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niacs are Obsessed With the Fake RAW novel - Chapter (59)
“8황자라. 이제 그 호칭이 옳진 않군.”
켈리언의 붉은 눈동자는 여전했다.
“왜냐면 짐이 황제가 되었으니까.”
“…….”
“사실 그 아이에게 새로운 직위를 내려 주긴 해야 하네.”
켈리언이 손에 들린 은색의 머리카락을 후-, 하며 허공으로 날려 보냈다.
“그런데 어차피 죽일 거라 굳이 그럴 필요가 있을까 싶기도 해.”
“그게 무슨……!”
“짐도 이해를 못 하겠군. 내가 왜 이리 기분이 나쁜지.”
나는 연달아 얻은 타격감에 이미 머리가 어질했다.
켈리언이 직접 온 것도 모자라서 샤비얀을 죽, 죽이겠다고?
“하지만 더욱 이해가 안 되는 건 그대의 황제야. 그대의 황제는 이 꼴을 두고 보나?”
켈리언이 살짝 흐트러진 내 머릴 보다가 그 너머로 시선을 옮겼다.
그곳에선 세 명의 인영이 로브를 펄럭이며 이곳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이히힝-.
켈리언을 향해 위협적으로 앞발을 든 말이 먼지바람을 일으켰다.
동시에 나와 켈리언 사이를 가로막은 인영이 로브를 벗었고.
“설마 했는데 진짜군.”
레시우스의 금발이 달빛에 닿아 빛났다.
굳은 눈매가 냉철하게 상황을 살피더니.
내 눈길이 닿자 온순하게 눈꺼풀을 몇 번 깜빡였다.
‘뭐야? 레시우스. 너 켈리언이 올 줄 알고 있었어?’
나는 설명을 요하듯 레시우스를 빤히 바라봤다.
설마 켈리언이 오는 걸 레시우스는 안 건가? 근데 왜 나한테 말 안 해 줬지?
“……알고 계셨습니까?”
내 말에 레시우스가 고갤 작게 끄덕였다. 그러곤 어쩔 수 없었다는 듯 안타깝게 눈매를 일그러뜨렸다.
“짐작이라 확실치 않았었네. 그래서 말해 주지 못했네. 미안하네.”
“…….”
“그리고 짐도 설마 정말 바하트의 황제가 올 거라 믿을 수 있었겠는가.”
레시우스가 반듯한 이마에 제 손가락을 짚었다.
그러더니 안타까운 낯으로 바하트 쪽인 북부로 시선을 향했다.
“지금 같은 불안한 정세에 백성들을 두고 제국을 떠난다니. 짐의 입장에선 정말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네.”
하긴, 레시우스라면 절대 그런 일은 하지 않았을 거다.
내전으로 뒤숭숭한 형세에 처리할 일이 얼마나 많을 텐데. 레시우스 같은 성군이 절대 그럴 리 없지.
“하…….”
레시우스의 말에 어느새 팔짱을 낀 켈리언이 어이없는 한숨을 뱉어 냈다.
켈리언은 못 볼 꼴을 본 것처럼 얼굴을 구기곤, 가증스럽다는 듯이 레시우스를 보고 있었다.
야아. 우리 레시우스한테 왜 그래.
“이 늦은 밤에 먼 길 오느라 고생했소.”
레시우스가 ‘늦은 밤’을 강조하며, 켈리언을 향해 순하게 눈을 휘었다.
“하하.”
켈리언이 별짓을 다한다는 식으로 딱딱하게 웃었다.
“가식적인 얼굴 집어치우게.”
켈리언의 말에 레시우스가 한쪽 입술 끝을 올렸고.
“이런.”
부드럽던 분위기가 바뀌며 냉랭한 아우라를 풍겨 댔지만, 곧.
“초면에 너무하는군.”
레시우스가 날카로운 눈매를 아래로 내리며, 유순한 인상을 만들어 냈다.
그래. 초면에 너무해. 나까지 상처받겠다.
“하. 초면?”
“손이 민망한데…….”
레시우스의 내민 손을 보며, 나도 켈리언을 향해 눈치를 줬다.
거. 악수 한 번 하는 게 그리 어렵냐? 응? 닳아? 닳냐고!
“폐하. 제가 손님을 모시…….”
민망한 레시우스를 위해 내가 나서려고 하는데.
“원하면 악수 그까짓 거 해 주면 될 거 아닌가.”
켈리언이 레시우스의 손을 우악스럽게 잡았다. 억세게 맞잡은 두 손이 맞물린 악력에 살짝 떨리기까지 했으나.
날 슬쩍 본 레시우스가 손에서 힘을 뺐다. 아프다고 구조 요청하는 건가?
“악수를 그렇게 하시는 분이 어딨습니까!”
거의 한쪽이 쥐어짠 형태가 된 악수를 보며, 내가 급하게 그 둘을 말렸다.
레시우스 손 아작 나겠다. 아무리 적국의 황제라 해도 너무 한 거 아니냐.
우리 레시우스한테 뭐 안 좋은 감정 있어?
“저희 폐하는 무인이 아니십니다!”
어차피 보는 사람도 얼마 없으니 나도 막 나가기로 했다.
속상한 나는 레시우스의 피가 몰린 손을 살폈다. 봐. 손바닥이 빨갛잖아!
“이러시면 다치신단 말입니다!”
동시에 켈리언에게 뾰족하게 눈을 치켜세웠다.
“공작. 내 손도 벌겋네. 안 보이나?”
켈리언이 제 손을 내 눈앞에서 흔들어 보였으나.
“그거야 폐하께서 힘주셔서 그런 것 아닙니까.”
“아니네. 그대의 황제가 이리 만든 거네.”
나한텐 안 먹힐 변명이었다.
우선 레시우스가 그럴 성격도 아니었고, 얘가 그럴 힘이 어딨냐고.
“어처구니가 없어서 할 말이 없군.”
켈리언은 기가 막힌 투로, 제 앞머리를 쓸었다.
“나는 그대의 황제와 초면이 아…….”
“잠시 자리 좀 비켜 주겠나. 공작?”
레시우스가 자신의 손을 주물거리며 나에게 말했다.
그랬다가 무슨 일 생기면 어쩌려고……! 내가 염려 섞인 눈빛을 보내니.
레시우스가 괜찮다는 듯이 눈을 살짝 깜빡이며 웃어 보였다.
“하하.”
켈리언이 옆에서 또 어처구니 없는 웃음을 날린 건 덤이었다.
“각하. 괜찮으실까요?”
나는 기사들을 물리며, 멀찍이 멀어져 대화를 나누는 두 황제를 바라보았다.
“괜찮으실 거다.”
무슨 일이 있으면 내가 바로 튀어 가서 레시우스를 지켜 줄 거니까.
“그런데 생각보다…….”
기사 중 한 명이 두 황제를 보다가 말을 흘렸다.
“생각보다 폐하께서도 안 밀리시는 거 같지 않습니까?”
기사가 얼추 체격이 비슷한 두 황제를 바라봤다.
“맞습니다. 예전에 폐하께서도 검술에 천부적인 재능이 있다고 그러시지 않았습니까.”
그런 말이 돌긴 했다. 레시우스가 검을 그만두면서 그 소문은 쏙 들어갔지만.
‘생각해 보면 레시우스는 검술을 왜 그만둔 거지?’
원작에서 레시우스와 켈리언은 서로를 찔러 죽인다.
그 말은 레시우스도 켈리언을 찌를 만한 무력이었다는 거고…….
어찌 보면 내가 아니었으면 레시우스가 소드마스터가 됐을 거란 말이었다.
“그래도 폐하께서 검을 관두신 지 오래 아닌가.”
“그렇지요.”
“게다가 마음이 약하셔서 바하트의 황제에게 휘둘리실지도 모른다.”
흐음. 레시우스는 외유내강 스타일이지만.
켈리언은 미친놈이잖아! 정상인과 미친놈이 겨루면 거의 다 미친놈이 이긴다고!
“……글쎄요.”
말 위에 오른 기사가 달빛을 맞고 선 두 황제를 바라보았다.
섬세하게 확 트인 선명한 이목구비를 가진 레시우스와 거친 느낌의 뚜렷한 인상을 가진 켈리언을.
황송할 만큼 황홀한 두 존재가 서로를 보며 얘기 중이었다.
“…….”
“…….”
뭐라 하는지 안 들렸지만, 일순 레시우스가 날카롭게 입매를 비틀었다.
단숨에 시리도록 차가운 분위기를 풍겼지만, 레시우스가 곧 입매를 매만지며 하관을 가렸고.
“……폐하께서 이기시는 거 같은데요.”
기사가 레시우스를 보며 중얼거렸다.
에이. 그럴 리가.
마침, 켈리언이 분을 못 이기겠는지 레시우스의 멱살을 쥐어 채려 했고.
나는 단숨에 레시우스에게로 달려갔다.
***
켈리언은 가증스러운 황제가 공작의 손길에 이끌려 황궁으로 돌아가는 꼴을 바라봤다.
“폐하. 괜찮으십니까?”
“괜찮아 보이나?”
성질난 켈리언이 다가온 기사들에게 눈썹을 치켜세웠다.
하일렌의 황제가 자신에게 한 말은 별것 없었다.
하일렌의 황궁에서 조용히 있을 것. 공작과 개인적으로 독대하지 말 것. 약점을 잡힌 걸 잊지 말 것.
하지만 사람의 심기를 긁는 데 얼마나 재주가 있던지, 그의 말을 듣다가 결국 멱살을 쥐어 채려는데.
‘때릴 건가?’
‘때릴 거면 예쁘게 때려 주게. 르윈은 내 얼굴을 꽤 좋아하거든.’
하일렌의 황제는 완전 상또라이 새끼였다.
눈 굴러가는 걸 보니 맞으면, 또 맞았다고 공작에게 엉겨 붙을 놈이었다.
“미친놈.”
켈리언이 머리를 털며, 레시우스가 알려 준 숙소로 가려 말머리를 돌렸다.
“그런데 그거 아는가?”
하지만 곧 켈리언이 씩 웃으며, 황도 쪽으로 다시 말머리를 틀었다.
“미친놈을 상대하려면 응당 미친 짓을 해야지.”
켈리언의 수하들은 켈리언의 말에 송구한 생각을 품었다.
폐하께서는 이미 누구보다 더 미친 분이신데 거기서 더 미친 짓을 하시면…….
“폐하. 어디로 가십니까?”
“황궁.”
“……들어갈 수 있을까요?”
공식적으로는 사절단이 온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는 제도의 황실 소유의 저택에서 묵어야만 했다.
“짐이 못 갈 곳은 없다.”
“…….”
“이곳이 하일렌이라 할지라도.”
켈리언의 말이 황궁으로 향하는 잘 닦인 길에서 투레질했다.
켈리언은 자신이 하고자 한 것을 한 번도 못 해 본 적이 없다.
‘아아. 8황자를 만나야겠군.’
공작의 어깨에 붙었던 그 머리칼.
그 머리칼의 주인을 만나면 이 더러운 기분의 정체를 알 것도 같단 말이지.
이히힝-.
켈리언은 말을 박차며 잠든 황도를 달렸고.
“저자들에게 문을 열어 주거라.”
그리고 그 모습을 보던 레시우스의 수족, 그림자는 레시우스의 명을 착실히 이행했다.
‘그자가 뭘 하려거든 막지 마라. 최대한 난리 치도록 놔둬라.’
그래서 근위병의 상관인 척해서 황궁의 성문도 켈리언에게 열어 주었다.
“황자가 있는 곳이 어디라고?”
활짝 열린 황궁의 문에 의아함이 생길 법도 한데 켈리언은 개의치 않았다.
그는 살면서 그 누구도 눈치를 보고, 신경 쓰지 않았으니까.
“이쪽입니다. 폐하.”
그러니 하일렌의 황궁의 지리를 미리 암기했을 그의 수하들의 안내를 받으며 느긋이 냉궁으로 향했고.
“누, 누구십니까?”
“들어가실 수 없습니다.”
근위병과 베르웬 기사단의 기사가 막아섰지만, 그들을 자신의 수하들에게 맡긴 후 냉궁으로 들어섰다.
쿵!
오래되긴 했으나, 궁이라 그런지 방 수가 많았다.
‘하지만 그 아이가 어딨는지 바로 알 수 있겠군.’
복도를 살피던 켈리언이 이쁘게 잘 도색된 문을 바라봤다.
낡고 헌것들 중에서 반짝반짝 기름칠을 열심히도 해 놓은 문짝이었다.
“아주 이쁨받나 보군.”
켈리언은 세심하게 관리된 냉궁을 보곤 기분이 더러워졌다.
낡았으나 세밀하게 관리된 부분이 있었다.
누군가 다치지 않게 난간을 수리한 부분이라 든가. 낡은 궁에 어울리지 않은 고급 가구들이라든가. 쌓여 있는 선물들이라든가.
그래서 그런가.
“……공작님?”
누군가가 올라온 소리에 문을 열고 나오는 저 흰 얼굴의 8황자가 기껍지 않았다.
“……혀, 형님?”
비루먹은 강아지는, 사랑을 한껏 받은 강아지가 돼 있었다.
보기 좋게 살이 오른 뺨, 살짝 큰 키, 어둡던 얼굴은 생기까지 돌아 화사했다.
그 사랑을 준 자가 누구겠는가. 다름 아닌 공작일 터.
“너, 내 눈을 봐라.”
켈리언은 뱃속이 꼬이는 이 감정의 원인을 알고 싶었다.
켈리언이 샤비얀의 멱살을 들어 올린 채, 그의 푸르른 눈과 마주했고,
‘더럽지 않습니다.’
‘전하의 눈동자를 아주 빼닮은 꽃이지요. 히아신스는.’
머릿속으로 샤비얀의 기억이 흘러들어 왔다.
모든 기억을 읽지는 않았지만, 샤비얀의 기억 속에서 공작은 꽤 많이 웃고 있었다.
자신에게는 보여 주지 않는 얼굴로.
그게 자신을 향한 것도 아닌데 켈리언은 왠지 울대가 울렁거렸다.
“크, 커윽……. 혀, 형ㄴ…….”
아아. 그 웃음의 주인은 내가 아닌 이 아이지.
이 아이의 목을 비틀고 싶은 걸 보면, 뱃속이 비틀릴 것처럼 속이 배배 꼬이는 이 감정을 보면.
“맞는 거 같군.”
……자신이 공작을 좋아하는 게 맞는 거 같았다.
“뭐 하십니까!”
어느새 소식을 들었는지 급히 달려와 화를 내는 공작의 얼굴이 이뻐 보일 만큼.
꽤 많이 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