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niacs are Obsessed With the Fake RAW novel - Chapter (47)
레시우스는 르윈의 몸을 고쳐 안았다.
무릎에 앉은 르윈의 키는 좀 전보다 작아져 있었다.
‘르윈이 정말 여자였어…….’
의심을 해 왔지만, 눈앞의 광경을 믿을 수가 없었다.
작아진 손등을 레시우스가 감쌌다. 작았다. 품에 안긴 몸 역시도.
“흐으.”
바스락, 몸을 움직이며 청초한 속눈썹이 혼미하게 열렸다.
열감에 흐려진 은회색의 눈동자가 레시우스의 것과 마주쳤다.
“읏…….”
근심과 걱정과 격정이 뒤섞이며 그의 머릿속을 헤저었다.
마수에게 물린 상처에서 독성을 빼내야만 했다.
그러나 그 최초의 목적을 잊고 레시우스는 르윈의 목에 날렵한 콧대를 묻었다.
“흐읏.”
목마른 순례자처럼 달콤한 샘에 입술을 축였다.
집요하게 붙어선 입술은 자제력을 잃고 그녀의 목덜미 위를 탐했다.
“하아.”
작은 헐떡임과 얕게 질척이는 소리가 버려진 신전에 울렸다.
“르윈.”
이 비틀린 사랑의 주인.
“르윈…….”
내 영혼의 주인. 내 모든 것.
아주 작은 틈만 남긴 레시우스가 혼망한 르윈의 눈을 보며, 입술을 내렸다.
“……르윈.”
하얀 목덜미에 닿은 입술에서 숨결같이 뱉어진 희미한 말이 허공에서 흩어졌다.
사랑해.
차마 소리 내지 못한 그의 고백이 물기가 범람하는 녹안에서 넘쳐 눈물과 함께 젖어 흘러내렸다.
***
온몸이 물속에 깊게 잠긴 듯했다. 무거운 몸을 간신히 일으키니.
“으아.”
뼈마디가 비명을 질렀다.
와. 소드마스터가 된 이후로 이렇게 아픈 적은 처음이다.
짹짹-.
눈을 뜨니 지붕도 없는, 하얀 기둥만 시야에 들어찼다.
신전인가?
“하아. 그 와중에 어떻게 여기까지 온 거지.”
기둥을 세운 아카 일족까지 다 보내고, 쓰러진 거까지만 기억나는데.
그 와중에 용케도 여기까지 왔구먼.
“아으…….”
목덜미가 따끔한 걸 보니 마수한테 물린 건가.
이상하네.
마수의 독성에 당했으면 지금 이 상태에선 못 깨어났을 텐데.
“으응?”
상처를 확인하려 간신히 목덜미를 만지니.
이게 뭐지?
손등을 간지럽히는 실타래에 내가 손만 그대로 뻗어 바닥을 더듬거렸다.
이 뭉텅이들은…….
“뭐야!”
길어!
나는 머리를 쥐어 챘다.
갑자기 일어나려 했던 반동 탓에 어지러움과 함께 다시 바닥으로 쓰러졌다.
나 지금 흑마법이 풀린 건가.
‘예상 못 한 건 아니지.’
렉티스라서 마기가 세기도 했고, 무리하게 마나를 구동하기도 했으니까.
“하아…….”
큰일이네.
그때는 당면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생각에 앞뒤 볼 거 없이 달려들긴 했지만.
‘몸에 힘도 없네.’
흑마법이 풀린 여파와 마나 고갈로 인해서 나는 전에 없는 무기력을 느꼈다.
침식된 하얀 기둥을 타고 자란 나무 넝쿨을 보며 눈을 깜빡였다.
이제 어쩐다.
어쩌긴 뭘 어째. 우선은 갑옷부터 벗어야지.
‘혹여라도 흑마법이 풀리시면 여인의 모습으로 위장하십시오.’
‘나는 본래 여인이네.’
‘제 말이 무슨 뜻인지 아시지 않습니까.’
어설프게 짧은 머리를 유지하느니, 차라리 머리를 길게 한 것은 흑마법이 풀린 뒤 위장을 염두한 탓이 컸다.
뭐. 나는 본래 머리카락을 자르기 귀찮아서 그냥 둔 거지만.
“아아-.”
얇고 높아진 미성이나 뼈대가 얇아진 손목이나. 누가 봐도 날 그 베르웬 공작이라 생각 못 할 거다.
툭-.
작아진 체구 탓에 입은 갑옷이 품이 남아 덜컹거렸다.
그나마 움직여야 한다는 사명으로 남은 힘을 쥐어짜며 제단으로 걸었다.
“이게 뭐…… 지?”
재단을 덮었을 법한 하얀 천이 탁상 위에 곱게 접혀 있었다.
마치 내게 그것이 필요한 걸 알았다는 듯이.
‘이상한데.’
의아해하면서도 기둥 뒤에서 갑옷과 남자 내의를 벗고, 하얀 천으로 몸을 말았다. 간신히 갑옷까지 숨겼다.
응?
맨발로 신전을 딛자, 다시 한번 이상함이 느껴졌다.
오랫동안 방치됐을 신전의 바닥이 왜 이리 깨끗해?
이 정도 방치된 신전이면 바닥에 모래라도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
“……누구?”
젠장. 마나가 고갈된 터라 감각마저 둔했다.
항상 버려진 감각 속에 살다가 둔탁해진 감각에 어쩐지 겁이 난달까?
일반 사람의 기준으로 보자면 갑자기 귀가 먼 것 같은 공포심이었다.
분명 근처에 누가 있는 거 같은데.
“으윽.”
그 낯선 감각에다가 불안감에 마나를 쥐어짜며 두르려 했다.
하지만 그 순간 심장이 조여서 숨이 턱 막혔다.
몸이 한계를 이기지 못하고, 자기방어를 시작한 것이다.
“하윽…….”
평소 같으면 충분한 마나가 몸에 흘렀겠지만, 지금은 몸 상태가 마나의 흐름을 받아 주지 못했다.
내가 신음을 흘리며 다소 침식된 백탁의 신전에 쓰러지니.
탕, 탕, 탕.
철갑의 쇳소리가 바닥에 울리며, 황급히 한 기사가 튀어나와 나를 들어 올렸다.
“숨 쉬십시오.”
그가 홧홧하게 달아오른 내 팔을 그러쥐어 편하게 내 자세를 고쳐 주었다.
맨손으로 내 이마를 쓸어 주는 그의 손은 어딘가 쓸리고 부르터 있었다.
신전의 바닥을 맨손으로 쓸었다면 딱 손이 저렇게 됐겠지, 싶은 손이었다.
“자, 잠시만 목을…….”
달아오른 몸만큼이나 혼미한 나의 정신은 본능적으로 차가운 그의 품을 원했다.
샤비얀이 했던 방식을 떠올린 거다.
철갑에 몸을 부대끼면 좀 낫지 않을까?
내가 그의 목을 끌어당겨 기사의 갑옷에 안겨 들었다.
“……안 되겠습니다.”
묵직한 음성과 함께 기사가 날 안아 들고 어디론가 향했다.
내가 어지러울까 봐 최대한 자세를 유지하며 걷던 기사가 향한 곳은.
쏴아아-.
잔잔한 물결이 치는 호숫가였다.
그는 걸음을 멈추지 않고 호수로 그대로 들어갔다.
차가운 물결이 뜨겁게 달아오른 피부에 달라붙었다.
“좀 괜찮으십니까?”
그제야 나는 식어 가는 정신과 함께 그 기사의 정체를 정확히 인식했다.
나와 함께 온, 레시우스가 붙여 준 그림자였다.
“하아.”
이건 내가 내쉰 한숨이 아니었다.
그는 물결에 일렁이는 내가 감싼 흰 천을 추스르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찬물에 감기는 그의 손은 붉게 물들어 있었다. 나보다 한참은 더 빨갛게.
***
레시우스는 예상보다 상태가 안 좋은 르윈을 내려다보았다.
제 손에 안긴 르윈은 물의 표면에 잠겨 달뜬 숨을 내쉬고 있었다.
‘너를 어찌해야 할까.’
르윈이 여자라는 사실을 그가 안다는 걸 그녀가 알면.
“도망치겠지.”
그에게 해가 될 거라 하며 도망칠 거다.
모든 짐을 자기 혼자 짊어지려 영지 안으로 꽁꽁 숨어 버릴지도 모른다.
“흐으.”
르윈의 달뜬 숨이 청아한 낯에서 맴돌았다. 물속의 천이 나풀대며 그녀의 투명한 어깨를 드러냈다.
물에서 열을 식히는 건 르윈뿐만이 아니었다.
레시우스 역시 갑옷 속에서 끓어오르는 제 열기를 잠재워야만 했다.
“젠장.”
너무나 강렬한 광경에 레시우스가 고개를 빳빳이 올리며 허공을 응시했다.
르윈이 여자인 걸 알자마자 이런 자극이라니. 그로서는 참기 힘들었다.
‘그림자들은 안 부르는 게 좋겠군.’
수족이지만 그들에게 이 비밀을 들켜선 안 된다. 르윈을 보여 주기 싫다는 마음도 한몫했다.
우선 르윈의 몸이 회복될 때까지 보고 그녀의 의중에 따르기로 결정했다.
“추, 추워.”
물에서 나온 르윈이 하얗게 질린 채 떨었다.
그녀는 민가에서 구한 이불보에 꽁꽁 싸여 레시우스의 품에 안겨 있었다.
“추워?”
누가 볼까 말을 몰면서도 눈을 부라리던 레시우스가 금세 어조를 누그러뜨리며, 르윈을 더욱 감싸 안았다.
“여기서 제일 좋은 방을 내와라.”
결국, 그들은 하일렌으로 건너가지 못했다.
레시우스는 바이우드 옆 작은 마을의 여관 문을 열어젖혔다.
“……죽고 싶나?”
흰 천에 감싸진 채 안겨서 들어오는 르윈에게 주인장이 힐끔 시선을 주자.
레시우스가 그녈 안고 위압적으로 경고했다.
“아, 아닙니다.”
“수발들어 줄 여인이 필요하다. 방에 불도 때야 한다.”
고압적인 말투와 달리 여인을 감싼 천을 챙기는 손짓이 약하디 약했다.
“가져라. 대신 이만큼의 가치를 마땅히 해내야 할 것이다.”
금화를 대충 던진 레시우스는 얼른 방을 안내하라는 듯 고갯짓했다.
“따뜻한 물도 준비해야겠군.”
여관의 주인은 방에 자릴 잡은 기사가 불면 날아갈까, 조심스럽게 여인의 젖은 머리칼을 떼 주는 모습을 눈여겨보았다.
‘회색 머리다!’
얼굴은 보지 못했지만, 기사의 손에 올려진 것은 짙은 회색빛의 머리칼이었다.
“예예. 준비하겠습니다.”
여관 주인의 눈이 탐욕스럽게 빛났다.
***
“아가씨.”
아가씨?
내가 왜 아가씨야. 나는 베르웬 공작…… 아?
“깨어나셨습니까?”
수증기가 이는 나무 욕조 앞에 노쇠한 노인이 손으로 온수를 내 어깨에 끼얹어 주었다.
“이게 어찌 된 일인지…….”
“기사님께서 아가씨를 씻기고 채비를 도우라고 하셨지요.”
기사?
흐릿한 기억을 더듬었다. 아. 그제야 나를 도와줬던 기사의 얼굴, 아니 투구를 기억해 냈다.
“그분은 어디에…….”
“밖에 계십니다.”
건축 양식을 보니 아직 바하트네.
뼈대를 드러낸 굵직한 지붕 기둥을 보고 나는 상황을 파악했다.
내 몸 상태 때문에 멀리 못 가고 여기로 온 거 같긴 한데.
‘오히려 다행이겠지?’
하일렌에 가면, 아는 사람을 마주칠 수도 있었으니 바하트가 더 나을지도 몰랐다.
누가 베르웬 공작이 여기에, 그것도 여인의 모습으로 있을 거라 상상하겠나. 흐암.
“노곤하시면 주무세요. 제가 옷을 갈아입혀 드리겠습니다.”
수증기가 이는 허공을 보며, 나는 아니라는 듯 고갤 저었다.
저 할머니가 무슨 힘이 있어서 날 안아서 옮긴단 말인가.
나는 그냥 피곤함만 풀려, 눈을 감아 목 뒤를 나무 욕조에 댔다.
일어나서 저 기사가 왜 날 돕는지도 생각하고…… 옷도 갈아…… 입…….
그렇게 정신이 아득해졌다. 그러다 문득문득 잠에서 깼던 것 같다.
“수건으로 아가씨 몸을 감싸 드릴 테니, 기사님께서 안아서…….”
“……알겠…….”
그러곤 누가 날 안아 들어 침대에 옮겼던 거 같기도 하다.
“흐으.”
자던 내 이마를 쓸어 줬던 거 같기도 하고.
퍽-.
잠결에 무언가가 가격당하는 소리를 환청처럼 들었던 것 같기도 했다.
***
레시우스가 웬 남자의 목을 가격하며, 질질 밖으로 끌었다.
충분히 거리가 벌어지자, 그는 두 손에 쥔 두 개의 목덜미를 풀어 주었다.
“소리 내면 죽일 것이다.”
음산하게 뇌까린 레시우스가 포대 자루를 대충 구겨 두 남자의 입에 동시에 물렸다.
그리고 르윈을 만지려 했던 그 손가락을 철제 신발로 까득 밟아 버렸다.
“어수룩한 유랑 기사라 생각했겠지.”
수틀리면 죽여 버릴 수도 있었다.
레시우스는 르윈이 생각한 것만큼 약하지 않았다.
“끄윽!”
그가 잠시 방을 비운 새, 그들이 르윈의 방에 들어가는 것을 보자마자 달려와 봤다.
달빛에 물들어 빛나던 르윈의 얼굴을 넋 놓고 보고 있었던 자들이었다.
“크흑!”
레시우스의 발이 그대로 턱을 가격했다.
“누가 시켰나?”
그리고 곧 그들의 손에 들린 자루를 보고 깨달았다. 그들이 르윈을 납치하려 한 것이라는 걸.
“읍읍!”
레시우스가 입에 물린 자루를 뺐다.
“저, 저희는 모, 모릅니다.”
“예, 저희는 시킨 대로 했, 했습니다요.”
자신은 보기도 아까워 아껴 보는데.
이딴 버러지 같은 것들이 눈에 담다니.
“으억!”
“에구!”
피떡이 된 두 사람을 이끌고 레시우스가 그들이 알려 준 노예상에 가 그들을 던졌다.
“네놈이 뭔데 이런 걸 가지고 있나?”
아름다운 여인을 노린 범죄라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누가 시킨 건가?”
노예상의 책상에는 르윈의 초상화가 있었다.
“그, 그 요즘 회, 회색빛의 머리칼에 은색의 눈을 가진 노예를 찾는 자들이 많아서…….”
“뭐?”
레시우스가 짙은 눈썹을 구기며 물었다.
“화, 황태자의 처, 처소에 넣을 자들입니다.”
켈리언 그자가 왜 르윈을 닮은 자를…….
이내 레시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