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niacs are Obsessed With the Fake RAW novel - Chapter (51)
자욱한 먼지가 사그라들기도 전에, 켈리언은 다짜고짜 검을 빼 들었다.
“궁금하더군.”
“…….”
“과연 하일렌의 황제는 소드마스터인 공작을 기사로 둘 자격이 있는가?”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켈리언이 핏물이 흐르는 대검을 휘둘렀다.
“그게 궁금해 이리 찾아왔네.”
이를 본 레시우스 또한 검을 들어 맞부딪혀 오는 검을 막아 냈다.
챙-.
파열음과 함께 검은빛과 황금빛이 맞물려 튀어 올랐다.
레시우스의 녹안에도 분노의 섬광이 일었다.
“황태자, 자네보다는 더 자격이 있겠지.”
레시우스는 켈리언이 무슨 짓을 했는지 알고 있었기에.
‘화, 황태자의 처, 처소에 넣을 자들입니다.’
그는 앞뒤 분간 못 하고, 주제넘기까지 한 켈리언의 짐승 같은 낯짝을 바라봤다.
‘이 검은 짐승 새끼가 감히 르윈을.’
이딴 저열하고, 천박하고, 난잡한 자가 르윈을 생각하는 것도 싫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바를 다해 치욕을 주고, 고통을 주고, 불행을 주고 싶었다만.
레시우스의 격노했던 눈동자가 일순 고요해졌다.
채앵-.
그렇지만 레시우스가 완전히 이성을 잃었다면 이 상황을 깨닫지 못했을 것이다.
“막아?”
레시우스가 켈리언, 저자의 검을 막았다는 사실을.
‘이게 어찌 된 것인지 모르겠군.’
아무리 자신이 베르웬 성에서 검에 익숙해졌다고 하나, 그건 아주 잠깐이지 않은가.
어찌 켈리언 같은 자를 상대할 수 있다는 것이지?
레시우스가 맞부딪힌 검을 밀어 내자.
챙-.
다시 황금빛이 튀며 켈리언의 검이 밀려나는 걸 확인했다.
‘이 자는 악마의 혈통이 맞는 거 같군.’
르윈이 준 검은 신성력이 깃든 검.
켈리언의 검과 상성이 맞지 않아 검끼리 밀어내는 것이었다.
그 덕에 힘의 격차를 극복한 걸 테지.
“황제가 공작의 주군이 될 자격이 있나 이게 너무 궁금해서 왔는데.”
챙-.
켈리언이 맞댄 검 사이에서 날카로운 송곳니를 내보이며 웃었다.
“어느 정도는 하는군. 하나.”
“…….”
“공작의 주군이 될 만한 수준은 아닌 거 같군.”
레시우스는 수준 운운하는 켈리언을 무심히 바라봤다.
“바하트의 황태자는.”
“…….”
“주군이 될 자격 자체가 없을 터인데.”
레시우스가 대립한 켈리언을 보며 입 끝을 비틀었다.
레시우스는 켈리언이 진짜 악마의 혈통인지 확인해 볼 참이었다.
“사실 황태자는 황후의 혼외자라지. 그렇다면 너는 황제의 진짜 핏줄도 아니겠군.”
“……뭐?”
“바하트의 제국도 본디 자네의 것이 아닐 텐데.”
레시우스가 부릅뜬 켈리언의 눈을 보며 비소했다.
“어찌 누군가의 주군이 될 수 있겠나?”
레시우스의 도발에 켈리언이 검은 눈에서 불길이 치솟았다.
“……이 새끼가.”
음산하게 뇌까린 켈리언이 흥분해선 말고삐를 쥐었다.
그러곤 사납게 고삐를 다루며, 자신의 말을 레시우스의 말에 부딪혔다.
이히힝-.
유랑 기사로 위장한 레시우스의 빈약한 말은 금세 밀려 넘어졌고.
“폐하!”
동시에 레시우스 역시 굴러떨어졌다.
이에 그림자들이 얼른 다가가려 했으나, 레시우스가 가만히 있으라는 듯 냉담하게 눈짓했다.
챙-.
말에서 뛰쳐 내려온 켈리언이 그대로 검을 내려쳤고, 레시우스가 첨예하게 막아 냈다.
“황태자. 짐은 정말 궁금해.”
분명 켈리언의 검을 간신히 막고 있는 건 레시우스인데.
흙바닥에 등을 댄 불리한 위치임도 틀림이 없을 터인데.
“황태자가 무슨 자신감으로 짐을 찾아왔는지 모르겠군.”
우위에 선 듯한 모습으로 레시우스가 무미건조하게 입을 열었다.
그리고 맞댄 검날을 비켜 들어 켈리언의 얼굴을 비췄다.
“약점이나 잡히려고 온 것인가?”
켈리언의 붉어진 눈동자가 은빛의 검날에 비쳤다.
붉은 눈동자. 악마의 표식이라 여겨 불길하다 여겨지는 것.
“……하하.”
뒤늦게 웃음을 터뜨리며, 켈리언이 핏줄 돋은 제 이마를 손으로 짚었다.
“황제. 그 이야기를 한 자들은 다 죽었네.”
켈리언이 레시우스의 귀 옆에서 속삭였다.
“황제도 곧 죽겠군.”
그 말을 들은 레시우스가 가소롭다는 듯 느리게 뜸을 들였다.
“바하트가 하일렌에 번번이 지는 이유를 아는가?”
“…….”
“멍청해서.”
레시우스가 켈리언의 검을 밀쳐 냈고, 동시에 켈리언의 말을 찔렀다.
푹-.
살점이 꿰뚫리는 소리와 함께.
켈리언의 머리 위로 뜨끈한 핏물이 쏟아졌다.
“이, 씹.”
켈리언이 온몸에 피 칠갑을 하는 사이 이미 몸을 뺀 레시우스는 잽싸게 말에 올랐다.
“도망가는 건가?”
“바하트의 황태자는 확실히 멍청한 게 맞는군.”
레시우스가 어딘가를 손으로 가리켰다. 그리고.
“크허어어헝!”
늑대의 네 배는 될 만한 마수가 켈리언의 몸을 덮쳤다.
낮이라 잠들어 있던 마수들이 피 냄새에 깬 것이다.
피 냄새를 맡은 마수의 무리가 피 칠갑을 한 켈리언을 향해 사방에서 달려오고 있었다.
“저 개자식을…….”
레시우스는 욕지거릴 내뱉는 켈리언을 뒤에 둔 채, 핏물에 절은 까마귀만 챙겨 뒤로 빠졌다.
“폐하!”
아득한 지평선 너머로 달려온 그림자가 레시우스의 옆에 붙어 섰다.
“바이우드 백작이 영지로 돌아오고 있습니다!”
“…….”
“영지에 마수가 나타난 걸 처리하러 온 거 같습니다.”
레시우스는 검은 오러로 마수를 여럿 베어 내는 켈리언을 바라봤다.
바이우드 백작은 대공의 편.
즉, 켈리언의 적.
켈리언이 도착한 백작을 죽일 건 자명한 일었다.
“가야겠군.”
더 미적대다가는 바하트 내전의 소용돌이에 휩쓸릴 수 있으니. 우선은 빠져나가야 했다.
“가자. 하일렌으로.”
기절한 까마귀를 레시우스가 그림자에게 넘겼다.
해가 작열하는 불모의 땅. 금발을 헤집는 뜨거운 바람과 함께 레시우스가 달렸다.
하일렌으로.
***
샤비얀의 약을 찾으러, 바이우드 성으로 가는 길.
나는 꽤 황당한 상황을 마주했다.
‘신원 확인을 해야하니 로브의 후드를 걷어 보시오.’
여름 궁전이 있는 하일렌 황제의 직할령에서 벗어난 지 얼마 안 됐을 무렵이었다.
바이우드 성으로 가려 바하트의 작은 영지에 들린 것뿐인데.
길목인 영지의 성문에서 병사들이 신원을 확인해야 한다 했고.
나는 당연히 미리 가짜로 만들어 놓은 어떤 왕국의 귀족 증서를 내밀었다.
그런데…… 그랬는데.
“노예상에 팔면 값이 꽤 나가겠군.”
응?
내 얼굴을 살피는 황동색의 눈동자가 깜빡였다.
성문의 병사가 나를 데리고 온 막사.
구릿빛의 남자가 와서 상품 보듯이 내 얼굴을 뜯어보았다.
적국의 땅이기도 하고, 그냥 조용히 처리하려 따라왔더니 이 이상한 상황에 처한 거다.
나 지금 잡힌 건가? 그것도 내 발로?
“요즘 이 눈동자와 머리 색이 수요가 좋거든.”
“…….”
“이쁘게 생겼군.”
뭐라는 거야.
“베르웬 공작을 닮았어. 내가 그자를 멀리서 본 적이 있지.”
내가 걔야.
남자의 눈썹 위로는 길게 난 상처가 있었다. 그자가 웃었고.
나는 조인트를 깔까 말까 고민하며 아래를 보며 긴 속눈썹을 내리는데.
“얌전하기까지 하네.”
고민하는 나를 보며, 남자가 마음에 든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오늘 네가 해 줄 일이 있다.”
“…….”
“싫다고 해도 나는 너를 누군가에게 보낼 것이다.”
하. 기가 차서.
내가 내민 건 위장용이긴 하지만, 왕국 귀족의 증서였다.
아무리 내전 중이지만 바하트 치안 수준이 쓰레기인데?
남의 왕국 귀족도 막 노예로 부리려 하고? 어?
“그게 무스…….”
“너를 황태자에게 오늘 밤 보낼 것이다.”
황태자라. 여기는 바하트 제국 안이니까…….
켈리언?
남자의 입에서 나오는 말에 나는 다시 입을 다물었다.
켈리언한테 날 왜 보내? 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말은.
“잠시만. 오늘 밤이라 그랬나?”
“그렇다.”
남자가 앞에서 고민하고 있던 내 얼굴을 요모조모 뜯어보며 입매를 올렸다.
오늘 밤이라고?
“지금 황태자가 이 부근에 있나?”
창밖을 보니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고 있었다. 오늘 밤이라면 한두 시간 후부터일 텐데.
그럼 이 근처에 있단 말이잖아.
“황태자는 대공의 영지에 있지 않나? 그곳이 격전지라 들었는데.”
흑마법이 풀린 동안은 베르웬 가에서 정보를 받아 보지 못했다. 여자로 보냈던 내 행적을 들키면 안 되니까.
켈리언이 국경 끝인 여기까지 왔다고? 왜?
챙-.
나는 로브 속에 숨겨 둔 검을 꺼내, 그자의 목에 들이밀었다.
“말해.”
예리한 검날이 목에 붙었어도, 그자는 눈을 가늘게 뜨며 내 정체를 가늠하고자 했다.
“……누구 봐야겠다고 국경이 있는 바이우드 백작령으로 갔다. 나도 뒤따라서 왔고.”
켈리언에 대해 말하는 투가 꽤 방만했다. 더욱이 저 억양.
하일렌 귀족들보단 억세지만, 유려한 운율은 바하트 귀족들이 쓰는 억양이다.
켈리언의 행적을 정확히 아는 걸 보면, 이자는 켈리언의 최측근인 거 같고…….
‘누구를 보러 가다니?’
설마…… 난 가?
켈리언이 보겠다는 인물이 나든 아니든, 켈리언이 바이우드에 있는 건 위험했다.
바하트에서 대공을 지지하며 켈리언에 대적하는 인사가 바이우드 백작이다.
즉, 켈리언의 적이다.
켈리언이라면 온 김에 바이우드 성을 다 쓸어 버릴 확률이 높다.
그런데 지금 아카 일족은 바이우드 성에 있을 거다. 내가 가라 했으니까!
‘생명수로 가는 길은 아카 일족만 알아.’
더욱이 그 순박한 사람들이 이 내전의 소용돌이에서 죽는 것도 사양이었다.
난 남자의 목에 댄 검날을 치웠다. 지금 더 시급한 상황이 있었으니까!
“내가 모든 말을 해 준 건 네 놈을 죽일 생각이었기 때문이었다.”
“…….”
“그 얼굴이 좀 아깝다만.”
야아. 나 바쁘다. 붙잡지 말라고!
챙-.
나는 검을 들었다. 날 죽이겠다니. 절대 불가한 말이지.
“공격할 거면 한 번에 하게. 시간이 없어서.”
그리고 결과는 당연히 뻔했다.
막사로 들어오는 수행원 같은 이들을 죄다 무찌르고, 나는 달렸다.
‘우선 가 보자.’
켈리언의 눈을 피해 숨어 있든, 모습을 드러내든, 위장을 하든. 여하튼 아카 일족을 구해야 했다.
나는 말에 오른 뒤, 바로 지면을 박찼다.
***
그 시각, 바이우드 백작령.
켈리언은 진득한 검은 핏물 속에 누워 있었다.
주변엔 마수들의 사체가 그득 쌓여 있었다.
“하하!”
당했군.
석양으로 붉게 물든 하늘이 한눈에 들어왔다.
‘전혀 온화한 자는 아니던데.’
켈리언이 하일렌 황제의 첫인상을 곱씹어 봤다.
온화하다기보단 냉랭해 보였다.
풀 한 포기 나지 않는 황폐한 불모지. 메마르고 건조해서 찔러도 피가 안 나올 거 같은 그런 무정한 남자.
“한데.”
공작의 얘기에 황제의 눈은 쉬이도 달궈졌다. 분노와 열기로 일렁이는 녹음이라.
‘적어도 황제에게 공작은 단순한 친구가 아닌 모양이군.’
그리 생각하던 켈리언의 앞에 누군가의 그림자가 졌다.
목만 들어 그 정체를 확인한 켈리언이 허리를 일으켰다.
“아. 왔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