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niacs are Obsessed With the Fake RAW novel - Chapter (67)
샤비얀은 또렷이 르윈의 눈동자를 봤다.
눈치 좋은 그는 이미 알고 있었다.
공작님께서 거짓말을 할 때 눈동자의 홍채가 흔들린다는 걸.
“…….”
공작님의 놀란 눈동자가 맑게 흔들렸다.
은회색의 눈동자의 심연 속엔 진한 죄책감이 새겨져 있었다.
사실 그전에도 문득문득 이런 눈빛을 느꼈던 거 같다.
“……못 하시겠습니까?”
가끔가끔 자신이 해맑게 웃거나, 너무 좋아할 때.
공작님은 무의식적으로 죄책감에 물든 표정을 지었었다.
그때 샤비얀은 행복감에 젖어 그걸 깊게 생각하지 않았는데.
‘이제 알 거 같아.’
공작님은 자신을 성애적으로 바라본 적이 없다.
껴안고, 챙겨 주고, 보송보송한 이불을 끌어 덮어 주고.
그건 귀여운 동생에게도 할 수 있는 행동이었다. 공작님은 자신을 마냥 막냇동생 대하듯 했었다.
“……공작님은 절…….”
사랑하시지도 않으셨군요.
샤비얀은 절로 힘이 빠져, 손을 내렸다.
그 와중 손이 공작님의 가슴팍과 닿을 뻔했고.
탁-.
발작적으로 공작님이 몸을 뒤로 빼며, 샤비얀의 손을 약하게 쳐 냈다.
닿는 것도 혐오스럽다는 듯이.
***
흘러내린 샤비얀의 손이 내 가슴팍에 닿을 뻔했다.
아무리 내가 남장을 했어도 난 여자라고!
가슴 쪽으로 다가오는 손길에 너무 놀라서 샤비얀의 손을 약하게 쳐 버렸고.
‘아…….’
어떡해.
이 상황을 설명해 줄 수도 없고.
샤비얀이 입술까지 떨며 날 올려다봤다.
원망, 슬픔, 분노, 책망.
머리가 백지가 될 정도로 당황한 나는 냉궁 밖으로 달려 나왔다.
“[언니!]”
이 일을 논의하기 위해, 그리고 너무 혼란스러워서 로잘린의 궁으로 무작정 찾아왔다.
“[얼굴이 왜 그래? 응?]”
로잘린이 내 표정을 보고, 양쪽 볼을 부여잡았다.
죄책감에 물든 얼굴이겠지.
“따뜻한 차를 내오거라!”
로잘린이 궁인에게 명하며, 문을 닫았고.
문틈에선 돌아온 공작을 보며 기뻐하는 궁인들의 미소가 눈에 들어왔다.
그들의 눈에는 모든 게 제자릴 찾는 거처럼 보일 거다. 샤비얀에게 홀린 공작이 정신을 차린 것처럼.
아닌데. 완전 그 반댄데. 내가 샤비얀을 홀렸는데.
“[샤비얀이 알았어.]”
“[뭐를?]”
“[내가 샤비얀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걸.]”
그리고 아까 냉궁에서 있었던 얘기를 했다.
“[……그럼 어쩔 수 없네.]”
어느새 도착한 차를 건네며, 로잘린이 결심한 듯 고갤 끄덕였다.
“[샤비얀이랑 언니랑 완전 정 떼야 해.]”
로잘린이 뭔가 계획이 있다는 듯, 나와의 거리를 좁혔다.
들어 보니 로잘린의 계획은 이랬다.
샤비얀 앞에서 연극을 해서, 그가 내게 정떨어지게 한 후.
정 떨어진 샤비얀이 스스로 신전에 가도록 한다는 계획이었다.
“[언니. 사람이 언제 제일 살 의지를 가지는 줄 알아?]”
“[……언젠데?]”
“[사랑하는 사람이 있을 때. 그리고 복수할 사람이 있을 때.]”
로잘린이 자기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켰다.
“[언니. 내가 그 복수할 대상이 될게.]”
나는 한숨을 쉬었다.
야아. 우리 둘 다 같이 한 일인데 왜 너만 책임 지냐. 같이 져야지.
“[로잘린. 이 일에는 내 책임도 있어.]”
“[으음?]”
“[네가 권유했지만, 결국 하겠다고 한 건 나야.]”
샤비얀을 꼬시지 않는다면 이 세상이 멸망할 거라는 그 말을 믿고, 계획에 동참한 건 나였다.
내 선택이란 거다.
“[선택에 대한 책임은 본인이 지는 거야. 그러니까.]”
나는 로잘린이 자신을 가리킨 손을 내 쪽으로 돌렸다.
“[같이 나눠 가지자. 뭔데, 네 계획이.]”
샤비얀이 원망할 대상이 있어야 한다면 그건 로잘린이 아니라 내가 되는 게 맞을 거다.
세상을 구하겠다. 이런 대의가 있었지만, 결국 샤비얀에게 상처 준 건 나니까.
“[후회 안 할 자신 있어?]”
로잘린이 내게 물었고.
“[응. 후회 안 해.]”
“[그럼 물릴 생각하지 마.]”
로잘린의 말에 순순히 고갤 끄덕였다.
하지만 그녀가 쓴 대사들을 보고 나는 곧 말을 물리고 싶어졌다.
야아. 이건 좀 많이 심하잖아!
***
‘로잘린은 도대체 전생에서 뭘 보고 뭘 들은 걸까. 그런 대사라니.’
충격적인 대사들을 수정하고도, 아직 정신의 여파가 가시지 않았다.
여전히 내 기준으로는 심했다. 하지만 그녀의 대본에 더 이상 손댈 수 없었다.
그 이유는 바빠서.
‘신전이 아니라 다른 대안을 택할 수도 있어.’
신전으로 가도록 조치를 취했지만, 바하트로 돌아간다던가 그냥 궁을 나가 홀연히 떠난다던가.
정말 생각하고 싶지도 않지만 자결한다던가.
그런 변수를 줄여 보고자,
샤비얀이 황궁에 있는 동안 그림자들을 붙여 달라 레시우스에게 염치없게 부탁해서 붙였다.
더욱이.
“공작이 스스로 날 찾아오다니.”
지금은 켈리언까지 찾아온 상태였다.
켈리언이 늘어져 있던 야외 의자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래서 용건이 뭔가?”
“전하를 신전으로 보낼 겁니다.”
켈리언이 제 풀린 앞섶의 허리끈을 조였다.
야아. 그래도 아직 가슴팍은 훤히 보이거든. 더 여며.
“전하라면, 샤비얀 그 아이를 말하나?”
“예.”
“그 아이를 신전으로 보낸다, 라. 왜? 내가 못 죽이도록 하려고?”
그래. 맞다, 맞아. 네가 샤비얀 못 건드리게 하려고 신전에 보낸다!
아주 자-알 아네!
켈리언이 침묵하는 나를 보다가, 고갤 끄덕였다.
“뭐, 나로서는 나쁜 일은 아니군.”
켈리언이 귀찮다는 듯 저 멀리 서 있는 바하트 인사들을 가리켰다.
“공작도 알다시피 저것들은 그 아이가 죽길 바라거든.”
“…….”
“나는 그대를 생각해서 참았네. 그러면 아예 날 안 볼 거 같아서.”
어느 정도 예상은 했다. 갑자기 멀쩡한 배가 침몰했다?
정황을 파 보니 켈리언의 측근들이 샤비얀을 물에 빠뜨린 거다.
“그래서 제가 폐하께 부탁하고자 이리 온 겁니다.”
“무엇인가? 말해 보게.”
켈리언이 묘하게 입술을 쓸었다.
“만약 전하께서 신전에 가시지 않는다 해도 그분을 건들지 말아 주십시오.”
“…….”
“폐하뿐만 아니라 바하트 제국 전체를 일컫는 것입니다.”
손으로 쓸던 켈리언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부탁에는 대가가 따를 텐데.”
“……뭡니까?”
뭔, 대가를 말하려고 저래……. 괜히 겁나네.
“공작도 나중에 내 부탁 하나 정도는 들어주게,”
“……제가 할 수 있는 선이라면 들어 드리겠습니다.”
“공작이 할 수 있는 선이 맞을 걸세.”
켈리언이 붉은 기가 도는 눈으로 웃었다.
그렇게 우리는 협정 같은 약속을 마쳤다.
***
그리고 하일렌 제국의 황녀 궁.
샤비얀은 로잘린의 호출로 황녀 궁으로 가고 있었다.
황녀 궁의 복도는 자신이 마르토스 소공작과 황녀의 외도를 봤던 그날처럼 비어 있었다.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이지…….’
더 이상 공작님은 냉궁에 오시지 않았다,
‘요새 공작님께서 황녀 전하의 궁전에 매일 들리신다면서요.’
대신 황녀님에게 가신다고 들었었다. 샤비얀이 희미하게 눈가를 떠는데.
“오셨어요?”
궁인이 없는 터라 황녀가 직접 문을 열어 샤비얀을 맞이했다.
“들어오세요.”
“…….”
“공작님께 다 들었답니다.”
여유롭게 자리로 가 앉은 황녀가 곧바로 본론을 꺼내 들었다.
“저랑 공작님이 계속 만나고 있는 거 아셨다면서요?”
호박색의 맑은 눈을 한 황녀가 끔뻑였다.
어머나. 이쁘게 웃던 황녀가 부채를 들더니 안면을 싹 바꿨다.
“제가 말씀드렸죠. 곱게 쓰고 곱게 돌려달라고.”
“…….”
“더는 공작님을 흔들지 마세요.”
황녀가 뻔뻔하게 콧대를 치켜들었다.
샤비얀은 이 상황을 이해해 보려 했다. 그러니까 황녀가 이 모든 상황을 공작님께 보고받는다고?
“공작님이 황자 전하를 정말로 사랑한 거 같아요? 아이. 가엾어라.”
로잘린이 손톱을 보는 척, 건성으로 말을 흘렸다.
“그거 제가 시켜서 그러신 거예요.”
“……그게 무슨.”
“제가 시켰다고요. 황자 전하를 유혹하라고.”
“왜, 왜요?”
“하하. 재밌잖아요.”
황녀는 마치 재미난 장난을 생각해낸 아이처럼 해맑게 웃다가. 얼굴을 굳혔다.
“그리고 황자에게 굳이 이유를 말해 줄 필요도 없을 거 같은데?”
로잘린이 샤비얀의 눈치를 보며 생각해냈던 대사를 입 밖에 내뱉었다.
“적당한 이유를 대자면…… 그분의 충성심을 확인해 보려구요.”
“…….”
“사냥개는 주기적으로 훈육이 필요하거든.”
로잘린이 비릿하게 입술을 끌어올렸다.
로잘린은 생각했다. 와. 나 진짜 악녀 같다, 하고.
“사냥개…… 라고 하셨습니까?”
샤비얀은 자신이 들은 말을 믿을 수가 없었다. 저번엔 공작님을 갔다 쓰라더니 지금은 사냥개?
“왜요? 충격받았어요?”
“…….”
“근데 황자 전하, 이걸 곰곰이 생각해 봐요. 공작님이 사냥개면 황자 전하는 뭘까요?”
로잘린이 제 금발을 뒤로 넘겼다. 일순 하일렌 황제의 권태로운 낯이 비친 듯했다.
“먹잇감 혹은 장난감.”
눈을 반달로 휜 로잘린이 나가라는 투로 발을 까딱거렸다.
울분에 찬 샤비얀의 얼굴을 보며 비웃는 표정을 지었다.
“나가요. 공작님이 곧 오실 거라서.”
“…….”
“안 나가면 더 험한 꼴 볼 텐데.”
귀엽게 웃은 황녀가 몸을 일으켜서 단장을 하기 시작했다.
거울에 비친 황녀의 눈이 거울 속 샤비얀을 응시하고 있었다.
마치, 속내를 읽듯이.
“왜, 왜…….”
샤비얀은 나가기 전에 이거 하나는 묻고 싶었다.
‘베르웬 공작이 가벼운 사내거나 아니면 꿍꿍이가 있거나’
공작님은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 그건 일전에 손이 쳐졌을 때 느꼈다.
그럼 무언가를 위해 이용하는 것일 터.
왜, 왜 자신이었나.
“왜…… 왜 저였습니까?”
왜 날 이리 흔들었나. 샤비얀은 묻고 싶었다.
“약해서.”
거울 속 황녀가 눈꼬리를 휘었다.
그 순간 거울에 문을 열고 들어오는 공작님의 모습이 보였다.
무미건조한 얼굴로 들어온 공작님을 샤비얀이 돌아보았다.
“……저 말이 지, 진짜예요? 예?”
“…….”
“황녀가 말하길 공작님이 계획적으로 유혹하셨다고……. 저, 정말이세요?”
샤비얀은 건조한 표정의 공작님의 옷자락 끝을 쥐는데.
“다 들으신 거 같은데 나가십시오.”
“뭐 해요? 공작님이 나가시라잖아요?”
손을 피한 공작님이 흐트러진 커프스를 잠그며 그리 말했다.
옆에선 황녀가 그 말을 부추겼다.
“황자. 내가 공작님의 비밀 알려 줄까요?”
황녀가 자신의 귀에 속삭였다.
“공작님은 남색 따위는 질색하세요.”
“…….”
“그래서 힘들었대요. 그 동안은.”
제자리를 찾은 황녀가 살살 눈웃음치며, 공작님의 옷깃을 만지작거렸다.
어쩐지 마음 약해지는 공작님을 단속하려는 모양새 같기도 했다.
“뭐 해요? 나가요. 더 험한 꼴 안 보려면.”
황녀가 샤비얀을 흘끔 보며, 말했다. 그러곤 도발하듯 공작님의 목에 팔을 둘렀다.
‘정말 다 거짓말이었구나…….’
다 거짓말이었구나. 정말 자신을 가지고 놀았구나.
충격받은 샤비얀이 이 상황을 견딜 수 없어, 황녀 방을 뛰쳐나왔고.
닫히는 문틈으로 보았다.
황녀가 공작님의 고개를 끌어당겼고, 무력하게 이끌린 공작님에게.
입을 맞추려는 모습을.
쿵-.
무거운 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