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niacs are Obsessed With the Fake RAW novel - Chapter (36)
“공작. 격에 맞지 않는 것을 쓰다 보면 탈이 나는 법이네.”
내게 바짝 붙어 선 레시우스가 내 품에 안긴 샤비얀을 노려보고 있었다.
‘노려본다고?’
내 순둥이 친구가?
레시우스의 눈은 눈가에서부터 흰자위 전체가 온통 벌게져 있었다.
격노, 경멸, 그리고 희미한 열등감. 그의 녹색의 눈동자는 온갖 부정적인 것을 가득 담고 있었다.
“……고, 공작님.”
나는 내 품에서 바스락거리는 샤비얀을 내려 보았다.
아! 레시우스가 저러는 이유가 샤비얀 때문이구나.
‘샤비얀이랑 붙어 있으니 원작의 성격이 나오나 봐.’
저번 연회에서도 레시우스는 샤비얀을 보고서는 사나운 기운을 내보였었다.
“폐하, 그만하시지요.”
“너……!”
그런 레시우스의 변화에 얘를 얼른 샤비얀이랑 떨어뜨려야 된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레시우스가 샤비얀을 보지 못하도록 샤비얀의 몸을 더 꼭 끌어안아 숨기자.
레시우스는 갑자기 어딘가 아픈 듯 눈을 찡그렸다.
“황자 전하. 잠시 황제 폐하와 얘기하고 오겠습니다.”
“네? ……예.”
담요에 둘둘 싸여 있던 샤비얀이 고갤 살짝 돌렸다. 담요 속에서 그의 푸른 눈동자가 살짝 위를 향했다.
“…….”
싸늘한 레시우스의 시선에 놀란 듯이 샤비얀이 눈을 크게 떴다.
“폐하, 저와 얘기 좀 하시지요.”
“…….”
“레시우스, 부탁이야.”
나는 샤비얀을 거의 한 대 칠 기세인 레시우스를 이끌고 계단 밑으로 내려갔다.
샤비얀과 거리가 벌어지자마자, 레시우스를 설득하려 입을 열었다.
“레시우스. 너 오해가,”
“난 저자를 심문할 거야.”
심문이라니!
절대 안 된다. 심문해서는 안 되는 이유가 따로 있었다.
“8황자 전하는 협정서에 의해 죄를 지었을 시엔 자국에서 심판받기로 되어 있어!”
“…….”
“단순 조사가 혐의로 넘어가는 순간 송환이시라고!”
그러면 내전이 발발한 바하트로 샤비얀이 송환돼 돌아갈 거고 샤비얀은 죽을 거다.
황실 직계손인 그는 지금 바하트 황제의 척결 대상 1호니까.
“절대 안 돼. 난 전하를 보내 드리지 않을 거야.”
나 역시 물러설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오해야. 레시우스.”
“오해?”
그가 핏줄 터진 눈으로 내 곳곳을 눈으로 훑었다.
물기 머금은 머리칼과 젖은 어깨, 그리고 빨개진 상처를.
“이것도 오해일까?”
핏줄이 불거진 레시우스의 손이 내 목덜미의 불긋한 부분을 문질렀다.
“저자가 너에게 향유 하나 내어 주는 것도 아까워한다는 사실도?”
레시우스가 내게 나는 저렴한 향을 맡곤, 옆으로 고갤 돌렸다.
그의 아래턱이 분기에 떨렸다.
“너한테 애정도 없는 사람이야.”
“…….”
“사람들이 다 보는 앞에서 네 손을 쳐 냈어. 망신을 줬었지.”
울컥한 목소리로 레시우스가 말을 짓눌러 뱉었다.
“아무리 저자가 널 편히 재운…….”
실언했다는 듯, 레시우스는 거칠어진 호흡을 정제하며 입을 꾹 다물었고.
다소 평온을 되찾자 다시 입을 열었다.
“이건 아니야, 르윈. 저자를 옆에 두는 것이 널 위한 일이 아닌 거 같아.”
“…….”
“그래서 나는 널 다시 돌려놓을 거야. 원래대로.”
레시우스의 눈을 보고 깨달았다.
얘 절대로 안 물러난다. 무슨 말을 해도 안 들을 거다.
지금 레시우스한테 난…….
‘사랑의 묘약에 당해서 정상적인 사고가 불가능한 아픈 친구니까!’
내가 뭐라고 하든 절대 물러서지 않을 거고, 샤비얀을 바하트로 송환시키려 할 게 분명했다.
“레시우스.”
그래서 나는 정말 꺼내기 싫은 나쁜 수를 꺼내 들었다.
내가 그를 직시하자, 그 역시 곧은 시선으로 나를 마주 봤다.
“황자 전하가 죽으면 나도 죽어.”
나는 진실을 말했다.
야아. 샤비얀이 죽으면 나도 죽어. 너도 죽고, 우리 다 죽는다니까?
“너……!”
섬세하게 세공된 레시우스의 초록 눈동자에 물기가 어렸다.
마치 비를 머금은 숲같이. 거센 바람에 요동치는 나무같이.
그의 눈은 젖은 채 흔들리고 있었다.
“……어떻게 그런 말을 해. 네가 없으면 나는…….”
끝이 갈라진 레시우스의 목멘 음성이 튀어나왔다. 그에게 내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안다.
우리는 가족과 다름없는 사이니까.
‘미안해.’
근데 내가 이렇게까지 안 하면 네가 샤비얀 끌고 갈 거 아냐. 나도…… 나도 싫어.
너 상처 주는 거…….
***
샤비얀은 계단 난간에 서서, 모든 상황을 보고 있었다.
말소리는 들을 수 없었지만 물기가 스민 황제의 눈동자는 충격에 물들어 있었다.
‘말도 안 돼.’
공작님이 도대체 뭐라 말한 건진 모르겠지만.
‘바하트에선 예절 교육을 그딴 식으로 시키나 보오?’
지난번 연회장에서 혹한의 겨울처럼 샤비얀을 차갑게 응시하던 그 눈빛과는 완전히 달랐다.
지금 황제의 눈은 뜨거웠다.
그는 눈시울을 붉힌 채 공작님만 맹목적으로 담고 있었다.
‘황제가…….’
공작님을 사랑한다.
저 눈을 보면 모를 수가 없는 것이었다.
“흡.”
샤비얀이 너무 놀라 제 입을 두 손으로 막았다.
서로에게 진지한 두 사람은 그가 있는 난간을 올려다보지 않았다.
황제는 마치 싸구려 향유 향을 덮으려는 것처럼 공작님의 어깨에 제 겉옷을 걸쳐 주었다.
그러더니 뒤돌아 떠났다.
공작님도 그런 황제의 뒤를 안타깝게 보시다가, 손을 몇 번이나 달싹이셨다.
그러곤 어쩔 수 없이 샤비얀에게로 돌아왔다.
‘황제가 공작님을 뺏으면 어쩌지.’
불안은 오후가 밤이 되고 낮이 되고 다음 날이 되어도 가시지 않았다.
그래서 샤비얀은 무섭다며 칭얼거리고, 아프다며 공작님을 제 옆에 꽁꽁 붙들었다.
샤비얀은 낮잠을 재워 주겠다며 흰 침구 위로 올라온 르윈을 바라봤다.
공작님은 흰 이불 위로 잿빛 머리를 흩트린 채 눈을 감고 있었다.
“고, 공작님은 황제 폐하의 기사시죠?”
“예.”
“그, 그럼 저랑은 뭔가요?”
샤비얀이 용기를 가지고 물었다.
여전히 눈을 감고 있는 공작님이 마치 준비된 양 곧바로 대답했다.
“전하의 것이죠.”
내 것.
샤비얀은 이 말에 가슴이 울렁댔다.
그는 이때껏 살아오며 무언가를 가져 본 적이 없었다.
손에 쥐여 주면 쥐여 주는 대로, 뺏기면 뺏기는 대로 살았다.
무엇도 욕심내서는 안 되는 삶이었다.
그는 누군가에게 팔려 가 영원히 인형으로 살, 자아를 가져선 안 되는 존재였으니까.
“…….”
샤비얀은 평소 공작님을 재울 때 하듯, 그분의 부드러운 머리칼에 손바닥을 올렸다.
사람들은 반짝이고 아름다운 것을 사랑한다. 하지만 샤비얀은 그 마음을 이해할 수 없었는데.
“전하. 저 재우시면 안 됩니다.”
굳게 다물렸던 입매가 풀리며 자연스러운 웃음이 한쪽 입가에 번졌다.
“나가 봐야 할 곳이 있습니다.”
공작님의 눈꺼풀이 열리고.
오로라처럼 일렁거리는 그 햇살 속에서 수많은 별을 품은 은빛의 눈동자가 반짝였다.
은하수를 품은 밤하늘 같았다.
“아…….”
샤비얀은 멈춰 선 채, 탄성을 내뱉었다.
참을 수 없는 감정이 제 폐부에, 아니, 심장에 가득 차는 것 같았다.
이래서 사람들이 반짝이고 아름다운 것을 사랑하는구나.
그래서 다들 반짝이고 아름다운 것을 꼭꼭 숨겨 두는 것이구나.
너무 빛나서.
“전하? 왜 그러십니까?”
감정이 벅차올라, 샤비얀이 잠깐 숨을 멈췄다.
이상 행동에 르윈이 놀라 샤비얀의 뒷머리를 살살 쓰다듬었다.
“조, 좋아서요.”
“…….”
“공작님이 좋아서요.”
샤비얀이 여전히 은하수처럼 빛나는 르윈의 눈을 마주했다.
‘너무 빛나서 무서워.’
밝게 빛나는 별은 눈에 띄는 법이고, 이 반짝이고 아름다운 사람 역시 그러했다.
황녀도, 황제도.
다 이 사람을 탐낸다.
황제같이 다 가진 사람이 공작님을 뺏으려 한다면……. 과연 지킬 수 있을까?
“공작님이 마, 말씀하셨어요. 공작님은 제, 제 거라고.”
“예. 전하.”
내 건데.
아무도 못 보는 곳에 꽁꽁 숨기고 싶었다. 누구도 탐내지 못하게.
***
요즘 따라 더 칭얼거리는 샤비얀을 두고, 잠시 창고로 쓰는 방에 가서 문을 닫았다.
“휴우.”
한숨이 방 안에 울렸다.
창고에서 그나마 깨끗한 탁상 위엔 레시우스의 외투가 곱게 접혀 올려져 있었다.
‘황자 전하가 죽으면 나도 죽어.’
내가 레시우스한테 그렇게 말했던 그날.
상처받은 그는 내 젖은 어깨에 겉옷을 덮어 주곤 떠났다.
“그리고 이것도 받았지.”
레시우스의 외투 안주머니엔 자작의 심문 내용을 기록한 문서가 있었다.
나는 반듯하게 말린 종이를 펴 보았다. 그러곤 빠르게 읽어 내렸다.
‘뭐. 내용은 간단하네.’
자작이 누군가의 명을 받고, 샤비얀에게 날 유혹할 때 쓰라며 묘약을 건넸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자작이 샤비얀을 추행하다가 테라스에서 밀쳤단다.
‘추행? 추해애앵?’
내용을 읽던 나는 자작이 샤비얀을 추행했다는 부분에서 격분했다.
샤비얀이 스스로 테라스에서 떨어진 게 아니라는 건 안심할 만하지만.
저 약한 애가 얼마나 충격받았겠어? 더욱이 샤비얀은 그런 쪽으로 트라우마도 있는데!
“개자식. 내가 가만 안 둬.”
그리고 나는 바로 심문실이 있는 지하 감옥으로 달려갔다.
이제, 샤비얀이 스스로 투신한 게 아니란 걸 알았으니 마냥 그의 옆에 붙어 있을 필요성이 줄었다.
‘내가 자작을 한 대 정도 팰 시간 정도는 있단 거지.’
더욱이.
자작이 ‘누구’의 명을 받고 샤비얀에게 묘약을 건넸는지 알아야 했다.
샤비얀 역시 그 ‘누구’에 대해 입 다물고 있는 걸 보면 뭔 사정이 있는 듯했으니까.
레시우스가 준 그 종이에도 이 일의 ‘배후’가 빠져 있었다.
“공작님. 안 되십니다.”
내가 가자마자, 심문실이 있는 건물을 지키던 기사가 고갤 저었다.
“잠시면 되네.”
“안, 안 됩니다.”
어허?
내가 총사령관직을 사임한다 했어도.
그 누구도 내가 영원히 직위에서 물러날 거로 생각지 않는다.
내가 복귀하면 어쩌려고 이러지? 장군 말이 우스워? 어?
“혐의자가 공작님께 마, 맞아 죽으면 제가 곤란합니다.”
기사의 우는 소리에 나는 결국 발을 물렸다.
‘굳이 들어가자고 하면 들어가겠지만.’
총사령관직 상태가 정지됐어도 나는 각종 직위가 많아서 사실은 그냥 밀고 들어가도 되는 위치였다.
뭐. 그래도 그러면 괜한 구설수가 생기니까.
“알겠네. 나중에 다시 오겠네.”
그래, 내가 지금 자작 얼굴을 보면 멀쩡히 두고 싶지 않을 거 같긴 해.
잠시 흥분을 가라앉혀서 와야겠어.
이러는 내 등 뒤로, 오지 말라는 듯이 기사가 퍼덕이는 소릴 들었던 것 같기도 하다.
***
그리고 바하트 제국의 제도.
하일렌에 있는 첩자들의 연락을 받은 흑마법사 바투가 목청 높여 웃었다.
“하하. 베르웬 공작이 8황자에게 푹 빠졌군!”
심지어 하일렌의 황제와 베르웬 공작이 황자 때문에 마찰도 생겼다니!
더욱이 8황자를 성에 가두는 등, 공작이 온갖 기행을 일삼는 중이란다.
“8황자가 베르웬 공작을 유혹하였으니 이제 다음 차례로 넘어가야겠군.”
흑마법사가 괜히 8황자 보고 공작을 유혹하라 한 것이 아니었다.
“그 완벽해 보이는 공작에게도 약점은 있다.”
예전에 켈리언 님과 공작이 협정했을 당시, 흑마법사는 그때 베르웬 공작을 보고 알아챘었다.
“그때 공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