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le Leads Were Stolen by the Extra RAW novel - Chapter (93)
엑스트라에게 남주들을 빼앗겼다 (93)화(93/162)
<93화>
탄은 자정이 되기 전, 당연하게도 순간 이동으로 셀로니아의 방을 찾아왔다.
하지만 그녀는 피곤했는지 침대에 잠들어 있었다.
아직 못다 한 말도 많고, 하고 싶은 일도 많았기에 무척이나 아쉬웠지만 억지로 깨우진 않았다.
이렇게 가만히 눈꺼풀을 감은 그녀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좋았으니까. 잠을 자지 않는 그는 잠이 든 셀로니아의 얼굴을 보는 것을 좋아했으므로.
“저도 당신을 좋아한다는 거요.”
침대에 걸터앉아 셀로니아를 보고 있던 탄은 몇 시간 전 그녀가 자신에게 했던 말을 떠올렸다.
그러자 그의 입꼬리가 속절없이 씰룩거렸다. 몰려드는 기쁨을 감출 수가 없었다.
“우리가 무슨 사이냐고 물었죠. 서로 좋아하는 사이요.”
너와 내가 서로 좋아하는 사이.
탄은 결국 피식 웃으며 자신의 입술을 문질렀다.
분명 그녀와 입을 맞춘 게 한참 전이었는데, 아직도 그녀의 입술이 머무르고 있는 것만 같았다.
말랑한 촉감. 보드라운 크림을 머금은 것 같은 그 감각을 절대 잊을 수가 없었다. 모든 게 처음이었으니까.
서로의 숨결을 머금었던 짧은 순간은 황홀경이었다.
그게 너무도 아쉬워서, 다시 한번 느끼고 팠기에 조금이라도 빨리 그녀를 보기 위해 찾아왔지만 잠들어 있는 것이다.
탄은 아쉬운 손끝으로 살짝 벌어진 그녀의 입술을 톡 건드려 보았다. 손가락이 쑥 들어갈 정도로 몰랑한 게 젤리 같았다.
다시 한번, 아니 계속 닿고 싶은 욕망이 가득 차올랐으나 꿈을 꾸고 있을 그녀를 방해하고 싶진 않았다.
그는 그녀의 입술에서 떨어지고 싶어 하지 않는 손가락을 억지로 떼어 내며 이마를 덮고 있는 앞머리를 조심스레 쓸어 넘겨 주었다.
사라락, 사라락.
고요한 방 안에 머리카락을 넘겨 주는 소리가 잔잔하게 울렸다.
그의 입가엔 이보다 더 달콤할 수 없는 미소가 그려져 있었다.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는 눈동자에선 너무도 적나라한 애정이 묻어 나오고 있었다.
“대체 그 여자가 무엇인데 이러신단 말입니까! 주군께선 마왕입니다. 황제와는 견줄 수도 없는 위대하신 마왕이요! 아무리 기억이 없으셔도 이건 아닙니다. 그 여자는 아니 된단 말입니다!”
셀로니아가 대공저를 떠난 뒤, 이우스가 악에 받친 얼굴로 그에게 따져 묻듯 말했다. 탄은 가차 없이 이우스의 입을 봉인시켰다.
당연히 그녀에게 해코지를 하려 했던 이우스를 불태워 버리고 싶었으나, 당장 그가 없으면 골치가 아파질지도 모른다는 셀로니아의 말에 참고 있을 뿐이었다.
이제 정말 잃어버린 기억은 상관이 없었다. 상처도, 통증도, 자신이 마왕인 것도 그녀가 구원자인 것도.
모든 과거를 버린 대가로 얻은 것이 너무도 컸으니까.
심지어 마왕이라는 정체성을 버릴 수만 있다면 그러고 싶었다. 그렇담 셀로니아가 더 편한 마음으로 저를 볼 테니까.
탄은 자신이 얻은 대가를 바라보며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
그의 입술이 차마 입술을 건드리지 않는 대신 그녀의 둥근 이마에 짧게 닿았다가 떨어졌다.
지금은 손만 잡고, 이후 통증이 사라진다면 바로 돌아갈 생각이었다. 그리고 아침이 찾아오면 바로 그녀를 찾아올 생각이었다.
이것저것 해 주고 싶은 게 많았으니까.
귀걸이는 선물했으니 이번에는 뭘 해 주면 좋을까.
옷? 아니면 구두? 그것도 아니면 저택?
그래. 둘이서 함께 살 저택이 있으면 좋을 듯했다. 그 망할 놈의 구원자들이 얼씬도 못 하게 담을 높게 쌓는 것이 좋겠다.
혼자서 너무도 멀리 나아간 탄은 이미 머릿속으로 저택의 크기와 모양까지 그려 보고 있었다.
그렇게 정신없이 생각에 빠져 있던 터라 자정이 된 것도 모르고 있던 때였다.
탄이 완전히 얼어붙었다.
“이게 무슨…….”
매일 밤 그를 찾아오던 통증이 느껴지지 않았다. 셀로니아의 손을 잡지도 않았는데.
그는 손으로 자신의 가슴을 만져 보았다. 셔츠 너머로 흉터가 매만져졌다. 하지만 여전히 통증은 없었다.
“흐으…….”
옆에서 앓는 소리가 들려왔다.
얼른 고개를 돌리니 셀로니아의 입술이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셀로니아. 셀로니아!”
탄이 놀라 셀로니아를 불렀다. 그러나 그녀는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괴로워하고 있었다. 달빛에 비친 얼굴이 평소보다 더더욱 하얗게 질려 있었다.
그가 얼른 그녀의 이마에 손을 얹었다. 열이 느껴졌다.
어떻게, 뭘 어떻게 해야 하지?
초조함에 입술을 짓씹은 그는 안절부절못하며 침대 주위를 맴돌았다.
그때였다.
“윽…….”
깨질 것 같은 머리 통증을 느끼며 탄이 고개를 숙였다.
손등 위로 핏줄이 지렁이처럼 꿈틀거리더니 이윽고 머릿속에서 섬광이 번쩍하고 그와 함께 장면이 재생되기 시작했다.
회색의 공간 안. 검은 손이 거침없이 하얀 목을 한 손에 움켜쥐었다.
“헉! 으, 윽!”
목을 압박하는 힘에 상대가 캑캑거렸다.
“길게 끌 거 없겠지.”
무엇이 그리 화가 났는지 낮게 으르렁거리며 검은 손은 상대의 목을 쥔 손을 가까이 끌어왔다.
“허, 허윽……!”
“지금 당장 뽑아내 주마.”
그러곤 서늘한 목소리와 함께 흐려지는 파란 눈을 향해 커다란 손이 다가갈 때.
벌어진 검은 손가락 사이로 보이는 빛을 잃고 꺼져 가던 푸른 눈동자가 돌연 선명하게 번뜩였다.
그 강렬한 눈빛에 검은 손이 당황하여 멈칫하자, 상대가 기다렸다는 듯 손을 뻗었다.
이윽고 상대의 손에서 뻗어 나온 하얀 빛이 그의 시야를 완전히 뒤덮었다.
“헉…….”
놀란 탄의 심장이 쿵쾅쿵쾅 뛰고 이마에는 식은땀이 맺혔다.
뭐지, 방금 이 장면은?
하얗고 가느다란 목을 쥔 검은 손. 검은 손을 가진 자에게서 흘러나온 목소리는 너무도 익숙했다.
그것은 탄, 자신의 목소리였으니까.
그리고 그 검은 손에게 붙잡힌 상대의 얼굴의 주인은…….
셀로니아였다.
* * *
마왕을 죽이고 성을 내려와 마물 숲에 들어선 지 14일째. 고지가 코앞이었다. 저 멀리 북부의 마을이 보였으니까.
셀로니아와 남주들은 이전처럼 6개월을 고생하여 성과 숲을 지나칠 필요가 없었다.
그건 성에 쉽게 닿지 못하게 하는 마왕의 결계 때문이었으니까. 마왕이 죽고 결계는 부서졌다.
네 사람은 후련한 마음으로 각자 제도로 돌아가면 무엇을 할지, 어떤 음식을 가장 먼저 먹을지 담소를 나누는 중이었다.
“난 입천장이 델 정도로 뜨거운 치킨 수프가 먹고 싶어! 머리 세 개 달린 새 말고 제대로 된 닭고기를 먹고 싶다고!”
맥라이언이 열변을 토했다. 마물 고기라면 이제 지긋지긋하다는 듯.
“전 그저 정갈하게 잘 차려진 한 끼 식사면 충분합니다. 다만 따뜻한 물에 원 없이 목욕을 하고 싶습니다.”
레예프가 고아한 얼굴로 말했다. 순결을 가장 첫 번째로 생각하는 성기사다운 대답이었다.
“난 해사한 햇살이 비추는 날 영애와 갔던 로블랑에 다시 들르고 싶군.”
이안이 셀로니아를 보며 싱긋 웃었다.
팔팔한 세 사람과 달리 셀로니아는 조금 힘에 부친 피곤한 얼굴로 고민에 빠졌다.
무엇을 먼저 해야 할까.
일단 온몸을 씻어 내고 김이 모락모락 나는 맛있는 음식을 원 없이 먹고 싶다. 그러고는 푹신하고 따뜻한 침대에 누워 잠에서 깰 때까지 자고 싶다. 위험이 도사리지 않는 평화 속에서.
“너는?”
“셀로니아 님은 무엇이 하고 싶으십니까?”
“영애는 무엇을 바라지?”
그녀가 답을 않자 맥라이언과 레예프 그리고 이안이 동시에 물어 왔다.
셀로니아가 생각했던 답을 순서대로 말하기 위해 입을 열려던 순간.
“허억……!”
갑자기 느껴지는 격통에 걸음을 멈추었다. 엄청난 고통이 물밀 듯이 밀려왔다. 무너지듯 바닥에 쓰러진 셀로니아는 자신의 가슴을 부여잡았다.
“영애!”
“셀리!”
“셀로니아 님!”
귀에 물이 들어간 듯 그들의 목소리가 먹먹하게 들리면서 멀어져 갔다.
어마어마한 고통이 해일처럼 밀려들었다. 심장이 반으로 쪼개지는 느낌.
이윽고 전신을 집어삼키는 통증과 함께 그녀의 눈앞이 점멸했다. 그렇게 정신을 잃었다.
* * *
“……으음.”
“아가씨!”
귓가에 울리는 다급한 목소리에 셀로니아가 눈을 떴다.
“괜찮으세요? 정신이 좀 드세요?”
메마른 입안을 느끼며 고개를 돌리니 엘라가 걱정 어린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엘라.”
“네! 아가씨. 저 여기 있어요.”
엘라가 셀로니아의 이마 위에 놓인 물수건을 갈아 주었다.
셀로니아는 눈을 끔뻑이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곳은 그녀의 방이었다. 숲이 아닌 걸 보니 꿈을 꾼 모양이었다. 쓰러졌던 그날의 꿈을.
“간밤에 앓아누우셨어요.”
“아…….”
그녀는 어렴풋이 지난밤이 기억났다.
몸이 너무 피로해서 침대에 쓰러지듯 누웠는데 열이 나고 근육에 힘이 쭉 빠진 듯 기력이 쇠하며 온몸이 아팠다.
꿈인지 현실인진 모르겠으나 몽롱한 정신 속에서 저를 부르는 탄의 목소리를 들었던 것도 같다.
“의원님 말로는 열 감기인 것 같다고 하더라고요. 체력도 많이 약해진 상태고요.”
“그렇구나.”
“공작님 모셔 올까요? 계속 걱정하시다가 방금 내려가셨거든요.”
“아냐. 조금 머리가 울리네. 더 자야 할 것 같아.”
아직 몸 상태가 좋지 않아 셀로니아가 거절했다. 녹아내린 아이스크림처럼 몸이 침대에 흐물거리며 딱 붙어 있었다.
아직 팔다리에 힘이 잘 들어가지 않고 머리도 어지러웠다.
“저어……. 아침에 대공님께서 오셨는데, 공작님께서 돌려보내셨어요.”
엘라가 셀로니아에게 이불을 다시 잘 덮어 주며 조심스레 말했다.
“탄이?”
그 말에 셀로니아가 벌떡 상체를 일으켰다.
“앗! 아가씨!”
머리가 핑 돌았으나 바로 잡아 준 엘라 덕분에 다시 눕지 않을 수 있었다.
탄이 걱정할 텐데……. 분명 자정에 제 손을 잡기 위해 찾아왔다가 앓아누운 모습을 봤을 것이다.
“좀 일으켜 줄래.”
“괜찮으시겠어요?”
셀로니아가 괜찮다고 고개를 끄덕이자 엘라가 부축했다.
그녀는 엘라의 도움을 받아 침대를 벗어났으나 제대로 서기가 힘들었다.
“그래도 금방 정신을 차리셔서 다행이어요. 아가씨가 설렁줄을 잡아당겨서 방에 왔다가 앓는 모습을 보고 어찌나 놀랐던지…….”
“설렁줄?”
“네. 알려 주지 않으셨으면 발견이 늦을 뻔했어요. 밤에는 부르시지 않는 이상 방 근처에 못 오게 하시잖아요.”
자정마다 탄을 만나는 것 때문에 그녀는 방 주변엔 얼씬도 하지 못하게 했다. 부를 때까진 오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해 두었으니까.
그런데 설렁줄을 잡아당겼다고? 제가 잡아당긴 기억이 없다.
그렇담 자정에 왔던 탄이 앓아누운 저를 보고 잡아당긴 모양이었다.
엘라의 말로는 아버지가 아침에 찾아온 탄을 돌려보냈다고 했다.
하지만 탄이라면 이렇게 쉽게 되돌아갔을 리가…….
문득 방 주위를 살펴보던 셀로니아가 멈칫했다. 그녀의 침실에는 몇 개의 문이 존재했기 때문에.
“엘라, 나 괜찮으니까 혼자 있을게. 조금 더 쉬어야겠어.”
“그러실래요? 그럼 제가 침대에 다시 눕혀 드릴게요.”
“아냐. 잠깐 햇빛 좀 받다가 다시 누울게.”
“필요하면 꼭 부르세요. 알겠죠?”
“그래.”
걱정하는 엘라를 방 밖으로 내보내고 완전히 혼자가 된 셀로니아는 힘겹게 다리를 움직여 욕실 문을 열어 보았다.
안엔 아무도 없었다. 그럼 파우더룸인가?
어서 방향을 틀어 파우더룸으로 향하려 할 때, 등 뒤에서 달칵 소리가 들려왔다.
몸을 돌리니 드레스룸 문이 열려 있었다.
그리고 열린 문 사이엔 역시나 돌아가지 않고 기다리고 있을 줄 알았던 탄이 서 있었다.
“탄.”
셀로니아는 반색하며 그에게 다가갔다.
하지만 힘없는 몸이 얼마 가지 못하고 휘청거리자 탄이 재빨리 그녀의 허리를 감싸 안았다.
“고마워요.”
원래 이렇게 나약하지 않다는 듯 셀로니아가 머쓱하게 웃었다.
“…….”
그런데 그는 어떤 대답도 하지 않았다. 셀로니아는 자신을 지탱해 주는 단단한 팔을 느끼며 의아한 마음에 고개를 들었다.
“탄?”
그녀의 눈동자에 비친 건 묘한 표정을 짓고 있는 탄의 얼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