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niacs are Obsessed With the Fake RAW novel - Chapter (55)
샤비얀은 공작님의 표정이 풀어진 것이 익숙한 황궁에 와서 그런 거다, 그리 믿고 싶었다.
‘저건……?’
불안한 샤비얀의 눈에 들어온 건 공작님의 목 옆에 난 상처였다.
저 붉은 울혈은…….
샤비얀은 순진하지 않다. 그는 애초부터 미인계를 위해 여러 교육을 받아 왔었다.
저것이 연인들 간에 제 소유욕을 드러내려 하는 장난 같은 행위라는 걸.
샤비얀 역시 잘 알았다.
샤비얀은 검은 마차 앞에선 로잘린을 바라봤다.
‘두 분 둘 다 북부에 계셨어.’
북부의 다른 곳에 계셨지만, 결국은 함께 오셨다.
그럼 저건 혹시 황녀가 만들어 낸 건 아닐까. 샤비얀의 머릿속이 복잡해지는데.
“르윈.”
황제가 너른 어깨를 떼며, 공작님의 목덜미에 가늘고 긴 검지를 댔다.
공작님께 닿기만 해도 황제의 손끝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그 붉은 손끝으로, 붉은 상처를 쓸었다.
“이거 약 발라야겠다.”
눅눅하게 늘어진 목소리로 황제가 웃었다.
마치 그 상처의 정체를 안다는 듯. 그 상처에 일조했다는 듯.
그 상처조차 자신의 것이라는 듯.
‘설마. 황녀가 아니라 황제가?’
공작님과 황제 사이에 있는 이상한 기류에 샤비얀이 발을 주춤 물렸다.
혼란스러워 돌린 고개엔 황녀가 보였다.
북부에 있었던 건 황녀였다. 황제는 황궁에 있었다.
그러니 저 상처를 만들었을 이는 절대 황제는 아닐 것이다.
‘내가 미친 걸까?’
샤비얀은 결국 뒤돌아 달렸다. 기력이 다한 몸을 얼마 못 가 가쁜 호흡을 내뱉었다.
“전하!”
“괜찮으십니까!”
가까스로 냉궁으로 온 샤비얀이 쓰러질 듯이 창백해서, 궁인들이 그를 잡고 이끌었고.
탁-.
침의로 갈아입고 샤비얀이 누운 지 얼마 안 돼, 공작님이 냉궁으로 오셨다.
“아직도 많이 안 좋으십니까?”
샤비얀은 눈을 떠 제 눈 한가득 공작님을 담았다.
단정하고 갸름한 턱, 예쁜 눈, 오뚝한 코. 단아한 입술.
그리고 저 무고하고 순수하게 자신을 걱정하는 얼굴.
“고, 공작님……!”
샤비얀은 그런 공작님이 침대 옆으로 오자마자 허리를 껴안았다.
“많이 기다리셨습니까?”
“……예.”
샤비얀은 자신이 껴안자마자, 옅게 경직되는 공작님의 근육을 느꼈다.
“죄송합니다. 일이 많았습니다.”
샤비얀의 이마를 쓰는 척 열을 재 보는 공작님의 손바닥이 차가웠다.
그러나 다정했다.
“그, 괜찮아요.”
“표정은 안 괜찮아 보이십니다.”
딱딱하게 말하는 말소리에도 장난이 담겨 있었다.
“어디 아프시면 말씀해 주십시오. 아시겠죠?”
“……예.”
샤비얀은 자신의 이불을 올려 주려 허리를 숙인 공작님의 목덜미를 만져 보았다.
낯선 손길에 움찔하는 게 보였다.
“……이, 건 왜 이러신 거예요?”
“뭐에 물렸습니다.”
픽 웃으면서 말하는 공작님은 진심 같아 보이셨다. 거짓말하시는 거 같진 않았다.
‘내가 이상한 건가 봐.’
저 상처를 황녀가 만들었다 생각했다가, 황제가 만들었다 생각했다가.
혼자 이상한 생각만 하지 않았나. 공작님은 그저 무언가에 물리신 거뿐인데.
“왜 그러십니까? 우십니까?”
샤비얀이 눈을 울먹거렸다. 자신이 정말 미친 걸까.
제 아버지는 미쳤었다. 항상 어머니의 외도를 의심했었다. 그래서 궁에 그들 모자 외엔 사람이 없었던 것이다.
어머니는 그 누구와도 외도한 게 아닌데, 정말 아니었는데.
“제가 뭐 잘못했습니까?”
“…….”
“전하. 더우셔서 그러십니까? 이불 다시 걷어 드리겠습니다.”
아닌 척 무표정한 얼굴이지만 안절부절못하는 공작님이 느껴졌다.
이리 착하신 분한테 자신은 어떤 의심을 하고 있단 말인가.
‘공작님을 믿을 거야.’
샤비얀은 두려웠다.
샤비얀의 피의 반은 아버지이니 자신도 그렇게 미칠 수도 있지 않을까.
그것이 너무 두려웠다.
***
나는 울다가 잠든 샤비얀을 바라봤다.
‘킁. 제 피…… 반은 아버지, 바하트 황제, 크응.’
샤비얀이 뭔가 말하려고 하더니 너무 당연한 말만 늘어놔서 당황했다.
……그래 알아. 네 아빠 바하트 황제인 거.
‘왜 운 거지? 많이 더웠나? 아님 이불이 무거웠나?’
아직도 미스터리다. 이불을 올려 주는데 샤비얀이 갑자기 울었다.
……뭘까. 샤비얀의 마음은 차-암 어렵단 말이지.
“전하?”
“…….”
“전-하.”
나는 아주 조용히 샤비얀에게 속삭였다. 으음. 자는 게 확실해.
이 틈에!
얼른 협탁 위에 올려진 장신구를 샤비얀의 몸에 댔다.
어휴. 내가 줬는데 열심히 사용했어야지! 이러니까 아직도 아프지.
쨍-.
샤비얀의 손등에 올려놓은 팔찌의 결정 하나가 깨지며 바스러졌다.
그 뒤엔 목걸이가, 그다음은 귀걸이가.
“…….”
색색 내쉬던 호흡도, 이마의 열도 많이 내렸다.
샤비얀은 이제 곧 괜찮아질 것이다.
“공작님.”
“예,”
잠결처럼 날 부르던 샤비얀이 눈을 떴다. 모습을 감췄던 그의 푸른 눈동자가 드러났다.
“그, 그동안 바이우드랑 베르웬 영지에 있으셨던 거죠?”
사실 황제 직할령에서 로잘린과 여름 궁전에도 있었다.
그러나 사실대로 말할 순 없으니.
“……예.”
나는 반쯤 눈꺼풀을 내리며, 흔들리는 눈동자를 숨기며 그리 말했다.
“그렇죠? 바이우드에 계셨구나…….”
샤비얀이 이불을 꾹꾹 누르며, 안도하듯 웃었다.
그러더니 생각에 잠겨서는 입을 열었다.
“미, 믿어요.”
그가 반짝이는 눈으로 날 올려다봤다.
아잇. 양심 찔려.
“전, 전 무조건 공작님 믿어요.”
샤비얀은 내 손등에 제 손을 올리며, 그리 몇 번이나 중얼거렸다.
마치, 그 스스로에게 다짐하는 것처럼.
***
저녁에 샤비얀을 재우고, 집무실에 있는 레시우스에게 찾아왔다.
이미 서신을 몇 번 주고받고, 오전에도 잠시 봤지만 영 신경 쓰여서 결국 만나러 갔다.
“왔어?”
소매를 걷은 레시우스가 종이를 넘기고 있었다. 달빛에 비친 걷힌 셔츠 소매가 유난히 희었다.
근데 얘는 일이 며칠 치가 밀렸나.
뭐 저리 문서가 많아. 나는 예상보다 더 많은 일거리에 잠깐 아연해졌다.
“레시우스.”
“응.”
내가 그에게 온 건 이유가 있었다.
바로 그의 일을 돕기 위해서!
‘나도 양심이 있지.’
저 잔뜩 쌓인 저 일거리에 내가 바이우드를 차지하며 생긴 것도 있을 거다.
게다가 좋은 핑계도 있었다.
“내가 네게 붙여 준 그림자한테 상을 주고 싶거든.”
그의 얼굴도, 이름도 모르니, 그에게 상을 내릴 수 있는 건 오로지 레시우스뿐이지!
“네 일 도와줄 테니까. 그 그림자한테 나 대신 보상을 좀 해 줘.”
“…….”
“물론 도와주는 건 도와주는 거고, 그 보상에 대한 값도 따로 치를게.”
나는 앞에 놓인 서류철을 탁탁 두들겨 깔끔하게 정리했다.
그 그림자 기사한테 보상도 주고, 레시우스 일도 돕고. 꿩 먹고 알 먹기지.
“그 그림자가 마음에 들었나 봐?”
“음. 어.”
여전히 바쁘게 업무를 보던 레시우스가 날 선 눈매를 휘었다.
턱을 괸 레시우스가 제 가늘고 이쁜 손으로 연주하듯 뺨을 가볍게 두드렸다.
“네가 내 옆에 있는 건 언제나 환영이지.”
그러곤 제 옆에 있는 의자를 끌어 톡톡 쳤다. 간혹 레시우스를 도울 때가 있어, 내가 가져다 놓은 의자였다.
“뭐부터 하면 돼?”
승낙이 떨어지자, 나 역시 소매를 걷었다.
그리고 우리 둘은 익숙하게 함께 일했다. 솔직히 척하면 척이었다.
“자.”
“고마워.”
나는 레시우스한테 서류를 취합해서 건네주고, 레시우스는 읽고 서명하고.
집무실 안엔 삭삭- 종이 넘어가는 소리와 펜대 놀리는 소리만 울렸다.
그리고.
“으아. 마지막이다!”
“수고했어.”
레시우스는 어째 기분이 좋아 보였다. 얜 나랑 붙어 있는 게 그리 좋은가?
“맞다. 레시우스.”
자리에 일어나서 근육을 풀던 나는 일어서는 레시우스를 불렀다.
“왜? 르윈.”
레시우스는 손수 집무실의 불까지 끄며 내게로 돌아왔다.
달빛만 비치는 집무실 안에서 레시우스가 나가자고 눈짓하는데.
“그림자.”
“아.”
“너 그림자한테 상 주는 거 까먹지 마라?”
레시우스의 입가에 묘한 웃음이 깊어졌다.
“그림자가 워낙 많아서.”
“…….”
“누군지 잘 모르겠어.”
야아. 누군지 모르면 상을 어떻게 주냐? 너도 가끔 보면 애가 참 맹해.
레시우스가 누군지 헷갈린다는 듯이 턱을 쓸며 생각에 잠겼다.
어쩐지 입가를 가리려는 거 같기도 하고…….
“그림자는 얼굴을 보여 줘선 안 되니 어떻게 생겼는지 르윈, 넌 모를 테고……. 곤란하네.”
레시우스가 안 되겠다는 듯이 고개를 살랑 저으려 할 때.
“알아.”
“…….”
“얼굴을 보진 않았지만 만져는 봤어.”
그 얼굴을 더듬었던 촉감은 생생했다. 되게 잘생긴, 그리고 어쩌면…….
“널 닮았던 거 같아.”
“날?”
레시우스가 어쩐지 미묘한 웃음을 입꼬리에 매달았다. 그가 스르르 다시 의자에 앉았고.
“르윈. 어떻게 그걸 알아?”
“어?”
“내 얼굴을 더듬어 봐야 그걸 알지 않을까?”
흰빛에 물든 레시우스가 제 뺨을 손가락을 톡톡 건들며 눈을 감았다.
“자. 확인해 봐. 그자가 날 닮았는지 아닌지.”
그러더니 곧게 감은 눈으로 잘생긴 이목구비를 내밀었다.
“착각하면 안 되니까 제대로 확인해 봐야지.”
레시우스의 장난 같기도 했지만, 어느 정도 일리 있는 말에 그의 뺨을 그러쥐었다.
만져 보는 것과 보는 것은 완전히 다를 테니까.
“…….”
레시우스의 턱에 긴장이 흘렀다.
나는 기사를 더듬었던 촉감을 기억해 내며 그의 얼굴을 더듬었다.
단정한 이마, 오뚝한 콧날. 시원하게 뻗은 날카로운 눈매.
굳은 입매와 더불어 말랑한 입술까지. 확실히 그림자는 레시우스와 비슷했다.
생각에 잠겨 손가락으로 그의 얼굴 위를 지분거리고 있으니 지나치는 그의 살결이 점차 뜨거워졌다.
“너 얼굴 빨개.”
나는 눈을 떠서야 달빛에 비친, 잔뜩 달아오른 레시우스의 얼굴을 확인했다.
예전 같았으면 그래? 하고 내 시선을 먼저 피했을 레시우스일 텐데.
“부끄러워서 그런가 봐.”
레시우스가 여전히 자신의 뺨에 올려진 차가운 내 손바닥에 얼굴을 파고들었다.
“식혀 줘.”
내 시선을 사로잡은 그가 날카로운 눈매를 흩트리며 요요하게 웃었다.
야아. 너 그렇게 웃으면 좀 반칙……! 말문이 막히네.
***
그리고 바하트 제국. 대공의 영지.
대공의 연합군을 괴멸시킨 켈리언이 핏자국을 바닥에 찍으며 성안으로 들어섰다.
“이놈! 너 같은 더러운 핏줄이 황제가 돼서는 아니 된다!”
“유언치고는 너무 멋이 없는데. 기회를 한 번 더 주지.”
켈리언이 수하들에게 잡혀 무릎 꿇은 대공에게 말했다.
“악마 새끼, 더러운 종자 …….”
웃던 낯을 굳힌 켈리언이 단번에 대공의 목을 깔끔이 베어 냈다.
“죽은 자는 말이 없지.”
이제야 좀 조용하네. 켈리언이 중얼거리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척-.
새로운 황제의 탄생에, 성안의 모든 이가 무릎 꿇었다.
대공의 성이었으나, 대공을 위해 울어 줄 이는 없었다. 모두 죽었으니까.
그렇게 켈리언은 피와 함께 바하트 황위에 올랐고.
“이제 황좌를 가졌으니.”
뭘 더 가져 볼까.
“아아. 가지고 싶은 게 있긴 하지.”
켈리언이 하일렌이 있는 남부를 보며 장난스레 웃었다.
붉은 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