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n Struck by Thunderbolt Twice RAW novel - Chapter 13
00013 돈 벼락 맞은 사나이 =========================
수진이 동생 우진이는 어디서 들었는지 옛날식 인사를 해왔지만, 마무리가 되지는 않았다. 일단 아이들이 몸이 달아 있는 것 같아 인사는 그렇게 넘어가고, 선물 전달에 앞서서 간단한 설교를 진행하고 있었다. 아이들이야 싫어하겠지만, 선물을 주는 입장에서는 그 의미를 조금이나마 알아줬으면 하는 마음이 당연했다.
“음. 이 아저씨가 너희들에게 선물을 주는 의미를 알고 있느냐? 부모님 말씀 잘 듣고, 공부 열심히 해서 부모님을 기쁘게 해드리라는 의미에서 주는 것이다. 거기에 더해 앞으로는 이 아저씨와 도 잘 지내줬으면 하는 바람에서다. 잘 알겠느냐?”
기중이 선물을 주는 의미에서 가장 크다고 할 수 있는 것은 자기 자신에 있었다. 지금까지 홀로 10년 넘게 살아오면서 회사 이외에는 남들과 같이 지내는 경우가 많지 않았다. 항상 늦게까지 일했고, 주말에는 피곤한 몸을 쉬느라 여유가 없었다. 물론 핑계일 수도 있었지만, 남들과 부대끼면서 살아가는 것이 사치라고 여겨졌고, 밖에 나가면 돈만 쓴다는 생각에서 이기도 했다.
선물을 앞에 두고 길어지려는 기중의 말을 단박에 치고 들어오는 아이가 있었다.
“오… 오빠! 선물 주세요.”
“엥?”
수진이 갑자기 호칭을 바꾸며 기중의 멘탈을 흔들었다. 귀신에 홀린 듯, 멍한 표정의 기중의 손은 자동적으로 선물을 아이들에게 전달하고 있었다.
“감사합니다. 아저씨!”
선물을 받자마자 변해버리는 수진을 씁쓸한 눈으로 바라봤다. 여자는 나이가 많으나 적으나 여우다. 여우. 웃음을 지은 기중은 기뻐하는 아이들은 바라보며 푸근한 마음이 되었다. 수진이는 새침한 것 같으면서도 선물을 받아서 그런지 얼굴을 보니 환한 미소를 보이고 있었다. 우진과 미희도 마찬가지로 벌써 포장을 다 뜯고 내용물을 살피는 데 여념이 없었다.
선물을 받을 때도 좋지만, 선물 줄 때 역시 기쁠 수도 있다는 것을 오랜 만에 느낄 수 있었다. 아주머니들도 마찬가지로 옆에서 그 모습을 보면서 말없이 미소를 짓고 있었다.
아이들에게 첫 선물을 전달하고 나서 벌써 2주가 흘렀다. 그 사이 방학이라 그런지 거의 매일 초등학생 우진과 미희는 아주머니들을 따라 왔다. 기중이 북적거리는 집안을 원해서 일부러 아주머니들에게 아이들을 데리고 오라고 부탁까지 했었다. 아이들은 좋은 집에서 기중의 호의로 편안하게 놀 수가 있어서, 기쁘게 기중의 집에 오고 있었다.
아이들이 기중의 집에 와서 하는 일이라고는 기중과 놀거나, 아이들끼리 노는 게 전부이기는 했지만, 꽤나 표정들이 밝았다. 가끔 아주머니들이 보이지 않을 때는 갖고 싶은 장난감에 대해서 넌지시 말하기도 하는 아이들을 보며, 꽤 즐겁다고 생각하는 일상을 보냈다.
간만에 수진이도 찾아오더니 성적표를 내밀었다.
– 전교 석차 : 1/301
수진이가 역시 공부는 잘했나 보다. 이번에는 1등이 적힌 성적표를 가져와서 보여줬다. 성적표를 내밀고 기중이 확인하는 동안 수진은 미소만 짓고 있었다. 역시나 자랑스러워 할 만 했다.
“뭔데?”
“뭐긴 뭐에요. 아저씨께서 공부 열심히 하라고 하면서 주셨잖아요. 당연히 선물에 대한 보답이죠. 학생이라면, 역시 보답은 성적이죠. 안 그래요?”
“그래. 허허.”
‘그래, 공부 열심히 하고 똑바로만 자라준다면, 이 애비는, 아니지 이 아저씨는 그걸로 됐다.’
역시 아저씨스러운 미소를 짓는 기중이다.
새로운 사업계획을 짜고 있지만, 기중에게는 힘든 일이 아닐 수 없다. 사회생활을 2년 동안 했지만, 사업에 대한 경험은 전무 했다. 직원이 되어서 일하는 것과 실제로 사업을 하는 것은 다른 문제였다. 자신이 겪어보지 못한 일들이라 특별한 사업계획이 서질 않고 있었다.
‘이렇게 시간을 보내는 것도 나쁘지는 않은데, 그래도 뭔가 구체적인 일이 필요하다.’
사람은 주기적으로 하는 일이 없으면 나태해지기 매우 쉬웠다. 현재 기중의 생활이 딱 그러했다. 돈은 엄청나게 쌓여 있지만, 그것을 쓰는 것도 잠시였다. 특별히 돈에 대한 부담이 없어지면, 하고 싶은 것들이 많을 줄 알았는데, 막상 이 상태가 되어 보니 꼭 그렇지만은 않았다.
한참을 서재에 앉아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는 있지만, 신통치 않았다. 이 때 밖에서 아주머니가 기중을 찾는 소리가 들려왔다.
“사장님, 사장님. 잠깐 나와 봐”
아주머니가 호들갑 스럽게 서재에 있는 기중에게 빨리 오라고 재촉을 하고 있었다.
“왜요? 지금 열심히 일하는 중인데요.”
오랜만에 본격적으로 어떤 사업을 하면 좋을지 이것저것 자료를 찾아보고 있던 기중은 아주머니의 호출에 조금 귀찮은 표정으로 대답했다.
“일은 무슨 혼자 궁상 떨고 있으면서.”
‘이 아줌마들이 나에 대해 너무 잘 파악하고 있단 말이야. 이게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아무튼, 아주머니들의 부름 소리에 어슬렁거리며 거실로 나왔다.
“사장님, 이 옷 어떤지 한번 봐봐. 내가 잘 아는 의상실 언니한테 물어봐서 코디한 옷이야. 그 언니도 정말 괜찮다고 하셨어. 중저가 브랜드 옷이지만, 사장님 나이 대에 잘 맞는 옷이기도 하고, 워낙 사장님이 센스가 없어서 확실히 달라 보일거야.”
이 씨 아주머니의 기중에 대한 은근히 디스가 들려왔다.
그간 기중은 집안에 있을 때는 오래된 트레이닝 복을 입고 있거나 간편한 옷을 주로 입고 있었다. 슈트는 명품매장에서 구입해서 준비를 해 놓았지만, 딱히 집안에서 입을 만한 옷은 많이 구비를 해 놓지 못했었다.
‘그런 말까지 덧붙일 필요는 없잖아요. 나도 날 잘 알고 있다고요. 그냥 집에서 간편하게 입을 옷 좀 사다달라고 부탁한 건데. 그리 심장에 비수를 꽂을 필요까지는 없잖아요.’
“네. 네. 알겠습니다. 한번 입어보죠.”
생각과는 다른 행동. 기중은 아주머니들의 성화에 못 이겨 옷을 가지고 방으로 들어갔다. 아주머니들도 당연하다는 반응이었다. 기중이 변한 모습을 빨리 보고 싶었는지, 막내 동생을 대하듯 어서 빨리 입고 오라며 등을 밀었다.
성화에 못 이겨 움직이면서 속으로 투덜거리던 기중은 옷을 갈아입고 아주머니들 앞에 섰다.
“잘 어울리네. 사장님.”
“그래요? 근데 이거 아주머니들에게 먹히는 코디 아니에요? 난 20대 꽃다운 여성들과의 만남을 위해 투자하는 거라고요.”
기중은 자신이 봐도 뭐가 이상함을 느끼고 말을 했지만, 아직 옷은 꽤나 남아 있었다.
“시간 없어, 빨리 다음 옷 입어봐.”
한참을 아주머니들의 인형 옷 입히기와 같은 작업이 벌어졌다. 기중이 가지고 있는 옷들이 별로 없어 꽤 많은 옷들을 사왔다. 물론 기중이 부탁한 것이었지만, 중저가 브랜드답게 가격에 비해서 옷의 수량이 많아 보였다.
‘럭셔리 슈트 한 벌 가격이면 이런 옷 트럭으로 사겠군.’
혼자 다른 생각을 하면서 기계적으로 옷을 갈아입고 있었다. 아주머니들도 왠지 즐거운 표정들이었다.
“아참, 애들 옷도 같이 샀죠? 이번 선물은 옷이 좋을 것 같았어요.”
기중은 한참을 옷을 갈아입다가 지쳐서 소파에 앉으면서 잠시 쉬기 위해서 대화 주제를 잠시 바꿨다.
“우리 수진이는 내가 사준 옷 잘 안 입어. 자기가 직접 골라야 한다고 하더라고.”
“역시 아주머니 센스는 구시대 센스였군요. 이거 뭔가 잘 못 된 거 아니에요?”
기중은 의심의 눈초리로 아주머니를 바라봤다. 아주머니는 살짝 당황한 모습을 보였다. 그래도 나름대로 열심히 알아보고 사온 옷들이었다.
“무슨 소리 정말 사장님 옷은 내가 잘 아는 의상실 언니한테 물어보고 골라온 거라고.”
“그래 이 씨 말이 맞아. 그 분이 예전에 연예인들과도 일했었데.”
“오~ 그래요? 처음부터 말씀해 주시지 그랬어요. 어떤 연예인이래요?”
기중은 다시 호기심을 가지고 말했다. 연예인들의 의상을 코디했던 사람이라면, 기대가 될 만도 했다. 자신의 의상 센스가 없기 때문에 도움을 받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었다.
“으… 응. 그게…”
이 씨 아주머니는 갑자기 말을 하다 말았다. 기중은 그 순간 촉이 왔다. 이건 뭔가 잘못된 패턴이 아닌가?
“왜 말을 하다 마세요? 누구에요?”
약간은 따지듯이 묻는 기중에게 아주머니는 조심스러운 대답을 했다.
“어… 중년 꽃미남 배우 윤동근, 김옹건 이래.”
“악! 아주머니 그분들은 50대 아저씨들이잖아요.”
“아니야. 정말 20대에 어울리는 옷들만 사온거야.”
“근데, 왜 제가 거부감이 없는 거 에요? 20대 옷이면 좀 더 거부감이 들 거라 생각했었는데.”
기중은 자신을 잘 알고 있었다. 아직 20대지만, 20대의 옷에 거부감이 컸다. 즉 중년남성의 옷이 자신에게 잘 맞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새로 사온 옷들은 일단 옷장에 고이 모셔두었다. 방금 사온걸 버릴 수도 없고, 기중도 사실 옷들에 대해 거부감이 없었다. 자신의 취향에 잘 맞는 중년남성의 옷이었다.
한바탕 옷 입기에 녹초가 되어 버린 기중은 아까 하던 계획수립에 돌입했다. 당장에 크게 뭔가를 할 수는 없지만 작은 것부터 시작하기로 생각했다.
그러나 아무리 고심을 해보고, 인터넷을 뒤져봐도 역시 별 뚜렷하게 사업을 시작할 만한 아이템이 떠오르지 않았다. 뭔가 보람도 되고, 열정을 가지고 일 할 수 있는 것을 당장 찾기에는 무리였다. 아무래도 수동적인 일처리가 몸에 밴 기중으로서는 사업 구상을 한다는 것이 결코 쉽지 않았다.
‘아~. 귀찮아. 일단 쉬고 나서 특별한 사업 아이템을 구상해야겠다.’
인간관계가 워낙 좁은 기중에게 조언을 해줄만한 사람이 별로 없다. 이전 직장의 이사님은 아직 제대로 볼 수가 없었다. 얼마 전에도 연락이 왔지만, 아직 때가 아닌 것 같아 다음 기회에 보자고 말했다.
기중 혼자서 사업을 구상한다는 것이 쉽지가 않았다. 그래서 기중은 더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평소에 해보지 않았던 고민으로 인한 스트레스였다.
‘오늘은 일을 많이 했으니, 푹 쉬고 내일부터 다시 달려보자.’
뭘 달린다는 건지 기중이 요새 좀 이상증세를 보이는 듯했다. 이것이 바로 수동적인 삶의 대표 케이스가 아닌가 싶다. 시키는 일은 잘해도 창의적으로 계획을 세워 추진하는 능력은 조금 부족했다. 아니다 많이 부족했다.
기중은 다시 어슬렁거리며 주방으로 나왔다.
“아주머니, 오늘 저녁은 뭐에요?”
“아직 4시밖에 안됐는데 무슨 저녁을 벌써부터? 사장님 몸매 생각해. 철저한 식단 관리를 해줄 테니 주는 것만 먹어야 돼.”
김 씨 아주머니도 요즘 건강식에 무쩍 관심을 집중해서 식단에 신경 쓰고 있었다. 기존에 먹는 음식들이 점점 빈약해 졌다. 대신에 웰빙이라고 하는 것들이 식탁에 올라왔다.
기중이 보기에는 풀밭이다. 이것도 풀 저것도 풀, 이러다가 초식동물로 진화하는 것이 아닌지 심각하게 고민했다. 사실을 말하자면 기중은 초식동물이다. 사회적인 초식동물. 여자 친구 한번 없었고, 사귈 생각도 못해본 초식동물이다.
“그리고 조금 있다가 수진이랑 애들 온다고 했어. 김 사장한테 뭔가 보여줄게 있다고 하던데.”
“그게 뭔데요? 혹시 성적표?”
“어라. 김 사장이 어떻게 알았어? 이번에 모의고사 봤다고 하더라고.”
“혹시 지난번보다 많이 올랐어요?”
“호호, 역시 우리 딸이야 이번에 전국등수가 꽤 많이 올랐어. 참 대견스럽지 뭐야.”
“우와. 아주머니는 정말 수진이 걱정은 없겠어요.”
“그렇긴 한데. 공부만 잘하고 예쁘기만 하면 뭐해.”
“네?
아주머니는 수진이의 성격이 너무 왈가닥인 것이 걱정스러웠다. 어느 정도 활달한 아이인 것은 환영할 만한 일이긴 하지만, 조금은 심하다고 부모인 자신도 인정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을 차마 남들 앞에 말하기가 민망했다.
그 때 아이들이 들어왔다. 아직 아이들이 들어왔는지 모르고 있던 기중은 아주머니에게 말했다.
“왜요? 수진이가 성격이 안 좋아요? 전 잘 모르겠던데.”
“그 여우가. 너무 까탈스러운 면이 있거든. 난 안 그런데 누굴 닮아서 그런 건지. 누가 데려갈지 참 고생할게 뻔해.”
마지막 대화를 수진이가 듣고 그 앞에 나타났다.
“엄마! 무슨 소리야!”
“에구머니나. 수진아. 너 누가 어른들 대화 엿들으라고 했어? 이 계집에 오늘 제대로 한 번 혼나 볼래?”
어쩐지 아주머니는 자신의 딸 흉을 보다가 들킨 것 때문에 과장스럽게 말하며, 수진이 노려봤다. 기중은 조용히 자신의 방으로 향했다. 자고로 부모가 자식을 교육 시킬 때는 삼자는 빠져주는 것이 예의였다. 그리고 자신은 그녀들에게 휘말리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