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niacs are Obsessed With the Fake RAW novel - Chapter (35)
지레 겁먹은 자작은 그가 아는 대부분의 사실을 밝혔다.
자신이 8황자에게 사랑의 묘약을 건네주었고, 연회장 테라스에서 그를 추행하려다가 밀쳤다는 것까지.
“……나머지를 심문하라.”
이성이 마비될 정도의 분노로 얼얼한 머리에 레시우스는 결국 나머지를 조사관에게 맡겼다.
이 일의 배후는 조사관이 이어서 심문할 것이다.
탁-.
심문실에서 나온 레시우스가 어두운 복도를 따라 걸었다.
“폐하.”
흉흉한 황제의 기세에 황실 친위대 단장이 얼른 긴장하며 앞에 섰다.
“친위대 전력이 동원되면 공작을 막을 수 있나?”
“……베르웬 공작 각하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렇다.”
레시우스는 당장 르윈을 데려올 생각이었다.
그는 르윈을 한시도 그 8황자 놈과 붙어 있게 할 수 없었다.
“저 포함 최정예 기사들이 모두 동원되면 가능할지도 모릅니다.”
“그럼 준비하게.”
레시우스가 다시 복도를 걸었다.
그가 지나는 발걸음마다, 마주친 기사들이 고개를 숙였다.
레시우스는 분노를 내비치지 않으려, 잠시 멈춰서 천장을 보며 숨을 골랐다.
“하아.”
서슬 퍼렇게 천장을 노려보던 레시우스가 눈을 감았다.
‘황자는 애초부터 바하트에서 이런 일을 위해 교육된 자입니다.’
심문실에서 자작은 벌벌 떨며, 묘약을 가리키며 말했었다.
‘이 약물을 공작께 썼을 게 분, 분명합니다.’
레시우스의 강직한 아래턱이 잘게 떨렸다.
자작이 황자를 실수로 밀었건, 죽이려 했건 그건 그에게 중요치 않다.
“감히.”
중요한 건 그들이 르윈을 이용하고 있다는 것.
분노에 욱신거리는 눈자위를 만지며, 레시우스가 크게 발을 내디뎠다.
***
샤비얀과 빗속에서 있었던 그 순간.
그 순간이 우리 두 사람 관계의 중요한 전환점이었던 게 분명했다.
“제, 제 옆에 있어 주세요.”
샤비얀은 씻기까지 거부하고, 내 품을 파고들려 했다.
나는 샤비얀의 칭얼거림에, 젖은 그를 안고 벽난로 앞에 앉은 참이었다.
어휴, 그래. 씻는 걸 못 하겠으면 불이라도 쬐어야지.
“가지 마세요, 네?”
내가 떨어지려는 기색을 보이자 샤비얀이 내 손을 붙잡았다.
“……전하. 벽난로만 켜겠습니다.”
“아.”
“냉궁의 난방이 고장 나서 벽난로를 켜야 조금 따뜻해질 겁니다.”
늦봄이라 난방 시스템을 안 고쳤다.
곧 여름이 올 줄 알았지 누가 이렇게 비 쫄딱 맞은 생쥐 꼴이 될 거라 생각했겠냐고!
“잠시만 혼자 있으십시오. 몇 분이면 됩니다.”
샤비얀은 고갤 끄덕였지만 곧 그 몇 분도 떨어지기 싫다는 듯 시무룩해졌다.
……샤비얀. 너 은근히 집착이 심하다?
나는 그를 등지고, 벽난로로 빠르게 다가갔다. 몇 분의 시간제한이 생긴 터라 약간 조급했달까.
‘원래 냉궁은 로잘린의 아지트였으니…….’
벽난로 정도는 쉽게 키지. 로잘린이 춥다고 해서 몇 번 켜 본 적 있었다.
조급한 마음과 달리, 나는 샤비얀이 보는 터라 정갈하게 손을 올렸다.
탁-.
보지도 않고 무심하게 통풍 조절판도 열고, 우아한 손길로 불도 지폈다.
벽난로도 멋있게 켜야 하는 삶.
쉽지 않다. 진짜.
“며, 몇 분 지난 거 같아요.”
“아직 아닙니다.”
“……오래 지난 거 같은데.”
샤비얀이 뺨을 장밋빛으로 물들인 채, 담요 위에서 손을 꼼지락댔다.
무언의 채근에, 나는 쌓인 땔감을 찾아 화력을 키우고서 금세 샤비얀 옆으로 돌아왔다.
9분.
단 9분 떨어져 있던 내가 돌아오자, 샤비얀은 다시 내 옆에 찰싹 붙었다.
……이거 내가 샤비얀에게 집착해야 하는데 왜 샤비얀이 나에게 집착하는 느낌이지?
“전하.”
“……예.”
벽난로의 불빛이 샤비얀의 얼굴에 어른거렸다.
열 오른 샤비얀이 혼몽하게 날 올려다봤다. 왠지…….
‘……하아 ……좋아.’
오두막에서 있었을 때 일이 떠오르는 표정이었다. 들뜨고 혼미했던 그때 그 표정과 비슷했달까.
“……전하 열나십니다. 얼른 씻어야겠습니다.”
“전 괜찮…….”
“아닙니다. 제가 안 괜찮습니다. 약 챙겨 올 동안 씻으십시오.”
열에 달뜬 샤비얀의 얼굴을 보며, 나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아프시면 혼낼 겁니다.”
내가 용납 못 한다는 듯 빤히 보자, 그의 얼굴이 더 불그스름해졌다.
궁인들에게 그의 목욕 수발을 맡기고, 나는 축 젖은 채 방 밖으로 나왔다.
‘으아. 샤비얀을 꼬신 그 뒤를 생각 못 했어!’
주방에 가 상비 치료제와 따뜻한 수프를 부탁하고서야 깨달았다.
‘내가 꼬시는 것만 배웠지 꼬시고 난 후는 안 배웠는데?’
……로잘린 그것도 가르쳐 줬어야지.
***
복잡한 속을 식힐 겸, 샤비얀이 샤워할 동안 나도 씻을 요량으로 샤워장을 찾았다.
“하아.”
샤비얀은 따뜻한 온수를 채운 은제 욕조에서 몸을 씻겠지만.
쏴아-.
나는 온수가 고장 나서 아무도 안 오는 궁인들 샤워장에서 샤워하겠지!
‘심지어 이것도 마음이 불편해.’
원래는 냉궁의 빈방에서 새벽마다 샤워를 해 왔다.
그렇지만 지금은 다들 깨어 있는 시간이니 안 쓰는 샤워장에서 하는 수밖에.
‘샤워 한 번 하는데 수명이 줄어드는 기분이네.’
버려진 샤워장이라 해도, 내가 사실 여자란 비밀이 있는 터라.
1초마다 문을 확인하며 찬물로 몸을 씻었다.
얼음장 같은 물로 몸을 씻고 있으니, 로잘린이 했었던 말이 떠올랐다.
집착광공은 냉수로만 샤워한다고 했던 거 같은데.
‘집착광공이 미친 이유가 있는데?’
걔네들 집엔 온수도 나왔을 텐데 왜 따뜻한 물 놔두고 찬물로 씻은 걸까.
고통을 즐기는 편인가?
나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갤 젓곤, 선반 위 향유에 손을 뻗었다.
하인들이 쓸 법한 저렴한 향유였다.
이 세계 향유는 세정력이 있는 터라 비누처럼 쓰는 식이었다.
‘으아. 되게 쓰기 싫게 생겼다.’
끈적끈적한 갈색 액체가 딱 봐도 별로였다.
그래도 두드러기는 안 나겠지, 하면서 물로 씻고 나왔는데.
“어?”
났다, 두드러기.
샤워를 마친 후 실내복으로 갈아입은 채 거울을 봤다가 깜짝 놀랐다.
창백해진 피부가 울긋불긋했다.
“오, 안 괜찮네.”
하긴. 소드마스터라고 피부가 강철은 아니니까.
향유가 피부에 안 맞았는지, 하얀 피부 위로 붉은 두드러기가 올라온 게 눈에 확 띄었다.
‘끙. 피부에 독 오른 집착광공이라니.’
로잘린이 또 혼내겠어.
그래. 나만 아는 사실로 묻자.
나는 옷깃을 추슬러 붉은 울혈을 감췄다.
문을 열고 나오니, 마침 계단에서 담요를 든 샤비얀이 내려오고 있었다.
‘와. 조금 늦었으면 큰일 날 뻔했다.’
잠금장치를 하고, 문고리도 검으로 막아 뒀으나 자칫했으면 샤비얀이 샤워실 코앞까지 왔을 것이다.
“전하, 왜 여기까지 오셨습니까?”
“공작님이 추, 추우실까 봐요.”
나는 놀란 마음을 진정시킨 뒤, 계단에 선 샤비얀을 막아섰다.
소중히 담요를 안은 그가 젖은 머리를 부끄럽게 내려뜨렸다.
설마 머리도 안 말리고 바로 온 거야?
‘감기 걸리겠네!’
이미 은발에서 툭툭 떨어지는 물방울이 그의 어깨를 적시는 중이었다.
가뜩이나 얇은 침의가 젖어 샤비얀의 살결에 붙어 그 안이 투명하게 비쳤다.
“담요는 제가 아니라 전하께 더 필요하겠는데요?”
“바, 방에 더 있어요!”
나는 복슬복슬한 양털 같은 샤비얀의 애착 담요를 떠올렸다.
하긴. 그게 더 따뜻하긴 하지.
담요를 건네받은 채, 샤비얀과 도란도란 1층에서 2층으로 올라가려던 찰나.
쿵!
냉궁의 둔탁한 정문이 열렸다.
열린 문체가 벽을 치며, 홀에 메아리같이 울리는 커다란 소리를 냈다.
‘뭐야. 황실 친위대잖아.’
어느새 궁 안으로 들어와 도열한 기사들이 끝도 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우와. 몇 명이야, 라고 생각하던 나는 퍼뜩 정신을 차렸다.
아. 맞다. 샤비얀.
“전하, 무서우시면 제 뒤로 숨으세요. 아시겠죠?”
떨고 있는 샤비얀을 알아채곤, 손에 들린 담요를 그에게 단단히 둘러 주었다.
티 파티에서 소란이 있던 게 조금 전이었다. 또다시 그에게 향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눈초리에 겁이 났을 테다.
“눈 돌리게.”
나는 샤비얀의 시야를 차단하기 위해 그를 안았다. 보지 않아도 기사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어떤 이는 불편함과 분노를, 어떤 이는 샤비얀에 대한 정욕을. 어떤 이는 슬, 픔을……?
기이한 감각에 등을 돌려 친위대 쪽을 바라봤다. 빼곡한 기사들의 뒤는 잘 보이지 않았고.
대신 맨 앞에 선 친위대장이 날 보며 다가왔다.
“각하.”
나는 샤비얀이 친위대장의 말을 못 듣게 담요를 머리끝까지 씌워 주었다.
친위대장은 내게만 들릴 정도로 속삭였다.
“각하께서 황자에게 느끼는 감정은…… 진짜가 아닙니다.”
“…….”
“황자가 각하께 사랑의 묘약을 썼습니다.”
응? 사랑의 묘약?
그제야 이 모든 상황이 이해되었다.
조사관이 자작을 심문했고, 자작은 샤비얀이 내게 묘약을 썼다고 진술했겠지.
‘샤비얀이 바하트에서 묘약을 받았을 수는 있어.’
근데 쓰지는 않았다. 이건 내가 확신할 수 있다.
‘내가 샤비얀에게 느끼는 감정은…….’
사랑이 아니었으니까.
막냇동생처럼 아끼고 좋아하는 마음이지, 사랑은 아니라고!
그러니 내가 묘약을 먹었을 리가 없잖아!
“각하. 폐하의 명입니다.”
“…….”
“황자를 넘기십시오.”
친위대장이 완곡한 눈빛으로 날 설득했다.
“저희와 충돌하시면 각하의 위신과 명예에 큰 흠이 생기실 겁니다.”
흠, 그래. 그럴 거다.
기사가 주군의 명을 어기는 건 아주 심각한 일이었다.
더욱이 나는 뒤에선 레시우스와 서로 작게 옥신각신한 적은 있어도.
‘공식적으로는 한 번도 부딪힌 적이 없지.’
그래서 레시우스가 이곳으로 친위대를 보낸 것이다.
이건 황제의 명이고, 베르웬 공작은 황제의 명을 거부한 적이 한 번도 없으니까.
“내 뜻은 이걸로 대신하지.”
나는 샤비얀을 더 깊게 품고는 방으로 데려가려 했다.
이미 눈에 뵈는 거 없는 미친놈이니, 건들지 말라는 뉘앙스를 팍팍 풍기며.
그 순간.
“모두들 물러나라.”
냉궁의 중앙 홀에 가득한 기사들의 맨 뒤. 그쪽에서 나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레시우스의 음성이었다.
척!
그의 명에 도열한 기사단이 홍해처럼 갈라지며 길을 텄다.
파동처럼 몸을 옆으로 트는 기사들 사이로, 걸어오는 레시우스가 보였다.
“밖에서 대기하도록.”
레시우스의 명에 친위대가 완전히 몸을 돌려 나갔고.
내 앞엔 단 한 명의 사람만 보였다.
이 제국의 황제이자 내 친구, 레시우스.
레시우스 한 사람만의 존재감 만으로 이 너른 궁이 꽉 차는 느낌이랄까.
쿵-.
둔탁한 문이 닫히며 나와 샤비얀, 레시우스만이 냉궁에 남았고.
‘끙. 쟬 어떻게 봐야 해?’
나는 샤비얀을 뒤에 숨긴 채, 눈동자를 굴렸다.
흠. 레시우스는 내가 로잘린을 버렸다고 생각할 테니 주먹 몇 대 맞아도 할 말이 없지.
그렇게 어느 쪽 뺨을 내줘야 하나 생각하는데.
“공작.”
묵직한 걸음으로 레시우스가 내게 다가왔다. 어지러울 정도로 독한 싸구려 향유 향에 그의 눈초리가 파르르 떨리더니.
그가 내 옷깃을 살짝 젖혔다.
드러난 쇄골엔 빨갛게 달아오른 두드러기가 있었다.
“공작의 목에 생긴 이것은…….”
레시우스의 매서워진 시선이 내 뒤의 샤비얀에게 옮겨 갔다.
“싸구려 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