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le Leads Were Stolen by the Extra RAW novel - Chapter (95)
엑스트라에게 남주들을 빼앗겼다 (95)화(95/162)
<95화>
셀로니아는 미르나르 숲 입구에 위치한 사냥제 참가자석에 있었다.
며칠 전 앓았던 그녀는 그사이 완전히 기운을 회복한 상태였다.
더는 아프지 않을 거라는 탄의 말대로 신기하게 이렇게 빠른 시일 내에 병환을 떨치고 멀쩡할 수 있나 싶을 정도였다.
오늘은 사냥제가 열리는 날이었다.
1년에 한 번 열리는 사냥제는 겨울이 오기 전 개최되었으며 사냥제에서 잡은 짐승들을 불태워 하늘에 바침으로써 다음 해의 풍년을 빈다고 들었다.
숲 외곽에 결계를 쳤기에 짐승들이 밖으로 튀어나올 일은 없었다.
사냥대회에선 가장 큰 짐승을 잡은 사람이 우승자가 되었으며, 그 짐승이 무엇인지는 사냥대회가 끝나고 참가자들이 잡은 짐승들을 선보이는 시간에 알게 되었다.
매년 하는 이벤트였기에 귀족들의 관심이 그다지 높지 않으나, 오늘은 달랐다.
올해 우승자를 구경하기 위해 관람석은 이미 만석이었으니까. 황족의 자리인 가장 높은 좌석들을 제외하고서.
관람석과 멀리 떨어지지 않은 또 다른 임시 천막은 첨가자 전용 좌석으로, 오늘 사냥제에 참석하는 셀로니아와 탄은 함께 앉아 있었다.
“그냥 구경하고 있으라니까.”
옆자리에 있던 탄이 천막 사이로 사선으로 들어오는 햇빛이 그녀의 얼굴에 닿지 않게 하려 손으로 가림막을 쳐 주며 말했다.
유난스러운 그의 행동이 싫지 않아 셀로니아는 픽 웃었다.
앓은 이후 그는 수시로 제 안색을 살피며 건강에 대해 물어 왔다.
오늘은 몸 상태가 어떤지, 아픈 곳은 없는지. 마치 주치의가 처방을 내린 환자의 몸을 살피듯이.
“혹시 알아요? 우승자가 내가 될지.”
셀로니아가 꽤 자신만만하게 대꾸했다. 그녀도 오늘 사냥제에 참가하게 되었다.
원래는 참가할 생각이 없었으나 황제의 부추김으로 탄과 이안이 함께 참석하게 되어 그녀도 참석하겠다 의사를 밝힌 것이었다.
아버지의 만류가 있었으나 그녀의 고집을 꺾을 순 없었다. 혹시라도 이안이 더러운 수를 쓸지도 모르니까.
올해 사냥제 참석자 명단은 화려했다.
그녀를 포함하여 탄과 이안, 맥라이언, 심지어 황태자까지 이번 사냥제에 출전하겠다고 선언하였다.
따지고 보면 지금 제국에서 가장 인기 있고 영향력이 높은 자들이 총출동하는 것이었다.
이러니 모두의 관심이 쏠릴 수밖에.
“어머어머……!”
“정말 다들 늠름하시네요.”
근처에서 들려오는 상기된 목소리들에 셀로니아가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관람석에 앉은 영애들이 참가자석을 힐끔힐끔 바라보며 얼굴을 붉히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주위를 둘러보던 그녀는 바로 납득했다.
평소 검 꽤나 쓴다는 몸 좋은 참가자들이 늘 입던 답답한 정장 대신 훨씬 가볍고 편한 차림새였다. 중무장을 하면 사냥할 때 힘이 빠질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 덕에 그들의 몸이 도드라져 보였다.
특히 그중에서도 탄은 너무나 자유분방하게 셔츠 앞섶의 단추를 2개나 풀고 있어 상처는 아슬아슬하게 보이지 않았지만 탄탄한 가슴의 일부가 드러나 있었다.
대부분의 영애들이 얼굴을 붉히는 이유가 탄 때문이었다.
“탄, 옷 좀 여며야 하는 거 아니에요?”
영애들과 탄의 가슴을 번갈아 쳐다보던 셀로니아가 자신도 모르게 툴툴거렸다.
“뭐?”
그 소리에 탄이 의아한 얼굴로 그녀의 말뜻을 헤아리다 순간 입꼬리를 씨익 올렸다. 아주 기분이 좋다는 듯.
그는 바로 그녀의 귀 가까이에 입술을 가져갔다.
“걱정 마. 이 밑은 오직 너만 볼 수 있으니까.”
“……무슨! 누가 보고 싶대요?”
귀를 자극하는 속삭임에 발끝을 오므렸던 셀로니아는 정곡이 찔려 확 달아오른 얼굴로 볼멘소리를 내었다.
“아닌가? 아, 만지면 더 좋고.”
그 반응에 탄은 능글맞게 쿡쿡 웃으며 셀로니아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었다.
“…….”
어째 나날이 사회화가 되는 것을 넘어 요망해져 가는 탄 때문에 셀로니아의 표정이 벙쪄 있을 때.
“두 분 다 몸조심하셔야 해요. 다치시면 안 돼요.”
소름이 돋을 정도로 간드러지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시선을 돌리니 역시나 그레이스였다.
방금 참가자석 천막에 들어온 이안과 맥라이언을 따라 들어온 그레이스는 걱정이 가득한 얼굴로 그들에게 신신당부를 하고 있었다.
편의성을 위해 사냥복을 차려입은 참가자들 속 화려한 차림의 그레이스는 매우 눈에 띄었다.
“베넷 남작가의 지출이 매우 높더군요.”
“아무래도 어디선가 자금을 조달받고 있는 것 같습니다.”
셀로니아는 바로 스톰 길드장인 다니엘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이제 보니 정말 그레이스가 두르고 있는 모든 것이 고가였다. 한미한 남작가의 영애라고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섬세한 문양으로 짜인 레이스로 장식된 드레스, 목과 귀 그리고 팔까지 주렁주렁 달린 보석들.
게다가 단정하게 뒤로 묶은 금발 위에는 화려한 공작 깃털과 보석이 달린 햇까지.
편한 바지와 베스트를 챙겨 입은 채로 장신구를 하지 않은 자신과 달리 그레이스는 아주 현란하고 호화스러웠다.
누가 그녀를 베넷 남작가의 영애로 볼까.
이건 아무리 체르빌 공작의 약혼녀라 할지라도 아직 공작 부인이 되지 않은 그레이스가 누릴 수 없는 사치였다.
게다가 지금 그레이스가 목에 걸고 있는 저 나비 모양으로 세공된 사파이어 목걸이.
셀로니아가 보석 공방의 견본 책에서 보았던 목걸이였다.
어느 곳이든 최우수 고객인 베스인 공녀 셀로니아는 여러 부티크와 보석상에서 판매할 상품들을 다른 이들보다 미리 견본책으로 받아 보는데, 거기서 본 상품이다.
‘에르젤 보석상에서 나온 하나뿐인 한정판이랬지.’
문양이 취향이 아니라 구매하지 않았었다.
그런데 그 목걸이가 지금 그레이스의 목에 걸려 있었다.
‘확실히 구린내가 나.’
웬만한 귀족들은 구매하고 싶어도 엄두를 내지 못하는 가격이었다.
이미 스톰 길드에 자세한 내막을 알아보라 일러뒀으나 마냥 손 놓고 있을 순 없었다.
셀로니아는 지금 그레이스가 착용하고 있는 것들을 개인적으로 알아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때 그레이스를 돌려보낸 이안이 두 사람을 발견하곤 잔뜩 표정을 구긴 채로 다가왔다.
“내뺄 줄 알았더니 아니었군요.”
거만하게 올라간 이안의 파란 눈이 앉아 있는 탄을 내려다보았다.
탄이 대공이라는 것을 알고 말을 놓진 않았으나, 말끝만 높인다고 해서 다 존대가 아니었다. 선택하는 단어엔 예의라곤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도발 같지도 않은 도발에 셀로니아의 어깨에 기대고 있던 탄이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우뚝 솟은 그가 단숨에 이안보다 높은 위치에서 시선을 내렸다.
“이번엔 검이라도 한번 휘둘러 봐야 할 텐데.”
탄이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격려하듯 이안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방금은 덴로하 후작저에서 있던 마물 난동 때 아무 활약도 하지 못한 이안을 업신여겼다는 것을 여기 있는 모두가 알아챘다.
“으스대지 말고 망신당할 준비나 하시죠.”
그것을 안 이안이 싸늘하게 얼굴을 굳힌 채 짓씹듯 말을 뱉어 내며 탄의 손을 쳐 냈다.
아니, 쳐 내려고 했다. 밀쳐지지 않았을 뿐.
탄은 이안의 어깨를 잡은 손에 더더욱 힘을 주었다. 강한 악력이 이안의 어깨를 짓눌렀다.
축하연 때 셀로니아의 어깨를 세게 붙잡아 아프게 했던 이안의 모습을 잊지 않았기에.
“등은 잘 아물었나? 그날 내가 너무 세게 날렸던 것 같은데.”
탄은 그의 어깨뼈를 으스러뜨릴 정도로 힘을 주고 있음에도 티 하나 내지 않고 씨익 웃었다.
바위가 어깨를 뭉개는 듯한 고통에도 이안은 자존심을 지키려 표를 내지 않고 탄의 팔을 붙잡았다.
부들부들 떨릴 정도로 탄의 팔을 힘껏 잡고 떨어뜨리려 하였으나 꼼짝도 하지 않았다.
“윽, 이거 놓……!”
“아, 이런. 멀쩡히 참가는 해야지.”
결국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이안이 입을 열자 탄이 가소롭다는 듯 픽 웃으며 어깨에서 손을 떼었다.
모여 있던 참가자들이 모두 이안과 탄을 바라보고 있었다. 혹시나 둘 사이에 싸움이 일어난다면 이보다 더 재밌는 구경은 없을 테니.
“언제까지 그 낯을 유지할 수 있는지 지켜보죠.”
그 시선들을 느낀 이안은 악에 받친 얼굴로 탄과 셀로니아를 번갈아 노려보며 지껄이고는 휙 몸을 돌렸다. 반드시 저 콧대를 짓눌러 주겠다고 으득 이를 갈며.
“모두 자리에서 기립하십시오. 황제 폐하와 황후 폐하께서 입장하십니다.”
장외를 울리는 쩌렁쩌렁한 목소리에 관람석과 참가자석에 앉아 있던 모두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셀로니아와 탄도 예외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황제와 황후가 앉을 자리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자리에 들어선 황제는 참가자들을 향해 목소리를 내었다.
“올해 사냥제를 빛내기 위해 참석해 준 그대들에게 감사하네.”
황제는 의례적인 말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올해로 벌써 40년이 넘었다며 사냥대회의 유구한 역사를 입에 담는 것을 시작으로 해마다 자리를 빛내었던 우승자들을 언급하기까지 했다.
그러다 제12회의 우승자는 바로 본인이었다면서 그 시절의 무용담을 풀어놓으려 했다.
“흠흠.”
모두가 지루함을 느끼고 있는 것을 눈치챈 황후가 타이밍 좋게 황제에게 헛기침을 하였다.
“하하, 이런. 말이 길었군.”
뜻을 알아들은 황제는 호탕하게 웃으며 덧붙여 말했다.
“올해는 특별히 쟁쟁한 참가자들의 실력에 맞추어 준비하였으니 모두 무사히 돌아오길 바라네.”
이제 정말 사냥제의 시작을 알리는 폭죽 소리가 들려왔다.
기다렸다는 듯 참가자들은 채비를 마치고 숲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탄과 셀로니아도 예외는 아니었다.
“베스인 공녀.”
순간 앞을 가로막는 사람만 아니었어도.
얼굴에 드리운 그림자에 고개를 드니 만반의 채비를 한 황태자가 그녀 앞에 서 있었다.
그녀는 곧장 탄에게 신호를 주며 예의를 갖추었다.
“황태자 전하를 뵙습니다.”
탄은 떨떠름한 얼굴로 셀로니아를 따라 고개를 숙였다.
“공녀도 참석하는 건가?”
“네. 그렇습니다.”
“흐음. 그렇군. 하지만 우승하지 못한다 해서 너무 실망하지 말도록. 공녀는 우승자의 영광은 나누게 될 테니.”
황태자가 느끼하고도 자신감이 넘치는 미소와 함께 몇몇 무리를 이끌고 숲을 향해 걸어갔다.
황태자가 지나가자 바람을 타고 묵직하고도 익숙한 향기가 그녀의 코끝을 찔러 왔다.
어디서 맡아 봤는데?
“아…….”
축하연에서 늦었던 로아나에게서 맡은 향이었다.
드레스와 머리카락이 조금 흐트러지고 입가에는 립스틱이 살짝 번진 채 등장한 로아나에게서 풍겼던 남자 향수 냄새.
영애들이 로아나에게 애인이 생긴 것 같다고 했는데 아무래도 그게 황태자인 모양이었다.
그런데 애인도 있으면서 왜 저를 보고 그렇게 느끼하게 웃어?
셀로니아는 닭살이 돋아 몸을 부르르 떨며 탄의 팔을 이끌었다.
“우리도 가요.”
“이놈이나 저놈이나 죽고 싶어 안달이 났군.”
탄이 멀어지는 황태자의 뒷모습을 보며 살벌한 눈으로 중얼거렸다.
그러고는 속으로 사냥제를 최대한 빨리 끝내 버려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잔챙이들이 감히 그녀에게 치근덕거리기 전에.
그는 셀로니아의 손을 꽉 붙잡았다. 절대 다른 누구에게도 양보할 수 없다는 듯.
“네? 뭐라고요?”
무시무시한 그 발언을 제대로 듣지 못한 셀로니아가 동그랗게 뜬 눈으로 되물었다.
“내가 널 좋아한다고.”
탄은 그런 그녀를 향해 능청스럽게 웃으며 잡고 있던 손등에 입을 맞추었다.
살짝 내리뜬 그의 눈이 꺼지지 않는 정염을 담은 채로 야살스럽게 휘었다,
“허어…….”
나날이 늘어 가는 그의 과감함에 셀로니아가 기가 차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러나 이내 위로 올라가는 입꼬리까진 막을 순 없었다.
두 사람은 제일 마지막으로 미르나르 숲으로 들어갔다.
저 멀리 숲으로 들어가는 두 사람을 보며 한 사람이 오싹한 눈을 빛내고 있었다. 티타니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