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niacs are Obsessed With the Fake RAW novel - Chapter (68)
“[갔어?]”
“[응……. 간 거 같아.]”
휴우, 나와 로잘린은 입 맞추는 척 가까이에서 틀었던 고개를 다시 바로 했다.
……많이 상처받았겠지.
샤비얀의 상처받은 표정에 마음이 약해졌지만.
‘언니! 정신 차려! 애매하게 굴면 더 나쁜 거야.’
‘샤비얀이 계속 위험하도록 둘 거야? 어?’
‘검으로 사람들을 살리는 거랑. 이거랑 별 차이가 없어!’
이미 이 연극을 시작하기로 마음먹은 뒤.
로잘린과 리허설을 해 보는 동안 단단히 정신 훈련을 받았었다.
마음이 약해질 때마다 그게 도움이 됐달까?
“[샤비얀은 냉궁으로 갔을까?]”
“[글쎄. 이제 언니한테 정은 떨어졌을 테니……. 신전에 가도록 잘 설득을 해 봐야지.]”
그렇지.
“[이제 다 대신관에게 달린 일이겠지.]”
이를 위해서 나는 이미 대신관에게 부탁했었다.
샤비얀을 만나서, 신전에 가도록 설득해 달라고.
대신관은 그저 인자하게 ‘예’ 하고 고갤 끄덕였었다.
안 도와주면 어쩌나 마음 졸였던 거에 비하면 싱거울 정도로 쉬운 승낙이었다.
“[언니. 자, 스마일.]”
“[스므이.]”
로잘린이 자꾸만 내려가는 내 입꼬리를 억지로 손으로 올렸다.
야아. 나 그럴 기분 아니다. 정말.
“[나중에 샤비얀도 고마워할 거야 분명.]”
“[……흐음.]”
“[생각해 봐. 샤비얀이 얼마나 착해? 걔가 자기가 죽으면 세상 사람 다 죽는다는 걸 알면. 응?]”
로잘린이 팔을 퍼덕였다.
“[자기가 죽은 뒤 사람들이 싹 다 죽는걸 알면 얼마나 슬퍼하겠어! 아냐?]”
끙. 그렇지.
“[우리 샤비얀은 신이 분노하지 않는 선에서, 안전하게 신전에 있다가.]”
“[……..]”
“[그렇게 안온하게 신의 품으로 돌아가는 거지. 이것조차 다 지나가리라! 응?]”
훌륭한 연극의 배우처럼, 로잘린이 손을 우아하게 펼쳤다.
창으로 든 빛이 로잘린의 가는 손가락에 예쁘게 걸리는데.
“어?”
“왜?”
로잘린의 뒤로 샤비얀이 어디론가 달려가고 있었다.
그래. 충격받았을 거야. 근데…….
“[언니! 어디 가!]”
나는 샤비얀이 가는 방향을 보고, 함께 따라 뛰었다.
샤비얀이 가는 방향은 신의 눈물.
레시우스와 샤비얀이 원작에서 처음 만나고, 내가 그를 유혹하려 생쇼를 했던 그 호수.
그곳으로 가고 있었으니까.
‘설마 나쁜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내가 뭐라고 그런 생각을 하냐고! 안 돼!
***
황녀 궁에서 나온 샤비얀이 악에 받쳐 뛰었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
스치는 풍경의 수풀 속 나뭇가지에 샤비얀의 살결에 잔뜩 상처가 났다.
하지만 샤비얀은 개의치 않았다.
“하아.”
그가 도착한 곳은 호수.
신의 눈물이라는, 자고 있던 공작님과 만났었던 그 호수였다.
그가 호수로 걸어갔다. 죽으면, 자신이 죽으면 공작님이 봐 줄까.
미안해할까? 죄책감이라도 가질까?
‘공작님은 나를…….’
사랑하지도, 좋아하지도 않아.
오히려 혐오한다.
‘공작님은 원래 남색이라면 질색하셨대.’
‘공작님은 남색 따위는 질색하세요.’
의혹이 맞아떨어지는 순간이었다.
가슴팍으로 향하던 자신의 손을 무의식적으로 쳐 내던 공작님을 샤비얀은 기억했다.
“하하…….”
샤비얀은 호숫가에 들어가려던 걸음을 멈췄다. 발치에서 인 물이 신발을 적셨다.
뭔가에 홀린 것 같이 호숫가로 걸어가던 샤비얀이 그대로 고갤 내렸다.
“내가 죽어도…… 공작님은 안 와.”
그리고 호수의 물결에 자신의 텅 빈 눈동자가 비쳤다.
물결에 투영된 그 푸른 눈동자에 분노가 끼어들기 시작했다.
샤비얀이 다시 움직이자, 잔잔했던 호수가 물결치기 시작했다. 동시에 푸른 눈동자에도 격렬한 파랑이 일었다.
“내 꺼라며!”
형형하게 버려진 벽안이 푸른빛의 호수를 노려봤다.
샤비얀의 과거사를 안 모든 이들은 뒤에서 이리 말했다.
제 어미의 인생처럼 갇혀서, 새장의 새처럼 살 팔자라고.
그런데 왜 모를까.
자신의 피의 반은 그 어머니를 가둔 아버지의 것인데.
‘아들아. 아름다운 것은 짓밟고, 꺾어서라도 가지면 되는 거다.’
아버지는 그리 말하셨다.
아아. 이제야 아버지가 완전하게 이해된다.
“아버지는 어쩔 수 없었던 거야.”
사랑하는 상대가 자신을 싫어하니까.
도망가니까. 자꾸만 버리려 하니까.
가둘 수밖에 없었던 거야.
***
나는 샤비얀을 뒤따라갔었다.
샤비얀이 반쯤 호수에 들어갔을 때, 결국 그를 말리려 했다.
발을 반쯤 떼는데 샤비얀이 다시 뒤돌아 호수 밖으로 나왔다.
……그의 눈빛이 뜨겁게 일렁이고 있었다. 처음 보는 샤비얀의 모습이었다.
‘로잘린의 말로는 분노가 살아갈 원동력이 된다던데.’
지금 샤비얀의 표정이 딱 그랬다.
나를 가만두지 않을 거 같은 표정. 그렇지만 새롭게 부여된 삶의 목적에 불타오르는 표정.
‘샤비얀은 꼭 살 거야.’
그 표정을 보니 어쩐지 안심됐다. 그는 나를 평생 증오할 수는 있겠으나…….
나를 미워하기 위해서라도 죽지 않고 살겠구나.
그래서였을까.
“[자. 다음에 샤비얀한테 해야 할 말.]”
폐저택에 오랜만에 온 로잘린이 내게 종이를 건넸다.
그건 로잘린이 만약 샤비얀을 만나면 하라고 한 대사들이었다. 이를 눈으로 훑었다.
평소라면 너무 심하다고 했을 대사였지만.
“[그래.]”
“[응? 이거 그대로 하겠다고?]”
나는 수락했다.
“[로잘린, 네 말이 맞는 거 같아.]”
“[뭐가?]”
“[어쭙잖게 착한 척하는 게 오히려 독이라는 거.]”
로잘린은 내가 망설이자, 나한테 더 독하게 하라고 날 다그쳤다.
내가 연기를 너무 못하자 로잘린이 대부분 연기를 진행한 거지만.
“[나 이해했어. 그러니까 잘해 낼 수 있어.]”
이제 뭐가 더 샤비얀을 위한 건지 알 거 같았다.
자신에게 상처 준 사람을 사랑하는 게 얼마나 고통스럽겠어.
미워해야 할 사람을 마음껏 미워하도록 단칼에 끊어 내는 것.
어쭙잖게 착한 척해서 희망 고문하는 게 장기적으로 보면 더 아플 것이다.
삑-.
그렇게 결의를 다지며 다시 서는데, 발밑에 있는 인형을 잘못 밟아 이상한 소리가 났다.
로잘린이 허리를 숙여 그 인형을 들여다봤다.
“[언니. 근데 나 한소리 해도 돼?]”
로잘린이 드래곤 모양의 인형의 날개 부분을 들고 음산히 흔들었다.
그러곤 제 품에서 기다란 종이를 들었다.
“[이거 너무하다고 생각하지 않아?]”
그녀가 보여 준 건 샤비얀에게 챙겨 줄 짐 목록이었다.
“[무슨 안고 잘 배게까지 챙겨 주려 해. 것도 여분까지? 이 정도면 짐 마차 한 5대는 필요해. 알아?]”
끙. 심하긴 하네.
나는 눈을 올려 로잘린을 보다가 뺨을 긁적였다.
“[……그건 신전에서 못 구하잖아. 그리고 사람이 잠자리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아? 갑자기 환경이 바뀌면 불안할 테니까 침구라도…….]”
“[아. 그래서 심신 안정용 인형도 챙겨 주는 거구나?]”
로잘린이 들고 있던 드래곤 인형을 탁탁 쳤다.
왜 그래. 샤비얀 드래곤 좋아한단 말이야.
“[언니 마음 불편한 거 알아. 그래서 이렇게라도 샤비얀한테 신경 써 주고 싶은 것도 잘 알겠어.]”
그녀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맞아. 난 가진 게 돈밖에 없잖아.]”
내가 어깨를 으쓱했다.
“[……이렇게라도 보상해 주고 싶다고. 돈으로는 상처가 치유되진 않겠지만.]”
보송한 침구나 좋아하는 인형을 볼 때면 기분이 잠깐이라도 좋아질지도 몰랐다.
나는 그런 소소한 것들의 힘을 믿는다고.
“[언니. 샤비얀이 이런 걸 갖고 싶어 할 거 같아?]”
“[…….]”
“[샤비얀이 갖고 싶은 건 언니야!]”
로잘린을 검지로 나를 콕 가리켰다.
“[언니를 줄 수는 없잖아. 그렇지?]”
내가 물건도 아니고……. 샤비얀에 나 자신을 줄 수는 없긴 하지.
……아닌가? 포로로 잡히면 가능도 할 거 같기도 하고.
“[이렇게 언니가 챙겨 주면 그 눈치 빠른 샤비얀은 알아! 그러면 또 헛된 기대를 품을 거 아냐!]”
로잘린이 드래곤 인형을 뺏어갔다.
“[그러니까 이건 압수야!]”
라고 하면서.
***
‘다행이야. 샤비얀이 신전에 가기로 해서.’
대신관이 샤비얀을 만났고, 신전으로 오면 어떻겠냐고 물어봤었단다.
그리고 샤비얀의 응답은 ‘예스’였고 말이다.
그리고 그날이 왔다. 샤비얀이 신전으로 가는 날.
‘마음이 복잡해.’
샤비얀이 가는 게 심란해서 황궁 주위를 배회하는 중이었다.
“멈추게!”
으아. 운명의 장난인가.
당연히 동선이 겹치지 않는 곳으로 왔는데도 샤비얀을 마주쳤다.
마차를 세운 샤비얀이 내려서 내게 다가왔다. 며칠 새 야윈 그는 몹시 수척해 보였다.
“…….”
내 안주머니엔 로잘린이 샤비얀을 보면 말하라는 대사들이 적힌 쪽지가 있었다.
붙잡을 때, 화낼 때, 때릴 때 등등…….
샤비얀의 반응에 따라 나는 샤비얀을 만나면 그리 말하려고 준비한 상태였다.
끙. 그래도 도저히 자신이……. 쓰러질 듯한 샤비얀의 얼굴에 나는 그냥 등 돌려 가려 했다.
어차피 샤비얀은 신전에 갈 거고, 굳이 상처 줄 필욘 없지.
“고, 공작님!”
그때. 등을 돌린 내게로 샤비얀이 다가와 허리를 껴안았다.
몸이 절로 굳었다.
“마, 많이 생각해 봤어요.”
“…….”
“왜 그러셨을지. 황녀가 시켜서 그러신 거잖아요. 그렇죠?”
샤비얀이 내 허리춤의 셔츠를 쥐어 잡는 것이 느껴졌다.
“공작님의 눈빛은 진심이셨어요. 절 사, 사랑하지는 않아도 절 아끼신 건……. 진심이시잖아요.”
“…….”
“다 거짓말은 아닌 거잖아요?”
그래. 나는 샤비얀을 아꼈다. 마치 막냇동생을 아끼듯.
하지만 나는 이제 안다.
상처를 주지 않으려는 나의 마음이, 샤비얀에게는 미련이 되고 그게 고통이 될 거라는 걸.
단칼에 베어야 고통이 없다. 이것 또한 그러했다.
“……다 거짓말 맞습니다.”
“왜, 왜 그러셨어요?”
“이유를 굳이 아실 필요가 있겠습니까?”
나는 배웠던 수많은 재수 없는 표정 중 하나를 지어 보였다.
이유라.
네가 죽으면 인류 멸망이라 그랬어. 미안해.
나는 샤비얀에게 등 돌려, 그를 마주 봤다.
“전하. 신전에 가신다는 말 들었습니다.”
“…….”
“옳으신 선택입니다.”
나를 올려다보는 샤비얀의 뺨에 내 손바닥을 올렸다.
예전처럼. 유혹하듯.
“신전의 가장 높은 이.”
대신관보다 높다는 자. 혼란의 시대에 신이 세운다는 신의 대리인.
“신전의 가장 높은 곳에 올라 보십시오.”
“……신의 대리자요…….”
“혹시 압니까? 쓸모가 있으면 제가 다시 찾을지?”
내가 입 끝을 치켜올리며, 샤비얀의 뺨에서 손을 치웠다.
온기가 사라진 뺨을 손등으로 쓸던 샤비얀이 가려던 내 옷자락을 쥐었다.
“신…… 의 대리자가 아니라.”
고개 숙인 그의 표정은 볼 수 없었다.
“다른 힘이 있는 존재가 되면 어쩌실 거예요?”
“……글쎄요.”
“제가,”
샤비얀이 내 옷자락을 쥔 손에 힘을 줬다.
“제가 공작님을 마음대로 해도 됩니까?”
그의 음성엔 분노가 서려 있었다.
“공작님께서 절 마음대로 가지고 놀았던 것처럼?”
그래. 차라리 날 마음껏 미워해.
욕하고 싶으면 하고, 때리고 싶으면 때리고.
복수하고 싶은 마음으로, 화내고 싶은 그 마음으로.
그 마음으로 온 힘을 다해 살아.
“예.”
나를 미워하는 마음으로 살아.
“그러니 이거 놓고 꺼지십시오.”
샤비얀의 손이 떨어져 나갔고 분노를 참는 목소리로, 이때껏 들어본 적 없는 목소리로 그가 입을 열었다.
“아까 하신 말들 절대 잊지 마십시오. 공작님.”
이 말을 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