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niacs are Obsessed With the Fake RAW novel - Chapter (54)
결론적으로 로잘린은 나와 함께 같이 황도로 가기로 했다.
‘마차가 부서지고, 근위 기사들은 식중독 증세까지 보인다니.’
로잘린에게 연달아 겹친 악재는 어쩐지 나의 가신들과 로잘린의 기사들이 짜고 만든 계획 같다만.
“[언니. 말 안 타고 마차 타니까 좋아?]”
“[응.]”
그래도 로잘린이랑 가니 마차도 타고, 얘기도 하고 심심하지 않고 좋았달까.
“[그래서 언니가 샤비얀에게 결정을 목걸이나 귀걸이 같은 장신구로 세공해서 보내 줬다고?]”
“[응. 얼른 나아야지.]”
이미 세공 장인에게 부탁해, 결정으로 장신구로 만들어 냈다.
전령을 통해 보냈으니 아마 샤비얀에게도 곧 도착하겠지?
착용하면 결정이 샤비얀의 몸에 닿을 테니 곧 나을 거다.
“[하. 샤비얀이 장신구 받고 좋아했으면 좋겠다.]”
아카 일족을 대피시킬 때 결정을 거의 다 써서, 연못 밑까지 다 뒤져서 간신히 수량을 맞췄다.
뭐, 주기적으로 나온다고 하지만, 얼른 샤비얀에게 주고 싶었으니까.
“[내가 얼마나 힘들게 구한 건데.]”
“[울 언니. 잘했어, 잘했어.]”
“[어휴. 나는 이제 렉티스 근처에도 안 갈 거야.]”
내가 가나 봐라! 내가 가면 내 성을 간다! 메르웬으로!
“[왜. 언니. 듣는 렉티스 서럽게.]”
로잘린이 제 손에든 렉티스의 전설이란 책을 흔들었다.
“[렉티스가 서럽다고?]”
“[응. 렉티스란 지명이 거기 사는 드래곤의 이름을 딴 거래.]”
아. 그래?
“[언니. 난 그렇게 생각한다?]”
로잘린은 나를 보며, 턱을 괬다.
“[이 세상의 원작 말야. 비발루스의 전설.]”
“[응.]”
“[솔직히…… 결말이 개판이잖아?]”
그렇지.
샤비얀이 죽고, 분노한 신이 세상을 멸망시킨다?
급전개된 부분이 없진 않다.
“[합리적인 의심인데. 이거 원작 작가가 대서사시 쓰려다가 뭔가 사정이 있어 그냥 결말짓고 만 거 같아.]”
“[하긴.]”
나는 잘게 흔들리는 창문을 바라봤다.
로잘린 말처럼 여기의 신화는 좀 장황했달까?
“[내가 작가의 말에서 뭔가 느낌이 싸-할 때 탈출했어야 했는데!]”
로잘린이 책을 쥔 채. 제 허벅지를 분노하며 콩 두드렸다.
“[너 이 책 10번 봤다며.]”
“[그건 다, 크흠…… 다른 부분이 예술이었거든.]”
로잘린이 뺨을 발그레 붉혔다.
……볼은 왜 빨개져?
“[아무튼 나는 운도 없어. 하필 세계관이 이런 괴팍한 신이 있는 곳에 빙의를 하냐.]”
로잘린이 책으로 부채질하며 말을 돌렸다.
“[로잘린. 그거 신성 모독이야.]”
“[뭐 어때. 우리 말 알아듣는 사람도 없는데.]”
그래도 간담이 서늘했다.
신성력.
이 세계는 신의 힘이 눈으로 보이는 곳.
여기서 신성을 모독하는 건 절대 금기였다. 신의 힘이 엄-청나게 막강했다.
그 켈리언조차 신전의 눈치를 볼 정도였으니까.
“[근데 신이 왜 괴팍한 거 같아?]”
그러나 나도 궁금해서 물어봤다.
로잘린은 내 말에 흥분해선, 신이 왜 괴팍한지 줄줄이 설명하기 시작했다.
……음. 너 약간 벼르고 있었던 거 같다?
“[신은 지가 싸워도 될 걸 신의 대리자를 세워서 싸우잖아.]”
신과 악마가 싸우는 대전쟁. 결국 신에게 진 악마가 져서 지하에 가둬졌다는 전설.
그때 악마와 싸운 건 신이 아니었다.
신이 힘을 부여한 신의 대리자와 인간들이었다.
“[신의 대리자를 세워서 악마를 무찔렀잖아.]”
“[응.]”
“[그래서 그 대전쟁 와중에 신전의 힘이 엄청 커졌단 말이지.]”
맞지. 그렇지.
“[근데 갑자기 신전한테,]”
로잘린이 근엄한 신 흉내를 내기 시작했다.
“[존재하되 간섭하지 말라-.]”
“[…….]”
“[라면서 신전한테 힘을 행사하지 말고 숨어 살라고 하잖아.]”
이 신화처럼 진짜 신전은 제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오로지 ‘신성’과 관련된 일에만 움직인달까.
그래서 신이 절대시되는 세상에서 신전의 영향력이 미비했다.
아마 마음먹고 신전이 움직인다면 대륙의 패권까지 뒤흔들지 않을까?
“[암튼 이런 신화를 보고 있으면.]”
로잘린이 치마 입은 발을 구르며 한껏 억울해했다.
“[아무래도 진짜 원작 작가가 대서사시 쓰려다가 그만둔 거 맞아! 확실해. 아니, 해피 엔딩을 짓고 그만두던가! 아악!]”
……지, 진정해.
***
하일렌 제국의 황제 궁.
르윈이 황도에 도착하기 전에, 레시우스는 밤낮없이 달려 황도에 도착했다.
황제의 방에 간 레시우스는 가득 쌓인 업무를 손가락으로 툭 쳤다.
“그냥 먹고 주무시기만 했군요.”
레시우스의 불손한 말이 침대에 늘어진 클리프에게 향했다.
“그럼 뭘 더 원했느냐?”
저와 똑같은 모습으로 복근을 긁는 클리프를 보며, 레시우스가 한숨을 쉬었다.
탁-.
레시우스의 손에 들린 병이 책상에 놓였다.
그 병은 암흑 물질이 든 유리병.
“그, 그걸 정말 가져왔느냐?”
“예.”
클리프가 고양이로 바뀌어 단숨에 책상으로 뛰어왔다.
그가 솜방망이로 유리병을 툭툭 쳤다.
“신전에게 이를 알려야 합니다. 클리프 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이시겠지요.”
“그렇지. 이 위대한 클리프가 아니면 누가 신전에게 이 일을 알리겠나.”
클리프 역시 숨어 버린 신전의 위치를 알진 못했지만, 신관들이 출몰하는 곳이 어딘지는 알았다.
그곳에서 기다렸다가 신관 같은 자가 보이면 얼핏 말을 흘리면 될 것이다.
“허허. 암흑 물질은 신성과 관련될 테니 신전에서도 사람을 보내 줄 것이다.”
유리병 안을 보는 고양이 모습으로 클리프가 진지하게 말했다.
그래도 너무 부려 먹는다, 클리프가 중얼거리며 레시우스를 올려다보는데.
찰랑-.
레시우스의 매끄러운 손가락에서 금으로 된 열쇠가 흔들렸다.
“가기 전에 원하시는 걸로 보고에서 가져가십시오.”
황제의 보물 금고!
온갖 진기한 것들이 있지 않나. 그곳에선 마법 연구에 필요한 모든 걸 찾을 수 있을 것이 분명했다.
“하하. 역시 황궁에 온 보람이 있구나!”
그리고 황궁의 궁인들 사이에선 아주 짧은 소문이 돌았다.
등에 커다란 보따리를 맨 고양이가 황성을 빠져나갔다는 그런 얘기가.
***
나는 한참을 로잘린을 달래 주고 난 후에야 한숨 돌렸다. 소파에선 로잘린이 쿠션에 파묻혀 자고 있었다.
‘잘 때는 되게 조용하다니까.’
항상 내 앞에선 발랄하기 그지없어서 이런 조용한 모습은 적응 안 된달까.
탁-.
바람이 부는 창문을 닫자, 로잘린이 반사적으로 내 소매를 쥐었다.
“[……여기 있어. 피곤하잖아.]”
웅얼웅얼. 붉은 입술이 움직였다.
내가 마차에 로잘린과 같이 있는 건 다 그녀의 배려 덕이었다.
피곤해 보이는 나를 조금이라도 쉬게 해 주고 싶었을 거다.
“[으움. 치키인…….]”
나는 잠꼬대하는 로잘린의 이마에 흐트러진 금발을 정리해 줬다.
‘너랑 레시우스는 나한테 이 세상 가족이야.’
나는 작게 웃으며, 창에 기댔다.
스쳐 지나가는 풍경이 익숙했다.
여긴 샤비얀이랑도 왔던 길이었다. 바하트에서 하일렌으로 그와 함께 왔던 길.
너무 우울해하던 샤비얀을 말에 태우고 함께 다녔었지.
‘저, 저도 렉티스에 대해 아는 얘기가 있…….’
그때 샤비얀도 렉티스 얘기했는데.
왠지 엄청 오래전 얘기 같아서 작게 웃음이 터졌다.
이제 곧 황성에 도착하겠네. 레시우스가 있고 샤비얀이 있는 곳에.
***
하일렌 제국의 냉궁.
샤비얀은 고열이 끓는 탓에, 정신이 혼미했다.
잔상처럼 어지러운 시야 속에서 궁인들이 웅웅거렸다.
“전하. 공작님이 주신 선물이세요.”
“이걸 꼭 착용하시라고 언급하셨는데…….”
궁인들이 보기에도 샤비얀은 목걸이나 할 정도의 상황이 아니었다.
‘공작님은 원래 남색이라면 질색하셨대!’
그 이야기와 함께 황녀 전하와 함께 돌아온다는 얘기까지.
그간 너무 걱정했더니 샤비얀의 건강이 급격히 나빠진 것이다.
“우리는 조금 있다가 오자.”
“응.”
궁인들이 선물이 가득 쌓인 샤비얀의 방에서 등을 돌렸다.
모두가 공작님에게 잘 보이려 샤비얀에게 귀족들과 다른 이들이 바친 선물이었다.
‘베르웬 공작이 8황자 때문에 바이우드를 차지했다면서요?’
‘한 사람 때문에 영지를 차지하는 게 말이 돼요?’
‘안될 건 없죠. 원래 전쟁을 일으키는 미인이란 항상 존재…….’
자신에게 선물을 주기 위해 기다리던 귀족들의 얘기를 들었었다.
사람들은 공작님이 불모지인 바이우드를 차지한 걸 두고, 다 샤비얀 때문일 거라 예측했다.
그곳이 샤비얀의 모친의 고향이니까.
‘하지만 내가 원한 건 그게 아닌데.’
이런 금은보화가 아닌데. 그냥 공작님이면 되는데.
이 넓고 넓은 황궁에 의지할 단 한 사람인데.
“제가 원한 건…….”
도저히 힘이 없어서, 샤비얀이 궁인들이 두고 간 목걸이에 손만 올렸다.
“공작님과 같이 있는 건데.”
샤비얀은 혼자 있는 게 싫었다.
이런 상황은 더 싫었다.
자신은 금은보화에 쌓인 외로운 방에서 갇힌 경험이 있었다.
바하트의 황제, 아버지는 아카 일족인 어머니를 보고 첫눈에 반해 납치했다.
그리고 어머니를 궁전에 가뒀다.
샤비얀이 태어나고 꽤 지났을 즈음, 아버지가 어머니를 위해 지은 궁이 완성됐었다.
‘이곳이 이제 너의 집이다.’
아버지는 그 궁을 집이라 했지만.
그곳은 정교하고 아름답지만 절대 벗어날 수 없는 새장이었다.
‘아들아. 이런 건 집이 아니란다.’
‘내가 살던 집엔 온기가 흐르고, 사람들의 말소리가 흘렀단다.’
새장에 갇힌 새처럼 바깥 세상을 갈망하던 어머니는 스스로 목숨을 끊으셨다.
‘황자는 어미처럼 살 팔자일 거요.’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그 궁에 한동안 방치된 샤비얀에게 온 황실 교육관이 그랬었다.
사랑받으며, 이쁨받으며, 그리 살 인형이라고 그랬다.
“나는 아버지가 어머니를 사랑했다 생각하지 않아요.”
그건, 그런 건 사랑이 아니야.
목걸이에 손을 댄 후 어쩐지 기운이 나서, 샤비얀은 같은 상자에 든 팔찌를 들어 손에 끼웠다.
“……그런 건 집도 아니에요.”
어머니가 그랬어요.
집이란 온기가 흐르고, 사람들의 말소리가 흐르고.
사랑하는 사람이 있는 곳이라고.
“공작님이 있는 곳이 내 집인데…….”
그 끔찍한 바하트에서 벗어났을 때, 자신을 따뜻하게 맞아 준 그 품은 집 같았다.
아. 어머니가 말한 집이란 게 이런 거구나. 따뜻하다. 편하다. 소중하다.
“전하! 아직 몸도 편치 않으면서…….”
그래서 공작님이 황궁에 도착한다 했을 때, 샤비얀은 아픈 몸을 이끌고 공작님을 맞이하러 나갔다.
따뜻하게 맞이해 드리고 싶었다. 자신이 느꼈던 그 안락함을 공작님께도 드리고 싶었다.
그리고 봤다.
고풍스러운 검은 마차에서 황녀와 내리는 공작님을.
“감사합니다. 공작님.”
“아닙니다.”
익숙한 듯이 공작님이 황녀의 손을 잡고 이끌었다.
그리고 기다리고 있던 하일렌의 황제에게로 다가섰다.
샤비얀이 황궁에 처음 왔을 땐, 황제의 표정이 보였다면.
황궁에 서 있는 지금은 공작님의 얼굴이 보였고.
“다녀왔습니다.”
“잘 왔네.”
친우끼리 하듯 가볍게 황제를 껴안았지만.
샤비얀은 그 짧은 틈새에 봤다.
공작님의 표정이 편히 풀어져 있었다.
마치 집에 온 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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