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niacs are Obsessed With the Fake RAW novel - Chapter (19)
어디 아픈가.
선두에 선 나는 기사들의 행렬 끄트머리에서 따라오는 마차를 바라봤다.
샤비얀이 탄 마차였다.
“오늘도 식사를 남기셨나?”
“예.”
식사를 안 했다고?
로잘린이 내게 말한 광공의 특징이 있었다.
밥은 꼭 잘 먹여야 한다고.
집착광공들은 다리를 부러뜨려도 밥은 꼭 먹인다고 했다.
‘아직도 이해가 안 되긴 해.’
자기 다리를 부러뜨린 사람이 주는 밥을 먹어? 나 같아도 안 먹을 거 같은데.
다릴 부수니까 안 먹지.
“잠시 쉬었다 가자.”
“예.”
그렇다고 내가 샤비얀 다리를 부순 것도 아니고.
물론 샤비얀의 다리가 부러지긴 했지만, 내가 그런 게 아니라 자기가 넘어져서 그런 건데.
왠지 억울했다. 왜 밥을 안 먹을까.
‘입맛에 안 맞나?’
아니면 멀미 때문인가? 나는 고삐를 틀어 샤비얀의 마차로 천천히 다가갔다.
톡톡-.
마차를 노크하자, 작게 난 차창이 열렸다. 열린 틈 사이로 침대처럼 개조된 내부를 빠르게 살폈다.
‘얼마나 운 거야.’
이불 위로 눈두덩이 모양으로 난 눈물 자국이 선명했다.
얼마나 운 건지, 샤비얀의 눈가가 빨갛게 짓물러 있었다. 창문을 빼꼼 보던 그가 날 보고는 재빨리 모습을 감췄다.
“……죄송합니다. 먹으려고 했는데 토할 거 같아서……. 그러면 더 민폐일 거 같아서 남겼습니다. 다신…….”
“어디 아프십니까?”
내 말에 마차 안에서 휙휙-, 고개 젓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닙니다! 저 정말 괜찮습니다! 저 때문에 멈춘 거라면 그냥 빨리 출발해 주세요. 저는 정말 괜찮아요. 공작님.”
샤비얀 너 되게 낯설다.
이제 보니까 말 엄청 잘하네.
내 앞에서는 계속 말을 더듬었던 거 같은데, 내가 안 보이니까 아주 청산유수였다.
내가 무서워서 더듬었던 거구나…….
“혹시 답답하신 거면 잠시 나오셔도 됩니다.”
“……예.”
하지만 그렇게 한 10분이 지나도, 샤비얀은 마차 안에만 박혀 있었다.
정말 왜 저러지? 마차 안에만 있으면 답답할 텐데. 혹시…….
‘우울한가?’
그럴 만했다.
지금 샤비얀은 집에 돌아가는 게 아니라, 적국의 황성으로 끌려가는 중이니까.
그래서 울었구나. 납득 됐다.
‘그렇다고 누워만 있고 울기만 하면 더 우울할 텐데.’
그에 생각이 닿자, 정말 순수하게 샤비얀이 걱정됐다.
흐음. 우울증이란 개념이 이 세상에선 없지만, 전생에선 사회적 문제로 대두될 만큼 심각한 병이었으니까.
“전하. 이제 다시 출발하겠습니다.”
“……예.”
기운 없는 목소리에 앞으로 가려던 말을 세웠다.
안 되겠다.
억지로라도 나오게 해야겠어!
“전하. 지금 보니 마차의 바퀴가 조금 휘었습니다. 혹시 모르니 나오십시오.”
“……전 괜찮은데…….”
“제가 안 괜찮습니다. 저녁때 야영지에서 확인해야겠습니다. 지금은 다칠 수도 있으니 저와 함께 가시죠.”
마차 안이 조용했다.
샤비얀은 한참 끝에 네-, 라며 마차 문을 열었다. 나는 그를 말에 태우려 팔을 뻗었고.
“이리로.”
“……제, 제가 가겠습니다.”
이번에도 거절당했다.
나는 손을 거두며, 문 쪽으로 당겨 앉아 다릴 뻗는 샤비얀을 바라봤다. 날 보자마자 그는 다시금 말을 더듬었다.
어휴. 내가 어지간히 무섭나 보다.
“앞에 타시죠.”
낙담한 마음을 감추며 나는 안장 앞쪽 부분을 가리켰다.
높은 마차 덕에, 샤비얀은 수월하게 말의 안장으로 옮겨 왔다. 그러다가 내 갑옷에 샤비얀의 옷자락이 스쳤고,
“……죄, 죄송해요.”
샤비얀이 불에 덴 것처럼 화들짝 놀라며 등허리를 뗐다.
이 정도 되니 나는 지난날을 곰곰이 되짚게 되는 거다.
내가 무심결에 샤비얀을 때렸나?
“아닙니다. 불편하시면 이거라도 두르시죠.”
아무래도 기사들만 있으니 샤비얀이 불편할 듯싶어, 내가 입는 로브를 그에게 건넸다.
“감사합니다…….”
손에 쥔 로브를 보던 샤비얀이 아주 작게 중얼거렸다.
‘별게 다 미안하고, 별게 다 감사하다.’
원작대로라면 이렇게나 약한 샤비얀한테 켈리언이 그런 쓰레기 같은 짓을 한다는 거잖아!
우리 레시우스야 내가 어렸을 때부터 아주 교육을 잘해서 괜찮지만…….
어휴, 이래서 조기 교육이 중요하다니까.
“이제 다시 출발하자.”
속으로 고갤 젓던 나는 휴식을 취하던 기사들에게 명했다. 기사들은 단번에 정렬을 갖췄다.
‘이번에도 혹시?’
샤비얀이 이런 걸 좋아한 걸 본 적이 있었다. 그래서 기대하며 고갤 내렸지만…….
로브를 쓴 샤비얀의 고개는 우울하게 떨궈 진 상태였다.
“저 산이 드래곤의 숨결이라 불리는 산입니다. 렉티스의 산맥과 이어져 있는데…….”
나는 혹시나 해서 보이는 곳곳을 설명해 주었다. 석양이 지는 산, 우거진 숲, 거세게 흐르는 강.
말의 갈기만 응시하던 샤비얀이 흥미가 이는지 허리를 쭉 폈다.
“저 강에선 요정들이 밤마다 놀다 간다는 전설이 있습니다. 그래서 저 강에서 목욕을 하면…….”
나는 그렇게 샤비얀의 일일 가이드가 되어 버렸다.
“고, 공작님은…….”
한참을 듣고 있던 샤비얀이 손을 꼼지락거렸다.
그러곤 용기를 냈는지, 주먹을 말아 쥐며 더듬더듬 내게 물어왔다.
“죽, 죽음의 숲 렉티스에 가 보신 적이 있나요?”
“아.”
가 보긴 했다.
아주 초입 부분만.
“마수 토벌 때문에 근방에 가 본 적은 있습니다. 그 안까지는 못 들어가 봤습니다.”
“……그, 그렇겠죠. 위험하니.”
“예. 황제 폐하랑 약속한 게 있어서…….”
위험한 곳 가지 않기.
어렸을 적 손가락 걸고 한 약속을 지키라며, 레시우스는 토벌 당시에도 고집을 부렸었다.
선대 황제 부부를 잃고, 의지할 곳 없는 레시우스는 부모님 대신 나에게 많이 의지해 왔다.
그 탓에 날 과보호하려는 경향이 있지. 걔가.
“……저, 저도 렉티스에 대해 아는 얘기가 있,”
샤비얀이 큰 결심을 하고 입을 연 그때.
“각하. 저쪽에 야영지로 적합한 곳을 발견했습니다.”
기사 한 명이 다가와 평평한 공터 쪽을 가리켰다. 시냇물이 흐르는, 딱 야영지로 좋은 곳이었다.
“…….”
샤비얀의 입이 꾹 닫혔다. 나는 그런 샤비얀에게 넌지시 말을 붙여 보려다 말았다.
“그래. 저곳이 좋겠군.”
“예. 각하!”
우선은 베르웬 공작의 역할이 먼저였으니까.
뒤돌아서 내 명을 전하는 기사를 보다가, 샤비얀의 귀 옆에서 조용히 말했다.
“렉티스의 전설은 다음에 들려주십시오.”
그러곤 로브를 쓴 샤비얀의 머리를 한번 두드렸다.
무심결에 한 행동에 나 역시 아차 했지만, 이번에 샤비얀은 내 손길을 피하지 않았다.
어 안 피하네? 우리 좀 친해진 건가?
***
샤비얀은 자신의 머리를 한번 쓸었다. 한 번은 두 번이 되고, 두 번은 세 번이 됐다.
어둑한 밤. 마차 안에 누워 있던 샤비얀의 볼이 불그스름해졌다.
‘정신 차려!’
그러다 도리도리 제 고개를 격하게 저었다. 잠시 굳어졌던 표정은 곧 헤실헤실하게 풀렸다.
‘칭찬받은 거 같아.’
물론 칭찬은 아니었지만, 위로 비슷한 것이었지만.
샤비얀은 몇 번이나 공작이 쓸어 주었던 부분을 혼자 쓸었다.
‘……난 자격 없어. 내 실체를 알면 공작님은 실망하실 거야.’
그러다 곧 시무룩해져 몸을 말았다.
기사 중의 기사인 공작과 자신은 너무나도 달랐다. 머릿속에서 스스로의 과거가 둥둥 떠올랐다.
“난 더러워.”
바하트 황실은 쓸모없는 자를 황자로 두지 않는다. 계속 황자로 남기 위해선 그는 자신의 쓸모를 입증해야만 했다.
샤비얀은 아름다운 외모가 그 쓸모였다.
‘차라리 숙청당할걸.’
황실에선 샤비얀에게 억지로 많은 것을 가르쳤다. 예를 들어 상대를 만족시키는 법 같은 것들을 말이다.
이 머릿속에는 그런 외설스러운 정보들이 켜켜이 쌓여 있었다.
‘그걸 사용해서 공작님을 품으라고? 공작님이 날 어떻게 생각하시겠어.’
오두막에서 그런 모습까지 보였는데. 사실 맞기도 하잖아. 난 바하트 황실이 키운…….
‘난 더러워. 아직 몸만 안 더럽혀졌지 사실상 성노나 다름없어.’
자기혐오와 슬픔이 속 깊이 파고들었다. 그 속에 파묻혀 또다시 눈물이 차오르려 할 때.
마차 옆으로 말이 질주하는 소리가 들렸다.
탁-.
궁금함에 창을 열어 고개를 빼어 보니.
검은 갑옷을 입은 공작이 어둠을 헤치며, 황도와 정반대 방향으로 향하고 있었다.
‘어딜 가시는 거지?’
궁금증은 아침이 되자 두려움으로 바뀌었다.
‘왜 공작님이 없는데 출발하는 거지?’
기사들은 공작의 부재에도 착실히 앞으로 나아갔다. 무엇보다 죄다 모르는 얼굴이라 두려웠다.
샤비얀이 마차 안에서 불안하게 웅크려 있는 그때.
톡톡-.
누군가가 닫힌 창을 두드렸다.
샤비얀이 긴장으로 침을 삼켰다. 베르웬 기사들이 허튼짓하진 않겠지만 무서운 건 무서운 거였다.
“전하, 이거 드십시오.”
창문 사이로 건틀렛 낀 손이 쑥 들어 왔다. 그 손엔 들려 있는 건 비단 주머니였다.
“먹을 것을 찾아보긴 했는데 이런 거밖에 없었습니다. 그래도 다치신 몸이니 입맛이 안 돌더라도 뭐라도 드셔야 합니다.”
샤비얀은 갑자기 나타난 베르웬 공작의 말소리를 들으며, 비단 주머니를 열었다.
거기엔 바하트 제국식으로 만든 사탕이 들어 있었다.
“이걸 어떻게……”
샤비얀이 묻기도 전에 공작은 사라졌다.
샤비얀의 눈에 물기가 어렸다. 억울해서 서러워서도 아니었다.
‘……달다.’
너무 다디단 친절이었다.
어제 공작이 떠났던 시간은 아주 늦은 밤.
아마, 근처의 가까운 영지에 들려 여러 상점을 뒤져서야 이 사탕을 구했을 것이다. 그리고 또 한낮을 달려서 이제야 도착했겠지.
‘왜 눈물이 나지.’
사탕이 너무 달아서 그런가 봐.
다디달아서 눈물이 계속 났다.
그러나 사탕의 달콤함이 잠시이듯, 샤비얀의 기쁨도 잠시였다.
달리고 달려 도착한 하일렌의 황도.
“공작님!”
“베르웬 공작님이시다!”
“와아!”
예술품 같은 섬세한 하일렌 황도의 성문이 열리자, 군중들의 환호가 쏟아졌다.
허공에 날리는 꽃가루 속에서 모두의 경외를 받는 단 한 사람.
하일렌의 자랑이자 하일렌의 영웅, 베르웬 공작.
‘나 같은 게 공작님에게 붙어 있으면…….’
공작님의 평판이 더러워질지도 몰라.
바하트에서도 샤비얀의 뒤론 많은 추문이 따라붙었다.
그분의 종자가 되고 싶다 생각했던 자신이 너무 한심했다.
‘나는 공작님과 어울리지 않아.’
이 사실을 확신한 순간은 황성에 도착해, 태양처럼 빛나는 황녀를 본 순간이었다.
화사하게 웃은 그녀가 공작에게 다가가 뭐라 말을 걸었다.
그리고.
‘저 사람이 하일렌의 황제.’
그 옆으로 한 남자가 나타났다.
황녀가 태양처럼 빛난다면, 황제는 태양 그 자체였다.
이제껏 대륙에서 가장 잘난 이가 켈리언이라 생각했는데.
하일렌의 황제는 켈리언과 우열을 가릴 수 없이 빼어난 미남이었다.
정제되어 있고 비범해 보였다.
‘어?’
황제가 다정히 공작을 껴안았다. 황제의 표정이 집에 온 것처럼 편히 풀어졌다.
분명, 집에 돌아온 것은 공작일 텐데 말이다.
그리고 열린 마차의 차창으로 공작을 보던 샤비얀에게 섬뜩한 시선이 날아 박혔다.
‘……날 보고 있어.’
공작의 어깨에 얼굴을 묻고 있던 황제가 고개를 들었다.
공작은 뒤돈 탓에 확인할 수 없는 표정이지만, 찢어발기고 싶다는 듯 사납게 제게 꽂힌 황제의 눈빛은 분명한 경고였다.
‘황녀가 아니라 왜 황제가……?’
자신의 것을 탐하지 말라는 짐승 같은 경고.
언뜻 켈리언보다 유하다 생각했던 처음의 평을 샤비얀은 지워 냈다.
하일렌의 황제 역시 맹수였다.
온화함의 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