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niacs are Obsessed With the Fake RAW novel - Chapter (30)
샤비얀은 너무 순식간에 변한 상황에 당황스러울 정도였다.
‘그땐 너무 당황해서…….’
테라스에서 떨어진 후 눈을 떴을 때, 바로 물약 생각이 났다.
잡으려고 했으나 잡지 못한 묘약.
그래서 찾아야겠다는 생각으로 무작정 어디론가 달려갔다.
정신이 혼미한 탓에 열린 곳이 다 문인 줄로만 알았다.
공작이 잡지 않았다면 정말 창으로 뛰어내렸을 것이다.
‘제가 뛰어내린 겁니다! 그러니 이 사건은 더, 덮어 주세요.’
그때 그리 말한 건 그저 순간의 둘러댐이었다.
공작의 올곧은 시선을 마주하니, 정말 공작님이 자작을 찾아낼 거 같았다.
그러면…….
‘잡힌 자작이 모든 사실을 말할 거야.’
샤비얀이 바하트에서 받은 묘약부터, 그의 과거사까지.
샤비얀은 그걸 막고 싶어서 자신이 스스로 뛰어내린 거라 그리 외쳤었다.
“끙.”
“불편하십니까?”
샤비얀의 신음에 바로 르윈의 물음이 튀어나왔다.
“어디 아프십니까?”
단숨에 침대에 붙어선 공작이 제 팔을 걷었다.
꼼꼼하게 샤비얀을 바라보는 눈길에 볼이 달아오를 것만 같았다.
‘저는 절대로 전하를 죽게 하지 않을 겁니다.’
맑은 그 은회색의 눈엔 간절함이 서려 있었다.
살아 달라니. 샤비얀이 이제껏 살아오며 자신을 이리 절박하게 본 사람이 있던가.
‘전하는 당분간 여기서 못 나가십니다.’
단호한 말과 달리, 공작은 샤비얀이 답답해할까 봐 이런저런 대책을 내놓기도 했다.
“답답하셔서 그러십니까? 아직은 일어나시면 안 됩니다.”
“…….”
“대신 몸이 나으시면 나들이 가시죠. 산책도 괜찮습니다.”
공작이 주춤하다가 샤비얀을 올려다보았다.
“……제가 불편하면 나가겠습니다.”
샤비얀은 고갤 저었다.
나가 봤자 어디 가지도 못하고 문 앞에서 안절부절못하며 공작이 왔다 갔다 하는 걸 들었기 때문이었다.
무슨 일이 일어나면 바로 뛰어올 준비를 하는 걸 테지.
“아, 아닙니다. 여기 있으세요.”
샤비얀이 작게 고갤 저었다.
자신은 어차피 혼자 적적했던 때보다, 공작과 있는 게 더 좋았다.
“여, 여기 앉아서 책 읽어 주세요.”
이내 책을 읽어 주는 공작의 딱딱한 음성이 방 안을 울렸다.
그러다 보면 간혹 음성이 부드럽게 풀리기도 했는데, 샤비얀은 그 구간이 좋았다.
“…….”
밤새 잠도 안 자고 자신을 지키던 공작은 책을 읽다 침대맡에서 잠에 빠졌다.
민들레 홀씨 같은 부드러운 머릿결이 샤비얀의 손바닥에서 흐트러졌다.
‘이러면 안 되는데.’
공작의 머리칼에서 미끄러진 손은 오뚝하게 솟은 콧방울로 옮겨 갔고, 도톰한 입술을 옅게 건드렸다.
“공작님과 있는 게 좋아요.”
함께 있을수록 욕심났다.
이 사람이.
***
샤비얀을 간호하면서 깨달았다.
‘답답해.’
가만히 있는 것도 힘들다는 걸. 그것도 무게 잡는 연기까지 하니 더 힘들었다.
‘이거 내가 갇힌 거 같은데?’
정작 갇혀 있는 샤비얀은 평온했다. 사실 따지자면 그는 갇힌 것도 아니었다.
그가 밖으로 나갈 정도로 몸이 나은 것도 아니었으니까.
똑똑-.
그러니 나야말로 사람이 이리 그리워지는 거다.
나는 샤비얀이 잠든 걸 보곤, 신나서 일어났다.
사람이다! 샤비얀 말고 다른 사람이야!
“자네가 먼저 들어가게. 공작님이 눈이 돌아서, 잭슨을 반쯤 죽일 뻔했다지 않은가?”
“저도 무섭습니다.”
울먹이는 소리가 뒤따랐다. 오. 치유사들이군.
“들어오게.”
나는 치유사들을 나름 상냥하게 맞이했다.
‘미안하긴 하지.’
저번에 워낙 급박한 상황에 멱살을 아주 사-알짝 잡고 흔들었는데 치유사 한 명이 졸도해 버렸달까.
“진찰하게.”
“예.”
내 눈치를 보며 진찰하는 치유사들을 보며, 자리를 살며시 피해 줬다.
피해 봤자 문 옆이지만.
‘그래. 그때는 내가 이성을 잃었지.’
아니. 근데 애초에 일하는 시간에 술 먹은 사람이 잘못이지. 안 그래?
점진적으로 차오르는 분노에, 열이 확 올랐다.
그 긴급한 상황에서 의사, 아니 치유사들은 꽐라지. 샤비얀은 정신도 잃었지.
“하……!”
그때 생각에 차오르는 분노를 탄식으로 내뱉는데.
“안 만지겠습니다!”
샤비얀을 진찰하려 그의 살을 맨손으로 짚던 상급 치유사가 손을 화들짝 뗐다.
그 뒤에 선 견습도 뒤따라서 두 손을 번쩍 들었다.
“진찰하려면 해야지. 하게.”
“네, 네!”
내 승낙에 치유사가 다시 붙어 섰지만. 그의 손엔 장갑이 씌워져 있었다.
도대체 밖에서 내 소문이 어떻게 도는 거람?
“전하는 어떠신가?”
나는 진찰을 다 끝낸 치유사에게 물었다.
“뼈도 잘 아물고 계시고, 경과도 괜찮으십니다.”
샤비얀은 약 기운 탓에 깊게 잠든 상태였다.
“약을 드시고 환각 증세를 보이셨다. 이는 괜찮은 건가?”
“진통제가 강해서 그렇습니다. 환각 증세는 이 약을 쓰는 동안 간혹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나는 창을 바라봤다.
답답한 나무판자는 뜯고, 창살로 바꾼 창을.
샤비얀이 약 기운에 혹시라도 뛰어내릴지 모르니……. 역시, 저건 한동안 달아 놔야겠어.
“다른 특이 사항은 없고?”
“자세히 살피니 방금 발견한 건데…….”
치유사가 손에 들린 진찰지를 내려다봤다.
뭔데? 무슨 특이 사항이 있는데!
긴장해서 말을 기다리는데.
“다리와 발목 쪽에 골절 흔적이 있었습니다.”
“…….”
“지금은 아니고 일전에 생긴 흔적이었습니다.”
아. 그거.
그 골절에 대해선 잘 알았다.
“아. 그건 알고 있네.”
샤비얀이 사막에서 켈리언한테서 도망치다가 생긴 부상이었다.
그때도 큰일 날 뻔했지. 내가 안 지나쳤어 봐. 생각만 해도 소름 끼친다니까.
“도망가다가 부러지셨지.”
맥이 풀린 나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그러다가 묘하게 바뀐 분위기에 뺨을 긁적였다.
치유사 두 명이 말을 아끼며 서 있었다. 견습 치유사가 든 진찰 가방이 진동 벨처럼 달달 떨렸다.
“그…….”
‘그게 아니라. 황자가 자신의 모국에서 쫓기다가 다리가 부러졌네. 하하하!’라는 말을 어찌하나.
나는 입을 꾹 다물었다.
“나가 보게.”
하. 어쩐지 소문에 내가 불을 더 지핀 느낌인데.
될 대로 되라. 나도 이제 모르겠다.
나는 일인용 소파에 몸을 묻었다. 잠든 샤비얀을 보며 종이를 꺼내 들었다.
‘하나는 로잘린. 하나는…….’
레시우스 꺼.
“하아.”
긴 한숨이 나왔다.
로잘린이야 이 상황을 알지만, 레시우스 입장에서 난 여동생을 버리고 적국의 황자를 택한 쓰레기 중의 쓰레기.
‘뭐라 쓰냐고!’
한참을 빈 종이 위에서 씨름하던 나는 들려오는 목소리에 펜대를 놓았다.
“공작님!”
“각하!”
창밖에선 몰려온 귀족들이 들여보내 달라고 시위 중이었다.
오. 안 열어 주면 경비병을 뚫고 올라올 태세인데?
약 기운 탓에 샤비얀이 깨진 않겠지. 나는 곤히 잠든 그를 보며 창을 열었다.
탁-.
그리고 열린 창 틈으로 들어오라는 듯 손을 휘휘 저었다.
나는 곧 레시우스에게 보내려 했던 종이 위에 각진 글씨를 적어 내려갔다.
미안. 너 상처 주는 일이란 거 아는데.
‘어쩔 수 없어.’
레시우스의 얼굴이 어른거렸다. 걔가 이 종이를 받아들면 어떤 표정을 지을까.
분명 화를 내겠지.
“공작님! 안 열어 주시면 그냥 들어가겠습니다!”
문 뒤로 들리는 소리에 나는 조용히 문을 열었다.
“잘 왔네.”
나는 무리로 뭉쳐 선 귀족들을 바라봤다.
미친 공작의 마음을 돌려 보려 왔겠다만.
“이걸 폐하께 전해 드리게.”
나는 아까 적은 종이를 맨 앞에 선 이에게 건넸다.
힘을 힘껏 줘서 적은 글자라 종이의 뒷면에도 내용이 비칠 정도였고.
“공작님! 사임이시라니요!”
글자를 읽어 낸 기사 한 명이 소리쳤다.
내가 레시우스에게 보낼 편지 위에 적은 글은 총사령관직을 사임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어차피 이 상황에서 역할을 제대로 수행할 수 없으니까.’
총사령관은 수많은 기밀 사항을 다룬다. 그걸 적국 황자의 거처에선 볼 순 없다.
“폐하께서 승낙해 주시지 않을 겁니다!”
“아네.”
그래도.
“해임안이 처리될 동안 유보 상태가 되겠지.”
나 대신 현재 일을 대신 맡아 줄 사람이 필요했다.
사실 총사령관직을 사임하는 것보다 더 힘든 건.
“각하, 정말 왜 이러십니까. 지금 폐하께서 많이 힘들어하십니다……!”
레시우스의 소식을 듣는 것이었다.
아우성치던 사람들도 다 보낸 후, 어둑해진 밖을 바라보며 나는 들었던 말을 곱씹었다.
‘폐하께서 서쪽 숲에 가셔서 온종일 검술 연습만 하고 계신단 말입니다!’
서쪽 숲.
황제의 거대한 연무장 같은 곳.
선대 황제는 그곳에 마수를 풀어 놓고, 실전처럼 연습할 정도로 거칠고 험한 곳이었다.
‘레시우스가 검을 들었다고?’
검술 연습도 내가 억지로 시켜야 할까 말까한 애인데?
정말 레시우스가 샤비얀을 만나고 원작대로 성격이 바뀌는 걸까?
나는 서쪽 밤하늘을 보며 각오를 다졌다.
역시 레시우스와 샤비얀을 최대한 떨어뜨려 놔야겠다고.
***
그 시각, 하일렌 황궁의 서쪽 숲.
어두운 숲엔 말 울음소리와 함께 땅을 박차며 질주하는 말발굽 소리가 울렸다.
레시우스를 선두로, 기사 다섯이 그를 뒤쫓았다.
말을 탄 레시우스가 빠른 속도로 나무로 만들어진 병정 모형을 베어 냈다.
“100!”
기사들은 베어진 병정모형들의 수를 세려 했으나.
“101, 아니 103!”
나뒹구는 나무통의 속도를 따라갈 수 없을 지경이었다.
“110, 115!”
레시우스는 그 숫자가 귀에 들리지 않았다.
그냥 달리며, 칼을 휘두를 뿐이었다.
이 들끓는 분노를, 이 타오르는 감정을 도저히 견뎌 낼 수 없었으니까.
‘난 두려웠어.’
레시우스는 모형을 한칼에 횡으로 베어 냈다.
수많은 책을 보며 그는 일찍이 깨달았다. 자신은 다른 이들과 다르다는 걸.
남들보다 우월하기도 했지만, 남들과 달리 잔혹했다.
그래서 두려웠다. 자신의 성정이 르윈을 다치게 할까 봐. 못난 모습 보일까 봐.
‘나는 태생부터가 잘못된 인간이거든.’
정도를 모르고 날뛰는 피가, 온몸을 삼켜 버릴 거 같은 이 분노는 정상이 아니었다.
무정하고 냉혹하고, 때때로는 광폭한 자신의 성정을 레시우스는 혐오했다.
“1000!”
서쪽 숲에 세워진, 나무 병정 모형을 다 베어 낸 그가 칼을 떨구었다.
절벽 위에서 바람을 맞고 서 있는 금발이 흩날렸다.
그의 녹안이 절벽 밑을 응시했다.
절벽 아래.
어둠에 잠긴 강물은 모든 것을 삼킬 듯 고요하며 깊었다.
‘나는 너를 알아.’
언젠가 이 절벽에서 날 구하던 절박했던 너의 눈을.
선황후인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날 위로하면서 울음을 참아 내던 그 빨개진 코도.
남들은 모르지만 자주 웃는 너의 입가도.
‘너는 그런 사람이 아니야.’
지금 사람들이 떠드는 것처럼 남의 의사를 무시하고 제 감정만을 강요하는 그런 사람이 아니야.
레시우스는 르윈이 변한 이유를, 그 이유를 꼭 알아낼 작정이었다.
“……돌아간다.”
꽉 쥐어 희게 질린 손으로 레시우스가 말고삐를 틀었다. 그가 황궁을 향해 다시 질주했다.
그리고 유리 궁의 연회장.
폐쇄된 유리 궁에서 검은 그림자가 움직였다.
레시우스의 명을 받고, 연회장과 주변을 뒤지던 그림자들이었다.
“어?”
궁전의 화원. 풀 밑에 반짝이는 무언가를 그림자가 발견했고.
“뭔가 찾았습니다!”
그가 빛나는 작은 유리병을 들어올렸다.
그림자가 발견한 건.
물약.
살짝 분홍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