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niacs are Obsessed With the Fake RAW novel - Chapter (12)
무표정을 유지하고 싶었으나 눈이 저절로 커졌다.
‘원작이랑 너무 다른 거 아냐?’
아직 소설의 시작도 되기 전인데, 벌써부터 전개가 너무 꼬였다. 켈리언에 샤비얀까지.
원작에 의하면 이 둘은 지금 여기 말고 바하트 황성에 있어야 한다고!
“하.”
너무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이 샜다. 그에 내게 꽂히는 두 쌍의 눈동자.
뭐야. 왜 그렇게 쳐다봐.
“섭섭하군.”
켈리언이 한쪽 눈썹을 치켜들었다.
“내 말엔 표정 하나 안 바뀌더니.”
“…….”
“딴 놈 이름이 나오니 단숨에 바뀌네?”
이름이 아니라. 8황자라 했거든.
정정해 주고 싶었지만 켈리언의 눈동자가 너무 붉어 입을 다물었다.
켈리언이 손을 까딱하자, 그의 손짓에 옆에선 기사가 재빨리 허릴 숙였고.
“그 아이를 찾아서 끌고 와.”
켈리언은 기사를 향해 나지막하게 말했다.
하지만 그의 시선은 내게 꽂혀 있었다.
“다리를 부러뜨리든.”
다리를 부러뜨려?
찌푸려지려던 내 미간은, 곧 펴졌다.
켈리언의 눈이 집요하게 내 표정을 살피고 있었으니까.
“죽이든.”
죽여?
이 말엔 반사적으로 표정이 깨졌다.
그 순간을 포착한 켈리언이 조소를 지었다.
“공작. 남의 얘기를 엿듣는 건 나쁜 일이네.”
켈리언이 고갤 꺾으며 내게 여상히 말했다.
‘듣고 싶어서 들은 게 아니라 들렸다고!’
내가 귀가 좋아. 소드마스터라.
그리고 왜 맨날 뭐만 하면 죽인대…….
“전하. 그것이 바로 제가 전하의 기사가 될 수 없는 이유입니다.”
켈리언의 표정에 금이 갔다.
“뭐?”
“기사란 무릇 주군을 존경하고 경외해야 합니다. 제가 제 주군인 황제 폐하를 존경하는 건 그분의 온화한 성정 때문…….”
“하하하!”
진짜 당치도 않는다는 듯이, 켈리언은 배를 잡고 웃었다.
“그대의 황제가? 온화해?”
그의 눈이 검은 눈동자로 서서히 돌아오고 있었다.
우리 레시우스가 뭐 어때서?
“정말 순진한 건지, 아님 그대의 황제가 철저한 건지.”
턱을 괴며 날 바라보던 켈리언이 그대로 고갤 끄덕였다.
고개에 맞춰 흔들리는 눈은 또 핏물같이 빨갰다.
저 눈은 사람을 볼 때만 적색으로 바뀌나. 신호등이야 뭐야. 왜 계속 바뀌어.
“알았네. 나도 그렇게 해 보지. 그대의 황제처럼.”
뭘까. 뒷말이 생략된 것 같은 느낌은.
‘앞으론 모르게 죽이겠다.’ 이 말이 생략된 거 같은데?
“다시 명을 내리겠다.”
조용히 옆에 서 있던 기사가 다시 켈리언에게 붙어 섰다.
켈리언이 장난스럽게 말했다.
“죽이지만 마라.”
저 안엔 많은 내용이 생략됐겠지. 죽이지만 마라. 그러나 치명상은 괜찮다.
“……시간이 너무 지체됐습니다. 이만 협정을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기분이 급격히 다운됐다. 샤비얀은 절대 죽어선 안 된다.
‘샤비얀이 죽으면 세계멸망이니까.’
치명상이라도 입었다가 후유증으로 문제가 생기면?
“우선 하일렌 제국 측이 요구하는 사안은…….”
결국, 이것도 뒷수습은 내 몫일 테지. 오늘도 잠자기는 글렀다, 글렀어.
그때 내 말을 끊은 건 켈리언이었다.
“공작. 미안하네만, 우리 측에 사소한 착오가 있어 협정을 체결하기가 곤란하네.”
당연히 그렇겠지. 샤비얀이 도망쳤는데 그거 먼저 수습해야겠지.
“그래도 곧 다시 보도록 하지.”
아쉽게 짙은 눈썹을 문지르던 켈리언이 픽 웃었다.
“그럼 시일이 되는 때 뵙도록 하겠습니다.”
나는 그가 붙잡을 새도 없이 절도 있게 고개를 숙인 뒤, 미련 없이 막사 밖으로 나왔다.
“각하.”
“협정은 연기됐다.”
따라붙은 우리 측 기사들과 참모진에게 이를 알렸다.
그들의 얼굴엔 그럴 줄 알았다, 라는 표정이 번졌다.
“저게 바하트의 수준이지.”
“기대도 안 했습니다!”
당연히, 우리 공작님은 잘못 없고 켈리언이 문제다! 이런 반응이었다.
그리고 저 옆에서 내 말을 듣고 있던 바하트 측도.
우리 황태자 전하가 문제를 일으키셨군, 이런 표정을 지어 보였다.
“성으로 돌아가시겠습니까?”
당연히 내가 돌아갈 줄 안 기사가 의례적으로 물었다.
마음만은 정말 돌아가고 싶다만…….
“찾아야 할 사람이 있다. 기사들을 소집해라.”
아직 할 일이 남았다.
샤비얀이 켈리언에게 잡히다 크게 다치면, 샤비얀 꼬시기든 뭐든 시작도 못 해 보고 세상은 멸망한다.
그는 이 세계 신이 사랑하는, 신의 선택을 받은 자였으니까.
“작고 하얗고…….”
로잘린에게 물리도록 들었던 샤비얀의 묘사를 읊어 댔다.
“실낱 같은 은발, 투명하고 청아한 푸른 눈. 피부는 햇빛 한 점 못 본 것처럼 창백하며 손발은 매끈한 그런 남자를 찾아라.”
기사의 눈이 묘했다.
좀 변태 같았나?
“우리가 찾아야 하는 사람은 바하트 제국의 8황자다. 조심히 모셔 오도록.”
그 말에 기사의 눈빛이 수긍으로 바뀌었다.
샤비얀의 외모는 대륙 전체에서 화제가 될 정도로 아름다웠으니까.
‘로잘린의 계획대로라면…….’
나와 샤비얀은 여기서 만나면 안 된다.
황궁 안 아름다운 호수. 전설이 깃든 호수에서 운명처럼 만나야 하니까.
그러니 여기서 샤비얀을 만나는 건 되도록 피하고 싶은데 기사들에게 명만 쏙 내리고 들어가기도 좀 미안했다.
‘찾는 척만 하자.’
베르웬 기사들이 이렇게나 많은데 설마 나한테 잡히겠어?
“흐음.”
결정을 내린 나는 두 가지의 선택지를 번갈아 보며, 고민했다.
평야에 세워진 군영만 아니었으면, 제법 정다웠을 성벽 앞 풍경.
도망을 갔어도 사람이 있는 저쪽으로 갔을 거다. 그러면!
나는 그 반대편인 황량한 사막으로 눈을 돌렸다.
‘사막으론 안 갔겠지?’
그렇게 천천히 흑마를 몰며 사막으로 향했다.
***
르윈이 나가고 한참 뒤, 켈리언은 손목으로 눈을 가린 채였다.
“전하.”
의자에 깊게 묻혀, 한쪽 손을 늘어뜨린 켈리언에게 흑마법사가 다가왔다.
“왔나.”
켈리언의 수하 중 한 명인 흑마법사였다. 그의 어두운 로브 자락이 땅에 끌렸다.
“도저히 통제가 안 되는군.”
손목을 내리자, 켈리언의 눈동자가 드러났다.
홍채에 서렸던 붉은 기가 점점 걷히며 완전한 흑안으로 돌아왔다.
“그 힘을 통제하려 마십시오. 전하께선 고귀한 혈통을 이어받으신 존재입니다.”
악마의 피가 고결하다라. 켈리언이 코웃음을 쳤다.
“통제하려는 건 나약한 인간들이나 하는 겁니다. 전하는 갖고 싶은 그 무엇도 가지실 수 있습니다.”
악마가 되신다면 말이시죠. 흑마법사가 안타깝게 켈리언을 바라봤다.
켈리언은 악마의 혈통을 거부하며, 자신을 통제하고 있었다.
흑마법사는 통제력을 잃고 날뛰던 켈리언이 얼마나 강한 힘을 가졌는지 똑똑히 목격했었다.
“욕망에 충실하시면 됩니다. 가지고 싶으신 게 있으시면 꺾고 부수더라도 가지세요.”
“그렇군……. 그런데 괴이해.”
갖고는 싶은데 그자가 꺾이는 건 싫군. 켈리언은 말을 삼켰다. 그저 말없이 책상 위의 편지지를 지분거릴 뿐.
“한데 전하. 혹시 못 느끼셨습니까?”
“무엇을.”
켈리언의 손가락이 공작이 집고 있던 종이의 부분을 그리듯 쓸어내렸다.
“공작에게서 마기가 느껴졌습니다.”
마기라.
켈리언은 본인 자체가 워낙 마기가 센 탓에, 주변의 마기를 쉬이 읽어 내지 못했다.
그 고결한 공작이 저와 같은 악마라도 된다는 말인가. 그게 아니라면…….
“흑마법인가.”
흑마법의 모태가 마기였다. 악마가 아니라면 공작에게 흑마법이 걸렸다는 말.
“흑마법이라고? 하하하.”
소드마스터에게 저주와 같은 흑마법을 쓸 이는 없다.
공작이 저에게 흑마법을 걸도록 상대를 가만두지도 않았을 테고.
분명 어떠한 연유로 인해 공작이 일부러 흑마법에 걸렸을 것이다.
편지로 얼굴을 가리며, 켈리언이 고개까지 젖혀 가며 웃었다.
“하하. 너무 재밌는 자야. 그렇지 않나?”
살짝 내린 편지, 그 사이로 켈리언의 드러난 한쪽 적안이 빛났다.
‘저것은!’
흑마법사는 켈리언의 붉은 눈동자를 보며 눈을 부릅떴다.
켈리언의 적안은 쉬이 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켈리언이 평소 잘 억눌러 왔으니까.
‘베르웬 공작.’
흑마법사는 아까 막사를 나간 이를 떠올렸다.
공작을 본 이후로 켈리언은 무섭도록 통제력을 잃고 있었다.
흑마법사는 그렇게 찾아냈다.
켈리언을 진정한 혈통의 주인으로 만들어 낼 수 있는 자를.
***
그리고 그 시각.
“다리가 부러졌어.”
뜨거운 태양 아래에서 샤비얀이 절뚝이는 걸음을 재촉했다.
모래에 푹푹 빠지는 발은 그를 한계로 몰았다.
왼쪽 다리에 닿던 까칠하고 뜨거운 모래도 느껴지지 않았다.
마차에서 굴러떨어지며 다친 것이다.
‘괜히 이쪽으로 왔나 봐.’
절벽에서 베르웬 공작의 무용을 본 날. 그 밑으로 뛰어내릴 순 없어 조용히 막사로 돌아왔었다.
켈리언의 수하들이 샤비얀을 감시하지 않은 건 이유가 있었다. 아예 도망칠 길이 없었으니까.
‘황태자 전하께서 2황자를 잡고 막사를 옮기셨다! 우리도 움직여야지. 얼른 8황자를 짐마차에 실어.’
그러나 곧 기회는 돌아왔다.
짐마차에 실린 샤비얀은 문을 열어 마차에서 굴러떨어졌다.
그리고 결과는 이거였다. 사막에서 쫓기는 것.
“너무 아파.”
아프고, 배고프고, 힘들고, 쓰러질 것 같았다.
화려한 복장과 눈에 튀는 얼굴 탓에 인적 없는 곳으로 가야겠다 생각하긴 했지만.
‘사막이라니.’
이렇게 걷다가 말라 죽는 건 아닐까?
샤비얀은 하늘을 활공하는 새를 부럽게 쳐다봤다. 그래도 이리 자유롭게 죽는 것이니 좋아해야 할까?
“저기 있다!”
마른 바람 소리만 들리던 사막에서 들려선 안 될 소리가 들렸다.
바하트 억양이 섞인 대륙어.
“잡아라! 8황자다!”
켈리언의 수하였다.
말을 탄 그들의 손엔 황소나 노예를 포획할 때 쓸 법한 갈고리가 들려 있었다.
잘못하면 목이 꺾여 죽을 테지만.
‘더 이상 노예같이 살고 싶진 않아.’
샤비얀은 도망치지도, 고갤 돌리지도 않았다.
혈통 좋은 노예.
남들의 입맛에 움직이는 그런 노예로 살고 싶지 않았다. 포로로 끌려왔다는 건 누군가의 손에 넘어간다는 말.
샤비얀은 눈을 감았다. 그리고 목을 빳빳이 쳐들었다.
‘그래, 차라리…….’
저 고리에 목이 꺾여 죽어 버리자. 이것이 가장 편안한 죽음일지도 모른다.
켈리언에게 돌아가는 것보단, 더러운 삶을 사는 것 보다는…….
그 순간.
챙-, 하고 짧은 쇠붙이 소리가 사막을 가로질렀다.
몇 번의 서걱거림과 짙은 혈향. 툭, 하고 무언가를 치는 소리가 연달아 들리더니.
“괜찮습니까?”
샤비얀은 눈을 떴다.
작열하는 태양 아래, 인대와 발목에 피를 흘리며 쓰러진 사람들 사이에서 우뚝 서 있는 검은 기사.
‘이 사람은…….’
사막의 열기에 일렁이는 시야 속, 신기루 같은 저 사람은.
베르웬 공작.
“아.”
살결 하나 보이지 않는 검은 갑옷을 입고, 빈틈조차 허용하지 않는 자세로 서 있는 공작은 위압적이었으나.
샤비얀은 공작을 보는 순간 안도가 됐다. 그렇게 그는 공작의 품속에서 정신을 잃었다.
그리고.
‘왜 하필 난데!’
르윈은 이 상황이 당황스러웠다.
매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