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niacs are Obsessed With the Fake RAW novel - Chapter (64)
오늘은 바하트 사절단을 환영하는 연회가 열리는 날.
샤비얀을 들여보내기에 앞서 나는 그에게 다시 한번 물었다.
“전하. 정말 꼭 참석하셔야 하겠습니까?”
가뜩이나 연회장 장소도 별로였다. 샤비얀이 테라스에서 떨어졌던 그 유리 궁 아닌가.
“저, 저도 연회장에 있고 싶어요.”
화려한 액세서리를 하지 않아도 예쁜 벽안이 보석처럼 빛났다.
샤비얀이 깔끔한 짙은 남청색 연미복의 소매를 불안하게 잡아당겼다.
“……화, 황녀 전하도 참석하시잖아요.”
흠. 저번에도 나랑 로잘린이 북부에서 무슨 일 없었냐고 물었었지.
돌려보내면 더 의심할 거야.
“알겠습니다. 대신 위험한 곳은 가시면 안 됩니다.”
“네. 테라스 금지!”
오기 전에 샤비얀과 약속했었다. 위험한 곳 안 가기로.
내가 새끼손가락을 내밀자.
“야, 약속.”
샤비얀이 볼을 붉히며 제 손가락을 내 손에 얽었다. 꾹-, 손가락 도장을 찍으며 샤비얀의 은색 앞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럼 잠시 후에 봬요.”
나는 황궁의 경비를 살피고 조금 있다가 들어갈 생각이었다. 같이 들어가고 싶다만.
‘괜히 켈리언의 눈에 띄었다가 또 야단날라.’
나야 안 믿기지만. 켈리언이 날 좋아한다지 않나.
나란히 들어갔다가 또 뭔 난리를 칠까 봐 시간차를 두고 들어갈 생각이었다.
연회장 안은 안전할 거야.
켈리언의 존재와 신전에서 사람이 온다는 소리에 경비를 삼엄하게 짜 놓았다.
그 안에서 뭔 일은 안 일어날 것이다.
‘응? 로잘린?’
그렇게 샤비얀을 두고, 주위를 어슬렁거리는데 마차에서 내리는 로잘린과 마주했다.
“공작님? 여기서 뵙네요.”
오랜만에 만난 로잘린이 정말 반가워하며 내 옆에 붙어 섰다. 뭐랄까. 습관적인 행동이랄까.
“[언니. 나 배고파.]”
의전관의 호명을 받는 고위급 인사들만 나다니는 복도. 로잘린이 힘없이 내게 붙어 섰다.
……여긴 샤비얀이 못 오니까 같이 있어도 되겠지? 샤비얀이 보면 또 곤란해질 수 있으니까.
“[어우. 나 이거 입으려고 오늘 온종일 굶은 거 알아?]”
로잘린은 가슴이 파인 요염한 빨간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평소 미는 청순가련 황녀의 이미지와는 달랐달까?
“[켈리언이 빨간색 좋아하잖아. 궁인들이 얼마나 호들갑을 떨던지. 날 아예 켈리언한테 떠밀려고…….]”
기력이 없다는 걸 어필하며 로잘린이 자연스럽게 내 팔짱을 끼려다가 말았다.
“[아. 맞다. 오늘은 언니가 내 에스코트 아니지.]”
히힛-, 웃던 로잘린이 얼굴을 굳혔다.
“[레시우스지…….]”
야아. 넌 레시우스한테 왜 그러냐. 레시우스 섭섭하겠다.
“[응. 그러니까. 먼저 가서 샤비얀 좀 지켜봐 줘.]”
“[당연하지. 이번에는 내가 화장실도 참으면서 철통같이 감시할게.]”
로잘린이 눈을 부릅떴다.
그런 로잘린이 귀여워서 옅게 웃었다.
손을 올려 이쁘게 세팅한 그녀의 머리 장식을 바로 해 주려는데.
“오늘 황녀의 파트너는 나일세.”
하얀 예복을 입은 레시우스가 성큼성큼 복도를 가로질러 왔다.
화려한 금실의 문양과 금으로 만들어진 견장과 훈장이 조명에 비쳐 번쩍였다.
“하일렌의 태양을 뵙습니다.”
황금보다 더 찬란한 레시우스가 나를 보며 눈꼬리를 휘었다.
로잘린은 어느새 내려지는 내 손을 보다가, 마지못해 치마를 살짝 들어 레시우스에게 인사했고.
“르윈. 뭐 잊은 거 없어?”
레시우스가 의전관을 힐끔 보더니, 내 귓가에 속삭였다.
“뭐?”
혹시 오늘 신전에서 사람이 오는 거 아는지 그런 거 물어보는 건가?
“오늘 신전에서 사람 온다는 거? 당연히 알고 있지.”
“아니. 그거 말고.”
레시우스가 조그맣게 웃으면서 제 품에서 훈장 하나를 꺼내 들었다.
그건 내가 어딘가 흘린 훈장이었다. 저게 왜 쟤한테 있어?
레시우스가 내 제복에 훈장을 조심스럽게 달았다. 그의 귀 끝이 빨개지는데.
“가요! 오라버니!”
우리 둘 사이를 묘하게 보던 로잘린이 레시우스에게 다가왔다.
“저, 저 오늘 드레스 어때요? 어머 오라버니 망토랑 제 드레스가 같은 붉은 색이네요. 이건 남매끼리 통한 걸까요. 하하하하.”
다다 말을 쏟아 낸 로잘린이 레시우스의 팔짱에 쟤 팔을 끼워 넣었다.
‘켈리언에다가 레시우스까지? 그건 안 돼!’
눈을 연신 치켜뜬 로잘린이 마치 이렇게 말하는 거 같았달까.
원래 레시우스는 다정하잖아. 나는 어깨를 으쓱하며 이 말을 온몸으로 표현했다.
레시우스의 붉은 망토와 로잘린의 붉은 드레스 자락이 복도 끝으로 사라지고.
“흐흠.”
나는 정원에서 창문을 통해 연회장 내부를 살폈다.
샤비얀은 내가 특별히 부탁한 노부인의 살핌을 받고 있었고.
‘켈리언은 어디 간 건가?’
레시우스의 등장에 무릎 꿇은 사람들 중 켈리언은 없었다.
아. 그래. 아마 바하트 대신들이 동선을 저리 짰을 거다.
켈리언이 무릎을 꿇겠나. 나중에 느지막이 곁문으로 들어오도록 했겠지.
괜히 샤비얀만 먼저 보냈네. 후회하며 연회장으로 들어가려는데.
“각하.”
내 발길을 다급하게 다가온 부관이 붙잡았다.
연회장 통창 너머 레시우스한테도 사람이 붙어 속삭이는 걸 보니.
무슨 큰일이 생긴 건가?
“뭔가.”
“황궁으로 오는 신전의 마차가 전복됐답니다.”
응? 신전의 마차가?
“누가 다친 것인가?”
큰 사고가 났나 싶어서 다급히 물으니, 부관이 고갤 저었다.
“아닙니다. 그렇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왜 그런 큰일 난 표정을 짓는 건데. 사람 헷갈리게.
잠시 주위를 살핀 부관이 내게 붙어 섰다.
“신전에서 사람이 왔는데 그게…….”
“…….”
“대신관님이랍니다.”
대신관?
부관의 말에 나도 놀랐다.
암흑 물질의 일로 신전에서 사람이 온다고 했는데 왜 신전의 수장이 오냐고!
신전의 최고 자리는 사실.
‘신의 대리자이지.’
신의 대리자. 신의 권능을 계승한 이.
하지만 현재 이 자리가 공석이니, 신전의 수장은 대신관이었다.
이건 경찰서에 전화했는데 경찰청장이 오는 격 아니냐?
“호위 업무를 다시 짜야겠군.”
그냥 신관과 대신관을 호위하는 일은 차원이 달랐다.
마차가 전복됐지만, 곧 도착할 터.
신전 측엔 샤비얀의 안위를 부탁할 생각도 있으니, 대신관을 살뜰히 챙겨야 했다.
……끙. 잘 보여야 하는데, 마차가 전복됐다니.
‘샤비얀은 로잘린이 있으니까!’
저번처럼 우리 둘이 동시에 부재하는 상황이 아니니까. 무슨 일 없겠지?
나는 빈방에서 급하게 부관과 함께 호위 명부와 동선을 다시 짜기 시작했다.
***
연회가 한창인 유리 궁.
바하트 대신들은 베르웬 공작이 주위에 없는 걸 확인하곤 샤비얀에게 붙어 섰다.
동시에 로잘린이 샤비얀에게 붙는 바하트 대신들을 보며 눈을 좁혔다.
뭐야. 뭔 꿍꿍이야.
“전하. 폐하께서 잠시 하실 말씀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형님께서?”
샤비얀이 주위를 둘렀다. 정말 바하트 대신의 말처럼 켈리언은 보이지 않았다.
밖에서 따로 기다리고 계신 걸까?
‘형님 말을 듣지 않으면 공작님이 곤란하시겠지.’
마지못해 불을 밝힌 연회장을 나와, 그들을 따라갔다.
그리고 그 뒤에는.
“황녀 전하. 어디가시는 겁니까?”
“전하. 여기는 길이 너무 험합니다. 구두에 흙이 묻으실 거예요.”
로잘린이 따라붙고 있었다.
‘이 야밤에 샤비얀은 왜 데리고 가는 건데?’
끼어들기엔 표정들이 심각했다. 그리고 그들이 다다른 곳을 보고 로잘린이 눈썹을 찌푸렸다.
호수?
그건 신의 눈물인 호수가 아닌. 황궁에서 인위적으로 만든 호수였다.
바하트 사절단은 호수 한가운데에 섬처럼 있는 야외 정원을 가리켰다.
“폐하께서 저곳에 먼저 가 있으라 하셨습니다.”
“형님께서?”
“예. 아무래도 폐하께서 신분을 숨기신 상태이니. 대화가 새 나가면 안되지 않겠습니까.”
바하트 대신이 샤비얀의 등을 나룻배 쪽으로 은근슬쩍 떠밀었다.
‘공작님과 위험한 곳에 안 가기로 약속했는데…….’
공작님과의 약속도 약속이지만, 자신 때문에 공작님이 곤란해지는 건 더 싫었다.
‘이들이 장난치는 걸 수도 있어.’
바하트에서도 장난을 빙자한 괴롭힘을 받아 왔다. 하지만 진짜 켈리언의 명이 맞는다면 안 들었다간 큰일이 날 터.
샤비얀이 체념하며 나룻배에 발을 내딛는 순간.
“어머. 전하 여긴 어쩐 일이세요?”
로잘린이 아는 체하며, 다가왔다. 그녀가 반가운 척 눈을 깜빡였다.
“저 야외 정원에 가시려고요?”
“…….”
“차라리 저리로 가시는 건 어떠세요?”
그녀가 호수 근처의 다른 곳을 가리켰다.
“아닙니다. 만나야 할 사람이 있어서요.”
켈리언의 명일지도 모르니, 무슨 일이 있어도 저 배에 타야만 했다.
로잘린은 그런 샤비얀의 심중을 재빨리 알아차렸다. 못 말린다면 같이 타는 수밖에.
“그럼 같이 타실까요?”
로잘린이 연못을 보다가, 살짝 떨리는 손으로 치마를 그러쥐었다.
‘물 싫은데.’
그렇지만 샤비얀만 저 조그마한 배에 태울 수 있겠나.
바하트 대신들이 얼굴이 창백해졌다. 그들이 로잘린을 말려 보려고 하는데.
“손 좀 잡아 주시겠어요.”
겁에 질린 로잘린이 마지못해 손을 내민 샤비얀의 손을 잡았다. 그러곤 눈을 질끈 감고는 얼른 배에 올라탔다.
“하하. 밤에 타는 것도 운치가 좋네요.”
로잘린이 별이 비치는 검은 물을 보며 입가를 경련하며 웃었다.
그리고 마법으로 절로 노가 움직이는 배는 나아갔다. 호수 한가운데로.
***
급하게 동선을 짜고 돌아간 연회장엔 샤비얀과 로잘린이 안 보였다.
그래서 물어물어 그들이 간 곳으로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이 야밤에 호숫가엔 왜 간 거야. 위험하게.
“각하. 어디 가십니까?”
“마침 잘 왔네. 불 들고 따라오게.”
어두울 게 뻔해서, 등잔을 든 경비병들도 이끌고 호숫가로 갔다.
이미 호숫가엔 사람 여럿이 모여 있었다.
샤비얀의 궁인들과 로잘린의 궁인들이 불을 밝히고 있었다. 주위로 바하트 사절단의 인원도 보였다.
‘뭐야?’
그리고 연못으로 시선을 돌렸는데.
‘왜 둘이 같이 있어?’
그 둘은 뱃놀이 중이었다. 이 야밤에?
무엇보다 로잘린은 물 싫어하는데……?
나랑 함께 온 위병의 불까지 더하자 사위가 환해졌고.
해맑은 척하지만 무서워서 덜덜 떨리는 로잘린의 입술이 보였다.
“[왜 저러고 있어…….]”
나는 걱정스레 중얼거렸다.
물에 빠진 후 이곳에서 깨어난 로잘린 아닌가. 그게 트라우마라 로잘린은 물을 싫어했다.
내가 상황을 파악하려고 근처 인사들에게 다가가는데.
“어어?”
배가 약하게 기우는 걸 보곤 사람들이 소란스러워지더니.
배가 전복됐다.
마치 누군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