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le Leads Were Stolen by the Extra RAW novel - Chapter (80)
엑스트라에게 남주들을 빼앗겼다 (80)화(80/162)
<80화>
“뭐 하시는 겁니까? 지금 병을 주고 약을 주는……!”
욱식욱신한 사지에 퍼져 드는 치유의 빛에 레예프가 황당하다는 듯 목소리를 높이다 이내 멈칫하였다.
순간 과거의 기억들이 그의 머릿속을 헤집어 놓기 시작하였다.
“허, 허억……!”
몰아치는 기억에 심장에 격통이 오자 레예프가 자신의 가슴을 부여잡고 숨을 헐떡였다.
지금의 이 경험은 너무도 익숙했다. 일전에 의례를 끝나고 나왔을 때도 이랬었다.
그의 얼굴이 점점 하얗게 질려 갔다.
이건 뭘까. 이 이상한 마음은 무엇인가.
작은 공간도 남기지 않은 채 그의 마음속을 가득 채웠던 그레이스에 대한 감정이 빠르게 사그라들고 있었다.
대신 그가 잊어버렸던, 잊고야 말았던 셀로니아에 대한 감정과 기억이 순식간의 그를 덮쳐 왔다.
* * *
‘레예프. 저 대신 다치지 말아요.’
셀로니아가 바위에 기대어 있는 레예프를 보며 걱정스러운 얼굴을 하였다.
함께 모험을 한 지 4개월째.
마물의 급습으로 날카로운 손톱에 긁혀 그의 옆구리가 찢어졌다. 다행히 셀로니아가 부들꽃을 발견해 서둘러 빻아 지혈한 덕에 피는 쉽게 멎었다.
‘셀로니아 님, 그건 제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입니다.’
레예프는 자신을 걱정하는 셀로니아에게 괜찮다며 웃어 보였다.
그녀의 옆에 설 순 없지만 언제나 뒤에 서서 지킬 수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했다.
이렇게 그녀 대신 다치고 그녀는 무사할 수 있다면 그걸로 다 괜찮았다.
‘자기 몸도 지키지 못하는 사람이 어떻게 남을 지켜요.’
물기 어린 시선이 그를 힐난했다.
울리고자 한 일은 아니었는데…….
그래도 오늘만큼은 그녀의 시선을 온전히 제가 차지했다는 사실이 얼마나 좋은지.
손가락 길이만큼의 자상을 입었음에도 그게 좋았다. 바보 같게도.
‘이렇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전 괜찮습니다.’
‘아니요. 부디 자기 몸을 소중히 해요.’
‘셀로니아 님.’
‘알잖아요? 드래곤의 심장이 저에게 있는 한 저는 죽지 않아요.’
그녀가 어깨를 으쓱이며 당당히 말했다. 불사신이라도 된 것처럼 구는 그녀가 귀여워 그가 피식 웃었다.
‘그래도 다치면 아픕니다.’
‘레예프도 아프잖아요. 저는 레예프를 오래 보고 싶어요. 미안해요. 이기적인 욕심 부려서.’
셀로니아가 씁쓸히 웃었다. 그 미소가 너무도 아파 보여 레예프는 그저 괜찮다고 웃었다.
* * *
“허, 허윽…….”
모든 기억이 떠오른 레예프가 땅 위로 털썩 쓰러졌다.
모든 게 생각났다. 모든 게.
자신이 이별을 고했을 때 셀로니아의 표정과 로블랑에서 마주했던 허탈한 얼굴.
그리고 오늘 제 말에 보는 사람이 아플 만큼 상처받은 표정까지.
레예프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나왔다.
어떻게 잊어버릴 수가 있었지. 그녀를 구하기 위해 다치면서까지 나섰던 그 마음을 어떻게…….
“세, 셀로니아 님…….”
레예프가 울먹이며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무심히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셀로니아의 얼굴이 보였다. 언제나 저를 향해 배꽃 같은 미소를 보여 주었던 그 얼굴이.
“아아, 제가 도대체 무슨 짓을…….”
레예프가 자책하며 덜덜 떨고 있는 두 손에 얼굴을 파묻었다.
무언가에 의해 뒤죽박죽 흐트러져 어지럽고 흐리멍덩했던 마음이 예전처럼 단 하나로 바뀌어 있었다.
오직 셀로니아만을 향했던 그 마음으로.
하지만 과거의 그녀를 구하기 위해 다쳤던 것도, 그레이스 때문에 그녀에게 상처를 주었던 것도 모두 명백히 자신이 한 짓이었다.
“…….”
셀로니아는 드디어 그레이스의 술수에서 벗어난 것 같은 레예프를 말없이 응시했다.
치유술 덕에 그가 입었던 상처는 말끔하게 다 나았다.
술수가 풀렸을 때, 입으로 업보를 쌓던 레예프의 표정이 궁금했지만 막상 보니 썩 유쾌하진 않았다.
“진심이 아니었습니다. 정말 제 뜻이 아니었습니다……. 믿어 주십시오. 저는 단지…….”
레예프가 얼굴을 가리고 있던 손을 떼며 손바닥을 멍하니 응시한 채 중얼거렸다.
그의 얼굴은 혼란이 가득 담긴 채 파리하게 질려 있었고, 눈에선 계속 눈물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입술과 턱은 덜덜 떨리고 있었으며, 공황 상태에 빠진 듯 그의 눈동자는 초점 없이 멍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그레이스가 당신한테 뭘 그렇게 먹인 거죠?”
“예? 그게 무슨 말씀이신……!”
레예프가 놀란 표정으로 고개를 들다, 순간적으로 깨달음을 얻었다.
신전에서 나왔을 때 같은 경험을 했으나, 달려온 그레이스가 입속에 구겨 넣었던 마들렌을 먹고 혼란이 씻은 듯이 사라졌다.
“그레이스에게 당신에게 준 음식. 거기에 뭔가 있어요. 그래서 당신이 넘어간 거고요.”
“이럴 수가…….”
모든 걸 알아챈 레예프의 안색이 더욱 하얗게 질렸다.
“뭘 먹인 거죠?”
“영애가 제게 준 건…….”
곧 정신을 차린 레예프는 눈물을 닦아 내며 그레이스에게 받았던 것들을 떠올려 보았다.
그러자 명확하게 딱 하나가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다즐링이었습니다. 차로 마실 수 있게 찻잎을 수시로 저와 다른 이들의 저택에 보내곤 하였습니다.”
그레이스와 함께 있을 때 그녀가 권하던 음식에는 매번 다즐링이 들어가 있었다.
거기다 정성스럽게 포장한 다즐링을 선물해 주며 집에서도 자신을 생각하며 차를 마시라 당부까지 했었다.
“다즐링.”
확실히 알아낸 셀로니아가 중얼거렸다.
그레이스는 다즐링을 통해 남주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이었다. 이제 그 다즐링에 무슨 짓을 했는지 밝혀내면 되었다.
“그레이스를 멀리해요. 그녀가 준 건 이제부터 하나도 먹지 말고요.”
“세, 셀로니아 님! 제가, 제가 잘못했습니다…….”
그녀가 미련 없이 떠나려 하자 레예프가 얼른 상체를 일으켜 셀로니아의 치맛자락을 붙잡았다.
그는 어느새 죄인처럼 무릎을 꿇고 있었다.
“손 안 치워?”
탄은 으르렁거리며 레예프의 손을 강하게 쳐 냈다.
“셀로니아 님, 제가 제정신이 아니었습니다. 마음이 어지러이 헝클어져서 잠시 다른 이에게 눈이 멀었습니다. 하지만 그건 제 진심이 아니었습니다! 방금 셀로니아 님께서도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까. 술수에 당한 것이라고…….”
얼얼한 손끝에도 레예프는 간절한 얼굴로 셀로니아에게 빌었다.
그의 마음이 돌아오기도 했고, 그녀에게 저질렀던 자신의 과오에 대해 곱씹고 곱씹을수록 견딜 수가 없었으니까.
명예롭고도 고귀한 기사의 서약을 번복한 순간, 그의 긍지는 바닥으로 추락했다.
타의에 의해 일어난 실수라 하더라도 그것은 엄연히 기사도를 저버린 행위였다.
신의 부름을 받든 자, 고결하고도 고귀한 성기사로서 견딜 수 없는 수치와 치욕이자 오명이었다.
그러니 되찾아야 했다. 자신의 위신과 긍지도. 이 관계도.
“레예프 헤첼.”
“셀로니아 님……. 부디 저를 다시 당신의 곁에 거두어 주십시오. 전처럼 그냥 뒤에 서 있겠습니다. 제발 저를 내치지 말아 주십시오…….”
파들파들 떨리는 레예프의 절박한 손끝이 차마 셀로니아를 붙잡지 못하고 땅 위로 떨어졌다.
그는 거의 엎드리다시피 그녀에게 빌고 있었다.
“제가 당신을 어떻게 믿죠? 우리 사이의 신뢰라는 것이 사라졌는데.”
매정할 만큼 차가운 목소리가 그녀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아무리 술수라고 한들, 레예프가 그녀에게 저질렀던 잘못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으니까.
“노력하겠습니다. 셀로니아 님께서 저를 다시 믿으실 수 있게 제가 더 노력하겠습니다. 그러니 부디…….”
“그래요?”
원하는 대답이 들려오자 셀로니아가 기다렸다는 듯 눈을 번뜩이며 다시 말을 이었다.
“그럼 내게 당신의 가치를 증명해 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