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niacs are Obsessed With the Fake RAW novel - Chapter (69)
마차의 유리창으로 드는 빛이 샤비얀의 얼굴에 닿았다.
밤임에도 불을 밝힌 거리는 대신관의 방문에 들떠 있는 모습이었다.
“……이대로 신전으로 가는 건가요?”
“아닙니다. 저희는 대신관님보다 먼저 바이우드에 도착해 탐색할 예정입니다.”
그런가.
샤비얀이 눈을 내리면서, 제 허벅지 위의 바지를 그러쥐었다.
‘내가 갈 곳은 신전이 아니야.’
신전은 바이우드에 무슨 일이 있는지 조사하러 들러야 한다 했다.
샤비얀은 그 바이우드에 파견된 신관들과 함께 일을 마치고 신전으로 돌아가기로 예정돼 있으나.
‘내가 갈 곳은 신전이 아니라 렉티스야.’
샤비얀은 북부로 가는 도중 내려, 렉티스로 향할 생각이었다.
애초에 그가 신전에 몸을 의탁한 것이 이 이유였다.
북부, 렉티스에 가려면 어쨌거나 하일렌의 황궁을 벗어나야 했으니까.
‘제가 신의 대리자가 될 수 있습니까?’
신전에 자신의 몸을 의탁할 때, 샤비얀은 대신관에게 그리 물었었다.
대신관은 의미심장하게 웃었을 뿐, 시원히 답변해 주지 않았다.
마치 신의 대리자 자리가 자신의 것이 아니라는 듯.
‘신의 대리자가 아니라면 차선을 선택해야겠지요.’
샤비얀. 그는 알고 있었다. 렉티스의 숨겨진 진실을.
그리고 신의 대리자가 아니어도 광대한 힘을 가질 수 있다.
“절대 잊지 마세요.”
공작님을 마음대로 해도 되냐는 말에 예, 라 답하신 것을.
***
그리고 그 시각.
냉궁의 궁인들을 궁을 비우면서, 휑한 주위를 훑었다.
“전하는 이제 황궁을 벗어나셨겠지?”
“그렇겠지.”
궁인들이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샤비얀이 떠난 건 떠난 거고, 할 일은 해야 했다.
“구석구석 봐 봐. 혹시 몰라 전하가 떨어뜨린 패물이 있을지.”
“하긴 공작님이 선물을 얼마나 드렸어. 가실 때 꽉꽉 채운 짐마차 2대랑 떠나셨다며?”
그들이 농담하며, 분위기를 풀었다. 궁인이 서랍 깊숙이 수건을 넣어 닦는데.
“어?”
“왜?”
“여기 서랍 안에 비밀 공간이 있는데?”
“응? 봐 봐.”
다가온 궁인이 손 넣어 만져 보고는 눈을 크게 떴다.
“진짜네. 여기 열면 패물이 와르르 쏟아지는 거 아냐?”
궁인이 눈을 맞추며 키득키득 웃었다. 궁인이 장난치며, 홈이 파인 곳을 짚었고.
“자, 연다. 하나, 둘.”
셋-, 하며 잡아당기는데.
“…….”
“…….”
두 하녀는 쏟아지는 물약에 굳어 버렸다. 이게 뭐지?
“뭐야. 이거…….”
“정말인가 봐. 전하가 공작님께 요사한 약을 먹였던 게 맞나 봐.”
“소문이 맞았어!”
두 궁인이 서로를 바라봤다.
“어떻게 해? 이거?”
“어떻게 하긴. 감찰부한테 얘기해야지! 괜히 말 안 했다간 우리까지 엮인다고!”
발을 동동 구르던 궁인들이 그 물약을 가지고 감찰부로 뛰어갔다.
그 이후 소문이 황궁을 덮은 건 순식간이었다.
***
나 자는 동안 무슨 일 있었니?
집무실에서 자고, 연무장에서 씻는 궁상맞은 생활을 레시우스한테 딱 걸렸다.
차라리 빈 궁인 황후 궁을 쓰라는 말에 사양하곤 저택에서 자고 씻고 왔는데.
“각하!”
무리지어 걷던 기사들이 나를 보며 허리를 90도로 꺾었다.
뭐, 뭐야. 왜 이래. 간밤에 뭐 잘못 먹었어?
근래 내가 친 사고 탓에 기사들의 존경심이 예전 같지 않았는데.
“그동안 오해해서 죄송합니다. 각하.”
“예. 저희는 각하께서 그러실 분이 아닐 거라 굳게 믿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눈빛이 돌아왔다. 아니, 그보다 더 강렬한 존경심을 담고 빛났다.
뭐랄까. 미안해서 더 잘해 주는 그런 느낌. 그런 거 있지 않나.
“그동안 오해해서 죄송합니다. 공작님.”
오해?
당최 알 수 없는 얘기에 뺨을 긁을 뻔했다. 뭐가 오핸데?
“바하트의 황자가 공작님에게 그런 이상한 약을 먹인 것도 모르고 말입니다.”
“예. 그 사실을 아시고 황자를 내보내신 걸 테지요.”
바하트 황자. 이상한 약. 이 두 글자로 상황을 유추했다.
샤비얀이 나한테 사랑의 묘약을 먹였다고 오해하나 본데……. 눈빛이 확고했다.
증거도 없이 그냥 심증인데 눈빛이 이렇다고?
그리고 원수부가 있는 집무실로 와서야 상황을 파악했다.
냉궁에서 사랑의 묘약이 다수 발견됐다고.
사랑의 묘약이 워낙 강해서, 그 유리 궁에서 찾은 그 한 병이 전부인 줄 알았다.
희석해서 쓸 정도의 진한 약이니까. 근데 여러 개가 있었을 줄은…….
그리고 그 소문은 나비 효과가 되어 황궁을 쓸었다.
“바하트 놈들이 실력이 없으니 그런 술수를 쓰는 거겠지.”
“저리 꺼져. 우리 땅에서 꺼지라고.”
나는 저 멀리서 바하트 기사에게 시비 거는 하일렌 기사들을 바라봤다.
문관의 행정부와 무관의 원수부는 날개 궁에 붙어 있는데.
그동안 수장이 영 맛이 가서 눈치보다 살다가.
이 일에 바하트가 개입된 걸 알곤 무관들의 참았던 울분이 터진 듯했다.
“차라리 정정당당하게 대련하라 그러게.”
나는 뒤에선 부관을 보며 지시했다.
어휴. 쌓인 울분을 푸는 건 자기 마음이지만 생산적으로 푸는 게 좋잖아.
“바하트 기사들과 직접 검을 겨누는 건 쉬운 기회가 아니지.”
“아. 역시 각하십니다!”
적국의 기사와 검을 겨누면 많은 걸 배울 거다.
그들이 쓰는 검과 검술, 그리고 어떤 공통된 특징이 있는지 역시도.
“그럼 자네는 저들에게 내 의중을 전하게. 자, 가 보게.”
“예!”
부관은 과할 정도로 존경스러운 얼굴로 날 보더니 싸우는 이들에게 다가갔다.
그 역시 내가 묘약을 먹고 그동안 이상하게 굴었다 생각하는 사람 중 하나였다.
‘오해를 풀어 보려 했지만.’
그동안 내가 한 행동이 너무 다 이상해서 수습이 안 될 지경이랄까?
“휴.”
소문에 대한 수습은 못 할 거 같지만, 궁 분위기는 수습해야만 했다.
켈리언과 대신관이 이 황궁에 같이 있으니까. 더욱 더 조심해야만 했다.
켈리언이 화나서 다 부수면 안 되니까.
‘그런데 예상외로 잠잠하단 말이지.’
대신관이 와서 그런가?
켈리언의 동태도 살필 겸. 그가 머무는 숙소를 먼발치에서 슥-, 보는데.
“1211.”
켈리언은 웃통을 벗고 팔 굽혀 펴기를 하고 있었다.
햇빛에 더 탔는지 구릿빛 피부 위로 땀방울이 흘렀다.
야생마 같은 몸매에 침이…… 아니. 왜 침을 삼켜.
“폐하! 돌아가셔야 합니다!”
“1212.”
“주요 해상 교역로 중 하나가 막혔단 말입니다!”
“1213.”
“지금 피해가 얼마나 막심한지 아십니까? 물건이 지체돼서 발생하는 피해에 인질에 대한 몸값에! 왕국에서 오는 공물들도 죄다 반송되고 있습니다!”
켈리언이 짜증난다는 듯,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가 주위에 있던 수건을 대신에게 던졌다.
“다 네놈들 탓 아니냐.”
물기에 젖은 머리칼을 켈리언이 뒤로 넘겼다.
“하일렌 황제가 자기 동생 건드렸다고 우릴 골탕 먹인 거다.”
“……해적의 소행입니다. 폐하.”
여기서 레시우스 이름이 왜 나와?
로잘린이 샤비얀과 함께 물에 빠진 일을 두고 바하트 측이 개입된 것 같다는 말이 돌긴 했었다.
나 역시도 샤비얀을 빠트리려다가 로잘린이 이 일에 엮였다고 생각은 하지만.
‘레시우스가 그런 일을 벌였다고? 해적 일이라잖아.’
나는 레시우스를 걸고 넘어가는 켈리언을 보며, 눈을 좁혔다.
왜 우리 레시우스를 뒤에서 수작이나 부리는 애로 만들어. 어?
“하하. 갑자기 개별적으로 움직이던 해적들이 연합을 만들고, 갑자기 로템 왕국의 군선이 그들의 손에 들어가고.”
켈리언이 이마에 송골송골 맺힌 땀을 말리며, 비소했다.
“그게 다 우연 같나?”
……얘기 들어 보니 우연치곤 기괴하긴 했다만, 가끔은 그런 말도 안 되는 우연이 겹치기도 하잖아?
우리 레시우스 그런 애 아니거든?
“폐하. 이 때문만이 아닙니다.”
대신이 켈리언에게 붙어 서서, 소릴 낮췄다.
흐음. 하지만 귀가 좋은 나는 들리지. 나는 귀를 더 쫑긋했고.
“하일렌의 황제와 대신관의 회동이 잦습니다.”
“……바이우드의 일 때문일 거다. 나를 압박하려는 목적도 있겠지.”
“예. 폐하. 그러니 조심하셔야 합니다. 제국도 제국이지만.”
대신이 침을 꿀꺽 삼켰다.
“신전이 저희를 척지면 온 대륙과 싸워야할 겁니다. 어쩌면 바하트 내부에서 분열이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신의 힘이란 것이 그랬다.
이 대륙에서 신의 이름은 막강했다. 아무리 켈리언 개인이 강해도 세상 모두와는 싸울 수 없을 터.
“게다가 신전이 하일렌 황제에게 유달리 우호적입니다. 특히 대신관이요.”
‘뭘 어떻게 구워삶은 건지.’ 바하트 대신이 중얼거렸다.
하긴. 레시우스가 요즘 주황 고양이랑 자주 황궁의 서고에 박혀 있긴 했다. 또 틈틈이 나랑 같이 대신관도 보고.
이상하긴 해.
대신관은 유달리 레시우스에게 공손했다. 그건 나도 은연중에 느끼던 바였다.
“크흠.”
‘이상한 건 그뿐만 아니야.’
나는 아주 작게 헛기침했으나, 켈리언은 안 들린다는 듯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켈리언이 땀을 흘린다? 이런 소릴 못 듣는다?
나랑 같은 소드마스터면서? 체력이 비약적으로 좋은 소드마스터는 땀 흘릴 일이 별로 없을 텐데.
나는 땀으로 반질거리는 켈리언의 매끄러운 등허리를 보다가 고갤 갸웃거렸다.
***
그리고 하일렌의 황제 비밀 서고.
“네놈은 좀 지나친 거 같다.”
고양이로 변한 클리프가 고갤 저었다.
켈리언을 견제하기 위해서 레시우스는 여러 정보들을 쏠쏠히 사용하는 중이었다.
고대 마법이나 신물의 사용법 같은 것들 말이다.
아마, 켈리언은 지금 이때껏 느끼지 못한 무력감을 느낄 것이다.
그러니까 소드마스터가 아닌 인간 같은 나약함 말이다.
“네놈 때문에 황실 보고의 신물이 죄다 쓰이겠다.”
“…….”
“바하트 황제를 죽일 것이냐?”
“……그럴 수는 없습니다.”
켈리언이 르윈을 마음에 품은 걸 모르지 않는다. 마음 같아선 정말 없애 버리고 싶지만.
“전쟁이 일어나선 안 됩니다.”
그러면 르윈 스스로 선봉에 서려 할 것이다. 레시우스는 르윈이 그런 고통을 겪도록 할 생각이 없었다.
그자를 죽이면 균형 잡힌 대륙의 정세가 바뀌며 또 전쟁으로 격화되겠지.
“그러면 그자를 왜 괴롭히는 게냐?”
“로잘린을 물에 빠뜨린 복수입니다.”
“이미 바하트의 교역로를 막았지 않느냐? 바하트 군용 함선도 가라앉힐 거라면서!”
“그럼 경고로 하죠.”
레시우스가 무심이 책을 덮으며 일어섰다. 곧 대신관과 만날 시간이었다.
바이우드 일도 그렇고, 대신관은 여러모로 만나서 득이 되는 자였다.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클리프가 집무실 책상에 앉으며, 들어오는 대신관을 바라봤다.
“……읏.”
집무실에 들어와서 탁한 눈으로 대신관이 주위를 흘기다가, 머리를 쥐어 잡았다.
“괜찮으십니까?”
레시우스가 말로만 대신관을 걱정했다. 저 선은 지독히도 지키는 놈.
대신관 외양이 소녀긴 해도 이미 나이는 성인인 바.
“…….”
대신관은 충격적인 눈으로 주위를 둘렀다.
“뭘 본 것이오?”
클리프와 레시우스는 대신관이 미래를 보는 걸 알았고.
지금 그녀의 반응을 보고 그녀가 방금 미래를 본 것도 알아차렸다.
“그것이…….”
대신관이 입울 달싹이다 말다. 한참을 고민했고.
“어떤 미래를 보신 것입니까?”
레시우스가 진중하게 묻자. 어쩔 수 없다는 듯 입을 열었다.
“폐하께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