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niacs are Obsessed With the Fake RAW novel - Chapter (70)
대신관의 말을 듣고 레시우스는 충격이 아니라 피로해졌다.
‘내게 독살을 시도할 세력이 생긴다라.’
독을 마신다는 건 문제가 안 된다.
이제 알았으니 당하진 않겠지. 다만 그런 세력이 생긴다는 게 중요했다.
“……대신관 잘못 본 거 아니오? 저노…… 황제가 누구에게 독을 보낸 게 아니고?”
클리프가 의아하게 되물었다.
저놈이 독살 같은 그런 얄팍한 수에 당할 리가 없을 텐데.
“아닙니다.”
대신관은 짧게 일축하며 은은하게 웃었다. 자신이 말해 줄 수 있는 건 여기까지라는 것처럼.
“저는 이만 신전으로 돌아가야 할 듯싶습니다.”
대신관이 고갤 숙였다.
아무리 그라도 이젠 무리였다.
이때껏 레시우스에게 이리저리 끌려 다니며 그가 하고 싶은 걸 다 하게 해 주지 않았나.
“그러십시오.”
레시우스의 말이 떨어져서야 대신관이 인사하며 집무실 밖으로 나갔고.
클리프는 묘한 상황을 살폈다. 저놈은 사람을 아랫사람처럼 부리는 데 재주가 있는 건가.
어째 대신관이 제 수하같이 보이누.
“어디 가냐?”
“피곤합니다.”
클리프는 네발로 레시우스 뒤를 따랐다. 피곤하다기에 침실로 가는 줄 알았더니.
레시우스는 원수부가 있는 집무실로 걸어가고 있었다.
“피곤하다며?”
“예. 제 피곤은 누굴 봐야 풀리는 거라서요.”
잠시 든 르윈의 생각에 레시우스가 입술 끝을 부드럽게 올렸다.
냉기가 도는 얼굴이 금방 풀리는 걸 보며 클리프가 털 방망이로 제 몸을 쓸었다.
분명 지금은 고양이 몸인데 왜 닭살이 돋지?
“그만 가십시오.”
레시우스가 클리프를 보며 얼굴을 굳혔다. 그가 딱딱하게 곁눈질했다.
자신이 가면 그 아이의 관심이 이쪽으로 몰리겠지. 고양이도 질투 나는 게냐?
클리프는 점점 낮아지는 레시우스의 주변 온도를 보고 발을 물렸다.
그리고 레시우스는 모두들 퇴궁하여 인적 드문 원수부가 있는 궁에 발을 들였고.
끼익-.
이미 살짝 열려 있는 문을 밀며 안을 살폈다. 소파 위에 모포를 뒤집어쓴 뭉치가 보였다.
위로 삐쭉 나온 회색빛 머리가 귀여웠다.
“……나 진짜 잠깐 눈만 붙인 거야.”
모포 속에서 웅얼거림이 들려왔다.
“집에 가서 잘 거야.”
“그래.”
레시우스가 황후 궁으로 가라 할까 봐. 르윈이 얼른 변명했다.
어차피 비어 있는 궁인데 그리 쓰는 게 불편할까. 너를 위해선 그런 궁 수십, 수백은 더 지어 줄 수도 있는데.
“무슨 일 있어?”
모포 속에서 나온 은회색 눈이 레시우스를 올려보았다. 그가 무릎을 낮춰 르윈과 눈을 맞췄다.
‘독살이라니.’
레시우스는 그리 쉬이 죽어 줄 생각이 없었다. 그는 오래오래 살아 그녀와 함께 늙어 가고 싶었다.
“보고 싶어서.”
레시우스가 르윈을 보며 나지막이 말했다. 그의 말에 르윈이 민망한 듯 볼을 살짝 붉혔다.
“대신관이 떠날 거 같아.”
래시우스의 말에 르윈이 놀란 듯 완전히 모포를 내렸다.
“르윈. 바하트 황제도 곧 떠날 거야.”
안 간다 해도 쫓아 보낼 생각이었다.
경고는 충분히 했고, 향후 켈리언을 막아 세울 만한 최소한의 방비는 해 둔 상태였다.
“그러면 조금 쉬자.”
“…….”
“휴가 보내 줄게.”
레시우스가 르윈을 보며 웃었다.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 주는 위선적인 웃음이아니라 진심이 담긴 맑은 웃음으로.
***
‘대신관이 떠날 거 같아.’
잠결에 잘못 들었나 했는데, 레시우스의 말은 사실이었다.
너무 좋은 사실 중 하나는,
‘르윈. 바하트 황제도 곧 떠날 거야.’
이 말도 사실이었다는 것이다. 켈리언은 바하트로 돌아가려 채비 중이었다.
듣기로는 해상 교역로 문제도 있고 대공의 잔존 세력이 황도에 결집할 기미가 있어서 가려는 거 같았다.
“그대의 황제가 날 쫓아 보내려 또 개짓거리를 하는군.”
“…….”
“갈 테니까. 그만하라 그러게.”
어휴. 뭐 만하면 레시우스 탓이래.
거의 주장하는 바가 음모론 급이다. 아무 근거 없는 저 믿음은 어디서 나올까?
“황제 폐하는 그런 분 아니십니다.”
“그런 분 맞네. 공작.”
한껏 비꼬던 켈리언이 제 손을 들어 빤히 쳐다봤다.
“이런 무력감은 어렸을 때 이후 처음인데 말이지.”
켈리언이 입술을 틀어 올렸다.
“정말 그 힘이 필요할지도 모르겠군…….”
켈리언의 중얼거림에 목덜미가 싸늘해졌다. 그 힘이라면…… 악마의 힘?
켈리언의 힘의 진가는 지금 당장 가지고 있는 힘이 아니었다. 그의 혈통에 잠재된 악마의 피가 진짜였다.
어휴. 그런 소릴 막 하네.
레시우스가 괜히 신전까지 불러서 견제하려는 게 아니라니까!
“다음엔 바하트 황궁에서 만나지.”
“안 갈 겁니다.”
“그거야 모를 일이지. 내 부탁 하나 들어주기로 했지 않나?”
“저도 제가 할 수 있는 선의 부탁이면 들어 드릴 거라 했습니다만.”
바하트 황궁이라니 거긴 너무 멀다고!
안 가, 안 간다고!
켈리언은 미묘하게 눈썹을 으쓱이며 날 빤히 봤을 뿐이었다. 내 색다른 표정을 관찰하는 사람처럼.
***
그렇게 켈리언을 보내고 대신관도 보냈다.
물론 대신관을 보내는 와중에 작은 소란도 있었다.
‘대신관이 여자라고?’
‘여자예요. 그것도 아주 어린 소녀요!’
현재 신전의 수장인 대신관이 어린 소녀라는 거에 사람들은 적잖이 놀란 거 같았다.
하긴. 여자는 마나를 못 다룬다는 오해가 만연히 퍼져 있지 않나.
여자가 신성력을 다룰 수 있다는 사실은 더 믿을 수 없을 거다.
“휴우.”
짧게 소란이 인 대신관의 호위 업무까지 마친 후, 집무실에 돌아온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한숨은 곧 유후, 하는 콧노래로 변했다.
이제 얼추 마무리됐으니. 휴가를 즐겨 볼까?
“각하. 내일부터 휴가 아니십니까?”
“아니네. 오늘부터네.”
내가 귀한 휴가를 반납하고 일한 거라고. 나는 올라가는 입꼬리를 숨기며 겉옷을 입었다.
그리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황궁을 빠져나왔다.
***
나 휴가잖아. 이건 내 휴가잖아?
‘근데 왜 네가 더 신난 거 같니?’
여기는 폐저택. 나는 밀가루를 코에 묻히고 마구 반죽을 젓고 있는 로잘린을 봤다.
내가 휴가라 하자, 로잘린 역시 궁인들에게 온갖 꾀병을 대곤 나와서 이러고 있는 중이었다.
“[언니. 그러지 말고 밀가루 좀 더 부어 봐.]”
이 정도?
“[으악! 너무 부었잖아.]”
민첩한 나 역시 와라락 쏟아지는 밀가루는 어쩌지 못 했다.
“[물! 물!]”
로잘린이 물을 찾으면 물을 대령했고.
“[밀가루! 밀가루!]”
밀가루를 찾으면 밀가루를 부었다.
점점 불어나는 양에 내가 결국 로잘린을 만류했다.
“[너 치킨 만든다며.]”
나는 거대한 볼에 담긴 반죽과 달리 빈약해 보이는 닭 한 마리를 봤다.
이건 치킨이 아니라 닭이 든 빵이 될 거 같은데.
“[요즘 내가 요리를 너무 쉬어서 그래.]”
로잘린이 코를 쓱, 했다. 밀가루 반죽이 그녀의 코에 묻었다.
“[내가 언니 고생했다고 간만에 실력 발휘하는 거 아냐. 어어, 맞다. 언니 빵가루 있나?]”
“[없는 거 같은데?]”
“[그럼 저기 있는 빵 갈아 봐 봐.]”
나 고생했다고 실력 발휘하는 거라며. 어째 왜 더 일하는 거 같냐. 나 휴가란 말이야!
“[쨔자잔!]”
그리고 한참의 인고 끝에 치킨 한 마리가 식탁에 올라왔다.
솔직히 우리가 전생에서 먹던 맛을 완전히 똑같이 구현할 수는 없었다.
원재료가 다르니까.
“[어휴. 내가 고춧가루만 있어도 떡볶이를 만드는 건데.]”
“[먹는 중에 먹는 걸로 투정하는 거 아냐.]”
그래도 오랜만의 기억이 떠오르는 탓일까. 우리는 추억을 나눠 먹었다.
“[아! 김치찌개 먹고 싶다. 삼겹살에 소주 크.]”
물론 로잘린은 많이 심취한 거 같지만.
어느새 치킨까지 먹고, 결빙 마법이 걸린 마도구에서 로잘린이 아이스크림을 꺼내 들었다.
“[배부르다며.]”
“[이 배는 달라.]”
로잘린이 예쁜 디저트 그릇에 담은 아이스크림을 내게 건넸다.
……이 그릇 황궁에서 쓰는 거 아니냐?
어휴. 그래. 이 그릇뿐이겠나. 허름한 외관과 달리 폐저택 안은 꽤 안락했다.
로잘린이 수집하는 빨간 가루들, 다양한 책, 심지어 황궁에서 가져온 그림들까지.
로잘린의 애장품들로 꽉꽉 채워져 있었으니까.
“[근데 로잘린.]”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주위를 두르던 나는 로잘린의 행동에 의아해졌다.
“[근데 너 이제 황궁에 돌아가야 하는 거 아냐?]”
로잘린이 행거에서 외출용 옷을 고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너 외박하게?
“[나? 괜찮아. 나 가끔 이틀 연속으로 잘 때도 있거든.]”
“[진짜? 잠을 그렇게 많이 자?]”
“[아니. 그게 아니라. 궁인들이 그렇게 안다고.]”
‘그래야 몰래 나와서 놀지.’ 로잘린이 중얼거리며 부유한 평민들이 입을 법한 옷을 손에 들었다.
“[오늘은 황도 야시장가서 놀 거야!]”
내게 건넨 옷 역시 부유한 평민들이 입을 법한 옷이었다.
로잘린은 괜히 쾌활한 척을 하며, 옷을 팔랑팔랑 흔들었다.
‘로잘린도 느낀 거겠지.’
내가 샤비얀에게 미안해하고, 걱정하고 있다는 걸.
신전과 동행한 샤비얀에게 호위를 붙일 순 없었다. 이미 신관들을 호위하는 성기사들이 있어 붙일 명분이 없었달까.
‘상황을 모르니 걱정되네.’
샤비얀에게 붙인 마부가 돌아오기 전까지는 그에 대한 소식을 들을 수 없었다.
“[아! 나가자고오!]”
그러니 휴가임에도 마음 불편하게 있는 나를 보고, 로잘린이 이러는 거였다.
“[시간 없다고! 언니 휴가 동안 놀 목록도 다 만들어 놨다고! 얼른 움직여! 얼른!]”
……아닌가? 나 걱정해서 나가자고 하는 게 아니라 그냥 놀고 싶어서 나가자는 거 같기도 하고?
***
그 시각. 하일렌 제국의 작은 영지.
샤비얀이 탄 마차는 북부로 향하고 있었다.
“으움.”
샤비얀의 앞에는 볼이 말랑한 어린 견습 신관 역시 있었다.
아마. 함께 온 신관들이 말 없는 샤비얀이 걱정돼, 같은 마차에 태운 것이겠지.
“황자 전하랑 있으면 마음이 편해요.”
“그러십니까.”
샤비얀이 마차 창문에 머릴 기댔다. 그의 공허한 눈이 하늘을 흘긋댔다.
자신의 마음은 이리 피폐한데. 신은 여전히 자신을 사랑하시는 것인가.
“신관님들이 말하시길 지금 우리는 바이우드로 향하는 중이래요!”
“…….”
“가서 나쁜 악마에 대해 조사한다고 하셨어요!”
오랜만에 세상 구경을 나온 어린 신관이 해맑게 재잘댔다.
신관들이 어린 신관을 배려해서 이 여정에 함께 포함했을 터.
견습 신관이라 하나 아무것도 모르는 순진한 아이일 뿐이었다.
“신관님들이 말하셨는데. 바이우드에는 엄청난 비밀이 있대요.”
“…….”
“베르웬 공작이 그곳을 점령해서 그분을 보러 온 이유도 있대요, 그분이 나쁜 분이면 안 되니까요!”
베르웬.
예상치 못한 이름의 출현에 샤비얀이 허리를 일으켰다.
“……비밀이라니?”
샤비얀은 줄곧 궁금했다. 공작님이 자신에게 왜 그랬을까?
단순히 재미로? 황녀가 시켜서? 황녀는 공작님을 사냥개라 지칭했었다.
그렇다면 무엇을 사냥하려는 것이지?
“바이우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