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le Leads Were Stolen by the Extra RAW novel - Chapter (96)
엑스트라에게 남주들을 빼앗겼다 (96)화(96/162)
<96화>
미르나르 숲은 말만 숲이지, 낮지만 꽤 험준한 산을 끼고 있는 광활한 산림이었다.
게다가 사냥제를 시작하기 전 마법으로 숲의 지형을 바꾸었기 때문에 매년 참가한다고 해서 유리하지는 않았다.
“너, 요즘 그레이스에게 너무 소홀한 거 아닌가.”
특유의 껄렁한 자세로 어깨에 검을 들쳐 메고 걷던 맥라이언이 거침없이 걸어가는 이안의 뒤통수에 대고 말했다.
요 근래 그레이스를 대하는 이안의 태도가 시큰둥했으니까.
“레예프도 그렇고. 너네 요즘 이상해.”
그건 레예프도 마찬가지였다.
레예프는 사냥제에 참석하지 않았다. 그건 성기사는 불필요한 살생은 하지 않으니 그렇다 치더라도, 요 며칠 아프다는 핑계로 그레이스를 보러 오지도 않고 만남을 회피한 건 이상하다.
그래서 근래에 그레이스와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 것은 맥라이언 자신이었다.
“하여튼 인간 놈들. 생이 짧다 해서 마음의 유효 기간까지 짧을 줄이야.”
맥라이언이 대꾸도 없는 이안을 신랄하게 비꼬았다.
셀로니아에 대한 저들의 마음이 변할 때도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또 이럴 줄이야.
적어도 맥라이언 자신은 그레이스에 대한 마음을 유지하고 있었다.
돌아서면 달라지는 저런 인간들과는 태생부터 달랐다. 역시나 자신은 인간보다 고결하고 숭고하다.
그러니 마음이 산이 아닌 움직이는 바다라 할지라도 이리 붙잡고 간직하고 있는 것이지.
결국 맥라이언의 빈정거림에 이안이 우뚝 걸음을 멈추었다. 이안은 곧장 뒤돌아 삐딱하게 서 있는 맥라이언 앞으로 성큼성큼 다가갔다.
“그 인간 놈이 오늘 우승할 생각이니 사냥제에 관심이 없으면 괜한 방해 마십시오.”
“그래서. 우승하면 누구한테 영광을 바칠 생각인 거지?”
맥라이언이 이안의 눈을 똑바로 보며 무섭게 되물었다.
작년에 우승했던 이안은 약혼녀인 셀로니아에게 영광을 바쳤다.
하지만 그건 의례적인 것이었을 뿐, 두 사람 다 서로에게 마음이 없었다는 건 다들 아는 사실이었다.
“당연히……!”
“당연히 뭐.”
“…….”
맥라이언의 추궁에 이안이 대답을 하지 못하였다.
당연히 셀로니아에게 영광을 바칠 생각이었으니까.
그레이스를 사랑하지 않는 게 아니다. 셀로니아에게 직접 영광을 안겨 주고 패배자인 대공의 일그러지는 표정이 보고 싶었을 뿐.
축하연에서 셀로니아와 탄에게 당한 그 치욕감을 대갚음해야 했다.
체르빌가의 안주인 자리를 내주겠다는데, 그레이스를 후처로 두고 본처 자리를 내주겠다는데 거절하고 선택한 게 그놈이라니.
이참에 그 시커먼 놈이 다신 제 앞에서 함부로 기어오를 수 없게 자신이 누구인지 똑똑히 보여 줄 생각이었다.
그레이스의 환한 미소를 보는 것보다 이번에야말로 자신에게 패배한 탄이 열등감에 사로잡혀 부들대는 꼴을 봐야 이 들끓는 마음이 조금이라도 사그라들 것 같았기에.
“너, 그레이스에게 영광을 바칠 생각이 없군.”
맥라이언이 싸늘한 눈동자로 이안의 멱살을 움켜쥐었다. 그의 속내를 읽은 것이었다.
“그러고도 네가 그레이스의 약혼자던가.”
“오지랖 부리지 말고 좋은 말로 할 때 이거 놓으십시오.”
“나야말로 네깟 놈이 우승하는 것을 봐줄 수가 없다.”
맥라이언이 이안을 한 대 칠 듯한 눈으로 응시하며 으르렁거렸다.
이안은 가소롭다는 듯 픽 웃으며 멱살을 잡은 맥라이언의 손을 거칠게 떼어 냈다.
“당신이라고 뭐 다릅니까? 셀로니아가 다른 놈과 있으면 눈을 떼지 못하면서.”
이번엔 이안이 맥라이언에게 비웃적거렸다.
그가 셀로니아와 탄을 신경 쓰는 만큼 맥라이언도 그들에게 관심을 두는 것을 알았다. 마치 본인은 그레이스만 바라보는 척하는 게 우습기 그지없었다.
“그건……!”
맥라이언이 욱해서 말을 내뱉으려다 참았다. 이딴 안하무인한테 자신이 알고 있는 사실을 알려 줄 필요는 없었으니까.
“어차피 우승자는 접니다. 괜한 힘 빼지 마시고 전처럼 나무 위에서 한숨 자다 내려오십시오.”
“…….”
“두 연놈 다 제 손으로 직접 뭉개 버릴 것이니.”
이안이 맥라이언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 경고하듯 말을 내뱉으며 검을 휘둘렀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왼쪽에서 공격하기 위해 입을 쩍 벌리고 튀어 올랐던 뱀이 두 동강이 난 채로 바닥에 널브러졌다.
기척만 느끼곤 보지도 않고 베어 낸 것이었다.
“너…….”
죽은 뱀과 이안을 번갈아 쳐다보던 맥라이언은 놀라 말끝을 흐렸다.
그에게서 풍기는 어두운 기운이 예사롭지가 않았다. 이전의 푸르렀던 영의 기운은 암막이 드리운 듯 혼탁해져 있었다.
뭐지? 마물의 기운보다 더 악한 무언가가 느껴졌다.
“그럼.”
뱀같이 야비한 눈을 가늘게 좁힌 이안은 맥라이언을 뚫어지게 응시하다 이내 걸음을 옮겼다.
맥라이언은 수풀을 지나쳐 멀어지는 이안의 뒷모습을 한동안 멍하니 보고 있었다.
* * *
“이래도 되는 겁니까?”
“어허! 감히 네가 황제 폐하의 명에 이의를 제기하는 것이냐?”
“아, 아닙니다! 다만 사냥제는 공명정대해야 하지 않습니까…….”
호되게 꾸짖는 상관의 목소리에 말단 기사가 풀이 죽은 얼굴로 우물거렸다.
미르나르 숲 깊은 안쪽.
낮은 산을 옆에 낀 탓에 야생의 수풀이 무성한 그곳은 웬만해서는 찾아올 수조차 없는 은밀하고도 비밀스러운 지대였다.
그곳엔 황제의 근위대 기사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크르릉……!”
순간 그들 가운데에 있는 짐승이 위험하게 목을 긁자 쇠사슬을 지키고 있던 기사들이 모두 움찔 졸았다.
“저, 정말 안전한 건 맞겠지요?”
“그래, 인마. 안 그랬다면 벌써 족쇄를 풀어냈겠지.”
상관 기사는 심드렁하게 대꾸하며 간이 의자에 털썩 앉았다.
그들이 지키고 있는 것은 그리핀이었다.
사자의 몸, 독수리의 날개와 얼굴을 지니고, 등은 단단한 쇠로 뒤덮인 마물 그리핀.
그리핀은 3미터 가까이 되는 키와 성인 남자 10명 정도를 모아 둔 것 같은 거대한 크기였다.
크기부터 위협적이었기에 움직이지 못하도록 네 발에는 쇠사슬이 달린 족쇄를 채워 두었고, 혹시 몰라 날카로운 부리에도 두꺼운 강철로 만든 입마개를 씌워 둔 상태였다.
몸통에도 쇠사슬을 칭칭 감아 날개를 퍼덕이지 못하게 만들어 놨다.
이건 오늘 사냥제를 위해 특별히 황제 폐하께서 잡아 오라 명하신 마물이었다.
그리고 이 마물을 베어 낼 영광을 가질 사람은 오직 한 사람뿐이었다.
황태자 헬리우스 플래너건.
바뀐 지형을 빠삭하게 잘 아는 숲지기가 황태자를 데리고 이쪽으로 오고 있으니 날뛰는 그리핀의 목도 곧 댕강 잘려 나갈 것이다.
“제 눈으로 직접 마물을 보는 날이 오다니요.”
말단 기사가 입마개를 풀기 위해 푸르릉거리며 고개를 좌우로 세차게 흔드는 그리핀을 보며 황홀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족쇄 때문에 위험하진 않겠지만 그래도 너무 가까이 가진 말아라.”
“그런데 꼭 마물을 잡아 왔어야 하는 걸까요? 짐승을 잡으면 되는 것 아닙니까.”
“인마. 구원자인 체르빌 공작과 마물을 단번에 베었다고 유명해진 허시브룩 대공 사이에서 웬만한 짐승으론 택도 없다고.”
상관 기사는 이미 모든 것을 파악하고 있었다. 황제께서 왜 마물을 준비하라 일렀는지를.
마물을 상대해 봤던 공작과 대공이니 똑같은 마물 정도는 잡아 줘야 우승자의 면이 설 테니.
“그래도…… 이렇게 묶어 놨다가 베는 것은 손 안 대고 코 풀기 아닙니까. 진짜 실력이라고 할 수 없……!”
“어허! 입조심해라. 쓸데없는 말 말고 마물이나 잘 지켜.”
상관 기사는 자꾸만 토를 다는 말단 기사의 입을 단속시키며 두 팔로 머리를 받친 채 간이 의자가 뒤로 넘어갈 정도로 등을 기대었다.
황실에서 주최하는 대회이니 모든 것은 황실 입김대로라는 것을 왜 아직도 모르는지.
그는 말단을 향해 속으로 혀를 끌끌 찼다. 언제쯤 황태자 전하께서 오시려나 생각하며.
그때였다.
“푸르릉……!”
입마개를 풀기 위해 머리를 흔들던 그리핀이 순간 모든 행동을 멈추었다.
그러더니 갑자기 무언가를 느낀 것처럼 고개를 번쩍 들어 좌우를 살피기 시작했다. 무시무시한 독수리의 눈이 번뜩거리더니 가늘게 좁혀졌다.
“토, 토르 경……!”
무언가 이상함을 알아챈 말단 기사가 하얗게 질린 얼굴로 다급히 뒤에 있는 상관을 불렀다.
“뭐야.”
“마물이 뭔가 이상합니다……!”
“이상하긴 뭐가 이상해. 얌전해졌구만.”
토르는 전보다 얌전해진 그리핀의 동태를 심드렁하게 바라보며 대충 대꾸했다.
별것도 아닌 일에 호들갑 떠는 말단 때문에 피곤할 지경이었다.
“그게 아닙니다! 갑자기 전과 행동이 달라졌다고요!”
가까이에서 그리핀을 지켜보고 있던 말단은 소름이 끼칠 지경이었다.
방금까지만 해도 입마개와 족쇄를 풀기 위해 날뛰었던 그리핀이 갑자기 숨을 죽이고 있는 것이 흡사 사냥감을 사냥하기 위해 자세를 잔뜩 낮추는 야수 같았으니까.
“지친 모양이지. 내버려 둬.”
“저, 정말 이상하다니……!”
“이 새끼가! 너, 내 말이 말 같지가 않아?”
자꾸만 토를 다는 말단 때문에 결국 폭발한 토르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어? 어어어?”
“이, 이놈 이거 왜 이래!”
그때 여기저기서 그리핀을 지켜보고 있던 기사들이 당황하여 소리쳤다.
그제야 토르의 시선도 그리핀으로 향하였다.
“무, 뭐야?”
토르는 당황했다.
그리핀의 몸통에 감겨 있던 사슬이 부르르 떨리기 시작했으니까.
심지어 꼼짝없이 포박되어 있던 커다란 그리핀의 날개가 점점 위로 들리고 있었다.
“쇠사슬을 정비해라! 더 몸을 옥죄어!”
사태를 파악한 토르가 소리를 쳤으나 때는 이미 늦었다.
탕!
날개에 얼마나 힘을 준 것인지 그리핀의 몸통에 감겨 있던 사슬이 끊겼다.
이윽고 거대한 날개가 강한 돌풍을 동반하며 퍼덕이기 시작했다.
“으아아악!”
“젠장! 이게 뭐야!”
날갯짓에 뿌옇게 일어난 흙먼지로 인해 앞이 보이지 않자 기사들이 허둥거리기 시작했다.
심지어 이미 공중에 뜬 그리핀이 상승할수록 발을 옥죄는 족쇄에 달린 사슬이 팽팽하게 늘어졌다.
“족쇄! 족쇄와 연결된 사슬을 확인해! 절대 끊겨선 안 된다!”
토르가 기사들에게 소리쳤으나 사슬은 당기는 힘을 견디지 못하고 하나둘씩 끊기기 시작했다.
“젠장! 다들 검을 잡아라!”
검을 빼 든 토르가 그리핀에게 달려들었다. 이대로 놓쳐서 커다란 피해를 보느니 차라리 여기서 처리하는 게 나았다.
그러나 이미 네 다리를 붙잡고 있던 모든 사슬이 끊어 낸 그리핀은 곧장 갈고리처럼 날카롭게 휘어진 앞다리의 발톱으로 입마개까지 부숴 버렸다.
그리고 하늘에서 천둥이 내려치는 듯한 거대한 독수리의 울음소리를 내며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놓치면 안 된다! 잡아야 한다!”
기사들이 땅에서 발악했지만 소용없었다. 이미 그리핀은 하늘 위에 있었으니까.
그리핀은 가늘게 좁혀진 눈매로 나무가 빼곡하게 우거진 숲을 하늘에서 내려다보다 한 곳을 향해 빠르게 날아갔다.
* * *
한편 셀로니아와 탄은 숲 안쪽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숲이 얼마나 광활한지 아직 뛰어다니는 토끼 한 마리조차 구경하지 못하였다.
“안 되겠다. 꽉 잡아.”
결국 탄은 셀로니아의 허리를 감싸 안았다. 나무 위로 순간 이동을 하여 지리를 파악하기 위하여.
당연히 귀찮은 사냥제를 빨리 끝내 버리고 셀로니아와 단둘이 오붓한 곳에 있고 싶은 사심 때문이었다.
그때였다.
튀어 오르려던 탄은 숲을 울리는 거대한 울음소리에 행동을 멈추었다.
“이거 설마…….”
무언가를 느낀 셀로니아와 탄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이윽고 두 사람의 머리 위로 거대한 그림자가 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