 처지에 맥 빠진 숨을 흘려보냈다.
친구.
그는 지금 그레이스 옆에 친구라는 명분으로 곁에 있을 수 있었다.
그들 사이엔 눈에 보이지 않는 확실한 선이 존재했다.
친구라는 제한선.
그 선을 넘어서는 순간, 자신과 그레이스의 관계는 모래성처럼 와르르 무너져 내릴 거다.
셀로니아 때와 다를 게 없는 현실이었다.
“……셀리.”
불현듯 이틀 전 허탈하게 웃던 셀로니아가 떠올랐다.
로블랑에서 그레이스와 마주친 셀로니아.
만약 그때 셀로니아가 그레이스에게 손이라도 올렸다면 그는 가만있지 않았을 것이다.
물론 셀로니아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한 건 아니었다.
하지만 사람의 마음은 우직하게 제자리에만 존재하는 산이 아니라 움직이는 바다였다.
흘러가는 것을 막을 수 없으며, 정착할 수도 없는 것이었다.
그는 그레이스를 만나고 그것을 몸소 깨달았다.
어떤 게 시작이었는지 모른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셀로니아에 대한 마음은 눈 녹듯 사라져 있었고, 그 빈자리에 그레이스가 들어와 있었다.
“너만큼은 셀리 곁에 남아 있을 줄 알았는데.”
맥라이언이 아직도 침묵을 고수하고 있는 레예프를 향해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그 당시에는 셀로니아가 그레이스에게 해코지를 할까 신경이 곤두서 있었다. 셀로니아가 어떤 마음일지 생각도 못한 채로.
하지만 지금 와 다시 생각해 보니 혼자가 되어 버린 그녀가 마음에 걸렸다.
이안도 저도 레예프까지도 한순간에 그녀에게 뒤돌아섰으니까.
“기사의 서약이란 건 여럿에게 남발해도 될 만큼 가볍기 짝이 없군.”
그가 비식거리며 빈정댔다.
사사건건 셀로니아와 자신의 사이를 방해하던 레예프도 결국 그녀를 배신했다.
고결하고 우직한 척은 혼자 다 하더니 우습기 짝이 없었다.
“그러는 맥라이언 님은 그분께 심장까지 주지 않으셨습니까. 도로 빼앗을 거면 왜 주신 겁니까.”
울컥한 레예프가 참지 못하고 소리를 높였다.
마음에 짐처럼 남아 있는 죄책감을 맥라이언이 건드려 버린 것이었다.
“뭐, 인마? 나는 지금 내 진심에 충실한 것뿐이야!”
다혈질 아니랄까 봐 맥라이언이 레예프의 멱살을 움켜쥐었다.
금방이라도 레예프를 한 대 칠 기세로 그의 금안이 사납게 일렁였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레예프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맥라이언을 상대했다.
지금 여기서 누구의 잘잘못을 따지는 건 의미 없는 일이었다. 결국 다 똑같은 배신자들이었으니까.
“그때 내 심장이 없었다면 셀리는 죽었을 거다.”
맥라이언은 언제나 재수 없는 레예프의 무표정한 얼굴을 노려보다 잡고 있던 멱살을 거칠게 놓았다.
저 면상을 곤죽으로 만들고 싶었으나 부디 사이좋게 지내 달라던 그레이스의 부탁이 생각나 참았다.
“그럼 끝까지 지켜 주시지 그러셨습니까. 싫어졌다 해서 이제 와 심장을 뺏다니요.”
“무슨! 나는 아직도 셀로니아를……!”
감정에 휩쓸려 목소리를 내던 맥라이언은 이상함을 감지하곤 말을 멈췄다.
순간적으로 그의 얼굴엔 당황이 깃들었다.
셀로니아를……? 그다음은 뭐지?
“맥라이언!”
그 순간, 이안과 얘기를 마친 그레이스가 맥라이언을 향해 손을 흔들며 달려왔다.
“뛰지 마. 넘어진다.”
그는 햇살보다 눈이 부신 그녀의 미소를 보자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부드러운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고는 망설임 없이 그레이스를 향해 걸어갔다.
따사로운 햇살 아래 그의 은색 머리카락이 반짝였다.
신비롭고도 잘생긴 얼굴 속 다정한 노란색 눈동자가 기분 좋게 휘어졌다.
방금까지의 혼란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있었다.
애초에 그런 고민 따윈 한 적 없는 사람처럼.
“…….”
잠깐이지만 맥라이언의 눈동자에 비치던 혼란을 읽은 레예프는 의문스러웠다.
방금 그건 뭐지?
마치…….
“레예프 경도 어서요!”
그러나 생각할 틈도 없이 또다시 그레이스의 목소리가 날아들었다.
그녀는 레예프를 향해 어서 오라며 반갑게 손짓하고 있었다.
결국 레예프는 그 손짓을 거부할 수 없어 머리를 비운 채 걸음을 옮겼다.
자신이 사랑해 마지않는 그레이스 베넷에게로.
* * *
원작은 끝났다.
그것이 해피엔딩이든 새드엔딩이든.
어찌 됐건 간에 그녀는 엔딩을 맞이했고, 지금 살고 있는 시간은 엔딩 이후였다.
소설은 마왕 토벌로부터 한 달 뒤, 두 사람의 결혼식까지였으니까.
이 말인즉슨, 더 이상 강행되는 원작의 굴레 따윈 없다는 소리였다.
“아가씨, 정말 저도 같이 먹어도 되는 걸까요?”
“그럼. 마음껏 먹어. 먹고 싶은 게 있으면 더 시키고.”
셀로니아는 믿기지 않아 하는 엘라를 다독여 주며 앞에 놓인 코코베리 주스를 쭉 들이켰다.
그녀는 기분 전환을 하자는 엘라의 끈질긴 부탁에 몬테라 거리 북부 지구에 있는 카페에 나와 있었다.
그레이스의 같잖은 경고대로 이틀 뒤인 오늘 신문 1면엔 두 사람의 약혼 소식이 실려 있었으니까.
그 누구도 주목하지 않던 한미한 남작 가문의 영애와 언제나 1등 신랑감으로 뽑히던 이안 공작의 약혼 발표에 세간의 집중이 쏟아졌다.
보잘것없는 남작 영애가 기존 약혼녀, 그것도 황금 가문이라고 불리는 베스인 공녀를 몰아내고 체르빌 공작을 차지했으니 사람들의 관심이 쏠리는 건 어떻게 보면 당연했다.
“세기의 로맨스는 무슨! 그 신문사 미친 거 아니에요? 거기 저번에도 헛소리했던 그 신문사잖아요!”
“그랬지.”
또다시 기사가 떠올랐는지 격분하는 엘라의 말에 그녀는 마치 남 일처럼 중얼거렸다.
정말로 별다른 감흥이 느껴지지 않았으니까.
기사에는 이안과 그레이스의 만남이 운명적인 사랑으로 묘사되어 있었다.
신문사에 뇌물을 먹였나 싶을 정도로. 사정을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그렇게 받아들일 것이다.
하지만 그건 이 신문사뿐이었다.
나머지 언론과 여론은 모두 다 제 편에 서서 이안을 힐난했으니까.
그도 그럴 것이 대외적으로 알려진 약혼녀가 있음에도 공공연하게 바람을 피운 건 그였다.
심지어 약혼녀가 쓰러져 사경을 헤매는 동안에 말이다.
이 얼마나 파렴치한 놈인가.
분명 자존심이 강한 이안이라면 그를 비난하는 기사에 길길이 열을 내고 있을 것이다.
그는 누구보다 평판에 민감한 사람이었으니까.
“그 표정을 못 보는 게 아쉽네.”
셀로니아는 픽 웃으며 다쿠아즈를 입에 쏙 넣어 우물거렸다.
적당히 달달한 게 맛이 좋았다.
‘역시 디저트는 기분을 이롭게 한다니까.’
여유롭고 달콤한 시간이 꽤 마음에 들었다. 외출을 나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카페 안 손님들이 모두 제 표정을 살피기 위해 힐끔거리는 것만 빼면.
다른 이들이 보기엔 그녀가 실연당한 사람답지 않게 무덤덤해 보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되기까지 이틀 동안 혼자 무던히 애를 썼다.
이젠 거의 정리를 끝난 상태였고.
그녀는 지나간 추억 따위를 곱씹거나, 떠나간 약혼자와 서브남주들을 그리며 하루하루 눈물로 지새울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그들의 배신으로 지금껏 쌓아 온 유대감과 동료애는 쓰레기통에 처박힌 지 오래였으니까.
모든 걸 인정하고 나니 머릿속이 정리되었고 복잡했던 마음은 홀가분해져 있었다.
오늘은 한 가지 생각만이 그녀의 머릿속을 꽉 채웠다.
“앞으로 뭘 하지?”
“치료소 계속 다니실 거 아니셔요?”
셀로니아가 손가락으로 빨대를 빙빙 돌리며 중얼거리자 엘라가 의아한 표정으로 물어 왔다.
“그렇지. 그런데 아직 휴직 기간이 3개월이나 남았어. 무조건 3개월 다 채우고 복직할 거야. 직장인은 놀 수 있을 때 놀아야 되거든.”
그것이 바로 직장인 만고불변의 법칙이니까.
“음, 그럼 쇼핑은 어떠셔요?”
“그것도 하루 이틀이지.”
“그럼 근처 명소들을 둘러보는 것은요?”
“데이트할 때 웬만한 곳은 다 가 봤을걸?”
“아……. 아! 그럼 여행은요?”
“모험이라면 지겨워.”
말하는 것마다 족족 막히니 엘라가 끙 앓는 소리를 내며 고민에 빠졌다.
하지만 정말 어쩔 수가 없었다. 여행이든 모험이든 지겨웠다.
그녀는 불과 몇 개월 전만 해도 예고도 없이 튀어나오는 마귀들을 상대로 피 튀기는 전쟁을 치르고 낭떠러지를 구르며 성을 올랐으니까.
심지어 끈적한 마물의 피를 뒤집어쓰고 이틀을 내리 걸은 적도 있었다.
그때 그 개고생 했던 걸 생각하면 아직도 열이 뻗친다.
주인공 버프만 아니었으면 진작 죽고도 남았을 모험이었으니까.
“그럼 그냥 집에서 지내는 게 좋겠어요.”
“그렇지? 그게 제일 낫겠지?”
“네에.”
정답이라는 듯 화색이 도는 아가씨의 얼굴을 보며 엘라가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그래. 하기는 뭘 해.’
축하연이 3주 뒤로 정해졌으니 그때까지 그냥 집에서 푹 쉬리라. 공작저엔 없는 게 없는걸.
셀로니아에게 놀고먹을 돈이라면 차고 넘칠 정도로 많았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