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niacs are Obsessed With the Fake RAW novel - Chapter (73)
“신분 증서를 내라!”
“없소.”
먼지 구덩이에 구른 듯한 꾀죄죄한 몰골. 찢긴 넝마 같은 옷.
누가 봐도 거지꼴인 내가 너무 당당히 신분 증서가 없다 하니 치안대가 당황했다.
“어, 없으면 우선 치안대에 가야겠다! 이리 와라!”
“……나를 끌고 가면 후회할 것이오.”
사실, 속에서 치미는 울렁증에 말하는 것도 어려웠지만.
최대한 귀족적으로 행동하려 했다.
더욱이 약하게 기세까지 풀자, 치안대가 살짝 뒷걸음쳤다가.
“왜, 왜 후회한단 말이냐!”
거지에게 쫄은 게 분한 건지, 치안대가 손에 든 장창으로 쿵-, 바닥을 찢었다.
진실을 숨겨야 할 때 가장 좋은 방법은 진실을 왜곡시키는 것.
“나는 선대 베르웬 공작의 사생아요.”
“…….”
“현 베르웬 공작의 배다른 누이란 말이오.”
나는 그래서 나의 없는 이복 누이인 척 하기로 했다.
베르웬 공작이 사실 여자라는 것보다. 선대 베르웬 공작에게 숨겨진 딸이 있다는 게 더 믿음직스럽잖아?
“베르웬 공작님은 내 존재를 숨겨 오셨소. 그래서 나는 신분 증서가 없소.”
평민의 복장이긴 해도, 손수건은 챙겨 왔다.
나는 내 손수건을 내밀었다. 손수건 하단엔 베르웬 공작가의 문양이 그려져 있었다.
더욱이, 잠행 갈 때는 숨기지만 지금은 일부러 더 우아하게 귀족 억양을 사용했다.
“이깟 손수건으로 신분이 증명은 안 되겠지만…… 욱.”
얘기를 이어 가려던 나는 결국 울렁임에 입을 막았다.
디딘 바닥이 울렁거렸다. 시야도 울렁울렁, 죄다 울렁거리네.
“공작님은 시끄러운 거 싫어하시오.”
“…….”
“치안대에 날 끌고 가서 많은 이들이 이 사실을 알게 되면 공작님께서 두 사람을 가만두시지 않을 것이오.”
이 꼬질이가 무슨 말을 하는 건지 하는 치안병의 눈초리가 혹시나 하는 눈으로 변해갔다.
“……혹시 모르니까 그냥 보내 줄까?”
“저리 아픈데 도둑 같진 않네.”
“억양도 귀족들이 쓰는 고급 억양이네. 진짜면 큰일 아닌가.”
손수건의 부드러운 촉감을 만지며 병사 둘이서 고갤 끄덕였다.
그렇게 우리는 간신히 상황을 모면했다.
다른 사람을 잡는 치안병을 등지고, 나는 라텔에게 기댔다.
“너…… 진짜 베르웬 공작의 이복 누이야?”
골목을 빠져나온 라텔은 날 질질 끌며 어디론가 향했다.
“공작이 돈 안 줘?”
“…….”
“너 죽을병 걸렸다고 공작이 버렸냐?”
라텔의 중얼거림이 귀에 들렸다.
땀에 젖어 색색거리는 호흡을 내뱉는 나는 죽을 날 받아 놓은 환자 같긴 했다.
“하. 또 주워 가네. 또.”
나를 짐덩이 취급하며 구시렁거리던 라텔이 나를 고쳐 들었다.
야아. 좀 살살해. 그러면 속이…….
동시에 욱, 치미는 어지럼증과 함께 어둑한 하늘이 빙글 돌았다.
아. 이제 한계다.
“야……!”
그리고 라텔의 부름을 들으며 기절해 버렸다.
***
하일렌 제국의 황성.
분수대에 걸터앉아, 긴 다리를 뻗고 있는 건 레시우스였다.
‘오늘 너 일 마치면 나랑 놀자.’
그는 오늘 일을 마치고, 르윈과 밖에서 만나기로 했었다.
약속 시간이 한참이 지나도 르윈이 오지 않자, 레시우스는 결국 초조하게 자리에 섰다.
‘무슨 일이 있는 건가.’
르윈이 약속 시간에 늦다니. 이런 적은 처음인데.
단둘이 있고 싶어서 그림자들도 다 물린 상태였다.
분수대 주변을 불안하게 서성이던 레시우스가 결국 그림자들을 호출하려는데.
“거. 괜히 보내 준 거 아닌가?”
“정말 혹시 모르지 않나. 진짜 베르웬 공작의 숨겨진 이복 누이면 어쩌려고.”
교대하곤 광장을 지나가던 치안병들의 대화에 레시우스의 손이 멎었다.
‘베르웬 공작의 숨겨진 이복 누이?’
르윈에게 무슨 일이 생겼군.
레시우스는 그녀에게 무슨 일 이 생겼음을 직감했다.
“거기 잠깐. 그게 무슨 소리인가? 베르웬 공작의 숨겨진 이복 누이라니?”
레시우스는 말해 주지 않으려는 치안병을 붙잡고 한참이나 물은 후에야 모든 정황을 알게 됐다.
‘르윈의 흑마법이 풀린 것이다.’
검문 중 자신이 베르웬 공작의 숨겨진 이복 누이라 한 여인이 있었고, 그 여인을 보내 주었다는 치안병의 진술.
덩달아 여인이 아파 보였다는 말에 레시우스의 표정이 빠르게 굳었다.
“그러니까 그 여인이 저쪽으로 갔단 말이냐?”
기품 있는 외양과 우아한 억양에 레시우스를 황족쯤으로 예상한 치안병들이 고갤 끄덕였다.
“예. 저쪽으로 보라색 머리를 가진 여인의 부축을 받으며 갔습니다요.”
치안병이 가리킨 쪽을 보며, 레시우스가 아랫입술을 잘근 씹었다.
주택이 다닥다닥 모인 주거 구역으로 어림잡아도 집이 몇백 채는 될 거 같았다.
‘그림자들을 동원할 순 없다.’
르윈이 여자라는 건 그림자에게도 숨기는 사실.
레시우스는 하는 수 없이 자신이 혼자 르윈을 찾기로 결정했다.
보라색 머리. 특이한 색이니 물어물어 가면 찾을 수도 있을 것이다.
‘저자들의 입을 굳이 막을 필욘 없겠지.’
헛소문으로 치부될 것이다. 사교계에서 이런 소문은 소문 축에도 들지 못하니.
레시우스는 그들을 등지고 걸으며, 점점 속도를 올렸다.
주거 구역에 도착한 후 수백의 집들에 살짝 아연해졌지만.
“찾을게.”
네가 어디 있든.
손에 든 로브를 쓴 레시우스가 차례대로 현관문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
눈을 뜨자마자 나는 눈을 다시 감았다. 이마 위에 올려진 수건이 흥건했다.
으에에. 이게 뭐야?
물을 안 짠 물수건 탓에 얼굴의 반절이 젖어 있었다. 누가 간호를 이따위로…….
“일어났어.”
“웅. 내가 봤어.”
어둑한 시야 사이로, 앳된 목소리가 흘러들어 왔다.
정말 어린 애들의 목소리였다. 커 봤자 한 여섯 살 정도?
‘꿈인가?’
내가 이런 몽글몽글한 꿈을 꿀 리가 없는데.
무겁게 짓누르는 눈꺼풀을 들었다.
그러자 볼이 포동포동한 귀여운 여자애들의 모습이 시야에 들어찼다.
“우와. 잠자는 황녀님이야.”
“아냐. 이제 눈떴으니까 그냥 황녀님이야.”
눈동자만 내려다보니 몸은 씻겨 있고, 옷도 갈아입혀진 상태였다.
나는 품이 큰 하얀 잠옷을 입고 있었다.
얼핏 보면 소년처럼 바지를 입었던 라텔 스타일은 아니었다.
뭐랄까. 로잘린 스타일인데. 이거.
‘뭐지?’
잠옷의 소매를 만지던 나는 의아해졌다.
소재가 진짜 고급 소재였다. 고급 소재만 걸치고 사는 나는 딱 만져만 봐도 안다.
“이 옷 라텔 언니 꺼야?”
허름하지만 방 안도 생각보다 넓었다.
책도 많고. 책상 위에 놓여 있는 건 고가의 활자 마도구였다.
“아뇨! 이건 로즈 언니 꺼!”
“맞아요. 로즈 언니가 막 이만큼씩 옷 가져다 줘요!”
자신이 할 수 있는 한 제일 크게 동그라미를 그린 꼬마 숙녀가 통통한 볼을 구기며 웃었다.
아…….
‘귀여워.’
귀여움에 무장 해제 된 나는 아이들의 쫑알거림을 들으며 창밖을 봤다.
그리고 굳었다.
‘레시우스!’
기다리겠지.
그런데 여자 모습으로 나갈 수는 없으니……. 마른세수를 하며 앓는 소릴 냈다.
“쉬어야 해요!”
“누워요!”
내 앓는 소리에 아이들이 꾸물꾸물 침대 위로 올라왔다.
얘들은 이걸 간호 놀이쯤으로 여기는 게 분명해.
얘들아…… 내려와 줄래. 내가 지금 몸이 너무 무거운데.
“볼이 부드러워!”
“머릿결도 좋아!”
“근데 손은 굳은살이 있는데? 라텔 언니 같아!”
나는 그렇게 그냥 포기한 채 침대에 누웠다.
침대 매트리스가 빙빙 돈다.
레시우스가 기다릴 텐데, 란 생각마저 흐려질 때쯤 방문이 열렸다.
“야아! 너희들 내가 간호하라고 했지. 괴롭히래?”
쟁반에 먹을 걸 챙겨 온 라텔이 아이들을 내쫓았다.
***
라텔은 다시 기절한 르윈을 보며 한숨 쉬었다.
“휴.”
병든 강아지처럼 몸을 마는 르윈은 처연했다.
꼬질꼬질한 몰골을 씻겨 놓으니 영락없이 아름답고 귀한 여인이었다.
그에 반해 고생을 많이 한 건지 손바닥이 거칠기 짝이 없었고.
‘진짜 죽을병 걸려서 베르웬 공작이 버린 건가.’
결국, 라텔은 베르웬 공작의 이복 누이라는 걸 믿게 됐다.
“흐으…….”
아픈 건지, 악몽을 꾸는 건지 옅은 신음을 흘리는 르윈을 보며, 라텔이 보라색 머리를 벅벅 긁었다.
아씨. 왜 저렇게 불쌍해 보이는 거야.
“……내보내야 하는데.”
가뜩이나 입 많은 고아원에 이런 덩어리를 달고 오더니.
많이 이쁜 덩어리긴 했어도. 결국 입이 하나 는 거다.
이 고아원의 가장 격인 라텔이 한숨을 내뱉는데.
쿵쿵!
대문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애들 다 깨잖아……!”
짜증스럽게 중얼거리던 라텔이 조용히 복도를 지나 문을 여는데.
“찾는 사람이 있는데…….”
태생부터 권위를 지닌 것 같은 눈동자가 라텔에게 닿았다.
녹색의 시선이 거실에 나뒹구는 옷가지로 향했다.
버리려 놔둔 르윈의 옷가지였다.
“찾은 거 같군.”
남자가 로브의 후드를 벗었다.
얼마나 이리저리 뛰어다녔는지 잔뜩 흐트러진 몸가짐에도 그 눈빛만은 굳건했다.
문틀을 잡은 손은 기품 있었고, 이목구비는 고귀했다.
누가 봐도 권력자일 게 분명한 자였다.
“듣기로는 베르웬 공작의 이복 누이가 여기 있다던데……”
레시우스는 조급함을 숨기며 물었다.
“그분께 안내하라.”
아까까지만 해도 르윈을 짐덩어리 취급했던 라텔은 조금 망설였다.
이자가 누군지 알고 그 이쁜이한테 데려다준단 말인가.
하지만.
‘이쁜이 연인인가?’
냉기가 풀풀 날리는 미남자는 어느새 조급함에 허물어져, 걱정돼 미치겠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따라오십시오.”
결국, 라텔은 레시우스를 르윈이 있는 방으로 안내했다.
“그럼.”
라텔이 아래층으로 내려가자, 레시우스는 손을 달싹였다.
문 하나 여는 게 이리 긴장될 일이란 말인가.
끼이-.
아주 조심히 문을 연 레시우스는 한눈에 그녀를 찾아냈다.
“레…….”
흩날리는 커튼과 함께 그녀의 잿빛 머리가 흩날렸다.
무심결에 그의 이름을 부르려던 입술이 닫혔다. 달빛이 흐르는 하얀 얼굴이 이 상황을 파악하려 눈을 굴렸다.
“처음 뵙겠습니다.”
그녀는 도망이라도 갈 생각인지, 침대 밑으로 다리를 뻗으려 했지만.
초면에 할 법한 레시우스의 딱딱한 인사에 르윈이 그대로 멈췄다.
‘그래. 너는 항상 나로부터 도망쳤지.’
르윈은 자신을 친구 이상으로 보지 않는다.
정확히는, 르윈은 레시우스를 친구 이상으로 보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었다.
그와 그녀는 상황상 이어질 수 없으니까. 그녀는 남자로 살아야 하니까.
“우연히 치안병의 얘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
“그로 인해 당신이 베르웬 공작의 이복 누이시라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그녀가 베르웬 가의 사생아를 연기한다면, 그 연기에 기꺼이 속아 줄 것이다.
레시우스가 침대맡 바닥에 한쪽 무릎을 경건하게 꿇었다.
“저는 당신의 이복동생인 베르웬 공작의 절친한 지기입니다.”
“…….”
“이야기를 듣고 당신을 돕고자 이리 왔습니다.”
우리가 친구로서 너무 익숙해져서.
아니면 너와 내가 함께 할 수 있는 이 상황이 너무 명확해서 나를 밀어내는 거라면.
그래서 우리가 단지 친구여야만 하는 거라면.
기사가 사랑을 맹세하는 여인에게 하듯. 달빛 아래에 선 그가 그녀의 흰 손을 잡았다.
그리고 거룩하게 제 입술을 묻었다.
“저는 레시우스 드 하일렌입니다.”
내가 다가갈게.
친구가 아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