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niacs are Obsessed With the Fake RAW novel - Chapter (17)
아흐, 죽겠다.
켈리언의 막사에서 헤센 백작령으로 돌아가는 밤길. 르윈은 취기가 오른 몸을 흔들리는 말 안장 위에 늘어뜨렸다.
“고마워.”
네가 최고야.
몸을 엎드린 채, 흑마에게 칭찬해 주듯 부드럽게 털을 쓸었다.
알아서 갈 길을 가던 말이 크흥-, 하며 기분 좋은 투레질을 했다.
“막사로 가지 말고 오두막으로 가자.”
알아들었는지, 말은 꼬리를 이리저리 흔들었다. 역시 똑똑하다니까.
내가 지금 막사로 가지 않는 이유는 분명했다.
‘샤비얀이랑 같은 막사 쓰기 불편하다고!’
극적인 첫 만남.
이를 위해 샤비얀에게 맨 얼굴을 만큼은 안 보여 주려 최선을 다하는 중이었다.
‘달빛이 샤르르, 호수가 반짝반짝, 반딧불이 싹! 그 몽롱하고 아름다운 호숫가에서 언니와 샤비얀은 만나야 한다고!’
로잘린이 그 첫 만남을 얼마나 강조해 왔는지 알고 있었으니까.
이미 그전에 만나서 꼬일 대로 꼬였지만. 뭐. 노력이라도 하는 거지.
“하아.”
취기가 묻은 숨을 뱉어냈다. 그리고 무엇보다 혼자서 쉬고 싶었다.
‘자는 동안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니까. 오늘은 혼자 있자.’
오래된 수련 탓에 몸은 내가 자는 동안 알아서 정화 작용을 할 것이다.
마나의 순환으로 체내의 혈류가 빨리 돌면 취기가 더 돌 거고.
더 최악은 흑마법이 풀려 여자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것.
“차무니 왜 닫혀 이냐?(창문이 왜 닫혀 있냐?)”
어후. 발음 꼬이는 거 봐.
역시 오늘은 혼자 있어야겠어.
이힝-.
흑마는 못 알아듣는 소리 하지 말라는 듯, 꼬리를 좌우로 퍽퍽 흔들었다.
“창문!”
나는 꼬인 발음을 바로 하며 저 너머 오두막의 창문 가리켰다.
저번에 나오며 경황이 없어 창문 못 닫고 나왔었는데……. 왜 닫혀 있지? 바람에 닫혔나?
이히힝-.
영민한 말은 술주정하다가, 어느새 혼자서 뻗은 나를 깨웠다.
말의 투레질에 눈을 뜨니 오두막 앞이었다.
하아. 당장 눕고 싶지만. 집, 착…… 광공이 더럽게 안 씻고 잘 수는 없지.
‘그래. 씻자, 씻어.’
나는 착실하게 냇가에서 세안까지 하고.
‘이것도 좀 닦자.’
습관대로 투구랑 검도 손질하고서야 오두막의 문을 열었다.
끼익-.
문이 열리며 허름한 오두막 내부가 보였다.
문간에서 불어오는 밤바람에 작은 창이 덜컥-, 하고 열렸다. 역시 바람이 범인이군.
낡고 초라하지만,
‘지상 낙원이 따로 없네.’
혼자만의 시간에 감격까지 들 정도였다. 그간 막사에선 편히 지낼 수가 없었다.
‘혹시 샤비얀이 볼지도 모르니까 얼마나 멋진 척을 했는지.’
밖에선 근엄한 공작, 막사 안에선 과묵한 공작.
하루 종일 무게 잡고 있느라 내 근육들은 언제나 매 순간이 긴장 상태였다.
봐라. 지금도 습관 돼서 멋지게 서 있는 거.
“…….”
어차피 혼자인 거 자세를 풀며 채신없이 근육을 풀까 했으나, 얼른 눕고 싶어서 포기했다.
모포 더미가 구석에 말려 있는, 나름 넓은 침대가 날 유혹하고 있었으니까!
‘음?’
근데 그 모포 더미가 움찔거리는 것처럼 보였다면, 내 착각이겠지?
하하. 이래서 술은 적당히 마셔야 한다니까?
척-.
달빛을 조명으로 삼아, 갑옷을 하나하나 벗기 시작했다.
안에 입은 가죽 보호대까지 다 제거하자, 간단한 셔츠와 바지 차림이 됐다.
정갈하게 정리한 갑옷과 보호대를 테이블에 정렬했다. 그 후 침대로 다이빙하려 하는데.
“하.”
짜증스러운 한숨이 저절로 흘렀다.
신발을 안 벗었구나.
복잡하게 설계된 철제 신발을 아연하게 보다가 몸을 숙였다.
신발까지 다 벗고 나서야 나는 침대에 누웠다.
어딘가 봉긋하게 오른 침대 구석의 모포를 잡아당기려다가.
‘더운데 덮지 말자.’
이런 생각에 잡았던 모포를 놓았다.
‘내일 일어나면 멀쩡해지겠지.’
잠을 자는 사이, 내 몸은 알아서 마나를 흡수하고 몸속 곳곳의 나쁜 것들을 배출할 것이다.
“하아…….”
체내에서 마나가 돌며 해독을 시작했다. 혈류가 빨리 돌자, 술 냄새가 더 진해졌다.
와. 갑자기 얼굴이 후끈해지네.
더위 탓에 셔츠 단추도 몇 개 풀려 했으나, 취기에 손이 계속 미끄러졌다.
투두둑-.
결국 위쪽 단추 두 개를 뜯어 바닥에 던지고 나서야, 목 주위에 바람이 스몄다.
한꺼번에 몰려오는 숙취 탓에 머리가 몽롱했다.
‘진짜 취하긴 했네.’
단추가 바닥에 구르는 소리에, 모포 더미가 얕게 흔들렸다.
응? 술 때문에 헛것까지 보이네. 모포가 왜 저 스스로 움직이냐고.
‘생각보다 더 힘드네.’
괜히 멋쩍어, 솟아오른 모포 더미를 손으로 누르려던 순간.
해일처럼 몰려온 수마에 그대로 잠에 빠졌다.
***
샤비얀은 극도로 긴장한 몸을 풀었다.
공작의 손이 모포 더미로 다가올 땐, 눈을 질끈 감기까지 했다. 그러나.
“…….”
잠이 들었는지, 공작의 손이 스르르 떨어졌다.
샤비얀은 안도하며 입을 틀어막은 두 손을 풀었다. 하나 안도는 다시 당황과 경악으로 바뀌었다.
‘이제 어떡해!’
제 목덜미에서 느껴지는 뜨거운 숨결. 자신의 바로 등 뒤에 공작이 누워 있었다.
샤비얀의 뺨이 붉게 물들었다.
‘일이 이렇게 될 줄은…….’
샤비얀이 이 오두막으로 오게 된 건 이유가 있었다.
요즘 공작은 일도 바쁜데, 자신 때문에 막사의 간이침대에서 몸을 구기고 자야만 했다.
샤비얀은 그게 너무 미안했다.
내가 땅바닥에서 잘지 언정 우리 공작님은 침대에서 재워야 하는데!
-저는 오두막에서 밤을 보낼 테니, 공작님께서 침대를 쓰시지요.
그래서 이런 쪽지까지 두고, 모포로 몸을 가린 채 기사의 눈을 피해 여기까지 왔다.
끼익-, 하고 문이 열릴 땐 얼마나 놀랐던가.
처음엔, 켈리언의 수하들이 자신을 잡으러 온 줄 알았다.
그래서 최대한 벽 쪽으로 바짝 당겨 구겨진 모포처럼 위장했었다.
철컥-.
하지만 들려온 건 철제 갑옷이 옅게 부딪히는 소음.
샤비얀은 단번에 이 소음의 의미를 알아차렸다. 바로 기사가 갑옷을 벗을 때 나던 소리였다.
‘큰일이야!’
험한 일을 당할지도 몰라.
샤비얀은 황성에서도 자신에게 치근덕대는 못된 자들을 만나 왔었다.
그때는 황궁이라는 울타리라도 있었지만 이곳은…….
‘막사를 나오는 게 아니었는데. 공작님이 쪽지를 보고 구하러 오시지 않을까? 어쩌면 좋지? 모포로 덮칠까? 아냐, 갑옷을 입었으면 기사란 말이잖아. 내가 이길 수 있을까?’
별별 생각이 다 떠올랐다.
샤비얀은 떨리는 손가락으로 모포를 살짝 올렸다.
탁상 위에 놓인 검은 투구와 은사로 문양이 새겨진 망토.
뒤돌아서 갑옷을 벗고 있는 이는…… 베르웬 공작이었다.
안심한 샤비얀이 모포에 벗어나려 꼼지락거리던 차에.
“하.”
공작의 짜증 섞인 한숨에 샤비얀이 그대로 굳었다.
‘어떡해…….’
샤비얀은 그제야 알아차렸다.
공작이 막사를 두고 이 오두막에 온 이유를.
‘나 피해서 여기로 오셨나 봐.’
공작이 표현을 안 해서 그렇지. 그 바쁜 일정에 샤비얀과 막사를 쓰는 게 편했을 리가 없다.
시무룩해진 그가 모포에서 벗어나려던 노력을 멈췄다.
그렇게 샤비얀이 타이밍을 놓치고.
‘……어쩌지.’
그리고 현 상황이었다.
“하아.”
뒤에서 느껴지는 공작의 숨결에, 샤비얀은 벽만 보고 눈만 끔뻑였다.
공작의 곁에선 달큼한 포도주 향이 진하게 흘렀다.
공작이 왜 샤비얀의 어설픈 위장에 속아 넘어갔는지 납득 되는 부분이었다.
투두둑.
공작이 단추를 뜯어, 바닥에 던졌던 소리가 아직도 생생했다.
생각해 보니 공작은 철통같이 자신을 감싸던 갑옷을 벗은 상태. 얕은 셔츠 차림일 거였다.
샤비얀의 등 뒤에서 호흡마저 잔잔한 공작의 옅은 숨소리가 들려왔다. 공작은 깊게 잠든 듯했다.
‘몸을 돌릴까?’
위험한 충동이 샤비얀을 휘감았다.
이 등만 돌리면 공작의 얼굴을 볼 수 있다!
공작은 유독 자신에게 얼굴을 안 보여 주려 했었다.
침대에 설치된 천도 딱 공작이 자주 있는 곳만 교묘히 안 보이도록 설치돼 있었고…….
‘그 못생긴 종자 말로는 공작님이 자신보다 못생겼다고 했어.’
그런데 공작의 초상화를 본 바하트 황궁의 궁인들은 그가 미남이라 했다.
실물과 그림 속 얼굴이 다르다? 외모에 열등감이 있는 귀족들이 초상화에 장난을 쳐 놓은 경우가 종종 있었다.
샤비얀은 공작도 역시 그런 유라고 추측했다.
‘처음에는 공작님이 그런 일을 했나 싶어 놀랐지만……. 어떤 이유가 있으시겠지.’
공작을 위해, 샤비얀은 궁금증을 참아 내려 했다.
“더워…….”
자극적일 정도로 아름다운 저 목소리만 아니었다면 말이다.
달뜬 호흡과 섞여 나오는, 잠긴 중성적인 목소리가 묘하게 야릇했다.
‘살짝만 보면 괜찮지 않을까. 나는 공작님의 외모가 아무리 추악해도 실망하지 않을 거라고!’
샤비얀은 스스로를 납득시켰다.
‘그리고 공작님 몰래 빠져나가려면 어차피 몸을 돌려야 하니까…….’
그는 양심상 한쪽 눈만 뜬 채, 몸을 돌렸다. 그리고 눈앞에 컴컴하게 드리운 모포를 내렸다.
“……!”
아.
맺지 못한 감탄이 흩어졌다.
흑의 기사라는 위명 탓에 짙고 우락부락한 얼굴을 예상한 샤비얀의 예상은 무참히 깨졌다.
달빛에 물든 잿빛 머리에 투명한 피부, 오밀조밀한 중성적인 이목구비는 신관같이 청초하고 고아했다.
강하게 깨문 듯이 붉어진 입술이 얕게 헐떡이며 숨을 밀어냈다. 그 모습이 매우…….
‘위태로워 보여.’
마침 공작의 젖은 머리칼에서 물방울이 뚝 떨어졌다.
물방울이 공작의 눈가에 고여 흘렀다.
마치 눈물처럼.
“……침대에 올라온 건 공작님이세요.”
샤비얀이 아주 조그맣게 웅얼댔다.
“그러니 저는 아무 잘못 없습니다.”
샤비얀이 멍한 표정으로 그 물방울을 손가락으로 쓸었다.
악몽을 꾸는지, 살짝 미간을 찌푸리던 공작은,
“…….”
스르르 얼굴을 풀었다.
희고 고운 그 평온한 낯에 샤비얀의 눈이 흔들리는 그때,
끼이익-.
녹슨 경첩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