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le Leads Were Stolen by the Extra RAW novel - Chapter (97)
엑스트라에게 남주들을 빼앗겼다 (97)화(97/162)
<97화>
“죄, 죄송합니다, 황태자 전하…….”
황실 근위대 기사 토르가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허리를 바짝 숙였다.
바들바들 떨고 있는 몸이 지금 그가 얼마나 긴장하고 두려워하고 있는지를 말해 주고 있었다.
“하……. 도망을 쳤다?”
헬리우스가 기가 찬 헛웃음을 뱉으며 머리를 쓸어 넘겼다.
숲지기의 안내를 받아 단번에 안쪽으로 들어왔더니 있어야 할 마물은 보이지 않고 끊어진 족쇄만 한가득이었다.
“너무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분명 저희가 족쇄를 여러 번 확인하고 단단히 붙잡아 두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어디서 그런 힘이 났는지 족쇄를 끊어 내더니 도망쳐 버렸습니다…….”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었지만 토르는 자초지종을 털어놓았다.
마물 숲에서 포획을 하고 제도로 올라올 때까지, 그리고 미르나르 숲에 묶어 둘 때까지 그리핀은 족쇄를 풀지 못하였다.
그런데 어떻게 갑자기 족쇄를 풀어내고 도망을 간 것인지 당최 모를 일이었다.
“네놈들은 지금 그걸 변명이라고 하나?”
싸늘하게 굳은 헬리우스의 눈이 기사들을 죽여 버릴 듯 응시했다.
일이 꼬여도 단단히 꼬여 버렸다.
잡혀 있던 마물의 목만 베어 내고 당당히 사냥제에서 우승하면 되는 일이었다. 차려 놓은 식탁에 스푼만 얹으면 되는 그런 간단한 일을 그르쳐 버린 것이었다.
“죄송……윽!”
“니들이. 지금. 무슨. 짓을. 한 건지 알아?!”
분노에 찬 헬리우스가 일렬로 쭉 서서 고개를 숙이고 있는 기사들의 정강이를 차며 나아갔다.
기사들은 아릿한 통증에도 속으로 고통을 참으며 더더욱 고개를 수그렸다.
“아악!”
그럼에도 분이 풀리지 않은 헬리우스가 소리를 내지르며 덩그러니 풀려 있는 족쇄를 발로 걷어찼다.
도망친 그리핀을 누군가 먼저 발견하고 베기라도 한다면 남 좋은 일만 한 셈이 되는 것이었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아버지는 이번 일은 절대 그냥 넘어가지 않을 것이다.
마물을 잘 간수하지 못한 근위대의 잘못이라 해도 애초에 이렇게까지 판을 짜 주었는데 떠먹지 못했다며 질책하실 게 뻔했다.
심지어 그리핀을 체르빌 공작이나 허시브룩 대공이 베어 낸다면 더더욱 큰일이었다. 그들에게 견주기 위하여 아버지께서 마물까지 준비한 것이었으니까.
“만에 하나 너희들이 놓친 그것의 목을 다른 이가 벤다면.”
“…….”
살벌한 황태자의 음성에 기사들이 두려움에 밭은 숨을 내뱉으며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그땐 네놈들의 목도 날아가는 것이다.”
헬리우스가 으득으득 이를 갈며 핏발 선 눈으로 기사들을 노려보았다.
“예, 예!”
등골이 오싹한 경고에 기사들이 허둥지둥 채비를 하였다.
무슨 일이 있어도 다시 그리핀을 되찾아야만 했다. 안 그러면 정말로 황태자의 의해 목이 달아날 테니까.
그때였다.
숲 전체를 울리는 거대한 울음소리가 저 너머에서 들려왔다. 그리핀의 울음소리였다.
“저, 저쪽입니다!”
말단 기사가 놀란 얼굴로 방향을 가리켰다.
“젠장! 숲을 쥐 잡듯 샅샅이 뒤져서라도 누가 먼저 발견하기 전에 당장 잡아 와!”
헬리우스가 잔뜩 성이 난 얼굴로 악을 내질렀다.
이 울음소리를 그들만 들었을 리 없다. 숲에 들어온 사냥제 참가자들이 모두 들었으리라.
결국 이건 시간 싸움이었다. 누가 먼저 그리핀을 발견하느냐의 문제였다.
그는 기사들을 이끌고 왔던 숲길을 되돌아갔다.
무조건 공작과 대공보다 먼저 마물을 잡아야 했다. 황제 다음으로 드높은 황태자인 그가 누군가에게 지는 것은 말이 안 됐으니까.
헬리우스의 눈이 이글이글 불타오르고 있었다.
* * *
몇십 분 전.
“……마물.”
셀로니아가 짙은 그림자가 드리워진 멍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엄청난 크기의 두 날개가 빽빽이 들어선 나무 위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푸르렀던 하늘이 거대한 몸체와 날개로 가려져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하늘 위에 떠 있는 시커먼 생명체가 무엇인지 단번에 알아챘다.
그리핀.
반년 동안 마물 숲에서 그리핀을 마주한 적은 딱 두 번뿐이었다.
그때마다 저 날개 때문에 애를 먹었다.
하늘을 자유자재로 나는 마물을 땅 위에 붙어 있는 인간이 처치하기란 쉽지 않았으니까.
그런 그리핀이 지금 황성에 있는 미르나르 숲에 있다는 건 단 한 가지 이유 때문일 것이다.
결계가 쳐진 숲에 직접 날아왔을 리 없으니, 오늘 사냥제를 위해 잡아다 둔 것일 테다.
“올해는 특별히 쟁쟁한 참가자들의 실력에 맞추어 준비하였으니 모두 무사히 돌아오길 바라네.”
황제가 특별히 준비했다는 게 마물이었다니.
덴로하 후작이 마물 가룸을 저택에 들였던 일로 황제에게 불려 가 어마어마한 배상금을 물어냈다고 들었다.
그렇게 처우를 해 놓고 사냥제를 위해 마물을 직접 포획해 오다니.
“미쳤구나.”
셀로니아는 황제의 행동에 환멸을 느꼈다. 게다가 아무리 마물이라고 해도 마물 숲에 있는 마물들을 억지로 생포해 오는 건 너무하지 않은가.
그때였다.
하늘을 날던 그리핀이 돌연 커다란 울음소리를 내었다.
그 울음소리는 마치 천공을 가르는 거대한 휘파람 소리 같기도, 천지를 울리는 뇌성 같기도 하였다.
아마도 오늘 사냥제에 참석한 모두가 이 소리를 들었으리라.
이윽고 머리 위를 빙글빙글 돌던 그리핀이 아래로 하강하였다. 바로 저와 탄을 향해서.
“셀로니아, 혹시 모르니 물러서 있어라.”
어느새 검을 쥔 탄이 셀로니아를 등 뒤로 숨겼다.
그녀도 가만히 보고만 있을 수 없어 허리춤에 차고 있던 검집에서 검을 빼 들었다.
만에 하나 공격하려고 달려든다면 검을 휘둘러야만 했다. 마냥 당할 순 없었으니까.
두 사람은 날개를 퍼덕이며 발을 들어 올린 채 땅에 착지하는 그리핀에게서 절대 시선을 떼지 않은 채 경계 태세를 갖추었다.
쿵!
곧이어 퍼덕이는 날갯짓과 함께 땅이 울릴 정도로 묵직한 소리를 내며 그리핀이 부드럽게 착지했다.
그 바람에 셀로니아와 탄의 머리가 뒤로 나부꼈다.
모래 폭풍에 눈이 따가웠으나 셀로니아는 홉뜬 눈에 힘을 꽉 주고 절대 감지 않았다. 오히려 검을 더 꽉 움켜쥐었다.
긴장되었다. 하늘에서 보았던 그리핀을 지상에서 마주하니 그 몸집이 더 위용 넘쳤으니까.
만약 저 크고 무거운 앞발에 차이기라도 한다면 최소 전치 5주였다.
“푸르릉.”
두 사람의 적대심을 읽은 걸까.
그리핀이 목을 긁는 소리를 내며 크게 뜬 눈으로 고개를 몇 번이나 갸웃거렸다. 마치 자신은 아무런 해도 끼치지 않을 거라는 순진무구한 눈망울로.
“너…….”
순간 탄이 커다란 그리핀의 눈을 빤히 들여다보더니 쥐고 있던 검을 천천히 내리기 시작했다.
“……괜찮은 거예요?”
셀로니아는 마른침을 삼켰다. 그리핀이 달려들지는 않았지만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었다.
그때 그리핀이 터벅터벅 소리를 내며 두 사람을 향해 더 가까이 다가오기 시작했다.
놀란 셀로니아가 움찔 어깨를 떨며 주춤 뒷걸음질 쳤다. 하지만 탄은 완전히 검을 거두더니 셀로니아를 향해 몸을 돌렸다.
“괜찮다. 네가 좋다는군.”
그가 씨익 웃으며 겁낼 것 없다는 듯 손을 내밀었다.
셀로니아는 흔들리는 푸른 눈동자로 탄과 그리핀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아무런 위협도 담기지 않은 붉은 네 개의 눈이 저를 담고 있었다.
“…….”
그 순간 그녀는 확실하게 깨달았다.
이미 알고 있었지만 자신이 누구고 지금 제가 누구를 좋아하고 있는지를.
그녀는 마물들의 왕이라 불리는 마왕의 연인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그의 기운을 가지고 있는 인간이기도 하였다.
“너와 인사를 나누고 싶어 한다.”
탄이 다정히 웃으며 말했다.
그 웃음에 용기를 낸 셀로니아가 검을 검집에 집어넣곤 그의 손 위에 제 손을 얹었다.
손을 따뜻하게 감싸 쥐는 탄의 온기와 함께 천천히 발걸음을 내디뎠다.
그녀가 완전히 다가서자 그리핀이 눈높이를 맞추듯 고개를 낮춘 채로 천천히 눈을 감았다 뜨기를 반복했다.
그게 마치 인사를 건네는 것처럼 보여 그녀도 고개를 살짝 꾸벅였다.
“푸릉.”
그러자 그리핀이 부리를 들어 기분 좋은 울림을 내더니 제자리에서 네발을 동동 굴렀다. 기분이 좋다는 듯.
“와…… 신기하네요.”
셀로니아가 조금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지금껏 마물 숲에서 언제나 검을 든 채로 죽기 살기로 그들을 상대했던 기억밖에 없었는데…….
이렇게 인사를 나눌 수도 있구나.
그럼 정말 그때 덴로하 후작저에서 봤던 가룸은 공격하려고 달려든 게 아니었다. 반가운 마음에 그리핀처럼 인사를 하려고 했던 모양이었다.
미안한 마음이었다. 애초에 후작이 가룸을 잡아 오지만 않았어도 그런 죽음은 겪지 않았을 테니까.
그때였다.
그리핀이 이번엔 셀로니아를 향해 고개를 숙이며 정수리를 내보였다. 새하얀 머리가 그녀의 시야에 가득 들어찼다.
“정말 네가 좋은가 보다.”
“만져 달라는 뜻이죠?”
탄이 고개를 끄덕였다.
인사도 한 마당에 거리낄 게 없어진 셀로니아는 당차게 손을 뻗어 그리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부드러워요.”
흡사 비단을 만지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보드라운 감각이 손안에 퍼져 들자 그녀의 입가에 은은한 미소가 맺혔다.
그리핀은 그녀의 손길이 좋은지 굵은 목을 떨 정도로 그릉그릉 소리를 내고 있었다.
지금 눈앞에 있는 그리핀은 토벌 당시 상대했던 사납고 포악했던 마물이 아니었다. 그저 자신들의 왕을 만나 반가워하는 한 마리의 동물일 뿐.
참으로 기이하고 생경한 경험에 부드러운 그리핀의 머리를 살갑게 쓰다듬어 주던 셀로니아는 시선을 내리다 무언가를 발견했다.
“탄, 그리핀 발목에…….”
“맞아. 붙잡혀 있다가 우리의 기운을 느끼고 날아온 것 같다.”
그리핀의 네 발목은 피부가 벗겨져 붉은 속살이 드러나 있었다. 족쇄를 억지로 끊어 낸 탓에 생긴 듯했다.
보는 것만으로도 쓰라린 상처에 셀로니아가 눈살을 찌푸렸다.
왜 굳이 마물을 사냥제에 끌어들여서……!
화가 머리끝까지 차올랐으나 지금은 그것보다 더 큰 일이 있었다.
“그리핀을 잡아야 사냥제에서 우승할 수 있어요. 이대로 내버려 두면 누군가가 죽일 거예요.”
하지만 셀로니아는 그리핀을 죽일 수 없었다. 탄이 죽이려 해도 막을 수밖에 없었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인사를 나눈 데다 자신의 머리를 내주면서까지 교감에 적극적이었던 생명체의 목을 어떻게 벤단 말인가. 상처를 내면서까지 족쇄를 끊고 저와 탄을 보기 위해 날아온 그리핀을.
그때였다.
탄이 갑자기 곁에 있는 셀로니아가 느낄 만큼 살벌한 기운을 풍기더니 골반께에 달려 있는 단검을 빼 들어 어딘가를 향해 날렸다.
“탄!”
순식간에 일어난 일에 셀로니아가 놀라 소리쳤다.
바람을 가르는 소리를 내며 화살처럼 빠르게 날아간 단검은 정확하게 나무에 박혔다.
탄이 가늘게 눈매를 좁힌 채 살기 어린 표정으로 단검이 박힌 나무 뒤를 노려보았다.
“쥐새끼처럼 훔쳐보지 말고 나와.”
“크르릉……!”
뭔가를 느낀 건지 얌전하기만 했던 그리핀도 위협적으로 가슴을 부풀리며 앞발을 들었다.
“이게 무슨…….”
셀로니아는 그리핀과 탄이 노려보는 방향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나무 뒤에 숨어 있던 누군가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늘이 드리웠어도 색을 잃지 않은 차가운 은발, 그 아래 태양 같은 황금색 눈동자.
“셀로니아. 너……!”
맥라이언이었다.
그는 도무지 믿을 수 없는 장면을 보았다는 듯 눈동자에 커다란 파동이 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