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niacs are Obsessed With the Fake RAW novel - Chapter (11)
“고, 공작님께서 왜 제 방에?”
왜 왔겠어.
데토가 어정쩡하게 의자에서 일어났다.
나는 손에 들린 수건을 백작의 얼굴에 집어 던졌다.
“그대가 들게.”
명분이 없어 못 끼어들었던 건데…….
“내 시중.”
이젠 명분이 생겼다.
내가 끼어들 명분이.
“제가 어찌 그런 천한 일을!”
“데미아 영애에게 자네도 시켰지 않나? 그리고 내 시중을 드는 게 천한 일인가?”
입매를 굳히며, 발로 책상을 살짝 밀었다.
어이쿠. 생각보다 많이 밀렸네?
백작이 윽-, 하며 배를 잡으며 책상과 벽에 가둬졌다.
“나와 황녀 전하의 이야기를 모를 리가 없을 덴데 말이지.”
책상에 발을 댄 채, 음산하게 눈을 치켜떴다.
“이건 내 명예에 먹칠하고, 내가 황실과 척지도록 하려는 술수가 아닌가?”
“아닙니다! 저는 그저 피로를 풀어 드리려……!”
“그걸 왜 영애에게 시키나.”
“다, 당연히 윗사람이 시키면 응당 그리해야지 않습니까.”
아, 계급이 깡패다?
“그러니 자네가 내 시중을 들게. 급히 오느라 종자를 두고 왔네.”
종자라 해 봤자 옷 갈아입히고 뭐 그런 걸 생각하나 본데.
“나는 피부가 예민해서 항상 흐르는 계곡물로 씻네.”
“……저희는 수도를 씁니다. 공작님.”
“그러니까 말일세. 이거 안 보이나? 한 번 여기 물로 씻었더니 뾰루지 난 거?”
“……깨끗한데요. 공작님.”
나는 뽀얀 피부를 더 들이밀었다.
“자네 눈이 좀 이상하군. 좀 맞으면 피가 머리에 몰려 잘 보일지도 모르네.”
“아, 아닙니다! 있습니다! 요기에 있는 것 같습니다!”
데토가 격렬하게 손을 저었다. 나는 흡족한 척 고갤 끄덕였다.
“그럼 자네는 이제 아침, 점심, 저녁 저기 계곡에 가서 물을 떠오게.”
“……저 계곡 말입니까?”
데토의 안색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그럴 만하지.
내가 가리킨 계곡은 바하트 진영 너머에 있는 곳이었으니까.
“거기가 지리상 수질이 좋네.”
“그렇지만, 그곳은 왕복만 4시간입니다! 3번이면 온종일 물만 떠야 할 겁니다! 더욱이 바하트 진영도 둘러 가야 하는데…….”
그래서 가라는 거야.
시간도 오래 걸리고, 네가 전선으로 밀어 넣은 사람들의 공포도 느끼고.
설마 이게 복수의 끝이겠어?
복수의 서막을 위한 준비지.
“윗사람이 시키면 응당 그리해야 한다, 라고 말한 건 백작이네.”
계급이 깡패라며.
난 공작. 넌 백작.
두 단계나 차이 나는데?
“오면서 보니 성문도 팔아넘긴 거 같은데, 폐하가 주신 지원금 다 어쨌나?”
나는 책상에 늘어져 있는 카드들을 힐끔 바라봤다. 어쨌긴, 도박으로 다 날렸겠지.
“하, 하겠습니다.”
“그래. 알겠네.”
데토에게 경고의 눈빛을 한번 날린 후, 그의 방을 나왔다.
“아앗.”
그러자 백작의 방문에 귀를 대고 있던 데미아가 엉덩방아를 찧었다.
나오는 신음을 손으로 막은 데미아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영애. 할 말이 있습니다.”
나는 내 방문을 손으로 가리켰다.
탁-.
문이 닫히자마자 본론을 입에 올렸다.
“영애는 알고 있었을 거라 생각합니다. 백작이 바하트 제국 황태자 켈리언에게 넘어갔다는 걸.”
“……그게 무슨!”
이 전쟁은 사실상 내부에 켈리언의 조력자가 없으면 불가능하다.
‘그 조력자는 데토겠지.’
공격은 바하트가 먼저였으나, 구실을 준 건 헤센 백작.
“보통의 영주들은 영지민을 보호합니다. 그들을 아껴서가 아니라 세수의 주 수입원이니 말입니다.”
“…….”
“그런데 백작은 영지민들이 몰살될 걸 알면서도 공성전이 아닌 전면전을 택했습니다. 마치 전쟁을 키우려는 사람처럼.”
“……..”
“그래야 베르웬 기사단이 나설 거고, 2황자를 공격할 테니. 그렇게 켈리언 그 작자는 손 하나 까딱 안 하고 2황자 세력을 쳤습니다.”
그 외에도 여러 추측들을 데미아 영애에게 차례대로 밝혔다.
“……안 그렇습니까?”
“공작님, 그저 억측이십니다!”
데미아의 말도 맞다.
이건 그저 내 상상에 불과하다.
하지만 꽤나 합리적인 상상.
“그러니까 그 물증을 영애가 찾아 주십시오.”
“……제가 말입니까?”
“이제부터 백작이 아주 바쁠 예정입니다. 내가 보낸 곳이 위험해서 기사들도 죄다 대동하고 나갈 테지. 그럼 저택이 빌 겁니다.”
“…….”
“그사이 물증을 찾으십시오. 이미 식솔들은 영애의 편 아닙니까.”
데미아의 눈이 살짝 커졌다. 이미 내부 사정은 다 파악해 뒀다.
“물증도 찾고, 숨겨진 재산도 찾고. 영애에게 칼이 될 수 있는 전부를 찾으세요.”
나는 반역자를 남의 손으로 잡고, 데미아는 가문을 지키고 복수도 하고.
서로서로 이득이 되는 거래였다. 또.
복수는 제 손으로 하는 게 짜릿한 법이지.
“데토가 척결되면, 영애가 원하는 사람이 영주가 될 수 있도록 도와주겠습니다.”
입이 썼다.
완벽한 영주감이 눈앞에 있는데 그녀를 영주로 세우지 못한다는 것이.
그래도 전면에만 못 설 뿐, 헤센 백작가의 실질적 영주는 이제 데미아가 될 것이다.
“손잡으시겠습니까?”
데미아에게 손을 내밀었다.
살짝 망설이던 데미아는, 총명한 눈으로 내 손을 잡았다.
“예, 공작님.”
오고 가는 눈길 속에 두 사람의 눈이 휘었다.
그렇게 이 소설의 악녀와 베르웬 공작의 은밀한 동맹이 이루어졌고.
‘이제 내가 증거 안 모아도 되겠네.’
나는 할 일이 조금 줄었다.
***
데미아는 엄청난 수완가가 분명했다.
데토가 물을 길으러 간 새벽. 몇 시간도 안 돼 내게 증거를 가져왔으니까.
‘이 증거면 켈리언을 압박할 수도 있겠는데?’
너무 유용한 증거라 협정에서 사용할 수도 있겠다 싶었는데.
켈리언을 보고 나서 확신했다.
내 착각이었단 걸.
“왔군.”
협정을 위한 막사에 들어서자, 듣기 좋은 저음이 귀에 감겨 왔다.
협상단의 책임자인 켈리언이 멀끔히 의자에서 일어났다.
‘와.’
정신이 멍했다.
레시우스같이 비현실적인 외모가 하나 더 있다니.
칠흑 같은 머리칼에, 검은 눈동자가 위험하게 빛났다.
로잘린을 통해 들었던 얘기로 구성한 내 머릿속 켈리언의 이미지는 악동 같은 이미지였는데.
악동은커녕.
‘짐승 같은데.’
실제로 만난 켈리언은 위험한 분위기를 풍기는 자였다.
원숙하면서도 한편으론 야성적인 짐승 같달까?
“반갑군.”
나는 넋 놓고 켈리언이 내민 손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투구를 써서 다행이었다. 안 그랬으면 멍청한 표정을 다 들켰을 거다.
“크흠.”
바하트 측의 누군가가 헛기침하며 눈칠 줬다.
아차 해서 켈리언의 손을 잡으려 하는데.
“악수를 그러고 할 건가?”
건틀렛을 낀 내 손을 보며, 켈리언이 한쪽 눈썹을 치켜들었다.
정신이 하나도 없네.
건틀렛을 빼, 맨손으로 켈리언의 손을 잡았다. 칼을 잡는 자라 그는 손이 거칠었다.
“투구는 안 벗을 생각이고?”
켈리언의 사나운 시선이 투구 속 내 눈을 응시했다.
예의가 아닌 걸 알기에, 투구를 벗는데 그 모습을 켈리언이 아주 진득하게 좇았다.
“다시 봐서 반갑네.”
내게서 눈을 떼지 않은 채, 켈리언이 고갤 비틀며 귓가에 속삭였다.
왜 저래? 나는 눈만 돌려 켈리언을 바라봤다. 두 시선이 마주치고,
“모두들 나가게. 황태자 전하와 할 말이 있네.”
나는 기사들을 포함한 참모진들을 막사에서 내보냈다. 그의 눈빛을 보고 알아차렸다.
역시 미친놈인 거 같다고.
“공작이 나와 단둘이 있고 싶었군.”
그거 아니거든? 네가 어떤 미친 짓을 할지 몰라서 다 내보낸 거거든?
“…….”
켈리언의 고갯짓으로 켈리언 측의 인사들도 다 나가 버리고, 막사에 침묵이 찾아왔다.
“황태자 전하께서 우리 측 인사에게 2황자 세력을 공격하라 명한 편지입니다.”
나는 데미아가 찾아낸 증거를 탁상 위에 올렸다.
수많은 물증들 중 하나였다.
하일렌 측과 내통했다는 것만으로도 켈리언은 곤란해질 텐데.
“이런.”
켈리언이 의자에 앉으며, 여유롭게 다릴 꼬았다.
입가를 매만지며, 편지를 보던 켈리언은 느리게 웃기까지 했다.
“공작, 귀엽군. 이런 것까지 찾아왔나?”
그의 미소가 짙어졌고, 나는 동시에 당황했다.
야. 이거 너한테 불리한 내용이야.
“나에 관해 궁금한 게 있으면 직접 물어보지 그랬나. 다 말해 줬을 텐데.”
다?
켈리언 같은 또라이라면 말해 줄 것도 같았다. 그래서 제일 궁금했던 질문을 질러 봤다.
“헤센 백작가 말고 하일렌에 더 있습니까? 이런 조력자?”
“그럼.”
켈리언의 순순한 대답에 나 역시 스르르 자리에 앉았다.
누구지? 대충 짐작 가는 곳이 있긴 한데.
“카반트 백작?”
한동안 날 빤히 쳐다보던 그가 피식 웃었다.
“그건 나에 대한 질문이 아닌데?”
켈리언의 긴 손가락이 편지지를 놓았다.
제 주인만큼이나 거친 글씨가 적힌 편지지가 탁상 위에 내려앉았다.
“다시 질문하겠습니다. 하일렌에 더 있습니까? 황태자 전하의 이런 조력자?”
“공작.”
낮아진 목소리와 함께 꽂힌 눈동자. 켈리언의 새빨간 눈동자와 마주쳤다.
아.
‘저 눈.’
로잘린을 통해 이미 알고 있었다.
흥분할 때나, 살의를 느낄 때 켈리언의 눈이 가끔 빨갛게 변한다는 걸.
여기서 중요한 건 ‘가끔’이라는 거다.
‘가끔이라며.’
아닌데 시뻘건데.
내가 투구를 벗은 그 순간부터 켈리언의 눈동자는 쭉 적색이었다.
“그건 대가 없이 말해주긴 좀 그런데…….”
켈리언이 탁상 위로 몸을 기울였다.
“말해 주면 나에게 무얼 해 줄 텐가.”
아깐 그냥 다 말해 준다며. 치사하네, 진짜.
“내 기사라도 되어 주겠나?”
켈리언이 내 턱을 쓸며, 그의 입술을 말아 올렸다. 무섭도록 잘생긴 얼굴이었다.
켈리언의 일렁이는 붉은 눈을 보고 깨달은 건,
얘 지금 나 홀리고 있네!
‘악마의 피가 흐른다더니.’
원작을 알고 있는 덕에 파악한 사실로, 켈리언은 전설에 나오는 악마의 핏줄이었다.
격렬한 감정을 느끼면 변하는 눈 색.
그리고 악마는.
‘사람을 홀린다!’
원작뿐 아니라, 이 세계의 전설에서도 나오는 얘기였다.
‘정신 안 차리면 진짜 홀라당 넘어가겠어.’
큰일 날 뻔했어.
표정을 딱딱히 굳히며, 나는 켈리언의 손을 무심한 척 잡아 내렸다.
어라, 이것 봐라? 하는 표정으로 켈리언이 눈썹을 까딱였다.
그런 미묘한 공기 속에서 구원자가 나타났다.
“공작님껜 우선 양해를 구하겠습니다.”
켈리언의 기사였다. 그가 내게 짧게 묵례했다.
그러고는 자리에 앉아 있는 켈리언에게 붙어서 급히 속삭였다.
“전하, 8황자가 사라졌습니다.”
뭐? 주인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