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n Struck by Thunderbolt Twice RAW novel - Chapter 28
00028 돈 벼락 맞은 사나이 =========================
“연희 씨 말이냐? 아까 같이 온 누나?”
“네. 무슨 사이에요? 왜 같이 왔어요?”
아이들은 다소 경계를 하며 물어왔다. 낮선 사람에 대한 경계이리라.
“그냥 아는 사이야.”
그냥 아는 사이로만 끝내고 싶지 않은 기중은 다소 씁쓸했다.
“애인이나 그런 거 아니죠?”
한 아이가 좀 더 직설적으로 물어봤다.
“아닌데.”
기중이 힘없이 대답했다.
“거봐, 누나가 이런 아저씨랑 애인이겠냐? 누나가 얼마나 예쁘고 착한데.”
다른 아이가 그 아이에게 말했다.
“당연하지, 저런 아저씨는 누나랑 안 어울려. 백마 탄 왕자 정도 되어야 우리 누나랑 어울리지.”
또 다른 아이가 기중의 가슴에 못을 박았다.
“맞아!”
모든 아이들이 합창하듯 큰 소리로 대답했다.
기중은 잠깐 망상을 했다.
‘백마는 끌고 올 수 있겠는데. 왕자가 되기는 쉽지 않겠지?’
기중은 아이들의 생동감 넘치는 모습에 자신도 치유를 받는 느낌이었다.
“애들아. 이 아저씨가 같이 놀아 줄까?”
기중은 최대한 자상한 미소를 지으며, 아이들에게 말을 건넸다. 아이들에게는 자상한 미소라기 보다는 음흉한 미소에 가깝게 느껴졌다.
“됐어요. 우리끼리 놀래요.”
아이들은 경계심을 여전히 풀고 있지 않았다. 보육원 아이들은 정에 굶주려 있기는 하지만, 처음 본 사람에게는 특히나 가까이 다가가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다.
기중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아이들과 같은 나이에 자신은 어떠했는가. 이 아이들처럼 밝게 웃지를 못하는 아이였었다. 항상 남들의 눈치를 보며, 친구들과도 잘 놀지 못했었다. 자신의 불우한 환경 때문에 위축되어 있었던 것이다.
“아저씨, 축구 잘 한다. 너희들 만 했을 때는 슛돌이 저리가라 했거든.”
“슛돌이가 뭐에요?”
“너희들 슛돌이 몰라? 만화에서 독수리 슛 날리는 축구선수인데.”
지금의 아이들이 오래전 만화의 슛돌이를 알 턱이 없었다. 기중의 자랑질은 아무 소용이 없었다.
“하여튼, 같이 축구하자.”
아이들은 마지못해 허락했다. 그래도 보육원에 연희랑 같이 온 손님에게 더 이상 경계만 할 수는 없었다.
운동장에는 흔히 볼 수 있는 축구 골대도 없었다. 골대를 표시하는 선을 그어 놓고 양 옆 경계에 돌을 놓아서 구분을 하고 있었다. 그래도 아이들은 신나게 뛰어 놀고 있는 것이다.
“아저씨는 저쪽 편으로 들어가요.”
“안 돼. 너네 편으로 해.”
아이들은 딱 봐도 운동을 잘 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는지, 서로 자신 편으로 받지 않으려고 했다.
결국은 기중이 같이 할 팀이 정해졌다. 같은 팀 아이들이 아무래도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다. 기중에게 한 아이가 다가와 말을 했다.
“아저씨, 수비나 보세요.”
기중은 자신의 실력을 보여주고 싶었다. 수비는 아무래도 화려하지 못하지 않은가. 축구는 뭐니 뭐니 해도 골을 넣으면, 최고가 되는 경기다.
그런데 수비는 잘해도 본전 못하면, 못하면 욕만 먹는 포지션이 아닌가.
“그래, 수비를 어떻게 하는 지 보여주마.”
기중은 아이들이 해봐야 얼마나 할까 생각했다. 자신은 어른이다. 아이들과 체격 조건이 다르다. 힘으로 밀어붙이거나 큰 신장을 이용하면, 별 문제 없을 거라 생각했다.
“헉, 헉. 좀 천천히 하자.”
시작 한지 10분 만에 기중의 저질 체력은 바닥을 드러냈다.
아이들은 평소에도 많이 뛰어다녔는지 좀처럼 지치질 않았다. 기중은 처음에 체격조건을 앞세운 수비를 펼치다가, 아이들의 재빠른 몸놀림에 점점 힘에 부쳤다. 그리고 지금은 뛸 체력이 안 남았다.
“아이. 아저씨 뭐해요. 빨리 막아요.”
상대편 아이가 결국은 기중의 빈틈을 이용해서 한골을 기록했다.
“와~. 아싸.”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는 기중이다. 결국 기중은 벤치가 있는 곳으로 와서 털썩 주저앉았다.
그 때 연희가 다가 왔다. 손에 주전자와 컵을 들고서 기중에게 말했다.
“힘들죠? 물 좀 드세요.”
연희가 따라 준 물컵을 들고 벌컥벌컥 마시는 기중이다.
“휴. 좀 살겠네요. 간만에 뛰었더니 애들을 못 따라 가겠네요.”
“아이들이 워낙에 놀기를 좋아해서 거의 하루 종일 뛰어다녀요. 그 만큼 도시 아이들과 체력이 다르죠.”
충분히 이해하겠다는 연희의 표정이다.
“자. 그럼 저도 한 번 뛰어 볼까요?”
그렇게 말하며, 기중이 빠진 팀으로 들어가는 연희였다.
“앗, 누나 그 쪽 팀으로 들어가면, 어떻게 해요.”
기중의 상대팀 아이가 연희에게 볼멘소리를 했다.
“저 아저씨가 빠졌으니까, 이 누나가 대신해야지.”
연희는 아이들과 자주 그렇게 놀았는지 꽤나 잘 뛰었다. 결국은 골까지 기록하며, 동점을 만들었다.
“시간 됐으니까. 이제 그만하자. 얼른 씻고 공부할 시간이야.”
연희는 아이들에게 큰 소리로 말했다. 아이들도 아쉬운 표정을 지었지만, 공부할 시간이 된 것을 아는지 군소리 없이 기중이 있는 곳으로 몰려들었다.
기중은 주전자를 들고 아이들에게 컵을 내밀었다. 그리고 차례차례 물을 따라 주었다. 물을 마시며, 잠시 벤치 주위에 앉아서 아이들이 가쁨 숨을 달래고 있었다.
연희는 아까 가져온 수건으로 아이들의 땀을 닦아 주기도 하고 다친 곳이 없는지 살피는 모양이다. 연희의 얼굴에도 땀이 송글송글 맺혀 있고, 즐거운 표정으로 아이들을 챙기는 모습이 기중의 눈에 들어왔다.
기중은 갑자기 그 모습을 사진으로 담고 싶어졌다. 얼른 스마트폰을 들어 연희를 찍었다. 그렇게 몇 장의 사진을 찍으니, 아이들과 연희 모두가 기중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사진을 찍을 때 나는 소리를 다들 들은 것이다.
“하…하.”
기중은 스마트폰을 든 손을 내리지 못하고 멋쩍게 웃었다.
“우리 단체 사진 찍을까?”
그때 연희가 즐거운 표정으로 아이들에게 외쳤다.
“네! 좋아요.”
연희는 주변에 있던 여자아이들도 불러 모았다. 모두 단체 사진을 찍는 대형으로 뭉쳐서 기중을 바라봤다. 기중은 다소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곧 웃음보이며 사진사 노릇을 했다.
“자, 찍습니다. 하나, 둘, 셋.”
여러 장의 사진을 찍었다. 아이들이 저마다 연희의 옆자리를 차지하려고 하는 장면도 모두 찍었다. 정말 즐거운 사진들이다. 보기만 해도 마음이 푸근해지는 장면이다.
연희는 아이들에게 씻고 공부할 준비를 하라며, 다독였다. 아이들도 연희의 말을 잘 듣고 우르르 건물 쪽으로 달려갔다.
아이들을 씻기고 나온 연희가 기중에게 다가 왔다. 방금 씻었기 때문에 비누 냄새가 났다. 기중은 묘한 느낌이었다. 화장기 없는 얼굴이고, 향수 냄새도 아니지만, 연희가 그렇게 사랑스럽게 느껴질 수가 없었다.
아이들을 대하는 태도에는 정말로 아낀다는 것을 저절로 알 수 있었다.
“아이들의 공부를 올 때 마다 조금씩 봐주고 있어요.”
기중은 지금까지 연희의 외모만 보고 호감을 느꼈다. 그런데 연희의 행동하나하나 마음 씀씀이를 보니 도저히 반하지 않을 수가 없게 되었다.
‘아. 이 여자의 미소를 지켜주고 싶다.’
아이들과 공부방에 모여서 뭔가를 가르쳐 주며, 웃고 떠는 모습이 보였다. 정말 평화로운 오후였다.
한참을 그렇게 연희와 아이들을 창문을 통해서 바라보고 있었다.
“아저씨. 누구세요?”
기중이 돌아보니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보였다.
“어. 저기 연희 씨랑 같이 왔는데.”
“네? 연희 누나 왔어요?”
맨 앞에서 기중에게 질문을 했던, 남학생이 놀란 듯 재차 물었다. 옆에 있던 여학생들은 바로 공부방으로 들어갔다.
연희와 인사하는 아이들이 보였다. 얼마나 기쁜지 연희의 손을 꼭 잡고 재잘재잘 떠드는 여학생들과 그 앞에 앉아서 여학생들에게 뭐라고 하면서 연희에게 말을 붙이려는 남학생들이었다.
기중이 여전히 끼어 들 틈은 없었다. 그래도 그 모습이 보기 좋은 지 미소를 지으며, 건물 밖으로 나왔다.
기중은 건물 주위를 둘러보았다. 오래된 건물이다. 페인트칠이 벗겨지고, 구석에는 시멘트가 떨어져 나간 자국도 보였고, 오래된 창문들도 보였다. 겨울에는 바람이 세어 들어갈 듯 위태로운 모습이다.
‘이런 곳에서 저 아이들이 지내는 건가? 안타깝구나’
연희의 의도인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오늘 반나절도 안 되는 시간동안 기중은 보육원에 와서 많은 것들이 느껴졌다. 아마도 연희는 모습을 보여주고 진심이 담긴 도움을 바라는 것 같았다.
‘연희 씨는 이런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던 건가? 도움을 원하는 건가?’
건물 뒤편에서 이런 저런 생각을 하고 있던 기중에게 원장이 다가왔다.
“에헴. 어이. 젊은 사장 여기서 뭐하냐?”
여전히 무서운 얼굴을 하고 기중에게 호통 치듯 원장이 말했다. 표정만 보면 화난 건지 아닌지 통 알 수가 없는 얼굴이다. 원장의 원래 말투가 그런 것뿐이다. 표정 또한 마찬가지다.
“아. 원장님. 잠시 둘러봤습니다.”
“뭐 볼게 있다고 둘러봐?”
“그냥….”
솔직히 볼 건 없다. 그냥 둘러 봤을 뿐이다.
“그래, 여기 시설이 안 좋아. 어때? 고쳐주고 싶은 마음이 팍팍 들지 않아?”
“아. 네….”
여전히 원장의 직설적인 화법에 적응이 되지 않은 기중은 속마음을 말할 수는 없었다.
“그래도 말이지, 이곳은 나와 내 아이들의 하나 뿐인 보금자리야. 아이들한테는 가장 편안한 곳이기도 하지. 무슨 말인지 알겠어? 그런 표정을 가지고 바라보면 애들이 기분 나빠 할 수도 있을 거라고. 아이들에게 필요한 건 단순한 동정이 아니라. 관심이 필요한 거라네”
기중은 괜한 동정심을 가졌던 건지 의문이 들었다. 자신의 보금자리를 불쌍하게 보는 것은 기분 나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자신도 경험해 봤던 일이다.
“죄송합니다. 그럴 의도는 아니었는데….”
“그래도 아이들이 좋은 시설에 살면 좋을 텐데 말이지. 허허.”
기중은 종잡을 수 없는 원장의 말에 어떻게 말을 해야 할지 몰라 했다.
“연희를 따라 여기까지 온 거 보니, 연희한테 꽤나 마음이 있나 보지?”
“그게….”
“그게. 뭐? 남자답게 행동해야지. 그래가지고 뭘 하겠어? 쯧쯧.”
기중도 본인의 행동에 답답함을 느꼈다.
“혹시 우리 보육원 후원할 생각 있으면, 잘 생각해보게. 돈으로 후원하는 것 까지는 말리지 않아. 우리 애들 좀 더 먹이고 좀 더 입힐 수 있게 만들어 줄 테니까. 대신 연희처럼 할 생각이 없으면, 아이들에게는 다가가지 않는 게 좋아.”
보육원 원장은 많은 경험을 했다. 벌써 보육원을 운영한지 40년이 넘어가고 있었다. 어느 때는 후원하는 것이 유행처럼 번져 갑자기 많은 후원이 들어오기도 하고, 어떤 때는 대부분의 후원이 끊어져 어려울 때도 있었다.
방학 때가 되면 찾아오는 대학생들, 선거철이 되면 찾아오는 선거 후보들, 그 들의 대부분이 오래가지 못한다. 어려운 사람들, 불쌍한 사람들을 돕는 다는 것이 그렇게 쉽지 않다.
특히나 다른 목적을 가지고 있다면, 더더욱 어려운 것이다.
정에 굶주린 어린 아이들이 봉사를 위해 와서 단 며칠을 머무는 사람들에게 정을 주었다가 가슴아파하고 그리워하는 모습을 보면 원장의 가슴은 찢어질 것 같았다.
그래서 오히려 봉사를 오는 사람들을 피해왔다.
그런데 연희는 달랐다. 10년 전 처음 부모의 손을 잡고, 왔던 어린 학생이 그 이후로 끊이지 않게 찾아오고 있었다. 한 달에 한 번 정도 찾아오기는 했지만, 아이들에게는 정말 정을 듬뿍 담아서 대했다.
지금 연희 곁에 앉아 있는 아이들이 그러했다. 마치 연희를 잃어버린 엄마처럼 대하는 것이다.
“원장님. 제가 후원을 해도 될까요?”
“왜? 연희한테 잘 보이게?”
“그것도 그거지만, 어릴 때 생각도 나네요.”
원장은 빤히 기중을 쳐다보기만 했다. 여전히 무서운 얼굴이지만, 기중은 이제 조금은 원장의 따뜻한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제가 어릴 때 부모님이 돌아가셨어요. 저 아이들보다도 어릴 때였죠. 그래서 할머니와 단둘이 살았어요. 그 때는 이 건물보다 낡은 집이었어요.”
기중은 원장에게 자신의 어릴 적 이야기를 시작했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원장에게는 해야 할 말 이었다고 생각했다. 자신도 아이들과 마찬가지의 슬픔을 알고 있다고, 어려움을 알고 있다고 항변하고 싶은 마음인 것이다.
“그렇구만, 그럼 자네 우리를 좀 도와주겠는가?”
“물론이죠. 도와주고 싶습니다. 아니 아이들의 저 행복한 표정을 지켜주고 싶습니다.”
기중은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동안 살짝 눈시울이 불거졌다. 누군가에게 자신의 과거를, 힘들었던 시절을 이야기 하는 것이 처음이다. 가슴속에 쌓여 있던 것들이 터진 것이다.
“조만간 다시 찾아오겠습니다. 계획을 세워서 말이죠.”
“맘대로 하게.”
다소 통명스럽기는 하지만, 눈빛에는 온화한 기운이 담겨 있다고 기중은 생각했고, 원장은 벌써 저만치 멀어져갔다.
운동장 주변에는 서울에서는 보기 힘든 오래된 아름드리나무들이 있었다. 후원에 대한 생각을 정리하며, 그 주변을 천천히 걸었다.
“오늘 어땠어요?”
환하게 웃으며, 양손에 머그컵을 들고 있던 연희가 기중에게 그중 하나의 머그컵을 내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