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le Leads Were Stolen by the Extra RAW novel - Chapter (89)
엑스트라에게 남주들을 빼앗겼다 (89)화(89/162)
<89화>
“대체 그 개인적인 사정이 뭐길래 베스인 공녀와 함께 있던 거지?”
“…….”
“정말 아무 사이 아닌 거 맞지? 그렇지?”
티타니아가 자꾸만 거리를 벌리는 탄을 힘겹게 뒤쫓으며 계속 캐물었다.
두 사람은 지금 대공저의 정원을 걷고 있었는데, 탄은 티타니아 황녀의 손을 잡아 주기는커녕 마치 냄새나는 오물을 피하듯 몇 발자국 떨어져 걷고 있었다. 심지어 그 격차는 점점 더 벌어지고 있었다.
티타니아는 물속에서 헤엄치는 백조의 발처럼 빠르게 다리를 움직이고 있었다.
덕분에 그녀의 시녀들만 티타니아의 드레스를 옆에서 거들어 주며 뛰느라 힘들 지경이었다.
“맞아, 그럴 리가 없지. 그래도 공녀는 좀 그렇잖아? 격이 떨어져.”
부지런히 탄을 쫓던 티타니아가 속도 없이 계속 종알거렸다. 혼자서 질문하고 혼자 멋대로 답을 내렸다.
그 소리에 앞서 걸어가던 탄의 걸음이 멈췄다. 그는 곧장 뒤돌아 티타니아에게 성큼성큼 다가갔다.
다가오는 탄을 본 티타니아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역시나 다시 봐도 잘생겼다. 이보다 더 완벽한 이상형은 없었다.
티타니아는 이 남자가 꼭 가지고 싶었다.
아버지께 대공과 결혼하겠다 떼를 썼지만, 아버지는 단번에 정할 문제가 아니라며 생각해 보겠다 일축하였다.
그러나 마냥 손 놓고 기다릴 수가 없었다.
잘난 남자에게 뻗어지는 유혹의 손길은 무수히 많았기에 자존심을 무릅쓰고 먼저 나서야만 했다.
“이제야 정신을 차렸구나? 그래, 당신이 날 이렇게 취급하면 안 돼. 나는 제국의 황……!”
“너, 방금 뭐라 지껄였지?”
“응? 아, 공녀? 그렇잖아, 토벌 때 이야기를 들어 보니 드래곤과 성기사와 아주 사이가 각별했다던데? 체르빌 공작과 약혼한 사이였음에도 말이야.”
“그래서.”
“그래서긴 뭘 그래서야. 약혼자가 있음에도 양손에 남자들을 쥐고 있었다니까? 귀족 영애가 문란하게 말이야. 베스인 공녀가 아니었으면 바로 매도당했을걸?”
눈치가 없는 티타니아가 탄의 질문에 막힘없이 술술 대답했다.
그 바람에 목숨에 위협을 느낀 건 바로 옆에 있던 티타니아의 시녀들이었다. 그들의 앞에 있는 대공이 지금 당장 누구 하나라도 죽일 기세였으니까.
“화, 황녀 전하…….”
“뭐야!”
“그, 그게 대공께서…….”
“뭐?”
끼어든 시녀 때문에 성질을 부리던 티타니아가 고개를 탄 쪽으로 올렸다.
그러자 내리쬐는 태양 아래에서도 서늘한, 무시무시하다 못해 살기 어린 눈동자가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것이 보였다. 제 목을 물어뜯을 태세였다.
“뭐야. 지금 왜 나를 그런 눈으로 봐?”
순간적으로 등골이 오싹해졌으나 티타니아는 고개를 뻣뻣이 들고 눈을 치켜떴다.
“네 목숨은 여러 개인가 보군. 죽여 달라 애원을 하는 걸 보니.”
탄이 씹어뱉듯 말했다.
기억이 없는 그조차 셀로니아가 그놈들과 함께 과거의 자신을 무찔렀다는 걸 알고 있었다.
구원자라고 떠받들 땐 언제고 이 여자는 지금 셀로니아의 과거를 안줏거리처럼 씹어 대고 폄하하고 있었다.
“무, 뭐? 대공! 지금 나한테 하는 말이야?”
“네 그 잘난 입을 잘라 줄까, 아님 다신 내 눈앞에 띄지 못하게 만들어 줄까.”
“대공!”
살면서 들어 본 적 없는 잔인하고도 극악무도한 말에 티타니아가 달아오른 얼굴로 버럭 소리쳤다.
그 누구도 그녀에게 이럴 순 없었다. 설령 본인이 말실수를 하거나 잘못된 행동을 하더라도.
“감히 네가 누굴 오욕하는 거지?”
탄이 괘씸하다는 표정으로 티타니아에게 바짝 다가갔다.
그 누구도 셀로니아에 대해 함부로 얘기할 수 없다. 그 누구도.
“지금 공녀 때문에 이러는 거야? 공녀 때문에 나한테?”
티타니아는 기가 막히다는 표정으로 달아오른 얼굴을 손으로 식혔다.
갑자기 왜 이렇게 화를 내나 했더니 베스인 공녀에 대해 첨언 좀 했다고 이러는 것이었다.
어이가 없어서. 그깟 여자가 뭐라고 제국의 황녀인 나한테!
“공녀가 뭔데. 아무 사이도 아니라면서 이러는 이유가 뭐야!”
부들부들 떨리는 두 주먹을 꽉 말아 쥔 티타니아가 소리쳤다.
처음 겪어 보는 수모와 모욕감에 그녀는 입술을 앙다문 채 탄을 노려보고 있었다.
“누가 그래. 아무 사이가 아니라고.”
성난 탄의 거대한 체구는 티타니아를 단숨에 짓누를 듯 위협적이었다.
아무 사이가 아닐 리가. 그녀의 곁에 있기 위해 여기까지 올라온 것이었는데.
“그럼 진짜 둘이 무슨 사이라도 된다는 거야?”
베일 듯 날카롭고도 서늘한 그의 시선을 마주 보며 티타니아가 표독한 눈을 번뜩였다.
기대했던 것이 충족되지 않자 그녀의 마음을 채우는 것은 시기와 질투뿐이었다.
여태껏 바라 왔던 것들 중에 티타니아가 가지지 못했던 것은 단 하나도 없었다.
손가락만 까딱해도 원하는 것이 바로 눈앞에 놓였고, 그건 물건이든 사람이든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이 남자는 뭔데 그깟 여자를 두둔하며 제 마음을 짓밟다 못해 무시하는 거지?
드높고도 고귀한, 한 번도 굽혀 본 적 없는 그녀의 자존심에 금이 갔다.
“꺼져라. 다신 내 눈에 띄지 마.”
탄은 눈앞에 있는 티타니아를 바로 치워 없애 버리고 싶은 마음을 꾹 참으며 마지막 경고를 날렸다.
얼마나 참았는지 세게 주먹을 쥔 그의 손등 위에는 성난 핏줄이 도드라져 있었다.
“감히 내게 모욕을 줘?”
티타니아가 악다구니를 지르며 그의 뺨을 치기 위해 손을 뻗은 순간, 강렬한 마찰음과 함께 그녀의 손목이 그에게 붙잡혔다.
“으윽, 이거 안 놔? 탄 허시브룩!”
뼈가 시릴 만큼 아릿한 통증에 티타니아가 얼굴을 구기며 소리 질렀다.
손목을 빼내려 했지만 우악스러운 힘이 그녀를 놓아주지 않았다.
“네게 그 이름으로 부르라 허한 적 없다.”
“……뭐?”
어둡게 가라앉은 목소리가 그녀를 단숨에 벨 듯이 으르렁거렸다.
티타니아는 요동치는 눈동자로 눈앞의 남자를 바라보았다.
눈보라보다 더 차디찬 그의 시선이 당장 그녀의 목을 비틀 것만 같았다. 게다가 그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살기에 피부가 따끔거렸다.
그녀가 살면서 단 한 번도 느껴 본 적 없는 적대와 공포였다.
티타니아는 하얗게 질린 얼굴로 파르르 떨리는 입술을 악다물었다.
이 와중에도 자존심이 고고한 그녀는 화가 치밀었다.
분명 응접실에서 공녀가 대공의 이름을 부르는 것을 들었다. 그런데 자신에게는 이름을 부르지 말라고?
응접실을 나오기 직전 공녀에게는 한없이 다정하게 시선을 떼지 못한 채 기다리라고 말했으면서 제게는 어찌 이럴 수 있단 말인가!
“당신, 내게 이러고도 무사할 수 있을 것 같아?!”
“두 번은 없어. 여자라고 봐줄 거라 착각하지 마.”
탄은 한낱 미물을 바라보듯 싸늘하고도 냉정한 얼굴로 티타니아를 응시하다 잡고 있던 손목을 강하게 놓았다.
그러곤 뒤도 돌아보지 않고 걸어갔다.
“가만 안 둬! 절대 가만 안 둘 거라고!”
점점 멀어지는 탄의 뒷모습을 보며 티타니아가 정원에 메아리가 칠 만큼 고함을 내질렀다.
하지만 탄은 멈춰 서지 않았다. 이미 그녀의 시야를 벗어난 지 오래였다.
“아악! 감히 황녀인 나를……! 후회하게 만들어 줄 거야. 내 앞에서 개처럼 기면서 목숨을 구걸하게 만들 거라고! 절대 가만 안 둬.”
티타니아는 차오르는 분노에 몸부림치듯 머리를 쥐어뜯으며 목에 핏대가 설 만큼 악다구니를 썼다.
곁에 있던 시녀들은 파랗게 질린 얼굴로 숨소리조차 내지 못하였다. 지금 상황에서 잘못 걸렸다간 독기를 품은 황녀의 분풀이 대상이 될 테니까.
* * *
셀로니아는 이우스의 권유에 함께 응접실에 앉아 있었다.
“공녀, 구원자라고 들었네.”
“예. 그렇습니다.”
“마왕을 죽였다지.”
이우스는 경련하는 입꼬리를 숨기며 물었다. 앞에 있는 셀로니아를 죽이고 싶은 복수심이 자꾸만 꿈틀거렸으니까.
“……예.”
셀로니아가 불편한 표정으로 말을 흐렸다.
입안이 까끌까끌했다. 사실이긴 했으나 이제는 마냥 편치만은 않은 진실이 되어 버렸으니까.
“속이 시원했겠군. 골칫거리를 처리했으니 아주 영광이었겠어.”
“…….”
이우스의 말에 그녀는 답하지 않았다. 날 선 가시가 느껴지는 말이 이상했기에.
보통은 마왕 토벌로 받은 포상을 영광이라 말하고, 마왕을 토벌한 일 자체는 굉장히 고생스러운 일이었을 거라 여기곤 했다.
그러니 당연히 마왕을 토벌한 저에게 힘들었겠다는 식의 말을 예의상이라도 하곤 했다.
그런데 이 남자는 뭐지?
속이 시원했겠다니.
토벌 당시 선봉에 서서 숲을 빠져나온 마물들을 토벌했던 대공이 할 말이 아니었다. 그게 얼마나 고생스러운 일인지 잘 알 테니까.
역시 수상하다. 그가 탄의 아버지가 된 것도, 지금의 발언도.
게다가 전에 마주쳤을 땐 바깥이라 잘 몰랐는데 단둘이, 그것도 사방이 막힌 공간에 함께 있으니 느낌이 불안했다.
뭐랄까 익숙하면서도 거북스러운 느낌.
“하하. 내가 허를 찌른 것인가? 이런.”
이우스가 비열한 눈매를 접으며 웃었다.
“그렇지 않습니다.”
“그래? 그럼 내가 하나 더 묻지. 공녀는 본인이 허시브룩 대공과 어울린다 생각하나?”
“어떤 의미로 물으시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아아, 질문을 다시 하지. 공녀가 마왕을 죽이고 얻은 영광을 다시 내려놓아야 한다면 어떻겠는가.”
이우스가 여전히 웃음기가 가시지 않은 얼굴로 셀로니아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네가 지금 누구의 곁에 서 있는 건지. 주군께서 기억이 없다면 너라도 알아야지.
“예를 들어, 마왕께서 죽지 않고 살아 있는 거지.”
“…….”
“사람들 틈 속에서.”
이우스의 몸을 빌리고 있는 톰이 비릿하게 웃었다.
셀로니아는 똑똑히 보았다. 이우스의 휘어진 눈매에 비친 건 분명한 적의였다. 자신을 향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