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le Leads Were Stolen by the Extra RAW novel - Chapter (88)
엑스트라에게 남주들을 빼앗겼다 (88)화(88/162)
<88화>
영애들과 티타임을 가지고 있던 그레이스가 맥라이언이 도착했다는 소식에 한달음에 달려 나왔다.
하지만 그는 오늘도 혼자였다.
“맥라이언, 레예프 님은요?”
“몸이 좋지 않다더군.”
맥라이언이 어깨를 으쓱였다.
함께 남작저에 들러 달라는 그레이스의 전갈을 받았으나 레예프는 몸이 좋지 않다며 그를 그레이스에게 혼자 보냈다.
“또요?”
순간 그레이스의 눈썹 끝이 치솟아 빗금을 그렸다.
축하연 이후 레예프의 얼굴을 도통 못 보고 있었다. 만나러 와 달라는 부탁에도 몸이 안 좋다는 얘기만 들려 보내고.
이상하다. 이럴 리가 없는데.
몸이 아파도 자신의 한마디면 쪼르르 달려와야 하는 게 정상이었다.
정말 아픈 건가? 죽을 만큼?
축하연이 끝날 무렵 레예프의 태도가 묘하게 이상했던 그레이스는 아무래도 알아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레이스는 우선 혼자라도 온 맥라이언을 데리고 티타임이 열리고 있던 정원으로 향하였다.
“레예프 님은 몸이 아프셔서 참석하지 못하였어요.”
기다리고 있던 영애들에게 상황을 설명했다.
“이런……. 많이 아프신가 보네요.”
“그러게요. 어서 쾌차하셔야 할 텐데.”
모여 있던 영애들이 걱정 어린 얼굴을 하였다.
“맥라이언, 손님들에게 인사해 주세요.”
그레이스가 생긋 웃으며 맥라이언에게 말하자 그는 착실하게 고개를 까닥였다.
그러고는 당연하게 그레이스의 옆자리에 앉았다.
“이렇게 가까이에서 뵙는 건 처음인 것 같아요!”
맥라이언이 본인들의 티타임에 합석한 것을 본 영애들의 얼굴에 붉은 꽃이 피었다.
그레이스는 그런 영애들의 모습을 보며 속으로 비웃었다.
지금 테이블에 앉아 있는 영애들은 그녀가 네그지트 홀을 나올 때, 한 영애를 필두로 저를 조롱했던 또래의 여성들이었다.
하지만 축하연이 끝나자 미안하다고 사과를 하고 싶다 연락을 해 오더니 먼저 만나기를 청해 왔다.
비록 축하연에서 창피를 당했을지 몰라도 그 파급력은 대단했다.
황후 외에는 구하기 힘들다는 베론디 부티크의 드레스를 입고 구원자들 셋을 거느린 채 나타났으니.
셀로니아의 축하연이라 고고한 척 고개를 뻣뻣하게 들고 다른 이들과 함께 저를 힐난했을진 몰라도 결국 속내는 부러웠던 거다. 자신이 쥐고 있는 모든 것이.
“공작님은 기사단 때문에 바쁘셔서요. 일이 끝나는 대로 오신다네요.”
“어쩜. 피곤하실 텐데 바로 오신다는 걸 보니 베넷 영애를 무척이나 사랑하시나 봐요.”
“아마 부관과 함께 오실 거예요. 요즘 일이 바빠 퇴근을 하셔도 호출 때문에 자주 다시 출근하시거든요.”
웬만한 아부 저리 가라 아첨을 떠는 에반젤린 백작 영애의 모습에 만족스러워진 그레이스가 선심 쓰듯 넌지시 정보를 흘렸다.
“부관이라면 그…….”
“맞아요. 러드 백작님이시죠.”
이미 모든 걸 파악한 그레이스가 러드 백작을 말하는 순간 에반젤린 영애의 얼굴이 화르륵 붉어졌다.
이윽고 에반젤린은 부산하게 가방에서 거울을 꺼내 자신의 모습을 점검하기 시작했다.
“맥라이언 님, 폴포드 소백작님께선 잘 지내시나요?”
다른 영애가 뚱하게 앉아 있는 맥라이언에게 조심스레 물어 왔다.
맥라이언에게 실튼 폴포드 소백작이 유일한 친구라는 것을 사교계에서 모르는 이가 없었으니까.
“실튼? 티타임에 들를 수 있는지 연락해 보지.”
“어머 정말요?”
맥라이언의 대답에 영애가 기대에 찬 눈을 반짝였다.
“아가씨, 베론디 부티크에서 드레스를 보내오셨습니다.”
그때 하녀 하나가 와서 일렀다.
하녀의 손에는 베론디가 제작하여 보낸 아름다운 드레스 두 벌이 들려 있었다.
“와아. 베론디 부티크의 드레스를 직접 보다니. 이 드레스, 영애와 잘 어울리겠는데요?”
“맞아요. 영애를 생각해서 만든 디자인이 틀림없어요.”
“이 색깔을 보세요. 영애의 머리 색을 고려한 것이죠.”
그녀와 함께 티타임을 나누던 영애들이 부럽다는 얼굴로 드레스를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종종 제 생각이 난다며 이렇게 보내 주곤 하신답니다.”
그레이스가 태연하고도 여유로운 미소를 보였다.
“그리고 주문하신 것들도 방금 도착하였습니다.”
이번엔 하녀들이 우르르 그레이스 앞에 다가왔다.
그들의 손에는 하나같이 화려한 케이스가 입을 활짝 벌리고 있었다.
그 안에는 반지와 목걸이, 귀걸이 등등 다양한 보석이 박힌 값비싼 액세서리들이 들어 있었다.
“어머! 이건 돈을 줘도 구매하기 힘들다던 네네르아 보석점의 한정판 목걸이잖아요!”
“영애, 도대체 어떻게 구하신 거예요?”
범상치 않은 액세서리들을 확인한 영애들이 모두 입을 떡 벌렸다.
그들의 눈에 투명하게 비치는 시기와 부러움 그리고 각기 다른 욕망을 읽은 그레이스는 만족스럽다는 듯 싱긋 웃었다.
그들이 그녀를 찾은 이유야 뻔했다. 누구는 돈 때문에 누구는 남자 때문에.
정말로 친해지고 싶어서 찾아온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가진 욕망을 실현하기 위해선 제가 필요하다고 생각했겠지.
“베넷 영애, 괜찮으신 건가요? 남작저의 가계로 이런 큰 지출은…….”
한 영애가 걱정된다는 척을 하며 그레이스를 떠보았다.
모두가 베넷 남작가의 재정 상태를 대략적으로 알고 있었기에, 이런 사치는 말이 안 됐으니까.
“물론이랍니다. 아버지께서 사업을 시작하셨는데 순항 중에 있어서요. 아직 알리진 않았지만, 영애들에겐 나중에 먼저 공유드릴게요.”
그 같잖은 질문에 그레이스는 유연하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그게 정말인가요?”
“사업이요? 혹시 어떤 사업인지만 말해 줄 수 있나요?”
“정말 사업이 잘되셨나 봐요! 이런 보석들을 고민 없이 턱턱 살 정도면.”
영애들이 홀린 듯이 그레이스를 향해 몰려들었다.
애써 다즐링을 쓸 필요도 없었다. 이미 그들은 자신에게 잘 보이기 위해 경쟁하고 있었으니까.
“그레이스, 랑그드샤가 맛이 좋다.”
맥라이언이 그레이스에게 디저트를 내밀었다. 표정은 무심했으나 배려와 애정이 깃든 행동이었다.
그레이스는 작게 입을 벌려 맥라이언이 주는 디저트를 받아먹었다.
영애들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으며 그레이스는 속으로 웃었다.
역시나. 싫으나 좋으나 구원자들을 쥐고 있어야 했다. 그녀가 바랐던 일들을 위해선.
* * *
셀로니아는 레예프를 배웅하기 위해 함께 복도를 걷고 있었다.
그녀도 베스인가의 저택으로 돌아가야 했으나, 기다리겠다고 탄과 약속했으니까.
기다리기 심심할 엘라는 대공저라도 구경하라고 멕스웰과 함께 보내었다.
“……너무 오랜만인 것 같습니다.”
레예프는 셀로니아의 옆에서 걷는 게 좋아 감성에 젖어 있었다.
지금이 너무 꿈만 같아 그는 울컥울컥 차오르는 감정을 추스르다 조용한 옆을 힐끗 보았다.
그러자 어둡게 가라앉아 있는 푸른 눈동자가 보였다.
“…….”
레예프가 입술을 꾹 깨물었다.
마음이 아팠다. 바늘이 심장을 콕콕 찔러 대는 것처럼.
이 눈동자가 왜 이렇게 침울한지 알고 있었으니까.
“셀로니아 님.”
“네.”
“……대공님을 좋아하시는 겁니까.”
한껏 우울한 레예프의 물음에 셀로니아가 동그래진 눈동자를 들었다.
그러나 이내 셀로니아는 겸연쩍은 표정으로 자신의 뺨을 매만졌다.
“티가 나나요.”
“대공께서 황녀님을 만나러 간 이후에 셀로니아 님 얼굴에서 근심이 떠나질 않습니다.”
“그랬군요.”
그녀는 수긍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억지로 탄을 황녀에게 보낸 참이다. 신경 쓰이지 않을 리가 없었다.
게다가 혼인이라니. 그런 얘기가 오고 갔는지도 몰랐다.
그의 혼인은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는 일이었기에 그녀가 받은 충격은 어마어마했다.
셀로니아는 그의 과거를 알고 있으나, 일반 사람들에게 탄은 그저 잘나고 잘생긴 누구라도 만나고 싶은 남자일 뿐이었다.
그래. 황녀가 아니라도 누구든 탄에게 관심을 보일 수 있다.
연회에서도 영애들이 탄을 탐내 하지 않았던가.
그가 관심을 보이는 것은 오직 저뿐이라서 그 사실을 간과하고 있었다.
“서로 좋아하고 계시지 않습니까.”
레예프가 조심스럽게 물어 왔다.
그런가. 남들이 보기엔 그렇게 보이나.
셀로니아는 확실하진 않았지만 어렴풋이 탄의 마음을 알고 있었다.
모르려야 모를 수가 없었다.
그가 친절을 베푸는 건 오직 저뿐이었고, 그가 미소를 짓는 것도 배려를 하는 것도 자신뿐이었으니까.
게다가 노골적인 마음이 담긴 붉은 눈동자까지.
“레예프, 탄에게 혹시 무언가를 느끼지 못하였나요?”
“느낀 것이요? 솔직하게 말씀드리자면 재수 없다고 느꼈습니다.”
탄에게 쌓인 게 많은 레예프가 냉큼 대답했다.
축하연에서 일방적으로 당한 것도, 다짜고짜 골목에서 숨통을 옥죈 것도, 그래도 이왕 저택까지 함께 왔는데 식사 한 끼 내어주지 않은 것도.
그리고 셀로니아 님을 좋아하는 것도.
모두 다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아마 다들 그렇게 생각할걸요.”
셀로니아가 공감하여 웃었다.
탄이 워낙 말을 직설적으로 하고 성격이 둥글지 못했기에 남들이 볼 땐 그럴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게 다가 아니었다.
그는 ‘탄’이 된 이후에 그녀에게 있어 언제나 좋은 사람이었으니까.
그런데 레예프는 사람 대 사람으로서 느낀 것을 얘기하는 걸로 봐서 탄이 마왕이라는 걸 전혀 모르는 눈치였다.
그녀는 레예프에게 탄의 정체에 관해 아무런 힌트도 주지 않았다.
예전에는 혼자만 아는 진실이 벅차서 레예프에게만이라도 알리려고 했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모두가 그가 마왕이라는 것을 몰랐으면 좋겠다.
탄 본인 스스로조차도. 그리고 나조차도.
“셀로니아 님.”
어느샌가 문 앞에 다다른 레예프가 걸음을 멈췄다.
이런 말은 괴로워서 하고 싶지 않았으나, 고민이 많아 보이는 그녀의 표정을 보니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레예프는 탄이 싫었으나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구원자들이 그레이스의 술수에 당해 모두가 그녀를 두고 떠났을 때 혼자였던 셀로니아의 곁에 있던 이는 탄이라는 것을.
“너무 깊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지금 당장 바라는 게 무엇인지만 생각하십시오.”
황녀가 무슨 사이냐고 물었는데 선뜻 답하지 못하던 그녀를 보면서 레예프는 생각했다. 무언가 때문에 망설이고 계시구나.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그는 그녀를 가까이에서 반년을 넘게 봐 오지 않았던가.
“주제넘었다면 죄송합니다. 그럼 새로이 알아낸 게 있으면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생각이 많아 보이는 셀로니아를 보며 레예프가 씁쓸한 얼굴로 대공저를 나섰다.
레예프의 발언은 연못에 던져진 돌처럼 그녀의 마음속에 떨어졌다. 잔잔했던 수면 위로 파동이 일었다.
“베스인 공녀.”
그때 등 뒤에서 누군가 그녀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뒤를 돌아보니 저택에 온 이후로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이우스가 서 있었다. 묘한 웃음을 지은 채로.
“선대공님을 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