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niacs are Obsessed With the Fake RAW novel - Chapter (18)
오두막 문으로 들어온 것은 검은 까마귀였다.
‘웬 까마귀가?’
샤비얀은 까마귀를 내쫓으려 했다. 혹여, 공작이 깨면 안 되니까.
‘잠깐. 그런데 까마귀가 문을 열고 들어와?’
그게 가능한가.
샤비얀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보다 더 짜증이 나는 건.
‘소름 돋아.’
공작의 눈을 쓸고 있는 자신의 손.
그 손을 아주 빤히 쳐다보는 까마귀의 눈이었다.
그럴 리가 없는데, 왠지 까마귀가 웃고 있다는 느낌이 든달까.
“8황자 전하.”
까마귀의 입에서 음산한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그 괴이한 광경에 샤비얀의 눈이 커졌다.
“그분을 깨우고 싶으신 게 아니시면 밖으로 나오시지요.”
“……알겠네.”
샤비얀을 알고 있고, 이상한 요술을 부리는 자.
바하트 제국과 연관된 이거나 켈리언의 수하일 거다.
“그냥 닫으세요.”
까마귀는 문을 아주 천천히 닫고 있는 샤비얀을 재촉했다.
그럼에도 샤비얀은 정말 느리게, 녹슨 경첩 소리가 나지 않게 조심히 문을 밀었다.
쿵-.
그런 샤비얀이 답답한지, 까마귀가 퍼드득 날아 문을 뻥 찼다.
샤비얀이 어떻게 그런 짓을 할 수 있냐는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술을 많이 마셔서 안 깹니다.”
사람으로 돌아온 흑마법사가 냉소적으로 말했다.
‘소드마스터도 사람은 사람이지.’
쉴 틈 없는 이동에 전투, 이어서 바로 협정. 그사이 헤센 백작가의 일도 처리한 듯하고, 8황자도 구했으니 공작의 그간 일정은 살인적이었다.
극도로 쌓인 피로감에 체내의 정화 작용도 잘되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그렇지! 우리 공작님이 깨시면 어쩌나!”
우리 공작님?
벌써 앞에 ‘우리’가 붙었군.
흑마법사는 예상보다 일이 더 잘 풀릴 거 같아 기분이 좋아졌다.
“제가 온 이유는 켈리언 님의 명령을 전하기 위함입니다.”
“큰형님이?”
켈리언의 이름이 나오자 샤비얀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켈리언의 수하라고 짐작하고 있었지만, 막상 들으니 입이 썼다.
“무엇인가. 형님이 내게 내린 명령이.”
샤비얀이 실의에 빠져 팔을 툭 늘어뜨렸다.
켈리언의 명령은 대충 예상이 갔다. 하일렌의 황제를 홀려 폭군으로 만들라 그런 명이겠…….
“베르웬 공작을 유혹하시랍니다.”
샤비얀이 땅에 박혔던 시선을 들었다.
공작을? 분명 베르웬 공작이라고…….
“……무, 무엇이라 했느냐?”
“전하는 베르웬 공작을 유혹하셔야 합니다.”
충격받은 샤비얀이 몸을 비틀거렸다.
흑마법사는 그 모습에 속으로 웃음을 흘렸다.
사실 그가 하고 있는 말은 켈리언이 말한 것과는 완전히 반대의 내용이었다.
‘너는 샤비얀에게 전해라. 공작을 건드렸다간 무사하지 못할 거라고.’
하지만 이 명을 곧이곧대로 전한다면, 켈리언이 진정한 혈통의 주인이 될 수 있겠는가.
아니 될 테지. 제 주인은 악마의 핏줄인 자신 스스로를 혐오하니까.
‘하일렌 황제를 유혹해 공작과 멀어지도록 만들라, 그렇게 똑똑히 전해’
켈리언의 이 명은 이리 바뀌어야 한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베르웬 공작을 품으세요.”
“…….”
“몸을 쓰든, 머리를 쓰든. 전하가 배운 대로 말입니다.”
샤비얀은 하얗게 질렸다. 흑마법사는 이를 보며 속으로 조소했다.
샤비얀은 이리 써먹도록 만들어진 자 아닌가.
그가 황실로부터 강제로 기본 매너부터 밤 생활까지 배운다는 걸 모르진 않았다.
그러니 사용해야지.
‘부디 켈리언 님을 위한 재물이 되어 주세요. 8황자.’
켈리언 님이 공작에게 미치신 듯하니, 당신이 그 불쏘시개가 되어 주어야 하겠습니다.
질투로 켈리언 님이 미치게 말입니다.
***
아. 개운해.
오랜만에 느끼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이내,
‘잠시만.’
싸한 기분.
이럴 땐 보통 지각이던데. 그 생각이 들자마자 반사적으로 몸을 일으켰다.
“하. 늦잠 잤어.”
이 세상에서 태어난 후, 첫 늦잠이었다.
낡은 오두막은 이미 새벽의 어스름이 아닌 따사로운 햇살로 물들어 있었다.
부유하는 허공의 먼지들을 잠시 멍하니 보고 있다가.
“아! 회의 있는데!”
급하게 텅 빈 침상에서 일어섰다.
나는 아침마다 군사 회의가 있었다. 그 후에는 참모진들과의 회의가, 그다음에는 기사단 오전 조회가…….
‘내가 대장이라고!’
하핫, 늦었습니다-, 하고 머쓱하게 들어갈 자리가 아니었다.
최종 결정자인 내가 없으면 일이 안 돌아가니까 아마 전체 일정이 밀리고 있을 거다.
쿵-.
바쁘게 준비하다가 결국 발까지 찧었다.
소드마스터여도 책상다리에 발가락을 찧으면 아팠다. 나도 알고 싶지 않았던 사실이다.
마지막으로 신발까지 다 신자, 근엄한 베르웬 공작이 되었다.
“후.”
텅 빈 오두막을 짧게 훑으니, 기분이 울적했다.
무거운 갑옷이 오늘따라 더 무겁네.
나도 발 하나 찧어도 아픈 사람인데 좀 쉬고 싶다. 쉬고 싶다고오-!
그러나 이런 한탄과 달리, 내 몸은 착실히 움직였다.
챙그랑-.
혹시 돌아올지 모를 오두막 주인에게 사례도 하고.
휘익-.
물가에서 혼자서 놀고 있는 말도 휘파람으로 불렀다.
윤기 흐르는 검은 털을 날리며, 흑마가 우아하게 앞에 섰다. 나는 단번에 안장에 올라탔다.
‘그런데 왜…….’
어젯밤 누구랑 같이 있었던 것 같지?
술에 취해 뻗어 있는 동안, 누군가 내 눈을 쓸었던 것 같기도 하다.
‘설마…….’
귀신?
소름이 돋는 목덜미를 쓸고, 살짝 달렸다. 그러자 금세 막사에 도착했다.
“각하!”
“공작님!”
이럴 줄 알았다.
막사 앞에는 긴 줄이 늘어져 있었다. 베르웬 기사들, 협상 실무진들, 책사 등.
“안 계셔서 기다렸습니다.”
“회의에 안 오셔서 저희도 이리 백작성에서 왔습니다.”
“바하트 진영에 억류되신 줄 알았습니다!”
아우성치는 사람들을 한 손을 들어 제지했다.
“크흠. 훈련하다가 조금 늦었다.”
늦잠 잤다고는 말 못 한다.
“역시!”
앞에선 이들의 얼굴에 존경심이 스몄다. 특히, 베르웬 기사들은 감명까지 받은 표정이었다. 아. 양심 찔려.
“회의는 군사 회의부터 하지. 그 후엔 내가 백작성으로 가서 실무진 회의에 참석하겠다. 그리고 기사단 오전 조회는 오늘은 생략한다.”
기사들이 영문 모르겠다는 듯이 서로를 쳐다봤다.
아직 전쟁도 안 끝났는데 조회를 생략한다니. 오전 조회는 군의 기강을 잡는 중요한 행위였다.
“협정이 체결됐다.”
나는 얼른 그 이유를 설명했다.
전쟁이 끝난 이상,
“정말입니까. 와아!”
오늘은 포상 휴가였다. 내가 켈리언이 준 협정서를 품 안에서 꺼내 보였다.
“바하트 황태자가 정말 거기에 서명했습니까?”
옆에 있던 문관들이 다 달라붙어, 협정서를 구경하기 시작했다.
신기하겠지. 나도 신기하다.
누가 봐도 바하트 제국이 불리한 조항들. 나 역시 이리 쉽게 서명받을 줄은 몰랐다니까?
‘술 몇 잔에 이 정도면 나쁘지 않은 거래였지.’
그런데 마지막엔 술도 다 안 마셨는데 왜 서명해 줬을까. 정말 종잡을 수 없는 캐릭터라니까.
“공작님.”
기뻐하는 베르웬 상급 기사들과 문관들. 그 높으신 귀족들을 제치고, 허름한 복장의 하인이 내게 다가왔다.
“……데미아 님께서 뵙길 원하십니다.”
헤센 백작가의 하인이었다.
작게 속삭인 하인에게 알았다는 듯 고갤 끄덕였다.
“알겠다. 참모진 회의가 끝나면 가겠다.”
이제 데미아를 만나서 몇 가지 부탁만 하면, 정말 하일렌 황도로 돌아갈 수 있다!
***
“공작님. 이 은혜 평생 잊지 않겠습니다.”
무릎 꿇은 데미아의 치맛자락이 바닥에 넓게 펴졌다.
그녀가 고갤 숙이더니, 갖가지 문서들을 바닥에 늘어놓았다.
데미아가 늘어놓은 문서들 몇 가지를 들어보았다.
헤센 백작, 데토의 비리 증거가 될 문서들이었다.
“은혜를 베푼 것이 아닙니다. 인재를 등용한 것이지요.”
흡족하게 내용을 확인한 나는 무릎을 낮췄다.
아직 찾을 증거가 많이 있겠지만 역시 대단하다. 이 정도를 짧은 시간에 찾아냈다는 게.
“헤센 백작가는 바하트 제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중요한 요충지입니다. 이곳을 이런 식으로 방치할 순 없습니다.”
“…….”
“영애가 능력이 있기에, 기회를 준 것입니다.”
데미아는 똑똑하니, 내가 준 기회를 아주 유용하게 써먹을 거다.
대리인을 세워 놓고 자신이 실질적 영주로 활약할 테지.
“저는 베르웬 공작이라고 합니다. 저 옆 영지 영주인데, 앞으로 잘 부탁하겠습니다.”
내 실없는 농담에 데미아도 긴장을 풀고 웃었다.
로잘린에게 하듯, 데미아를 매너 있게 테이블로 이끌었다.
“……공작님.”
데미아가 입을 달싹이다, 결국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맑고 총명한 호박색의 눈이 반짝였다.
역시, 딱 차기 영주 감인데.
“데토의 처분은 폐하와 논의해 보겠습니다. 가장 적절하고 효과적인 순간에 터트릴 예정입니다.”
“예.”
“그러니 조금만 참으십시오.”
둘러 말했지만, 더러운 꼴 좀 더 봐야겠다는 말이었다.
“희망이 있다면 언제까지라도 가능하답니다.”
기분이 나쁘기는커녕. 데미아는 기분이 좋아 보였다.
이럴 때가 딱 부탁할 타이밍이지.
“혹시 부탁이 있는데 말해도 되겠습니까?”
“……공작님 같은 분이 제게 부탁을요?”
데미아가 크긴 하지만, 가구를 다 팔아먹어 휑하다 못해 초라한 자신의 방을 훑었다.
그녀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곧 고양이 같은 눈꼬리를 휘며 웃었다.
“혹시 저를 원하시는 거라면…….”
“아니. 그건 아닙니다.”
“……너무 단칼에 자르시니 민망하네요.”
전혀 안 민망해 보이는데.
웃는 데미아의 얼굴이 장난스러웠다.
“마차 하나를 구해 주십시오. 다리가 다친 이가 탈 것이라 내부는 침상으로 개조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이런 식으로.”
나는 회의에서 끄적인 그림까지 건넸다.
그걸 본 데미아의 표정이 묘해졌다.
“그리고 가는 길에 심심할지도 모르니 책들도 준비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제가 그 사람의 취향을 몰라서 영애께서 알아서 준비해 주시면…….”
“공작님.”
데미아의 맑은 눈동자가 나를 향했다.
“황녀 전하가 부럽네요.”
“……예?”
데미아의 표정은 딱 그랬다.
‘이 남자 탐난다.’
그 후론 당황해서 횡설수설했던 거 같다.
데미아의 방에서 나와선 자신감에 찼던 거 같기도 하다.
‘그래! 만난 지 얼마 안 된 데미아도 나한테 호감 보일 정도로 내가 매력 있다는 건데…….’
내가 겉모습은 남자일지언정!
샤비얀도 얼마든지 꼬실 수 있지 않을까? 어차피 여긴 BL 소설 안이잖아!
하지만 그런 생각과 달리. 현실은 냉혹했다.
“황자 전하. 마차에 오르셔야 합니다. 제가 부축을 해 드릴 테니…….”
“마, 만지지 마세요! 제, 제가 알아서 타겠습니다…….”
내 손이 닿으려 하자마자, 샤비얀이 질겁하며 몸을 뒤로 뺐다.
“저…… 마, 만지시지 마세요. 전, 전…….”
샤비얀은 울먹거리며 말을 다 잇지도 않았다. 그는 아픈 다리를 질질 끌며 혼자 마차로 걸어갔고.
‘……망했다.’
나는 허망하게 뻗은 손을 걷어 냈다.
로잘린. 나 망한 거 같아.
지금 내가 꼬셔야 할 대상이 날 무서워하고 있는 거 같아.
이제 어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