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niacs are Obsessed With the Fake RAW novel - Chapter (52)
켈리언의 앞에 선 자는 이 영지의 주인.
바이우드 백작이었다.
그의 뒤로 기사와 병사들도 딸려 있었다.
“아아.”
켈리언이 검은 피가 묻은 손으로 흑발을 털었다.
아무리 그라도 이리 많은 마수 떼를 처리하니 조금 피곤했다. 그러기에 오늘은 자비를 베풀려 했으나.
“가게. 오늘은 보내 주지.”
“…….”
“이런.”
켈리언이 여전히 단호하게 서 있는 바이우드 백작을 바라봤다.
그는 국경의 기사였다.
대공의 충직한 측근이기도 했다.
아마, 영지민들을 마수로부터 지키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대공을 등지고 온 것이겠지만.
“오늘은 그저 말 한 필만 얻고 보내 주려 했는데 말이지.”
켈리언이 찔려 죽은 자신의 말을 눈짓했다.
“어차피 죽여야 할 거 미루는 게 뭔 의미가 있겠나.”
켈리언이 검은 핏물이 고인 구덩이에서 제 대검을 꺼내 들었다.
‘백작을 죽이면 대공의 세력이 흔들리겠지.’
대공의 측근이자 연합군의 전략을 담당하는 백작을 죽이면 대공의 세력이 크게 분열될 것이다.
죽여야 할 것이면, 빠르게 죽이는 게 전략적으로도 이로웠다.
“살고자 하는 자는 성으로 돌아가라.”
“백작님!”
“나의 마지막 명이다.”
백작은 죽음을 결사했다.
자신의 아들을 위해, 이미 오면서 후계자를 따를 이들은 되돌려 보내었다.
“저희도 싸우겠습니다!”
“저도 전장에서 명예롭게 죽겠습니다.”
이곳에 남은 기사와 병사는 충직한 이들뿐.
이 상황을 알릴 기사 한 명만 억지로 성으로 돌아갔다.
켈리언은 앞에서 온갖 청승을 다 떠는 백작의 부대를 바라봤다.
“아. 이제 얘기 다 끝났나?”
그럼, 이제 시작해야겠군.
켈리언이 다시 검을 들었다. 찐득한 피가 흐르는 검날 주변으로 검은 오러가 피어올랐다.
쾅-.
전투가 아닌 학살이 시작된 것이다.
***
바이우드 성에 온 나는 조금 의아했다.
‘왜 마수들이 없지?’
내가 쓰러지면서 다 못 죽이고 나왔는데?
밤이 됐음에도 고-요한 사위에 나는 뒷머리를 벅벅 긁었다. 켈리언도 없는 거 아냐? 헛다리 짚었나 싶은 순간.
쿵-.
바이우드의 굳게 잠긴 성문이 열렸다.
나는 품위 없이 긁적이던 뒷머리를 바로 슥슥 내렸다.
‘흠. 후계자네.’
성문에서 걸어 나온 건, 바이우드 백작가의 장남이자 후계자. 아로스.
‘밀서로 그간 얘길 주고받았지.’
내가 바이우드로 들어오기 위해 가장 도움을 많이 받은 자였다.
황궁에서 도주한 보르도 자작의 형이기도 하고.
“당장 황태자를 죽이러 가겠다!”
후계자의 얼굴은 분노와 슬픔으로 뒤섞여 있었다.
켈리언을 죽이겠다라.
그때 깨달았다. 켈리언이 이미 바이우드를 한바탕 쓸고 갔구나.
“안 됩니다. 백작님의 뜻은 그게 아니실 겁니다.”
“예. 저희로서는 마땅한 방도가……. 참아야 하십니다.”
뒤에 따라선 기사들은 슬픈 기색이긴 했지만, 성이 난 후계자를 달래느라 진땀을 흘리고 있었다.
“뭘 참느냐. 무얼 참느냐! 우리는, 우리는 결국 죽을 것이다!”
후계자의 말은 맞았다.
원작에서도 켈리언은 황제가 되니, 곧 그가 황제가 될 것 분명했다.
그에 반해 바이우드 백작가는 대공의 편에 섰으니, 숙청 대상일 테고.
“아버지를 죽인 자에게 충성할 수 없다!”
켈리언에게 숙이고 가면 목숨은 부지하겠지만…….
길길이 날뛰는 후계자는 그건 죽어도 싫은 모양이었다.
“소가주님. 심정은 이해가 가지만……. 렉티스 부근에서 죽은 자들을 보지 않으셨습니까.”
“……예. 몰살이었습니다.”
성문에 뭉쳐 있는 이들이 분노와 슬픔에 젖어 있는데.
“베르웬 공작에게 투항하는 것은 어떠냐?”
……네?
갑작스러운 내 이름의 등장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저, 저요?
“베르웬 공작이 곧 오지 않겠느냐. 베르웬 기사의 포로 교섭을 위해 곧 올…….”
성을 내며 삿대질하는 후계자와 내가 눈이 마주쳤다.
나는 당황한 낯을 숨기고, 방금 온 척 태연히 어둠 속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베르웬 공작님이시군요.”
성벽의 등잔에 내 얼굴이 비치자, 후계자가 깊숙이 허리를 숙이며 예를 갖췄다.
예 갖추지 마! 나는 주군도 아니잖아! 나는 다른 나라 사람이라고!
“항복을 받아 줄 순 없소.”
나는 바로 선을 그었다.
“왜인지는 후계자가 잘 알 것이오.”
“…….”
“바이우드는 지형적으로 매력적인 곳이 아니오.”
“아닙니다! 저희 영지는 엄청난 가치를 지닌…….!”
후계자가 발끈하다가 입을 꾹 다물었다.
‘왜에. 맞잖아.’
바로 앞에서 너희 영지 좀 별로라고 말하는 거 같아서 미안하지만.
이건 사실이었다.
죽음의 땅, 렉티스를 낀 땅. 농사도 안되고, 그러니 광활한 영토에 비해 인구도 적었다.
쓸모없는 땅이라는 거다.
또 더 중요한 이유는 따로 있었다.
“무엇보다 바하트의 내전이 끝난 후를 생각해야 하오.”
“…….”
“가뜩이나 내부 분열로 어지러운데. 적국에 항복한 영지라.”
명분상 무조건 바하트 측에서 다시 가지고 오려 할 것이다.
항복한 영지를 되찾아와 본보기로 응징할 것이다. 다른 영지가 타국에 항복하지 못하도록.
“나는 그런 분란을 만들고 싶지 않군.”
내 말에 후계자의 뒤에 선 기사들은 고갤 떨궜다.
아무래도 내 말이 다 맞는 모양이라, 포기한 거겠지.
그들도 살고 싶을 테니 내게 의탁하는 게 유일하게 살 방도라는 걸 알 것이다.
“……그것만 해결되면 됩니까?”
그러나 후계자는 뭔가 결연하게 내게 물었다.
뭐, 뭘 해결하려고?
“그냥 항복하는 게 아니라 이유 있는 투항이면 되는 것이다, 이 말로 알아 듣겠습니다.”
아니. 아닌데? 내 뜻은 그게 아닌데? 왜 억지 부리지? 어?
그 후에도 은근히 돌려서 바이우드를 받아 줄 수 없다고 말했으나……. 간절한 후계자에겐 안 들리는 듯 싶었다.
그리고 그 사달이 났다.
***
하일렌 제국의 베르웬 공작령.
성벽을 지키던 병사들이 맞은편, 바이우드 성에 걸린 기를 보고 바로 기사에게 달려갔다.
백기와 흑기.
투항을 뜻하는 백기와 죽음을 뜻하는 흑기.
“흑기?”
그 보고를 들은 베르웬 기사단장이 즉시 성벽에 올라섰다.
‘공작님께서 포로 교섭을 위해 바이우드에 은밀히 들어가신 지도 오래 지나셨다.’
벌써 일주일이 훌쩍 넘으셨다.
설마 공작님이 위험하실까 했던 생각은 이미 염려로 바뀌어 있었다.
바이우드엔 죽음의 땅 렉티스가 있지 않은가! 거기서 혹여 곤란한 일이 생기신 건 아니신지…….
“자다르 경! 저것 보았습니까?”
“가 봐야 합니다!”
그건 비밀 약정을 알던 대부분의 측근들도 그러했다.
“……내가 책임질 테니 따르도록.”
주군께 폐가 될지도 모르나 주군이 위험에 처한 걸 어찌 가만 본단 말인가!
기사단장이 검을 놓을 생각으로 베르웬 기사들을 소집했다.
이히힝-.
기마대로 구성된 베르웬 기사들이 단숨에 바이우드 영지의 성문을 지나 백작성에 도착했고.
쿵-.
마치 들어가라는 듯, 지키는 위병 하나 없는 백작성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말하라!”
기사단장은 눈에 뵈는 게 없었다. 그가 계단을 내려오는 바이우드의 후계자 멱살을 쥐어 챘다.
“공작 각하는 어디에 계신가!”
그러나 기사단장이 모르는 게 있었다면…….
멱살 잡힌 후계자도 지금 눈에 뵈는 게 없었다는 거였다.
인간의 생존 본능이 이리 무서운 것이었다.
“베르웬 공작님은…… 위에서 안정을 취하고 계십니다.”
베르웬 공작이 바이우드에 입성한 지난밤.
바이우드의 후계자는 감히 소드마스터에게 수면제와 수면 향을 잔뜩 써, 재운 것이다.
후계자에게는 다행이게도 몸이 덜 회복된 르윈은 이를 알아차리지 못하고 수면제가 든 물을 마셨고.
“……으윽.”
더욱이 소드마스터를 재울 거라 쓴 양이 너무나 많은 터라.
르윈은 악몽과 더불어 두통까지 시달리며 기절하듯 잠든 상태였다.
“각하!”
그런데 그게 베르웬 기사들에겐 아파 보였다는 게 문제였다.
애초에 르윈이 악몽을 꾸느라 끙끙대는 걸 모르니 베르웬 기사들은 더 난리가 났다.
“바이우드 측은 우리와 비밀 약정을 체결하지 않았소!”
“맞소! 이건 비겁한 행동이오!”
포로로 잡힌 기사의 교섭을 위해 적국으로 들어간 주군. 이를 공격하는 건 추잡스러운 사건이었다.
“모두들 오해하고 있소! 그런 게 아니오!”
후계자는 열연을 펼쳤다. 이미 자신에겐 다 계획이 있었다.
“베르웬 공작님이 저리되신 이유는 마나 폭주요!”
후계자 역시 기사가 되기 위해 많은 공부를 했었다.
“이리 오시오. 보여 줄게 있소.”
그리고 격분하는 베르웬 기사단을 끌고 렉티스 근처로 다가갔다.
르윈의 옆에 남은 몇몇 기사를 제외하곤 다 온 상태였고.
“어허. 정말 참혹하군.”
“이게 무슨…….”
어둠 속에 펼쳐진 평지. 그곳에는 마수와 전사자의 시체가 빼곡했다.
“……고, 공작 각하가 이러셨소?”
잘린 단면이 오러로 벤 형태였다. 기사단장이 아연해졌다.
각하. 어쩌자고 적국에서…….
“우리 바이우드 백작가의 책임이오.”
기사단장이 아득하게 보던 밤하늘에서 눈을 뗐다.
바이우드 백작가의 책임이라? 공작님이 책임을 피할 수 있는 것인가?
“그게 무슨 말이오? 그러니까 이 일의 원인이 바이우드 백작가에 있단 말이오?”
“그렇소.”
이내 후계자의 입에서 이미 계획한 이야기들이 나왔다.
“다 내 동생 놈 때문이오.”
이미 자신의 동생은 8황자를 추행하고 황궁에서 달아나 영지로 온 뒤 죽었다.
후계자는 몰랐겠지만, 암흑 물질에 오랫동안 노출돼 병사한 것.
이를 모르는 후계자는 어차피 죽은 동생에게 모든 걸 뒤집어씌울 참이었다.
“그놈이 공작님을 죽이려 했소.”
“…….”
“저 렉티스를 막는 마법진에 사용된 기둥을 무너뜨린 것이오. 그게 무너져서 마수들이 쏟아졌고.”
그 이후는 베르웬 기사들도 이해했다.
너무 급격하게 마나를 가동하다 보면 마나 폭주를 할 수 있다고 들었다.
이성을 잃고 본능적으로 검을 휘두르는 것이다.
“그래서 주변의 것을 다 죽이셨군.”
참혹한 장면이었지만, 전쟁터에서 잔뼈가 굵은 기사들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책임이 공작님께 있지 않고, 백작가에 있다는 소리에 기사들이 한숨 놓았다. 그러곤 펼쳐진 광경을 살폈다.
몇몇은 그 모습을 경이롭게 바라보기까지 했다.
“이것이 어찌 한 사람이 낼 수 있는 전력이란 말인가.”
르윈이 이미 처리한 마수들, 그리고 켈리언이 처리한 마수와 백작의 군단.
잘 썩지 않는 마수들의 사체들은 그 시간차를 드러내지 않았고.
두 소드마스터가 만들어 냈을 전력의 결과를 베르웬 기사들이 한눈에 담았다.
‘공작님과 바하트 황태자의 검술의 정도가 서로 비등할 거란 예측이 많지.’
켈리언이 공식화하진 않았지만, 다들 그가 소드마스터라 짐작했다.
그래서 그 둘의 전력이 비슷할 거라 여겼지만.
“역시.”
“그래.”
기사단장 뒤에 선 베르웬 기사들이 서로서로 눈짓을 주고 받았다.
‘역시 우리 공작님이 더 세다!’
라고.
***
아침에 일어난 나는 당황했다.
‘으. 삭신이 쑤신다.’
두통에다가 몸도 욱신거렸다. 아아. 얼른 황궁에 가서 인간 수면제인 샤비얀을 만나야 해.
끼이익-.
개운치 못한 몸으로 세안까지 하고, 의복을 정제하고 문을 열었다.
그리고 나는 내가 나온 방을 다시 흘끗 돌아봤다.
여전히 베르웬 성의 내 침실보다 작은 백작성의 손님방이었다.
근데…….
“각하! 깨어나셨습니까!”
왜 베르웬 기사단장이 내 눈앞에 있지?
심지어 베르웬 기사들은 끼리끼리 백작성에 모여, 역시 바하트의 황태자는 별 볼 일 없었다면서 으스대고 있었다.
그것도 그 바하트 제국 안에서!
‘뭐, 뭔데…….’
자고 난 직후라 이 상황이 잘 이해가 안 되는데.
척척척-.
백작성의 정문에서부터 걸어 나온 후계자가 내 앞에 섰다. 그 뒤로 백작가의 전력이 다 도열해 있었다.
“광대한 힘에 무릎 꿇습니다.”
응?
“투항하겠습니다!”
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