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niacs are Obsessed With the Fake RAW novel - Chapter (42)
켈리언은 앞의 남자를 징그럽게 보며, 그를 향해 젖은 수건을 던졌다.
“사내새끼한텐 관심 없다. 그러니 넌 저기로 꺼져 수발이나 들어라.”
목숨을 건진 남자는 연신 고갤 숙였다.
“자, 자비에 감사합니다. 저, 전하.”
그 모습을 못마땅하게 보던 켈리언이 결국 욕탕을 완전히 벗어났다.
‘이상하군.’
허리에 수건만 두른 채, 켈리언이 맨발로 야외 복도를 성큼성큼 걸었다.
사내새끼는 싫은데, 왜 베르웬 공작은 괜찮은 것인지.
여인같이 아름다운 그 얼굴 때문인가. 직접 만나기 전까진 단지 기사로 삼고 싶을 뿐이었는데.
베르웬 공작이 자신에게 기사 서약을 하며 무릎을 꿇는다면.
그때 자신을 올려다볼 그 얼굴은…….
“젠장.”
안구에 피가 몰리는 걸 막으려 켈리언이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
“너. 이리 와 봐라.”
켈리언이 궁전을 지키던 위병 한 명에게 손가락을 까딱했다.
“……예, 전하!”
위병이 켈리언의 상체를 보지 않으려, 고갤 숙이며 더듬더듬 다가왔다.
“가서 재상을 불러와라. 이제 황궁을 완전하게 진압했으니 대공을 잡아야겠다.”
대공은 국경 지대가 근거지였다. 하일렌 제국과 맞대고 있는.
남쪽으로 가 얼른 일을 처리해 황좌를 가진 다음.
“뭐든 가져 보면 알겠지.”
그다음 목표를 노릴 것이다.
자신을 이리 이상하게 만드는 공작을 가질 것이다.
***
바하트 제국의 바이우드 영지.
“형님, 말도 안 됩니다! 베르웬 공작을 절대 저희 영지에 들여선 안 됩니다!”
하일렌 황궁에서 탈출해 영지에 도착한 보르도 자작, 정확히는 바이우드 백작의 차남이 소리쳤다.
“무엇이 말이 안 된단 말이냐!”
백작의 장남인 후계자가 책상을 내려쳤다.
이미 베르웬 공작에게서 연락을 받았다. 바이우드 영지에 비밀리에 들어오고 싶다는 내용의 밀서였다.
“네놈이 소드마스터인 베르웬 공작을 막을 수 있냐? 사실 이 일이 다 네놈 탓에 일어난 거 아니냐!”
바이우드의 후계자는 골치가 아팠다. 영지의 성주인 아버지는 대공의 편에 섰고.
“황태자가 황궁을 진압했으니 곧 남쪽으로 올 것이다. 우리의 전력은 아버지가 대공을 지원하러 다 끌고 가셨다!”
“그, 그걸 누가 모릅니까?”
“지금 베르웬 공작의 심기를 건드리면 우리는 손도 못 쓰고 함락될 것이다!”
후계자가 밖에 선 기사들에게 눈짓했다.
그러자 기사들이 자작을 포박했다.
“나는 네놈을 넘겨주고, 공작을 돌려보낼 것이다. 알겠나?”
큰 분란을 만들 필요가 없다. 저 호색한 놈만 보내면 된다.
베르웬 공작이 성문을 열어 달라면 열어 주고, 제 동생을 달라면 줄 것이다.
“우리는 어차피 죽을 것이다.”
켈리언이 아닌 대공의 편에 섰으므로.
이러나저러나 죽는 거라면, 후계자는 자신의 아이들만큼은 살리고 싶었다.
베르웬 공작을 돕고, 가족들의 신변을 약속받을 것이다.
***
바이우드에서 온 밀서를 받은 나는 영주 대리인인 후계자가 원하는 대로 해 주었다.
적당한 왕국의 귀족 자리로 그의 가족들의 신분 세탁을 도운 것이다.
“[오. 언니 좀 대단하다.]”
워낙 은밀히 처리하는 일이라, 폐저택에 와서 많은 일을 하다 보니.
“[난 언니가 맹하게 구는 모습만 매일 봐서 잘 몰랐는데 언니 일하는 거 멋있어.]”
소파에서 빈둥대는 로잘린과도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됐달까?
그녀는 뚝딱뚝딱 왕국에 자리를 만들고, 은밀히 후계자의 가족들을 이동시키는 내가 색다르게 보이는 모양이었다.
“[내가 맹하다고?]”
나는 서류를 넘기며 웃었다. 아무도 나한테 그런 말 못 하는데.
“[내가 황제였으면 언닐 책사로 썼을걸?]”
“[나도 책사였으면 좋겠다. 그냥 앉아만 있고 싶다아-.]”
나는 마지막 서류를 다 검토하곤, 펜대를 놓았다.
내 소원이 집에서 늘어지게 쉬는 거야.
그 꿈을 이미 이룬 거 같은 로잘린을 바라봤다. 쿠키를 먹으며 그녀가 공책을 휙휙 넘겼다.
“[로잘린.]”
쿠키 맛있어?
하고 묻고 싶지만, 그냥 입을 닫고 일어섰다. 그래, 나는 물이나 마시자.
“[자.]”
물을 마신 후, 로잘린 목 막힐까 봐 우유까지 대령했다.
그 후 그녀가 앉은 소파 밑에 자릴 잡았다. 떨어진 쿠키 부스러기를 손으로 쓸어 냅킨 위에 모으고 있으니,
“[아악!]”
로잘린이 갑자기 괴성을 질렀다.
깜짝 놀란 나는 냅킨 위에 모인 쿠키 부스러기를 후드드 쏟아 버렸고 말이다.
……아, 이젠 바닥이 더러워졌네.
“[난 몰라! 모르겠다고오!]”
로잘린이 공책을 제 머리에 덮어썼다.
그녀가 보고 있던 건, 그녀의 보물 1호. 원작의 내용을 적어 둔 공책인 복기록.
“[왜 그래?]”
“[전혀 모르겠어. 전혀! 이 일을 벌인 자 말이야. 원작을 아무리 찾아봐도 의심 가는 이가 없다고!]”
로잘린도 이 일의 배후를 샅샅이 찾고는 있지만, 영 소득이 없는 거 같았달까.
“[……언니. 그냥 샤비얀한테도 물어보면 안 돼?]”
흐음. 애초에 이 모든 일은 샤비얀이 자작에게 묘약을 받으면서 시작된 거긴 하지.
어쩌면 샤비얀을 통해 실마리를 잡을 수도 있다. 하지만.
“[안 돼. 아픈 애한테 그러다가 스트레스받으면 어떡해.]”
가뜩이나 아파서 힘들어하는 애한테, 신경 쓸 일을 만들어 주고 싶진 않았다.
“[어차피 내가 바이우드에 가잖아.]”
나는 한 손으로는 진정하란 의미로 로잘린을 다독이며, 바닥을 다른 손으로 쓸었다. 하아. 밖에선 알까?
내가 여기선 청소부 신세란걸?
“[내가 해결할게. 자작을 잡아서 물어보면 될 거야.]”
우선, 샤비얀 약부터 구하고.
나는 커튼이 살랑이는 창가를 바라봤다.
곧, 바이우드로 갈 것이다.
***
이제 모든 준비는 다 끝났다.
나는 창백하게 누워 있는 샤비얀의 손을 잡았다.
“……아, 안 가시면 안 돼요?”
잠든 줄 알았던 샤비얀이 눈을 떴다. 잡은 손에 힘이 없었다.
“저 아픈데……. 저 아파요, 네?”
오묘한 푸른 눈동자에 눈물까지 드리운 채 내게 애원했지만…….
“죄송합니다. 전하.”
그러니까 가는 거야. 꼭 약 구해서 올게.
샤비얀의 안전을 위해서라도 가야만 했다.
울먹울먹하는 샤비얀의 눈가에 모인 물기가 곧 떨어질 듯이 찰랑였다.
아잇. 마음 약해지게 울지 말라고.
“전하. 약도 잘 드시고 찬바람 안 들게 몸도 따뜻하게 하셔야 합니다.”
내가 샤비얀의 이불을 토닥여 주었다.
마기에 중독된 탓에 몸이 약해진 터라, 푹 쉬어서 체력을 최대한 끌어 올려야만 했다.
나는 울먹이는 샤비얀을 바라봤다. 내가 가는 게 그렇게 싫은가?
샤비얀을 달래 주려, 다리를 살짝 굽혀 그의 이마를 매만졌다.
“다 나으시면 같이 가요. 전하.”
“……어, 어딜요?”
샤비얀이 낫기만 하면 어디를 못 가겠나.
내가 살짝 미소 지으며 그의 열 오른 이마를 내 찬 손으로 식혔다.
“베르웬 영지에 히아신스 꽃이 흐드러지게 피는 곳이 있습니다.”
“…히, 히아신스요?”
“예. 전하의 눈동자를 아주 빼닮은 꽃이지요. 히아신스는.”
이전부터 생각해 온 거지만…….
살짝 보랏빛이 비치는 샤비얀의 푸른 눈은 히아신스와 닮았다.
“베르웬의 히아신스는 특별히 가을에 핍니다.”
보통 히아신스 개화 시기는 봄이지만 베르웬 영지의 히아신스는 마법으로 종자가 개량돼, 가을에 히아신스를 피워 냈다.
푸르게 일렁이는 가을 평야를 상기한 내가 말문을 열었다.
“전하가 나으시면 갈 수 있겠군요.”
그리고 샤비얀은 가을까진 나을 것이다. 내가 약을 구해 올 테니까.
“다녀오겠습니다.”
“……예.”
그의 히아신스를 닮은 눈동자가 나를 불안하게 올려다보았다.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우물쭈물하던 샤비얀이 결국 내 소매를 놓았다.
다녀올게. 무사히.
***
샤비얀은 요즘 공작님이 바쁜 걸 아주 잘 알았다.
‘왜…….’
그는 고열 탓에 흐려진 시야로 나가는 공작님의 뒷모습을 봤었다.
잠깐잠깐 들르실 때마다.
‘황녀의 향인데.’
셔츠 사이, 들고 온 서류 사이에 나던 그 향이 있었다.
장미 향.
“……착각이겠죠?”
공작님은 절대 그러실 분이 아니다. 아픈 자신을 두고 황녀 전하를 만나실 분이 아니다.
‘히아신스.’
얼른 나아서 공작님과 히아신스를 보러 가고 싶었다.
꽃을 꺾어 가져다주겠다는 게 아니라, 같이 꽃을 보러 가자고 하는 공작님이 좋았다.
‘공작님은 그런 분이 아니시죠.’
작은 것 하나도 소중하게 여기시는 그분은 아픈 자신을 두고 옛 연인을 만나실 분이 아니다.
샤비얀이 아픈 몸을 끌고, 창문가에서 대전으로 향하는 공작님을 내려다보았다.
“꼭 같이 가요.”
히아신스가 있다는 공작님의 영지에.
***
레시우는 내가 바이우드에 가는 일에 협조해 주는 대신 사람을 한 명 붙여 주겠다 했었다.
그 명을 받기 위해서 대전 회의를 끝낸 레시우스를 찾아가는 중이었다.
‘고양이 털?’
그리고 나는 대전 문 앞에 떨어진 주황색 털을 보고 당황했다. 머리카락은 아닌데.
……설마 그 근엄한 주황 고양이가 대전 안에 있는 건가?
쿵-.
문이 열리고, 대전 안엔 당연히 고양이 대신 레시우스가 황좌에 앉아 있었다.
그것도 엄청 방만한 자세로.
“왔나?”
야아. 너 지금 대신들이 없다고 너무 편히 앉아 있는 거 아니냐?
“예. 폐하.”
잔뜩 복장을 흐트러뜨린 채로 레시우스는 황좌에 녹진하게 늘어져 있었다.
뭐랄까. 나른한 고양이 같았달까.
“공작.”
눈빛이 세상만사 다 겪은 할아버지 같은 눈 같기도 했다.
“저 아이와 함께 가게.”
게다가 무표정을 하고 있으니, 태생적으로 차가운 외형이 두드러졌다.
권태롭게 입술을 비튼 그가 손짓으로 대충 단상 구석을 가리켰다.
‘누가 우리 레시우스 잡아먹은 거 아냐?’
사실 저건 레시우스가 아니라, 다른 사람인 거지.
평소와는 너무 다른 그의 기운에, 나는 실없는 생각을 하며, 레시우스가 가리킨 단상 구석을 살폈다.
“크흠.”
그곳엔 황제를 책망하듯 헛기침하는 기사가 있었다.
잠시만…… 기사가 황제한테 저런다고?
“짐의 수족 중 한 명인데. 그림자라고…….”
레시우스가 잠시 생각하듯이 말을 멈췄다.
쟤 진짜 이상하네? 왜 저래?
“……음. 아, 그래! 얼굴을 보면 안 되네.”
까먹은 대사를 기억했다는 듯, 레시우스가 다시 입을 열었다.
“공작님.”
옆의 기사가 입을 여는 걸 보고, 나는 황좌 위의 레시우스와 기사를 번갈아 볼 수밖에 없었다.
기사 쪽이 더 레시우스 같은 목소리인데?
“폐하의 명을 받들어 공작님을 잘 보필하겠습니다.”
하지만 그 생각은 곧 비워 냈다.
‘레시우스는 저기 앉아 있잖아?’
레시우스가 둘이라니 있을 수 없는 일이지.
사람을 완전히 모방하는 마법은 거의 사장된 마법. 대마법사 클리프 정도야 가능할까?
“앞으로 잘 모시겠습니다.”
나는 쓸데없는 생각을 지워 내며, 앞서 걷는 그를 따라 걸었다.
***
“레시우스 저놈. 처음부터 따라갈 생각이었던 게야.”
황좌에 늘어진 레시우스, 아니, 클리프의 입에서 말이 샜다.
‘원래 르윈을 따라갈 생각이었습니다. 그동안 클리프 님이 저인 척해 주십시오.’
왠지 순순히 그 아이를 보내 준다고 했더라니.
레시우스는 이미 그때 클리프에게 대역을 시킬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쯧. 레시우스의 모습으로 클리프가 혀를 찼다. 대자에게 이리 휘둘리다니.
그럼에도.
“무사히 돌아오거라.”
클리프는 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