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niacs are Obsessed With the Fake RAW novel - Chapter (44)
“그러니까 당신이, 아니, 할아버님이 제 대부시라고요?”
“그렇다!”
클리프가 서럽게 외쳤다.
‘아니. 설명을 해 보라고.’
건들건들하게 다리를 떨던 로잘린이 자신을 몰아붙였을 땐 얼마나 놀랐던가.
“더불어 대마법사 클리프 님이시구요.”
클리프는 자신을 입증하기 위해 본모습과 고양이로까지 변해야만 했다.
“그리고 지금은 고양이시네요.”
로잘린의 손에서 골골대던 클리프가 고양이로 변한 몸을 일으켰다.
“변신 마법이 얼마나 고난도의 마법인 줄 아느냐! 특히, 이렇게 자유자재로 변하는 건 나 말고는 아무도 못 한다!”
하지만 이 모습으로는 아무리 화를 내 봤자 그저 주황색 살찐 고양이였을 뿐이었다.
“흐음.”
클리프의 얘기를 다 들은 로잘린이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레시우스가 어디 가려고 클리프가 그 대타를 맡았다는 말인데.’
어디로 가려 했을까?
그것도 언니가 베르웬 영지로 간 이 시점에 딱 맞춰서?
“저도 갈래요!”
로잘린이 번쩍 손을 들었다.
“뭬?”
이상한 소리가 고양이의 입에서 튀어나왔다. 고양이의 긴 콧수염이 콧바람에 넘실댔다.
“오라버니 부탁도 들어주셨잖아요! 제 부탁도 들어주세요!”
확실하진 않지만 렉티스, 바이우드, 베르웬 영지.
국경 지대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 확실했다.
‘내 꿈에 의하면 언니가 위험해.’
정확한 꿈의 내용은 기억하지 못하지만, 자신이 느꼈던 감정은 선연했달까.
“여름 궁전에 가고 싶어요.”
로잘린이 선선한 밤임에도 불구하고, 덥다는 듯 손부채질 했다.
황실의 별장인 여름 궁전은 시원한 북방에 위치해 있었고, 그녀가 황궁에 없는 동안은 클리프에게 샤비얀의 안전을 맡기면 된다!
완벽한 계획에 로잘린이 미소를 숨기며, 가련하게 손등으로 이마를 짚었다.
“끙, 그건 좀…….”
클리프가 망설였다.
자신이 레시우스의 대타라곤 하지만, 레시우스는 아니지 않은가.
실제로 중요한 업무는 레시우스가 돌아와서 할 수 있도록 차곡차곡 쌓이고 있었다.
“너무 하시네요.”
로잘린이 눈물을 찍어 냈다.
그녀는 열연하는 배우처럼 보름달을 향해 손을 쭉 뻗었다.
“오라버니의 부탁은 그렇게 서슴없이 들어주시면서.”
“그, 그게 아니라…….”
“제 부탁은 못 들어주시겠다는 말씀이시죠.”
로잘린이 눈물을 흩뿌렸다.
“이렇게 차별하시다니! 너무해요!”
엉엉 울던 로잘린에 마음이 약해진 클리프가 조그마한 솜방망이로 그녀의 어깨를 두드렸다.
‘그래. 여름 궁전에 가는 게 뭐 그리 큰일이겠나.’
더워서 가는 거겠지.
“그래. 알겠다!”
클리프의 허락이 떨어지자마자, 울음을 그친 로잘린이 눈을 크게 떴다.
“그럼 가기 전에 준비할 것도 있는데, 이것도 들어주실 거죠?”
막힘없이 쏟아지는 로잘린의 요구에 클리프가 끙, 하며 꼬리를 탁탁 털었다.
‘말리는 것 같단 말이지.’
클리프는 수백 살은 더 어린 대녀에게, 말렸다는 기분을 지울 수가 없었다.
***
‘미남이라서.’
그 말이 다시 떠올랐던 건, 바이우드로 가는 여정이 시작된 지 6일 후.
정확히 베르웬 영지로 들어가는 코앞에서였다.
“잠깐.”
잠에 들기 전 지난번 여관에서 있었던 일이 갑자기 떠올라, 이불을 차며 일어났다.
“아냐! 아닐 거야…….”
조금은 화려한 지금의 여관방을 보며 기억을 더듬었다.
그때 그 여관은 이것보다 작았다. 침대도 작았고. 나는 다음 날부터 강행군시킬 요량으로 기사도 침대 위에서 재웠었다.
그때…… 여관에서 내가 기사 얼굴을 조몰락거렸던 거 같긴 해.
‘제가 병법서에서 봤던 바로는…….’
기사는 함께하는 동안 종종 병법서나 전술 얘길 하기도 했는데.
요지는 군부 내 너무 친밀한 관계는 전술적으로 안 좋다는 말이었다.
설마 오해하나?
“그럴 수도 있지. 지금 나는…….”
액면상 미친 남색 공작이잖아!
실제론 여자긴 하지만 겉모습은 남자고, 샤비얀이랑 그렇고 그런 사이이기도 하고.
그런데 얼굴을 만지며 그런 말을 했으니.
퍽퍽-.
민망해서 이불을 찼다. 아, 몰라. 뭐라 수습하냐고.
근엄한 공작은 개뿔.
잠에 취해서 기사 얼굴을 주물럭거리는 상관이 근엄은 무슨!
그리고 다음 날.
“잠 못 주무셨습니까?”
식당으로 내려온 기사가 걱정스럽게 내 안부를 물었다.
아. 응. 쪽팔려서 못 잤어.
“아니네. 잘 잤네.”
그렇다고 진실을 말할 순 없으니, 고갤 저었다.
여관 식당 구석 자리로 간 나는 기사의 맞은편 자리에 앉았다.
얘는 어차피 투구 써서 못 먹을 거 왜 먼저 나왔나 몰라.
“안 해 줘도 되네.”
“아닙니다. 제가 해 드릴 겁니다.”
길쭉한 손가락으로 고상하게 칼질하고 있는 기사를 눈에 담았다.
사실, 잠자리가 노상이 아니라 여관일 뿐이지. 우리의 여정은 강행군이었다.
기사가 이 일정을 따라올 수 있을까 했던 걱정이 무색할 만큼. 그는 체력이 좋았다.
봐라. 봐. 저 정갈한 자세. 말도 지쳐서 역참에서 몇 번이나 다른 말을 빌려야 했는데.
딱 먹기 좋을 정도로 고기를 잘라 둔 접시가 앞에 놓였다.
“자네는 정말 안 먹어도 되나?”
“배 안 고픕니다.”
포크에 콕 찍은 먹음직한 고기를 기사 앞에 내밀자.
“정말 괜찮습니다.”
고기를 써느라 벗은 맨손으로 그가 내 손을 잡고 포크를 내 쪽으로 돌렸다.
“으응?”
우리가 서로 익숙해지며, 가끔씩 그는 무의식적으로 선을 넘는 경우가 있었는데 이게 바로 그거였다.
함께 포크를 잡은 손으로 그가 내 입속에 고기를 쏙 넣어 주었다.
그러곤 자연스럽게 내 입술에 묻은 소스를 냅킨으로 닦아 줬다.
“저는 공작님이 먹는 거만 봐도 괜찮습니다.”
얘는 알까. 지금 이게 선을 세게 넘은 거라는 걸.
***
‘드디어 이제 곧 베르웬 영지다!’
허리춤만큼 오는 넝쿨을 지나자, 속이 뻥 뚫릴 만한 전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지름길로 오느라 묻은 내 어깨의 풀잎을 기사가 떼 주었다.
“이곳이 베르웬 영지군요.”
그의 말처럼 광활한 베르웬령이 끝도 없이 펼쳐지고 있었다.
여름의 푸르름을 품은 대지, 그 들판 위를 훑으며 불어오는 북풍.
어쩐지 옆의 이를 닮은 듯한 수풀 향이 넘실거렸다.
‘오랜만에 보니까.’
좀 멋진데?
저 멀리, 베르웬 영지임을 알리는 성벽까지 어렴풋이 보였다.
오랜만에 돌아온 고향에 나는 코끝을 쓱 닦았다.
저기서 활 연습하고. 저 성벽에서 암벽 등반하듯 벽 타는 연습하고.
고생한 기억밖에 없지만.
“황성보단 북부가 투박하긴 해도 사람들이 호전적이라 뒤끝이 없네.”
그럼에도 내 고향이었다.
내 영지이기도 했고.
기사가 묻지도 않았는데도 나는 자랑을 줄줄 이어 갔다.
“겨울엔 춥지만 대신 여름에는 시원하다는 장점이 있지. 그래서 황실의 여름 별장인 여름 궁전도 북부에 있고 말일세.”
물끄러미 나를 올곧게 보던 기사가 살짝 고갤 내렸다.
“예.”
왠지 웃고 있을 것만 같은 음성이었다.
저, 투구 한번 벗겨 보고 싶네. 무슨 표정인지 당최 알 수가 없으니.
“자네 비웃은 건 아니지?”
“아닙니다.”
그림자의 특성상 신상이 밝혀지면 안 된다는 건 나도 안다.
그래도 눈 정도는 괜찮지 않나?
“그럼 눈이라도 보여 주면 안 되나?”
“제 생김새가 궁금하신 겁니까?”
그건 아니고 표정이 궁금하다고!
“기억 못 하시니 섭섭합니다.”
요 근래 부쩍 친해진 기사가 장난쳤다. 내가 기억이 없었으면 저 말에 왜 저래? 하고 넘겼겠지만.
‘미남이라서.’
그의 얼굴을 조물조물했던 과거가 떠오른 탓에 부자연스럽게 고삐를 쥐었다.
“아.”
기사가 투구 속에서 낮은 웃음을 흘렸다.
설마 내가 그때 기억을 떠올린 걸 아는 건가?
아냐, 아닐걸?
“얼굴을 못 보니 답답해서 그런 거네!”
억울하다. 기사는 내 표정을 보는데 나는 못 보잖아.
얼굴도 조금 궁금하긴 했다.
손으로 더듬거렸던 감각으로 보면 그는 단단하고 날렵한 이목구비를 가진 자였고. 미남일 게 분명한 자였다.
“자네는 안 답답한가?”
하지만 못 보여 준다는데 어쩌겠나. 나는 화제를 다른 곳으로 돌렸다.
투구 쓰고 고생한 건 나도 해 봐서 알지.
되게 불편할 텐데. 시야도 좁을 거고.
“저는 좋습니다. 은근히 유용할 때가 많습니다.”
“…….”
“투구를 쓰면 표정이 드러나지 않으니 본심을 숨길 수 있다던데. 맞는 말 같더군요.”
무게감 있는 중저음의 음성이 투구 속에서 흘렀다.
그렇긴 해. 그래서 일부러 투구를 쓰고 협상을 진행하는 경우도 있었다.
예전에 내가 들은 바로는…….
“좋아합니다.”
갑자기 훅 치고 들어온 말에, 나는 깜짝 놀랐다.
일렁이는 초록색의 풍경과 그의 말소리가 섞여 나를 덮치고 있었다.
응?
나? 내가 당황해서 굼뜨게 그를 향해 고갤 돌리자.
기사가 자신의 투구를 톡톡 건드렸다.
“이거 말입니다.”
아. 투구를 좋아한다고.
“좋아합니다. 제가 많이.”
그가 흐릿하게 말을 되뇌었다.
초여름의 녹음을 담은 풀 내음이 우리 둘 사이를 맴돌았다.
“하하하. 그렇군.”
아 민망하네.
괜히 착각한 탓에 민망해진 내가 웃음을 터트렸다.
여름 특유의 따스함을 담은 북풍이 뺨을 간질였다. 나는 왼쪽 뺨을 문지르며 생각에 잠겼다.
“…….”
나를 보는 그의 얼굴은 여전히 가려져 있었고.
그냥 궁금해졌다.
저 안에서 날 보고 있는 기사는 지금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지.
“……가세.”
궁금증을 지워 내며 말고삐를 틀어쥐었다.
현재의 일에 집중해야겠지.
“이랴!”
그를 이끌고 베르웬 공작령을 향해 거세게 달려갔다.
초여름이라 그런지 마주 오는 바람이 따뜻했다.
***
하일렌 제국의 냉궁.
앓고 있는 샤비얀은 밤과 낮의 경계가 모호했다.
자고 일어나면 밤이기도 했고 낮이기도 했다. 온몸이 축 처지고 힘이 없지만.
“전하, 약 드실 시간입니다.”
공작님과의 약속을 지키려 정말 열심히 약도 먹고, 나으려 노력 중이었다.
‘베르웬 영지에 히아신스 꽃이 흐드러지게 피는 곳이 있습니다.’
베르웬의 히아신스는 가을에 핀다고 했다.
샤비얀이 궁인들에게 물어보니 초대 베르웬 공작이 정인에게 청혼하기 위해 가을에 히아신스 꽃을 피워 냈다는, 유명한 이야기도 있었다.
‘그래서 베르웬 공작령에선 청혼할 때 히아신스를 많이 쓴다고 했어. 사랑의 징표라고.’
자신은 남자니까 청혼받진 못하겠지만. 그래도 사랑한다는 말을 에둘러 하신 건 아닐까.
‘공작님은 그런 말을 직접 하시는 분이 아니니까.’
샤비얀이 몸에 난 열이 아니라, 부끄러움으로 얼굴을 붉힐 때,
“……어머. 그러면 우리 황자님은 어떻게 되는 거야?”
밖에서 복도를 청소하던 궁인들이 속닥였다.
아마 샤비얀이 잠들었다고 생각하는 듯한데…….
“황녀 전하가 여름 궁전이 있는 북부에 가신다고?”
“응.”
샤비안은 앓아누운 가운데, 공작이 있는 북부에 옛 연인인 황녀가 간다.
많은 상상을 자아내는 이야기였다.
“근데…… 나도 들은 얘기가 하나 있긴 한데.”
“뭔데?”
궁인이 조심스럽게 얘길 꺼냈다.
“기사들이 하는 얘길 들었는데…….”
“…….”
“공작님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