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niacs are Obsessed With the Fake RAW novel - Chapter (71)
‘시간 없다고! 언니 휴가 동안 놀 목록도 다 만들어 놨다고!’
로잘린의 그 말은 진짜였다.
나는 휴가 동안 로잘린과 야시장도 가고, 꽃동산도 가고, 제도 근처에 별도 보러 가고…….
‘그리고 지금은 오페라를 보러 왔지.’
왜지? 왜 휴가인데 더 피곤하지?
“[언니. 재밌겠다. 그지?]”
그래도 내가 로잘린의 말을 다 따라 주는 이유가 있었다.
‘로잘린은 황궁 밖으로 잘 못 나가니까.’
물론, 비밀 통로로 뻔질나게 나가긴 하지만, 공식적으로는 황궁 밖에 잘 못 나간다.
아무래도 호위 관련 사항도 있고.
이 세계의 정서상 결혼 안 한 황녀가 바깥출입을 자주 하면 욕하니까.
‘그래서 로잘린은 오페라를 자주 못 보지.’
전생에 극작 공부를 따로 했을 정도로 그녀가 좋아하는 분야인데도 말이다.
그래서 로잘린을 위해 오페라를 보러 왔다.
“황녀 전하.”
“예. 공작님.”
나는 마차에 내린 로잘린의 손을 잡고, 그녀와 함께 대극장으로 걸어갔다.
군부는 베르웬, 상계는 마르토스.
상계를 장악했다는 마르토스 공작이 소유한 극장은 크다 못해 거대했다.
그러니 당연히.
“[우와. 이거 지을 때 얼마 들었을까?]”
“[흠. 글쎄. 마르토스 공작은 자기 위신에 목숨 거는 사람이니까 돈 많이 썼을 걸?]”
저게 얼마에 지어졌을지가 궁금한 거다.
붙어 서서 오붓하게 걷는 우리는 앞에 있는 거대한 대극장의 땅값을 논하는 데까지 갔다.
‘로잘린 귀가 빨갛네.’
티는 안 내도 무심결에 요제프 얘기가 튀어나오니, 로잘린 귀가 빨개졌다.
마르토스 소공작. 그가 로잘린의 내연남 연기를 해 주며, 그녀와 진하게 입 맞추지 않았나.
아마 내가 보지 않는 사이에도 그들만의 이야기가 진행되고 있겠지?
베르웬 가문 전용 박스석에 앉은 후, 오페라 망원경을 든 로잘린을 대견하게 바라봤다.
“[로잘린.]”
“[응?]”
너 언제 그렇게 커서, 막 남자랑 막. 어? 눈 맞고? 응?
다 컸어. 다 커 버렸어.
“[하. 내가 너 처음 봤을 때가 갓난아기였는데. 너 그때 요만했어.]”
“[참나. 언니는 이만 했거든. 그때 언니도 꼬맹이였잖아.]”
로잘린은 지금 몸의 기억 또한 있기 때문에, 우리는 옛이야기를 하며 서로 실랑이를 했다.
그러다가.
“[언니 봐 봐. 시작한다.]”
무대 위의 빨간 휘장이 걷혔다.
“[응?]”
무대에 선 배우를 보고 로잘린이 고갤 갸웃했으나. 곧 무대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나 역시 무대로 시선을 틀었다.
이 세계 오페라는 마법이 있기 때문에 진짜 끝내주니까.
저세상에 특수 효과가 있다면, 여기엔 마법 효과가 있었다.
무대 위 하늘의 해가 진짜처럼 떠 있고, 바람도 불어 진짜 자연을 옮겨온 거 같았달까.
그리고 나 역시 극에 집중했다. 이 세상 신화에 관한 연극이었다.
“존재하되, 간섭하지 않는다! 이것이 나, 루스의 뜻이로다!”
이 세계의 신의 이름은 루스.
평화로운 시대엔 오로지 빛만 존재했다.
하지만.
“나는 당신의 자식이길 거부한다. 나를 어둠이라 부르거라!”
신의 힘을 훔친 이가 빛을 피해 어둠으로 숨어들었다.
그리고 지하에 자신의 제국을 세우고, 자신을 악마들의 황제로 불렀다.
그렇게 인간과 악마로 인류는 둘로 나뉘게 되고.
악마들은 인간들을 죽이고, 노예로 삼고, 가축으로 삼았다.
“너희를 지킬 아이를 보내 주겠다!”
신은 인간을 지키기 위해, 자신이 가장 아끼는 아이를 세상으로 보낸다.
그게 바로 드래곤이었다. 하지만 드래곤 역시 악마의 편에 서게 되고.
“너희의 지도자가 될 신의 대리자를 세우리!”
분노한 신은 신과 버금갈 만한 권능을 가진 자를 이 세계에 보낸다.
바로, 신의 대리자.
“우리는 이겼노라!”
신의 대리자와 인간이 기나긴 전투 끝에 승리했다.
그 이후, 악마들은 지하에 처박혔고, 신을 배신한 드래곤은 마계의 문지기로 전락하게 된다.
그게 이 세계의 주요 전설 중 하나인 대 전쟁 이야기였다.
“[오.]”
“[와.]”
동시에 감탄을 쏟아내는 나와 로잘린이었지만, 그 대상이 달랐다.
로잘린은 신과 마족 간의 전투가 있을 때마다 빛이 터지는 마법 효과에 감탄한 것이고.
나는 무대 위의 기사 역을 하는 배우의 검술을 보고 내뱉는 탄성이었다.
‘잘하잖아?’
사실 이런 격이 있는 대극장에 오를 만한 극단이 아니었다. 다들 서툴렀으니까.
조금 큰 사이즈의 기사복에도, 무대용인 모형 칼로도 예리한 검기가 드문드문 보였다.
나 정도 되면 어느 정도 감이 온다.
천부적으로 재능이 있는 건지, 아니면 노력해서 그 재능을 얻은 건지.
저자는 소드마스터가 될 자질을 가진 자라고!
저런 원석이 왜 연무장이 아닌 무대 위에 있담.
“하하.”
갑자기 등장한 영재의 출현에 내가 기쁨의 웃음을 터트렸다.
“[……왜 그래 언니.]”
장엄한 장면에 숨죽이고 있던 로잘린이 나를 바라봤고.
웃음이 터진 박스석이 베르웬 가문 소유인 박스석인 걸 확인하자.
“……하하.”
“하하하. 재밌네요. 그죠.”
사람들이 진지한 장면인데도 불구하고 다 나 따라 웃었다. 아냐! 아냐! 그거 아니라고!
……하. 이게 권력의 맛인가.
달지 않고 쓰다 써.
“어이! 잭! 마법사님의 땀을 닦아 드려라!”
“섬광 마법과 화염 마법 준비해!”
무대 뒤에서 마법 효과를 내려 뛰어다니는 사람들 틈에서.
챙-.
바닥에 검을 거칠게 내려놓는 소리가 들려왔다.
무대 위에서 갑자기 웃음거리가 된 그 배우가 화나서 저러는 거겠지.
어휴. 미안해라. 나중에 사례를 꼭…….
“저가 뭐라고 비웃어? 소드마스터면 다야?”
뒤따라 희미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배우겠지.
끙. 좋아서 웃은 건데……. 비웃은 건 아니라고. 이걸 일일이 해명할 수도 없고. 원.
“자기는 미친 남색 공작이면서?”
이 말 이후 이어지는 나에 대한 욕은 로잘린이 내뱉는 욕보다 한 10배는 심했다.
“[언니? 이 오페라가 그렇게 충격적이었어? 왜 하얗게 질렸어.]”
응. 아니. 아까 누군가가 나에 대해 욕하는 걸 들었는데.
……욕을 매우 잘하더라.
***
그러나 충격은 잠시고 기쁨은 계속 이어졌다.
‘차기 소드마스터가 생기면 나는!’
은퇴할 거야!
영지에 가서 일은 해야겠지만 국가 원수 격인 총사령관 자리는 내려놓을 수 있겠지!
“흐하하.”
결국, 돌아가는 마차에서 나는 웃음을 터뜨렸다.
“[……언니. 그 말이 그렇게 웃겨?]”
“[아. 미안 못 들었어.]”
나는 아직도 연극의 여운에 빠진 로잘린의 얼굴을 내려다보았다.
로잘린의 귀여운 이마가 고심하며 찌푸려졌다.
“[신이 가장 아끼는 이라는 드래곤은 왜 신을 배신하고 악마들 편에 섰을까?]”
“[그러게?]”
“[그지? 이유가 뭐지? 뭘까? 다른 신화에도 그런 설명은 없던데?]”
과몰입한 로잘린이 제 손을 불끈 쥐며 붕붕 흔들었다. 그러더니 턱을 쓸며 중얼거렸다.
“[분명, 빠진 이야기가 있는데…….]”
“하하.”
로잘린의 심각한 추론에도 나는 헤실헤실 입을 벌리며 웃었다.
하하하. 나도 은퇴할 수 있어! 내 자리를 이어받을 만한 사람이 나타났다고.
잘 설득해서 베르웬 기사단에 넣고, 내 후임으로 잘 키워서, 난 빨리 은퇴해야지!
***
그 시각. 베르웬 공작령.
북방의 가을은 이르다.
신전의 백색 마차의 뒤로 큰 마차 한 대가 흙길을 가로지르는 중이었다.
‘이곳이 공작님의 영지구나.’
마차 안, 샤비얀이 창밖을 바라보았다.
저 너머로 어둑한 렉티스의 산꼭대기가 어른어른 보였다.
“신관님. 그거 아세요?”
샤비얀은 제 앞에 있는 어린 견습 신관에게 입을 열었다.
“뭐를요? 전하?”
“이 세상의 신화엔 숨겨진 이야기가 있답니다.”
“예에? 정말요?”
항상 말이 없는 샤비얀이라, 심심했던 견습 신관이 눈을 반짝이며 되물었다.
“드래곤이 신을 배신한 건 악마의 황제, 마황이 드래곤의 연인을 납치해서였습니다.”
“…….”
“연인이 혹시 잘못될까 봐 마황의 편에서 신과 싸웠지만.”
멀리 보이는 렉티스를 보며, 샤비얀이 메마른 속눈썹을 깜빡였다.
“드래곤은 수없이 죽어 가는 인간들을 보며, 제 연인을 포기했습니다.”
만약 드래곤이 끝까지 악마들과 싸웠다면 인간들이 졌을 것이다.
“드래곤은 평화를 위해 마계의 문을 지켜요.”
“…….”
“하지만 동시에 벗어나고 싶어 하죠.”
마계의 문을 지킬 마땅한 이가 없어 그 문을 지키는 것이었다.
“드래곤은 미쳐 가고 있어요. 왜냐면 마계 안에 갇힌 자신의 연인이 고문받는 소리를 지금 이 순간에도 듣고 있거든요.”
“…….”
“그래서 드래곤은 자신의 힘과 의무를 계승해 줄 계승자를 찾고 있죠,”
힘과 의무를 넘겨주고, 자신은 마계로 가 연인을 구하기 위해.
“계승자는 드래곤의 힘을 계승할 수 있어요.”
만약 미쳐 버린 드래곤을 잘 설득하면, 그리고 어느 정도 시험에 통과하면.
어쩌면 샤비얀. 자신이 드래곤의 힘을 얻을 수도 있었다.
소드마스터인 공작님도 어쩌지 못 하는 권능을.
“……히아신스.”
샤비얀의 시선은 어느새 바뀐 풍경에 닿아 있었다.
물결처럼 출렁이는 푸른빛의 평야.
이곳이구나. 공작님이 말했던 히아신스가 흐드러지게 핀다는 곳이.
“멈추게.”
샤비얀의 말에 신전의 마차 뒤를 따르던 마부가 의아하게 되물었다.
“예?”
옆의 어린 신관도 눈을 동그랗게 떴다. 하지만 말리지 않았다.
신전에서 누누이 듣던 말이 ‘존재하되 간섭하지 말라’였다. 아마 어른 신관님들이라도 황자를 말리진 않았을 것이다.
이히힝-.
샤비얀은 말고삐를 쥔 마부에게 걸어갔다.
“내가 신전에 무사히 도착했다고 자네의 고용인께 알리게.”
“제 고용인이 누군지는 아십니까?”
무려 베르웬 공작이었다. 그분께 거짓말을 하라고?
마부가 질색하며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샤비얀은 개의치 않고 작은 짐만 챙겨 마차에서 내렸다.
“……이것들을 다 가지게.”
처연한 미인의 머리칼이 가을바람에 나부꼈다.
샤비얀이 흰 손가락으로 패물이 잔뜩 담긴 마차 두 대를 가리켰다.
“이 정도면 해 볼 만한 거짓말 아닌가.”
저 정도면 평생 먹고살 일은 걱정 없을 터.
머뭇거려도 결국은 수락할 것이다.
샤비얀은 눈을 휘둥그레 뜬 마부를 두고 히아신스가 핀 들판에 들어섰다.
“그럼 전하는 뭘 들고 가려고요……!”
샤비얀이 작은 짐을 흔들었다.
“나는 이거면 되네. 그리고.”
나머지 손으론 들판의 히아신스 꽃을 꺾었다.
“이것도.”
“…….”
“아름다운 것은 꺾고, 가지고 싶은 것은 가져야지.”
언젠가 아버지에게 들었던 말이었다.
샤비얀은 꺾인 히아신스 꽃을 든 채, 흐드러지게 웃었다.
“그렇지 않나?”
샤비얀이 걷기 시작했다. 그 누구도 살아 나오지 못했다는
죽음의 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