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niacs are Obsessed With the Fake RAW novel - Chapter (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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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화
‘저는 레시우스 드 하일렌입니다.’
무슨 자기 이름을 저리 달달하게 밝혀.
맞물린 시선 속에서 나는 레시우스의 눈 속에 든 감정을 읽어 냈다.
사랑.
애정이 넘치는 눈으로 그는 나를 보고 있었다.
“그…….”
나는 입을 달싹였다.
그에게 묻고 싶었다. 너는 왜 나를 그렇게 보냐고.
너한테 지금 난…….
‘모르는 사람 아니냐?’
뭐. 아까 쟤가 치안대한테 이야기를 들은 후, 베르웬 공작의 이복 누이를 찾아서 여기 왔다고 하긴 했다. 거기까진 알겠는데.
어휴. 얘 봐. 얘.
네가 막 그렇게 아무렇게 직함을 까면 안 되는 위치예요.
“하일렌의 태양을…….”
나는 끙끙대며 아픈 몸을 이끌고 침대 아래로 내려갔다.
그러곤 바닥에 무릎을 꿇으려는데.
“아, 안 그러셔도 됩니다.”
레시우스가 답지 않게 당황하며, 나를 다시 침대 위로 앉혔다.
……뭐랄까. 얘도 그냥 막 앞뒤 생각 없이 자신의 정체를 밝힌 느낌이랄까?
“자비에 감사드립니다. 폐하.”
머리가 어지러웠으나 나는 눈에 힘을 줘 가물가물한 시야를 똑바로 보려 했다.
레시우스 앞이다.
내가 ‘그’ 베르웬 공작. 자신의 친구라는 걸 들킬 수도 있는 거다.
“치안대에서 얘기를 듣고 오셨다고요?”
“예.”
레시우스는 내 식은땀을 닦아 주고 싶은지. 침대 위에 얹은 예쁜 손을 움찔거렸다.
‘레시우스가 그렇게 쉽게 내가 베르웬 공작의 이복 누이일 거라고 믿는다고?’
이해가 안 됐다.
쟤가 내 앞에서는 좀 허술한 면이 있긴 하지만.
레시우스는 되게 꼼꼼하고 세심한 성격인데?
“……그런데 이렇게 쉬이 믿으십니까? 제가 베르웬 공작님의 친족이라 사칭하는 이일 수도 있을 터인데…….”
“그럴 수도 있겠지만.”
레시우스가 내 손가락 끝에 제 손끝을 가까이 댔다.
“너무 닮으셨습니다.”
“…….”
“마치 공작이 앞에 있는 것 같이요.”
그의 초록 유리알을 담은 눈이 이쁘게 휘었다. 그 위로 살랑 흔들리는 금발에 달빛이 고였다.
“그래도……”
나는 너무 어수룩한 레시우스가 의심돼서 말문을 열었으나.
‘레시우스한테 더 깊이 물었다가 내 정체에 대해 물어보면?’
그러면 더 큰일이었다.
원래 사람이 하나를 받으면, 또 하나를 내줘야 하는 법이에요.
내가 레시우스에게 쏟아 내는 질문 공세는 나한테로 다시 돌아올 거다.
그리고…….
‘완전 쌍둥이 같으니까.’
닮기도 엄청 닮았고.
레시우스는 나랑 관련된 일은 가끔 터무니없는 것들도 그냥 넘어갔던 적도 많아서.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래서 그냥 그러겠거니, 하고 넘겼다.
무엇보다.
“많이 아프신 거 같은데. 쉬셔야 되겠습니다.”
“……예,”
“누우십시오. 제가 나가서 물을 갈아 오겠습니다.”
머리가 아팠다.
흑마법이 풀린 후, 머릿속이 곤죽이 돼서 깊은 생각을 할 수 없었달까.
몰라. 레시우스가 날 이복 누이로 믿어 줘서 얼마나 다행이야.
탁-.
레시우스가 나가고, 들어와서 내 옆에서 물수건을 짜고, 그걸 이마 위에 올려 주고.
그 모든 것이 따뜻해서, 몸이 노곤해졌다.
……자면 안 되는데.
“……폐하.”
“예.”
“……죄송한데 나가 주시면 그 자비에 감사드릴 거 같은…….”
내가 잠들어서, 끙끙대는 걸 레시우스가 봐서는 안 됐다.
내가 밤마다 악몽을 꾸는 건 트라우마 때문. 이복 누이까지 밤마다 악몽을 꾼다?
얼굴도, 행동도 너무 동일하면 레시우스가 의심할거다.
“아.”
“…….”
“네. 알겠습니다.”
레시우스가 뭔가를 이해했다는 듯 고요히 눈썹을 내리다가.
살짝 눈매를 아프게 흐리곤, 자리에서 섰다.
탁-.
레시우스가 방 밖으로 나가고서야. 나는 완전히 잠들 수 있었다.
그리고.
‘너 설마 이러고 잤니?’
새벽에 잠시 깬 나는 바로 방 밖 문 옆에서 자고 있는 레시우스를 발견했다.
그는 바깥벽에 기댄 채, 긴 다리를 꼬고 잠들어 있었다.
“휴우.”
왜. 여기서 자고 있대? 너 황궁으로 돌아가야지? 응?
그렇지만 지금 위장 신분으로는 그 말은 못 하니.
나는 그냥 몸을 낮추곤, 그의 감긴 단정한 눈을 바라봤다.
‘이야기를 듣고 당신을 돕고자 이리 왔습니다.’
날 돕겠다더니.
진짜 심하게 돕는다. 너.
나는 레시우스의 잠든 얼굴을 어지럽게 바라봤다.
그의 입장에서 나는 ‘그’ 베르웬 공작과는 다른 사람일 텐데.
‘그런 눈빛으로, 그런 말들을 하는 건. 그렇게 다정한 건, 유죄야. 레시우스.’
남들한테도 다 그런다는 걸 알게 되고 나니……. 뭔가 기분이 이상하달까.
***
“휴.”
나는 마룻바닥에 묻은 낙서들을 지우며 한숨 쉬었다.
‘얼추 해결은 했어.’
흑마법사 바론에게 얼른 제도로 오라는 서신도 보냈다.
로잘린에겐 흑마법이 풀렸다는 전서구를 이미 날렸고.
‘베르웬 공작은 사냥 간 걸로 돼 있으니까.’
남 귀족들이 사냥 간다 하며 훌쩍 떠나는 일은 귀족 사회에서 빈번한 일이었다.
그렇기에 남자인 베르웬 공작이 사라진 건 이제 알리바이가 생겼다.
이제 좀 쉬어 볼까 싶었지만.
“어니이!”
“와앙! 언니!”
세안을 마친 꼬맹이들이 날 습격했다.
마룻바닥의 파스텔 톤 낙서를 지우던 나는 어린 적들의 공격에 무너졌다.
‘상상도 못 했지. 여기가 고아원일 줄은.’
수십 명의 여자아이들이 이리저리 섞여 거실을 우다다-, 돌아다녔다.
‘여자애들은 많이 버려. 커서도 돈을 못 버니까.’
그래서 그렇게 버려진 여자애들을 모아 둔 고아원이 여기였다.
“한나 언니!”
“와아! 이랴이랴!”
여기서 나는 전생의 이름인 ‘한나’라 불리었고.
“달려라 달려!”
“난 기사다! 이랴이랴!”
그렇게 소드마스터를 깔고 앉아, 말로 쓰는 아이들을 보며 나는 결국 일어서려던 등을 바닥에 댔다.
아. 내 휴가가 육아로 다 지나가겠군.
***
“자아. 얘들아 집중!”
나는 수십 명의 영유아와 1명의 질풍노도 청소년을 상대 중이었다.
“자아! 이제부터는 아무것도 안 하기 놀이하는 거야!”
“네!”
“움직이고 말하면 지는 거!”
내 말에 몇몇 애들이 헙-, 하며 빵빵하게 볼을 불리며 입을 다물었다. 귀, 귀여워.
“참나. 별.”
알고 보니 청소년이었던 라텔도 함께 아이들 틈에 앉았다.
야아. 지금 너 교육받는 중이거든.
‘말 안 들으면 백 대.’
상황을 보니, 고아원 원장이 죽고 제일 큰언니인 라텔이 이 고아원을 이어받았단다.
그녀는 아이들을 주로 ‘공포’로 훈육했다. 나는 이걸 내가 있는 동안 고쳐 줄 생각이었다.
“으아아! 내 꺼잖아!”
“넌 저 막대기 쓰면 되잖아!”
몇 분도 안가 소란스러워지는 거실에 라텔이 의기양양하게 일어섰다.
봤지? 하는 듯 라텔이 날 보니, 제 손에 든 목검을 고쳐 들었다.
“너희 안 멈추면 내가 맴매할 거야.”
그러곤 아이들의 머리 한참 위에서 휙휙 목검을 휘둘렀다.
그리고 나는,
‘어?’
놀랐다.
저거 내가 로잘린한테 가르쳐 준 방식인데?
그냥 장난처럼 휘두른 거라 정확하진 않았지만 쥐는 방식이 똑같았달까.
그건 특이한 방식이었다.
힘이 약한 로잘린을 위해 내가 베르웬 가의 검법에서 조금 변형시킨 거였으니까.
“너 그거 어디서 배웠어?”
“……그건 왜?”
라텔이 뜨끔하며 물러서려다가.
“안 알려 줄 건데?”
장난스럽게 내 눈앞에서 목검을 빙빙 돌렸다.
그녀는 ‘애들을 때려선 안 된다’ 혹은 ‘애들만 두고 나가지 마라’ 등 나의 잔소리에 그간 짜증이 났던 터였는지.
“너 말이야. 날 너무 애 취급한단 말이지.”
휙-.
라텔이 도발하듯 내 목 바로 앞에서 검을 멈췄다.
나는 순간 눈살이 찌푸려졌다.
라텔은 장난과 경고를 섞어, 날 위협한 거다.
‘영 기사도가 없네.’
재능도 중요하지만, 그 재능을 어떻게 쓰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쓰흡. 이건 교육이 조금 필요하겠는데.
“봤지. 까불면 너도 맴매야. 그러니까 이제 나 애 취급하지 마.”
야아. 아직 애니까, 애 취급하지.
“라텔. 너 틀렸어.”
“뭐가?”
나는 라텔의 손에 있던 목검을 여유롭게 뺏었다.
할 거면 제대로 휘둘러야지.
빠르게 비어진 손에 라텔이 영문 모르고 제 손을 보는 사이.
나는 아까 라텔이 했던 것과 정확히 같은 방식으로 검을 휘둘렀다.
“이게 아니라.”
라텔이 한 방식은 다소 딱딱하고 끊긴다면.
“이거야.”
그리고 내 방식대로 물 흐르듯 검을 휘었다.
더 부드럽게 연결되며 흐르는 궤적.
그리고 아까 내가 당한 것처럼 라텔의 목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휙-.
바로 정말 얕은 틈만 두고 라텔의 목 앞에서 멈춘 목검.
바람에 흩날린 그녀의 보라색 머리칼이 다시 제자리를 찾았다.
“그리고.”
나는 딱딱하게 그녀를 바라봤다.
이건 말랑말랑한 한나가 아니라 무인으로서 하는 말이었다.
“네가 아까 휘두른 목검이 진검이었다면 넌 내 목에 상처를 냈을 거다.”
날카롭게 일갈했다.
진검이 무거우니 가속을 받은 검에 내 목이 베였을 거다.
“검을 함부로 다루는 자는 검을 쥘 자격이 없어.”
검이란 건 물체를 베고, 동물을 베고, 사람을 베는 도구다.
검을 무서워하지 않는 자는 검을 들어선 안 된다.
“너를 잘못 봤군.”
저런 마인드면 소드마스터가 되면 안 될지도 몰라.
차기 소드마스터 감을 찾았다고 좋아했는데…… 나는 실망한 듯 검을 내렸다.
하지만,
“우와아아!”
“와! 멋있다아아!”
한 편의 연극 같은 그 시연에 아이들이 고사리 같은 손으로 짝짝짝 박수를 쳐 댔다.
하핫. 좀 민망하네.
‘그래. 아직 어리니까.’
나는 아이들 틈에 조용히 앉는 라텔을 흘끔 봤다.
어리니까. 이해해야지. 내가 찬찬히 가르쳐 주면 되지!
“더 보여 주세요!”
“슝슝! 더 보여 주세요!”
어휴. 애들아. 소드마스터의 검술이 그 박수 몇 번에 볼 수 있는 게 아니라고.
“……보여 주면 오늘은 일찍 자기.”
“네!”
아아. 육아란.
휙휙-.
나는 목검을 들고 휘둘렀다. 처음엔 그냥 설렁설렁했는데,
“와아아!”
“우리 언니 최고!”
통통한 손뼉으로 박수치는 어린 관객들에게 신이 나서 온갖 화려한 검술을 선보였다.
나. 왜 이렇게 열심히 해?
이건 베르웬 기사 앞에서도 안 하는 거였다. 기사단이 뭔가, 황제가 시켜도 하기 싫으면 안 하는 거라고.
그때.
“하하.”
주택을 개조한 고아원 대문에서 청명한 웃음소리가 터졌다.
레시우스였다.
아침에 처리할 일이 있다며 황궁으로 갔던 그가 손에 선물을 가득 쥔 채 돌아온 것이다.
그는 귀여워서 못 참겠다는 듯이 아랫입술을 깨물며 웃고 있었다.
“와아! 장난감이다!”
“우아아! 이거 목각 인형 봐!”
레시우스의 선물에 아이들은 죄다 달려갔고, 나는 라텔이랑 나만 남은 거실에서 허탈하게 검을 내렸다.
……너희 선물에 그렇게 쉽게 넘어가기야?
“……어?”
레시우스가 내 쪽으로 다가오는데, 그의 모습이 기울었다. 정확히는 내가 기운 거다.
몸 상태가 아직 덜 나았는데 검을 너무 열심히 휘둘렀나.
다리에 힘이 빠진 채 뒤로 넘어가려는데.
“괜찮으십니까?”
레시우스가 긴 다리를 성큼 뻗어, 내 등을 받쳐 냈다.
“예…….”
“다행입니다.”
마법이 풀린 뒤 키가 작아진 탓에 나는 그의 품에 푹 안겼고.
따뜻한 그 품속에서 터질 듯한 그의 심장 소리가 들렸다.
‘뭐, 뭐야. 설마…… 얘 나 좋아하나?’
쿵, 쿵, 쿵.
맞는 거 같