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niacs are Obsessed With the Fake RAW novel - Chapter (25)
하일렌 제국의 황도.
제도의 최고급 가구점에서 한 남자가 아쉽게 발걸음을 돌렸다.
‘물건이 얼마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하나 사기도 버거운 최상품 가구를 누가 거의 다 쓸어 갔단다.
도대체 그 재력가가 누구란 말인가.
“바하트 제국의 바이우드 백작가 차남. 맞소?”
갑자기 들려온 누군가의 목소리에 남자가 화들짝 놀라 목소릴 낮췄다.
“여기선 보르도 왕국의 자작이오!”
하일렌과 바하트는 앙숙이라, 여기서 그는 외숙에게서 계승한 직위를 쓰고 있었다.
“나는 바하트의 첩자요. 당신이 해 줄 일이 있소.”
첩자는 자작에게 조용히 주머니를 넘겼다.
사랑의 묘약이 든 주머니를.
***
“혹시 사랑에 빠지게 하는 그런 약은 없소?”
“그런 정신 제어 약물은 불법이요!”
“에이. 꿍쳐 놓은 거 있으면 좀 줘 보시오.”
로브를 쓴 로잘린이 약물상에게 한번 줘 보라는 듯 손을 까딱였다.
“동생 좀 말려 보시오. 동생이라 하지 않았소?”
“친구 동생이오.”
“[언니!]”
왜. 사실이잖아.
로잘린은 툴툴거리며, 약물 가게의 창문에 붙어 섰다.
약물 가게의 맞은편 책방. 그녀는 그 책방에 요제프가 오나, 안 오나 염탐 중이었다. 그것도 약물 가게에 숨어서!
나까지 약물상에 끌고 온 건 이유가 있었다. 질투 작전을 쓸 거라나 뭐라나.
로잘린이 유리창 너머로 맞은편 책방을 오페라 망원경으로 훔쳐봤고.
“저 여자는 뭘 저리 훔쳐보오? 저 책방에 꿀이라도 발라 놨소?”
“꿀이 있는 게 맞는 거 같군. 노란 나비가 꼬여 드는 걸 보니.”
약물상 말에 응수하며, 나는 로잘린의 금발을 보곤 어깰 으쓱였다.
“……말하는 거 어디서 배웠소?”
“좋은 스승이 있소.”
내 스승님은 책방을 염탐하며, 발뒤꿈치를 들고 있었다.
“[언니!]”
스승님이 소리치며, 팔을 퍼덕였다. 아아. 간다, 가.
로잘린의 손이 내 팔을 급하게 잡아채더니, 나를 문으로 이끌었다.
“감사하오! 여기 자릿세요!”
은화를 주인장에게 넘긴 로잘린이 가게 밖으로 빠져나갔다.
“어머!”
그러더니 길 한가운데서 고서를 잔뜩 쌓아서 가는 커다란 덩치의 남자에게 일부러 부딪혔다.
“죄송해요……. 어머, 요제프 경?”
“하아.”
모든 색이 다 빠진 사람처럼 칙칙한 검은색으로만 도배한 요제프가 한숨을 쉬었다.
“황녀 전하. 여긴 어찌 알고 오셨습니까?”
문관답지 않게, 기사같이 체격 좋은 그가 로잘린을 바라봤다.
“네? 무슨 소리인지? 전 나들이 나왔는데요?”
책을 주워 주며, 로잘린이 한 손을 우아하게 뻗었다.
“황녀 전하, 조심하시지 않고요.”
나는 극적으로 나타나서 로잘린의 손을 잡아 주었다.
질투 작전이랬나?
부러 일어선 로잘린을 살짝 내 쪽으로 당겼다.
“……베르웬 공작님이시군요.”
로브 속의 내 얼굴을 확인한 요제프가 얼굴을 굳혔다.
뭐지? 저 파렴치한 보는 얼굴은?
“잘됐습니다. 안 그래도 공작님께 할 말이 있었습니다.”
요제프는 입을 열려다가.
“내일 따로 찾아가서 말씀드리겠습니다.”
로잘린을 보곤 입을 다물었다.
***
그리고 다음 날.
나는 못 쓰는 이면지에 낙서하며, 아침에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바하트의 황자에게 익명의 예금 증서를 남긴 것도, 냉궁의 수리비를 남몰래 융통하신 것도 공작님이시죠.’
요제프는 저리 따지기 위해 이른 아침부터 날 찾아왔었다.
베르웬 공작가가 군부를 꽉 잡고 있다면, 마르토스 공작가는 상업 쪽에서 이름을 날렸다.
그는 아마 마르토스 공작가 소유의 은행 거래 내역을 추적했을 거다. 물론 불법으로.
‘그 고지식한 자가 그리한 데엔 이유가 있겠지.’
아마, 로잘린이 신경 쓰였을 테고.
내가 샤비얀에게 관심을 주니, 그녀가 상처받을까 봐 경고하려 아침 댓바람부터 온 걸 거다.
‘로잘린이 요제프 꼬셨나 본데?’
그리다 만 고양이 낙서에 얼굴을 묻고, 결국 난 웃음을 터트렸다.
“르윈. 뭐가 그렇게 재밌어?”
나는 뺨에 붙은 종이를 떼고 레시우스의 책상에서 허리를 세웠다. 여기는 황제의 침실이었다.
“아. 갑자기 웃긴 생각나서.”
“뭔데?”
하얀 침의를 입은 레시우스가 침대 밖으로 발을 뻗으려 했다.
“안 돼! 넌 자야지.”
요즘 레시우스가 잠을 못 이룬단다. 휴. 무슨 고민이라도 있나?
그래서 황제 궁의 집사장과 협동해서 아예 온종일 재울 계획을 세웠달까.
레시우스 일도 대신 봐 주면서 자는지 안 자는지 감시 중이었다.
물론 지금은 일은 다 끝나서 낙서 중이었다만.
“잤어. 방금 일어난 거야.”
거짓말.
나는 레시우스 방을 가로질렀다.
“그래도 더 자.”
“…….”
“여기 누워. 그리고 손 하나 까딱하지 말고. 그냥 자.”
나는 침대에 걸터앉아, 상체를 세운 레시우스를 눕혔다.
내가 하는 대로 가만히 침대에 누운 레시우스는,
“르윈.”
작은 웃음과 함께 내 이름을 불렀다.
“손 하나 정도는 까딱하고 싶은데.”
레시우스가 웃음을 터트리며, 내게 손을 뻗었다.
“이건 고양이야, 곰이야?”
레시우스의 커다란 손바닥이 내 얼굴을 감쌌다.
고양이? 곰?
뭔가 싶어서 고갤 돌리니, 거울에 비친 건 아까 종이에 끄적인 낙서가 묻은 내 얼굴.
아. 방금 묻은 거구나.
“고양인데.”
“곰인 거 같은데.”
레시우스가 낙서를 피해 내 뺨을 조심히 문질렀다. 그가 장난치며 웃었다.
‘에잇.’
괜히 민망해져 낙서를 지우려고 손을 올리는데, 레시우스가 부드럽게 내 손을 저지했다.
“자세히 보니 고양이가 맞는 거 같기도 해.”
“그래?”
“귀가 뾰족한 거 같기도 하고.”
내 뺨에 그려진 낙서를 자세히 보려는 듯 레시우스가 상체를 일으켰다.
섬세한 녹색의 눈동자가 가까워졌다.
그의 날렵한 코도, 그리고 시원한 숲을 닮은 그의 향기도.
“귀가 뾰족하면 고양이잖아. 둥글면 곰이고. 그치?”
부드럽게 휘는 그의 날카로운 눈매.
얘 나 놀리네.
저건 내가 어렸을 때 레시우스 그림 가르쳐 줄 때 쓰던 말이었다.
‘레시, 잘 봐! 귀가 뾰족하면 고양이야. 둥글면 곰이고.’
지금은 쟤가 나보다 훨씬 그림을 잘 그린다.
거의 화가 급이다. 역시 인생은 불공평해.
“레시우스. 근데 너 요즘도 그림 그려?”
“요즘엔 안 그리지. 네가 황성에 있잖아.”
어……?
“너 볼 시간도 없는데 언제 그림을 그리겠어.”
갑자기 얼굴이 화끈해지네. 쟤는 저런 말을 너무 스스럼없이 한다니까?
레시우스야 원체 자상하니까, 동성 친구한테도 저리 다정스럽게 말하는 거겠지만.
‘난 여자라고!’
저런 얼굴로, 저런 말을 하면 자연히 얼굴이 붉어진다고.
“너…… 얼른 자!”
나는 재빨리 자리에서 일어났다. 여기서 내 볼이 빨개지면 분위기 이상해지겠지.
부끄러워하는 거 같잖아!
“르윈, 나 안 졸린 데.”
나는 뽀송한 이불을 레시우스의 코끝까지 끌어 올려 줬다.
“그동안 안 잤으니까 더 자야 해.”
“그러면 나 잠들 때까지 있어 줄 거야?”
레시우스의 눈동자에 진한 웃음기가 서렸다.
“응.”
“나 잠꼬대할지도 몰라. 그래도?”
“응. 그래도.”
나는 침대 옆 의자에 앉았다. 잔잔해진 레시우스의 호흡을 들으며 살짝 미소를 띠었다.
‘잠꼬대 안 하면서.’
그리고 얼굴에 묻은 낙서를 지우며, 일어서려는데.
“르윈.”
잠에 잠긴 레시우스의 낮은 목소리가 날 붙잡았다.
그가 고양이 낙서가 묻은 내 뺨에 손바닥을 댔다.
“……예뻐.”
“뭐가. 고양이가?”
그는 눈을 떴다. 선명한 눈매 사이로 흐릿한 눈동자가 보였다.
“둘 다.”
“너 잠꼬대 중이야?”
“응.”
레시우스가 푸스스 웃으며, 하얀 베개에 곧은 콧대를 비볐다.
“어휴……. 얼른 자.”
나는 다시 앉아서 그가 정말 잠꼬대 없이 잠들 때까지 오래, 그를 재워 줬다.
***
하일렌 제국의 냉궁.
그간 냉궁엔 많은 변화가 있었다.
낡고 헌 가구들은 치워지고 보기만 해도 값비싸 보이는 고급 가구들이 그 자리를 채웠다.
하지만 헌 침대만은 여전히 제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샤비얀은 이 침대가 좋았고. 그래서 새 걸로 바꿔 준다는 걸, 기어코 거절했다.
‘공작님은 바쁘신가 봐.’
놀러 오시겠다고 약속하셨으면서……. 샤비얀이 공작의 향이 나는 침대 위에 얼굴을 비비적거리던 그때.
“전하! 손님이 오셨습니다!”
손님?
샤비얀이 곧장 일어났다. 공작님이신가?
“드시라 하게!”
재빨리 몸단장한 샤비얀이 의자에 앉아 공작을 기다리는데.
“안녕하십니까. 전하.”
방에 들어온 건 공작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었다.
“저는 보르도 왕궁의 로반 자작입니다.”
잘생기긴 했지만, 어쩐지 쥐를 닮은 남자였다.
‘공작님인 줄 알았는데…….’
실망했지만, 샤비얀은 다과를 준비해 그와 담소를 나누기 시작했다.
처음엔 괜찮았다.
“사실 보르도 왕국의 자작 자리는 외숙의 직위를 계승한 것입니다. 저는 바이우드 출신입니다.”
“바이우드요?”
샤비얀이 반색했다. 그곳은 어머니의 고향이었다.
“예. 바이우드 백작가의 차남입니다.”
“정말 인연이네요!”
익숙한 명칭에 샤비얀의 경계심이 풀어지려 할 때.
“이거는 선물입니다. 전하.”
자작이 상자 하나를 그에게 건넸다.
샤비얀이 거절하기도 전에 자작이 선물 뚜껑을 열었다.
“……이건 뭐죠?”
상자 안엔 작은 물병들이 나열돼 있었다.
“전하, 이것은 사랑의 묘약입니다.”
“예?”
“이 약을 먹은 자는 약을 먹인 자가 원하는 사람과 사랑에 빠지게 되지요.”
자작이 작은 물병을 들어 흔들었다. 안의 분홍빛 물약이 흔들렸다.
“뚜껑을 열어, 전하의 머리칼을 섞으세요. 그 후에 베르웬 공작에게 마시게 하면 됩니다.”
갑자기 이상해진 대화에 샤비얀이 당황했다. 무슨 뜻이지?
“……무슨 소린지 이해가 안 됩니다.”
“켈리언 님의 최측근이신 흑마법사 바투님을 아시죠?”
그제야 샤비얀은 말귀를 알아들었다.
이건 형님의 측근인 그 까마귀 흑마법사의 협박이다.
“이번 하일렌의 황실 연회에 꼭 참석하시랍니다.”
자작이 들고 있던 물약을 다시 상자에 끼워 넣었다.
“그리고 이 물약을 공작에게 쓰세요. 안 그러시면.”
“…….”
“바이우드에 있는 전하의 친족들이 무사치 못할 것입니다.”
자작이 웃으며, 그리 경고하고는 사라졌다.
하일렌에 와서 이제 안전하다고 생각했는데……!
샤비얀이 몸을 떠는 그때.
“전하!”
계단을 타고 올라오는 하녀의 외침이 들렸다.
그는 급하게 상자를 가장 구석진 서랍에 숨겼다.
“베르웬 공작님이 오셨습니다.”
하녀의 말에 샤비얀이 창백해졌다.
“아, 안 돼.”
패닉에 빠진 샤비얀의 눈이 흔들렸다.
공작님이 이 묘약의 존재를 아시게 되면 어떡하지……? 그의 손끝이 덜덜 떨렸다.
‘공작님이 아시면 공작님도 그들처럼 날 바라볼 거야.’
바하트 귀족들처럼 자신을 혐오하겠지.
“시, 싫어.”
샤비얀이 귀를 막았다.
“싫어. 만나면 안 돼. 가서 전해. 모, 못 만나겠다고……!”
숨을 쉬지 못할 만큼, 가슴이 꽉 조여 왔다.
충격에 빠진 샤비얀이 새로 온 하녀를 붙잡고 애원했다.
제발 공작을 돌려보내 달라고.
그리고.
“들어가실 수 없습니다!”
황자가 가엽게 떠는 모습을 봤던 터라, 새로 온 하녀는 두렵지만 베르웬 공작 앞에 섰다.
“전하가 공작님을 뵙고 싶지 않아 하십니다!”
그녀는 다시 한번 용기 내 말했다. 그런 하녀를 보며 르윈은 생각했다.
‘언제는 오라며…….’
르윈은 지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