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niacs are Obsessed With the Fake RAW novel - Chapter (31)
‘전하가 먹고 쓰고 하는 거 다 어디서 흘러들어 오는 거 같습니까?’
샤비얀은 창문을 보며, 자작이 했던 소리를 떠올렸다.
‘공작님은 왜 내게 이런 호의를 베푸시는 걸까.’
창살 사이를 통과한 달빛이 불편하게 잠든 르윈을 비추었다.
“흐으…….”
침대맡에 엎드린 르윈의 입에선 신음이 샜다.
샤비얀이 손을 잡자, 이내 르윈의 숨결이 잠잠해졌고.
“공작님, 제게 왜 이러시는 거예요?”
항상 경직된 어깨가 풀리며, 고요히 잠든 르윈을 샤비얀이 내려봤다.
이해할 수 없었다.
공작님은 황녀의 연인이었다.
그런데 왜 연인도, 그를 기다리는 많은 일도 뒤로한 채 자신 옆에 있는 것일까.
이 일이 어떤 파문을 줄지 제일 잘 알 사람이.
“연민 때문이신가요?”
단순히 그렇다기에는 자신이 잘못될까 봐 전전긍긍하는 공작님의 모습이 설명이 안 됐다.
“아니면 죄책감 때문이신가요.”
샤비얀이 수척해진 르윈을 바라봤다.
이곳에 있으면서 공작님의 얼굴이 많이 상했다.
샤비얀이 잘못될까 곁을 지키느라 식사도 못 하시고, 잠도 못 주무셨다.
더욱이 심적으로도 많이 힘들어 보이셨다.
“공작님이 그리 힘드신 이유는…….”
샤비얀은 입을 다물었다.
애정…… 일까?
샤비얀이 부드러운 르윈의 손등을 쓸어 보았다.
사내에게 기우는 마음 때문에? 오래된 연인을 배신한 죄책감 때문에?
“…….”
샤비얀은 입술을 꾹 깨물었다. 여린 살결이 더 불그스름해졌다.
‘하지만 이래서는 안 돼.’
공작님은 황녀 전하의 연인이고, 자신은 사내였다.
“안 되겠지.”
샤비얀이 꼭꼭 숨겨 둔 묘약이 있는 곳을 응시했다.
공작님이 잠시 나간 틈을 타, 서랍장에 있는 비밀 서랍에 숨겨 두었다.
‘욕심내선 안 돼.’
이미 샤비얀이 느끼는 이 감정은 동경이라기엔 크고 깊었다.
하지만 그는 두려웠다.
공작님의 사이가 깊어질수록 사람들의 관심은 자신에게 몰릴 테고.
‘그러면 공작님도 알게 될 거야.’
자신의 더러운 과거사도 다 낱낱이 밝혀질 게 분명했다.
“공작님과 저는…….”
샤비얀이 별빛에 물든 르윈의 고상한 뺨을 손등으로 살짝 쓸었다.
‘어울리지 않아요.’
이 고고한 사람과 자신은 어울리지 않는다.
더러운 과거를 가진 자신보다는 황녀가 더…… 잘 어울릴 것이다.
샤비얀은 그래서 감정을 묻으려 애썼다.
그렇게 르윈이 들을 리 없는 샤비얀의 진심이 연기처럼 흩어졌다.
***
‘배고파.’
나는 주린 배를 쥐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빈속이 허했다.
침대엔 샤비얀이 곤히 잠들어 있었다.
마음 같아선 이 틈에 내려가 뭐라도 먹고 싶지만…….
‘생각해 봐. 집착광공 옷에 순댓국 냄새가 배어 있다고 생각해 보라고. 최악이야!’
로잘린의 말에 의하면, 집착광공은 수가 먹여 주거나 같이 먹을 때 아니고서는 냄새나는 거 먹으면 안 된단다.
이제 점점 집착광공들이 불쌍해진다.
‘무엇보다 음식 냄새를 풍기기엔 샤비얀 속도 안 좋고.’
강한 약 때문에 속이 안 좋은지, 샤비얀은 음식 냄새에 헛구역질까지 했다.
그 탓에 나는 냄새나지 않는 차 한 잔에 비스킷 몇 개로 끼니를 때워야만 했다.
“하아…….”
냉궁의 거울 속, 초췌해진 내 얼굴이 보였다. 살이 빠져 수척해 보인달까.
다들 샤비얀이 나 때문에 감금된 거라고 하지만…….
‘내가 지금 24시간 간병인 수준이거든!’
거기다 보모에다가 보디가드도 추가해야지.
샤비얀한테 문제가 생길까 봐 항상 신경을 기울여서 그런지 눈 밑도 거뭇했다.
그때.
“공작님. 저택에서 사람이 왔습니다.”
문밖에서 들려오는 경비병의 목소리에 고갤 갸웃했다.
저택에서 사람이 왔다고?
총사령관직을 사임한 이후로는 사용인들의 출입도 최대한 막았다.
냉궁이래도 여긴 황궁 안이었으니. 눈치가 보였달까.
“집사가 보냈나?”
문을 여니, 경비병 옆에는 한 하녀가 서 있었다.
그녀는 로브를 깊게 눌러 쓰고 있었다.
“예. 공작님. 입으실 옷가지를 챙겨 왔습니다.”
가발같이 거친 갈색 머리, 주근깨가 가득한 흙빛 피부. 그에 반해 곱고 하얀 손.
“자네는 이만 가 보게.”
익숙한 목소리에 나는 경비병을 내려보냈다.
“[언니!]”
하녀가 고갤 들자, 가발과 화장으로 분장한 로잘린의 얼굴이 드러났다.
“[너 어떻게 여기에 왔어?]”
“[하녀로 분장했지. 언니 보려고.]”
그녀가 속닥이며 손에 든 바구니를 흔들었다.
“[저 옆방으로 나와. 이야기 좀 하게.]”
음. 와 준 건 고마운데…….
고갤 돌려 자는 샤비얀을 봤다. 그냥 가도 될까? 혹시 깨어나면 어떡해.
“[약 먹으면 잘 안 깬다며. 나와, 언니.]”
하녀복을 입은 로잘린이 박력 있게 내 손목을 잡았다.
야아. 이거 누가 보면 하극상이다?
그녀에게 이끌려 샤비얀의 바로 옆방으로 들어갔고.
탁-.
문이 닫히자, 로잘린이 내 뺨을 두 손으로 잡고 찌그러뜨렸다.
“[살 빠진 거 봐! 이러다가 언니가 병나겠다.]”
“[나는 소드마스터…….]”
붕어가 된 입으로 항변하려 했으나. 로잘린이 바구니에서 꺼낸 빵에 막혔다.
아. 진짜.
“[맛있지?]”
“[웅.]”
나는 오랜만에 먹는 빵을 우물우물 씹으며, 로잘린을 내려다봤다.
“[그런데 정말 냉궁엔 왜 온 거야?]”
어차피 전서구를 통해서 이야기는 주고받고 있잖아?
내가 이런 눈빛을 하자. 로잘린이 찰떡같이 알아듣고는 이유를 설명했다.
“[내가 요즘 시간이 많잖아.]”
“[왜 시간이 많아?]”
“[내가 언니한테 버림받았다고 생각들 해서, 다들 안 건드리거든.]”
로잘린이 제 머리를 쥐며, 비련의 여주인공 표정을 지어 보였다.
“[지금 나는 오래된 연인에게 버려진 황녀니까.]”
“[…….]”
“[그래서 방에 박혀 우는 척하다가 언니한테 온 거야.]”
로잘린이 바구니에서 천을 꺼내, 허름한 마룻바닥에 깔았다.
돗자리 위로 빵이며 과일 등 한상 가득 차려졌다.
“[그리고 언니 성격상 밥도 안 먹고 있을 게 뻔해서 왔지. 샤비얀 옆에 콕 붙어 있을 거 아니까.]”
미련하다니까 진짜. 로잘린이 구시렁거리며 빵에 버터를 발랐다.
너…… 제대로 챙겨 왔구나?
“[아무리 내가 말한 집착광공 특징이 그랬다고 하지만 이렇게 굶다시피 하는 사람이 어딨냐고!]”
로잘린이 다시 팔딱이며, 내 등을 팡팡 쳤다.
“[아니. 나는 열심히 해 보려고…….]”
야아. 섭섭하다.
나는 시키는 대로 한 건데.
“[하긴 언니는 뭐든 열심히 하니까. 근데 언니.]”
로잘린이 내 입에 버터가 발린 빵을 물려 주었다.
입속에 퍼지는 버터 향에 감격하고 있을 때.
“[언니가 그렇게 열심히 집착광공인 척하는 이유가 뭐겠어?]”
“[샤비얀을 꼬시려고?]”
“[그렇지!]”
로잘린이 이번엔 사과를 손에 쥐었다.
챙겨 온 나이프로 사과를 깎으려던 로잘린은 빠르게 포기하며 내게 사과를 건넸다.
어휴. 넌 내가 검술 연습시킨 게 몇 년인데. 사과를 못 깎니.
나는 천으로 깨끗이 닦은 손으로, 사과를 예쁘게 깎기 시작했다.
“[샤비얀이 언니에게 못 다가가는 제일 큰 장애물이 뭔 거 같아.]”
“[아마도 너겠지? 연인인 황녀의 존재.]”
사실 샤비얀이 내게 별다른 질문을 안 하는 게 신기하긴 했다.
그의 입장에선 황녀의 연인이 자신을 지극정성으로 보살피고 있는 꼴이었으니까.
“[그러니까. 그 장애물을 타파해야 할 거 아냐!]”
나는 포크에 콕 찍힌 토끼 모양의 사과를 그녀에게 건넸고.
“[그러니까 우리 계획대로 ‘그거’ 하자.]”
“[응?]”
로잘린이 포크를 건넨 내 손을 두 손으로 꼭 잡았다.
“[황녀의 외도. 원래 우리가 하려 했던 거!]”
아. 로잘린이 바람피우고, 그걸 샤비얀에게 들킨다던 그 계획.
“[이미 요제프도 다 섭외해 뒀고!]”
로잘린이 내 손에서 포크를 쥐어 가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 이거 어디서 본 적 있던 장면 같기도 하고.
“[내가 샤비얀한테 외도 장면을 들키고, 언니는 불쌍한 척을 하면 돼.]”
로잘린이 수척해진 내 얼굴을 봤다.
“[그래. 지금 언니가 수척해진 이유는 이미 황녀를 두고 샤비얀에게 생기는 마음에 죄책감이 들어서야!]”
으음. 사실 못 먹고 신경을 너무 써서 살이 빠진 거긴 한데.
네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뭐.
“[근데 알고 보니 황녀가 무지무지 나쁜 사람이었던 거지!]”
로잘린이 언어를 순화하며 빙긋 웃었다.
“[아슬아슬 미묘한 두 사람의 사이에서 방해물이 사라지며!]”
“[…….]”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 완전히 빠져드는 거야.]”
로잘린이 음유 시인처럼 열연을 펼치는 동안, 나는 사과를 꼭꼭 씹어 삼켰다.
“[내가 생각하기론 샤비얀은 언니한테 적어도 호감이 있어. 안 그럼 그 눈치 좋은 샤비얀이 왜 아무것도 안 묻는데?]”
흠. 그런가?
“[그리고 난 내 직감을 믿어. 연회장에서 본 샤비얀의 눈빛은 적어도 두려움은 아냐.]”
그건 나도 느끼고 있었다.
샤비얀이 날 무서워하는 건 아니라는 걸.
여전히 말을 더듬지만 그건 긴장 탓인 듯했고, 내가 책을 읽어 주면 수줍게 웃기도 했었으니까.
“[그래서 언제 시작할 건데?]”
샤비얀 꼬시기 프로젝트.
이건 나와 로잘린이 장작 5년을 준비한 계획이었다.
‘레시우스는 샤비얀을 사랑해선 안 돼.’
둘이 연회장에서 부딪혔을 때, 묘하게 느껴지던 긴장감이 있었다.
레시우스는 무언가 억누르고 있었고, 샤비얀은 두려워하면서도 그를 마주 보려 했었으니까.
약간 신경전 같은 느낌이기도 했지만……
그 둘 사이에 관심에서 비롯된 것 외에 신경전이 있을 이유가 뭐 있겠어?
“[난 뭘 하면 되는데!]”
나는 의욕 있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인류의 멸망도 그렇지만, 난 내 절친한 지기가 폭군이 되는 것도 사양이라고.
‘모두에게 좋은 일이야.’
샤비얀은 원작의 운명을 비껴가 더 이상 다치지 않을 수도 있고.
레시우스는 여전히 성격 좋은 내 친구이자 성군으로 남아 있을 거다.
그리고 인류는 여전히 살아가겠지.
모두 다 잘될 거야!
“[오, 그런 의욕 있는 자세 좋아.]”
로잘린이 신이 나서 제 계획을 설명했다.
“[내가 곧 샤비얀을 황녀 궁에 초대할게. 언니는 내가 시키는 대로 하면 돼!]”
그녀가 사과 조각이 꽂힌 포크를 내게 내밀었다.
난 이게 뭘 의미하는지 잘 안다.
“[파이팅!]”
“[파이팅!]”
로잘린의 포크에 내 포크를 크로스 하며, 우리는 의지를 다졌다.
아기자기한 돗자리 위에서, 우리는 전투에 임하는 전사들처럼 진지하게 계획을 논의하기 시작했다.
***
흠. 이때쯤이면 로잘린이 연락을 줘야 하는데 말이지.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가장 지적인 자세로 책장을 넘겼다.
‘어휴. 얼굴 뚫리겠다.’
멋져 보이려 일부러 햇볕 드는 자리에 앉아서 그런 탓도 있겠지만.
날 보는 샤비얀의 눈빛이 너무 초롱초롱했달까.
‘언제까지 이런 자세로 있어야지?’
손끝의 움직임마저 신경 쓰며 다시 페이지를 넘겼다.
“고, 공작님 뭐 읽으세요?”
“로메로의 전술 전략론을 읽습니다.”
내 손엔 보기만 해도 두꺼운 책이 들려 있었다.
“아.”
샤비얀이 자기 손에 들고 있던 영웅 일대기 소설을 말갛게 바라봤다.
드래곤 그림이 그려진 페이지가 살짝 바람에 날렸다.
“저, 저도 다른 책을……!”
민망했는지 샤비얀이 다른 책을 꺼내려 일어서려는데.
똑똑-.
문 뒤에서 노크 소리가 들려오고.
“황자 전하. 황녀 전하께서 긴히 뵙고 싶다고 초대장을 보내오셨습니다.”
드디어 로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